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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41화 (241/450)

241. 인생은 모르는 거야

241. 인생은 모르는 거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파, 베타, 감마 기지가 있는 변경 8구역 북부가 남부보다 먼저 개발되었다.

이 세 개의 전진 기지는 변경 8구역이 7구역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 당시에는 미개척지였던 원시의 땅을 새롭게 개척할 때 창설된 기지들을 이름만 바꾼 것이었다.

남쪽에 있는 델타 기지만 8구역이 떨어져 나온 뒤에 만들어진 전진 기지였다.

그래서 알파, 베타, 감마 기지 사람들은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가 바로 8구역을 만들었지!”

그들이 성공적으로 이 땅을 개척하지 못했다면 변경 8구역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 자부심은 정당했다.

그러나 호른이라는 정찰병 출신의 영리한 젊은이가 30여 년 전 신설된 델타 기지의 대장으로 임명되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변경 개척은 개척민의 이주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개척민의 이주는 변경부에 이주를 신청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변경 각 구역에 보내는 방식, 말하자면 변경 구역 본부로서는 언제 얼마나 개척민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소극적인 방식이었다.

그에 따라 각 전진 기지도 그때그때 들어오는 개척민의 수에 맞춰 주택을 짓고 땅을 개간해 분배해 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개척을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호른은 기존의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이주민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은 달리 생각하면 갑자기 많은 수의 이주민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갑자기 이주민이 늘어나면 대응을 제대로 못 하게 되고 그에 대해 변경부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차후 이주민을 덜 보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리 개척해 놓고 이주민을 받는 것이 좋다. 변경부나 변경 구역 본부에서 볼 때 어느 전진 기지로 이주민을 보내고 싶을지는 자명하니까.”

물론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나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미리 주택을 짓고 땅을 개간하고 방어 시설을 건설해 놓았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비용을 송두리째 날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호른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변경부나 변경 구역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해 주는 개척 자금 외에도 자신의 사재를 털어 미리 개척할 땅을 물색하고 방어벽을 짓고 집과 건물, 농지를 마련해 나갔다.

처음에는 그의 재산이 별로 없었기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으나 첫 번째 개척촌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세금 수입이 들어오자 은행 융자까지 더 내어 두 번째 개척촌은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호른은 5년마다 개척촌과 개척 도시를 새로 건설하며 승승장구했고 그의 재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성공은 전쟁으로 발생한 이주민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까지 꾸역꾸역 받아들이고 새로운 개척지를 욕심내는 바람에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끝이 났지만, 정찰병으로서의 능력보다 사업가로서의 역량이 더 뛰어난 호른의 등장으로 변경 8구역 남부는 북부와 필적할 만큼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루산이 단기간에 반달 호수 남쪽 지역을 대규모로 발전시킴으로써 변경 8구역 남부와 북부의 개발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버렸다.

그로 인해 알파, 베타, 감마 기지 사람들은 남부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8구역을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그들의 자긍심은 고집 센 노인네의 공허한 추억담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모두 변경 8구역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소속감과 뿌리에 대한 애착은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장님, 저 자식들이 째려보는데요?”

바이크가 곁눈질을 하며 말했다.

루산 일행은 1전단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감마 기지에 들어와 있었다.

루산이 타고 온 우르사는 너무나 눈에 띄는 기체라 8구역 전투 요원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남부 델타 기지 출신으로 반달 호수 지역을 개척하는 데 엄청난 공을 세운 루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레이크 시티 시장이 되고 신설된 제2 기동 전단장으로 승진된 루산이 8구역 북부 자신들의 땅을 찾아온 것을 알아보고 감마 기지의 전투 요원들이 공연히 투기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버려 둬.”

루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감마 기지 대장으로부터, 입으로는 미소를 짓고 친하게 지내자고 말하면서 눈으로는 질투와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묘한 대접을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지만, 피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가자.”

“네, 대장님!”

루산이 우르사에 오르고, 시에나가 레오파드 파워에 탑승했다.

바이크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며 감마 기지 전투 요원들을 노려보고 루산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춘 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눈 깔어! 확 씨!”

감마 기지 전투 요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바이크는 승리감을 만끽하며 자신의 레오파드 라이트닝에 올라탔다.

