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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42화 (242/450)

242. 황금과 황금

242. 황금과 황금

루산 일행은 검은 숲을 통과한 뒤에도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했다.

반달 호수 남쪽과 달리 북쪽은 산지였던 것이다.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돌고 골짜기를 지나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야! 바쁠 텐데 여기까지 직접 오다니, 무슨 기쁜 소식이라도 전해 줄 모양이지?”

트리어가 루산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러 날 수염을 깎지 않아 산적 두목 같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활력이 가득했다.

위에서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사람 특유의 의욕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8구역 북부에 무슨 개척 도시를 만들겠다는 건지 궁금했는데 꿍꿍이가 있었군요? 황금 계곡이라니······.”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멕 나이트, 멕 워커, 탐탐 정찰병, 수백 명의 인부들이 개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제각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곳은 반달 호수 북서쪽에 자리한 산기슭으로 ‘황금 계곡’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과거 수차례 정찰을 통해 이 일대에 흐르는 계곡과 시냇물에 사금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황금.

말만 들어도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희귀 광물.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도 마다하지 않는 마력의 광물.

그러나 루산에게 황금 계곡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냐하면 괴수의 체액 한 드럼이 몇백 골드, 비싸면 몇천 골드까지 하고, 생명 구슬 하나에 수십, 수백, 수천 골드까지 나간다.

세르펜스의 생명 구슬은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었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의뢰로 세르펜스의 생명 구슬을 구해 준 루산은, 비록 생명 구슬에 한정한 대가는 아닐지라도, 영구적으로 멕 나이트 연료, 소모품 무상 제공 혜택, 아트라스 대검 무상 수리, 레오파드 003(현재 명칭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 출고가 60만 골드)을 받았다.

4천만 골드라는 천문학적 금액도 빌렸다.

원시의 땅에는 크고 작은 괴수들이 가득했고 사냥 능력만 있다면 현물 황금은 우습게 볼 정도로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변경 8구역 본부와 알파, 베타, 감마 기지에서 굳이 이 지역을 차지하려 하지 않은 까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은 숲이라는,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위험 지역을 지나 원시의 땅에서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모르는 황금을 채취하기 위해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괴수를 잡고 개척촌을 늘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괴수는 곧 황금, 굳이 진짜 황금을 얻으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트리어는 확실히 남달랐다.

변경 8구역은 단기간 급속히 발전해 멕 나이트 전력도 크게 늘었다.

이제 황금 계곡을 개발할 여력이 되는 것이다.

괴수가 곧 황금이지만, 황금 역시 황금이다.

여력이 되는데 굳이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꿍꿍이라니? 섭섭하게 말이야. 원대한 계획이라고 해 두자고.”

트리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면서 보니까 원대해도 너무 원대하던데요? 북서쪽 밀림 지대 입구에 짓고 있는 건 뭐예요?”

“뭐긴 뭐야? 개척 기지지. 사냥 캠프 겸 방어 요새 겸 개척 도시가 될 거야.”

트리어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황금 계곡에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북부를 개발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변경 개척 기지로서의 역할과 입지도 충분히 고려했던 것이다.

황금 계곡에서 서쪽으로 가면 북쪽으로 광대한 밀림이 펼쳐져 있는데, 트리어는 그 밀림이 시작되는 곳에도 각종 건물과 방어 시설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 밀림은 8구역 북부에 충격을 주는 웨이브가 종종 일어나는 곳으로, 말하자면 그 광활한 괴수의 보금자리를 새로운 개척 기지의 사냥터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잘 알겠지만, 북부는 웨이브에 취약해. 서쪽 기지를 요새 도시로 만들어 평소에 사냥 캠프로 삼고 웨이브 때는 큰 파도를 저지하는 역할을 해 준다면 검은 숲 동쪽에 미치는 충격이 많이 줄어들 거야.”

트리어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트리어는 단지 눈앞에 이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는 눈이 있었다.

8구역의 안전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괴수라는 황금과 진짜 황금, 둘 다 노리고 북부에 두 개의 개척 기지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루산은 그의 말마따나 원대한 계획에 감탄하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가능한 일이에요?”

“응?”

“1전단 병력 일부는 8구역 본부에 남겨 두어야 하잖아요.”

안전지대로 분류되는 오래된 개척촌에도 산을 넘어오거나 강을 통해 유입된 괴수가 간간이 출몰하고는 한다.

순찰과 괴수 퇴치를 위해 모든 멕 나이트와 정찰병을 전진 기지나 개척 기지로 뺄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반달 호수 북쪽 선착장까지 길을 내는 공사에도 병력 일부를 동원할 테고······.”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을 지키고 도로 주변의 괴수를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1전단 병력이 얼마나 된다고 여기서 또 둘로 쪼개요?”

“난 또 무슨 말이라고.”

트리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롭게 대답했다.

“알파, 베타, 감마 기지에서 멕 나이트 두 대, 멕 워커 네 대씩 지원받았지. 민간 사냥 팀도 고용했어. 멕 나이트 열두 대, 멕 워커 스무 대, 정찰병과 기타 등등.”

루산이 입을 떡 벌렸다.

트리어는 루산을 놀라게 한 데 만족하여 씩 웃었다.

“알파, 베타, 감마, 세 전진 기지 대장들이 한 다리 끼고 싶어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뭐,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민간 사냥 팀은 뭐예요? 전단장님 사비로 한 거예요?”

“그런 셈이지.”

“와! 돈 많으시네.”

“돈 많기는 