세 대의 멕 나이트는 감마 기지를 벗어나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멕 나이트 여러 대가 손을 잡고 둘러싸도 좀처럼 닿지 않을 만큼 굵은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원시의 숲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워낙 그늘이 짙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통과할 때 전조등을 켜야 했다.

원시의 가시덤불과 넝쿨도 우거질 대로 우거져 시야를 방해했다.

멕 나이트가 없었다면 한 걸음도 통과하기 어려운 공포의 원시림이었다.

[북부 전진 기지들이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숲이지.]

루산이 통신기로 말했다.

대화 겸 교육 시간이었다.

시에나가 먼저 반응했다.

[이 숲의 이름이 검은 숲 아닌가요? 8구역 지도에서 봤어요.]

[맞아, 검은 숲. 낮에도 밤이 된 것처럼 캄캄하고 두려움을 안긴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지. 좀 더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인간 세상의 벽, 인간 세상의 한계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지만, 생존이 더 중요한 변경에서 그런 감수성보다는 직관이 더 통했는지 이제는 다 검은 숲이라고 부르지.]

검은 숲은 8구역 북부, 전진 기지들에서 반달 호수 북쪽 땅까지 펼쳐져 있었다.

숲이 워낙 깊고 넓어 새로운 개척지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무를 다 베어 버리거나 불 질러 버리면 되지 않아요?]

바이크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이렇게 큰 나무를 어떻게 베? 목재 회사들도 운반하고 가공하기 좋은 나무를 선호하지 않겠어? 설사 벨 수 있다고 해도 여기에는 괴수들이 득실득실하거든.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해.]

루산이 타박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요새 늘 기분이 좋은 편이라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불을 지르는 건 금물이야. 불이 번져 변경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숲을 함부로 태우면 안 돼. 이런 울창한 숲은 괴수들의 보금자리거든. 이 검은 숲 덕분에 알파, 베타, 감마 기지의 괴수 부산물 수입이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 거야.]

[아!]

[여기서 나는 임산물 수입도 쏠쏠하다고 들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이 검은 숲은 북부 세 기지의 확장을 막고 있는 장애물이면서 일정한 수입을 유지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지.]

루산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제 괴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인간 세계의 한계선이라고 부르면서도 인간은, 이곳을 파악하고 넘어서기 위해 정찰을 꾸준히 해 왔기에 멕 나이트가 반복해서 지나다닌 정찰로가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1전단이 통과한 곳은 길이 더 넓혀져 있었다.

우르사는 그 길을 따라 거침없이 전진했다.

아무리 길이 나 있다지만 갈림길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시에나가 물었다.

[대장님은 이곳에 오신 적이 있으세요? 제가 8구역에 들어온 뒤로는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대장님이 8구역 북부로 가셨던 기억은 없어.]

바이크가 끼어들었다.

루산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들어오기 전에 몇 번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나이 든 것 같잖아?]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헤헤헤!]

시에나가 장난을 쳤다.

[그러고 보니 반달 호수 지역에 웨이브가 밀려오고 난 뒤로는 한 번도 안 왔구나!]

[맞아요. 반달 호수 지역을 개척하느라 바빴죠. 여유가 좀 생기나 싶으면 남쪽으로, 북쪽으로 용병 활동하러 가고······.]

바이크가 노병처럼 무게를 잡고 지난날 회상에 동참했다.

루산이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변경 2년 차 되던 해에 검은 숲 서쪽에서 대규모 웨이브가 발생했지. 반달 호수 남쪽으로 밀려온 웨이브도 컸지만, 검은 숲으로 밀려오는 웨이브는 전진 기지들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8구역 모든 멕 나이트와 전투 요원들이 투입되었어.]

[아!]

[검은 숲은 워낙 광활하여 서쪽에서 웨이브가 밀려와도 곧바로 괴수들이 숲 동쪽으로 나와 전진 기지를 덮치지 않아. 일단 스펀지처럼 쭉 빨아들이지. 숲이 괴수들로 가득 차게 되면 그제야 동쪽으로 밀려 나오는 거야. 게다가 검은 숲 동쪽은 길목이 좁은 것도 아니야. 차단할 수가 없어.]

[아하! 그래서 감마 기지 방어벽이 다른 데보다 더 높은 거였군요?]

[맞아. 웨이브를 막을 길목이 없으니까 전진 기지 방벽을 높고 튼튼하게 쌓아야지. 평소에도 가끔 중대형 괴수들이 나오니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하고.]

귀족 물이 덜 빠져 1년 차에 온갖 구박과 부당한 명령을 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루산은 2년 차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바로 이곳 검은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웨이브를 막으면서부터였다.

낡은 멕 나이트를 타고 몇 날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도 밀려오는 중대형 괴수를 간결한 동작으로 쓰러뜨리는 젊은 파일럿.

어디가 급소인지, 어느 곳을 찌르면 귀한 괴수의 혈액을 헛되이 잃지 않고 최대한 뽑을 수 있는지 괴수 부산물 수거 기능사 자격을 딸 정도로 공부해 왔고 변경의 여느 파일럿들과 다른 뛰어난 검술을 지녔기에 그가 탑승한 멕 나이트는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웨이브를 막아낸 뒤 검은 숲으로 들어온 괴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한, 일명 솎아 내기 작전에도 선발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이 숲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 당시는 괴롭힘을 당하던 시기라 델타 기지 파일럿들 중 분배 비율이 가장 낮아서 많은 괴수를 처치하고도 엄청난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동료들의 따돌림이 사라지고 트리어의 괴롭힘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실력으로 텃세를 제압하고 변경에 적응한 것이다.

그때의 웨이브로 8구역 북부 전진 기지들은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그때가 8구역 북부의 마지막 잔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이후로 북부의 세 전진 기지가 의미 있게 언급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 잔치에서 화려하게 부상한 루산은 3년 후 반달 호수 남쪽에서 밀려오는 웨이브를 막아내고 그 지역을 훌륭하게 개발해 변경 8구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니 세상사 어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숲을 통과하면 과거 자신을 괴롭혔으나 그때 이후로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준 트리어가 자존심이 많이 꺾인 북부의 부흥을 위해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는 개척지가 나타난다.

그 트리어에게 어쩌면 듣기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루산은 마음이 복잡했다.

저도 모르게 심경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인생은 모르는 거야.]

[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다 늙은 영감처럼.]

시에나와 다르게 바이크가 여과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영감이 뭐냐, 영감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루산의 타박에도 바이크가 말 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결혼, 까짓 하면 되죠. 솔직히 대장님이 뭐가 부족해요? 가문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재산도 무지막지하게 많고, 푸슈 푸슈 검술도 어마어마하고, 지위도 높잖아요. 인물은 나에 비하면 살짝 아쉽지만, 어디 가서 처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왜 결혼을 안 하시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되네요.]

루산이 요즘 기분이 꽤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바이크가 선을 슬슬 넘었다.

그럼에도 루산은 이번에도 넘어갔다.

그동안 바이크가 세운 공이 적지 않았고,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크가 선을 넘자 옆에 있던 시에나도 자기만 빠질 수 없다는 듯 덩달아 선을 넘었다.

[혹시······.]

[응?]

[대장님, 결혼하시려는 건 아니죠?]

[뭐!]

[요새 부쩍 얼굴에 빛이 나고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무슨 좋은 일이 있나 궁금했거든요.]

[······!]

루산은 흠칫 놀랐다.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자신의 얼굴이 그렇게 티가 났나 싶었던 것이다.

[결혼하시면 안 돼요!]

[···왜?]

[그냥요!]

[······.]

[······.]

[······.]

통신기에 적막이 흘렀다.

멀리서 들려오는 검은 숲의 괴수 소리, 나뭇가지들이 서로 비비는 소리, 멕 나이트가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걷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잠시 후 루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희들, 요새 너무 풀어진 것 같다.]

[네?]

[앞으로 근무 시간에 사담 금지. 어길 때마다 벌금 1골드다.]

[그건 너무해요!]

[지금부터 시작이야.]

루산이 건조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바이크와 시에나는 자신들이 루산의 심기를 거슬렀음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루산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단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 공연히 두 사람의 입을 막은 것뿐이었다.

우르사와 레오파드 두 대는 조용히 전진하다 갑자기 나타난 바실리스크 두 마리를 때려잡고 검은 숲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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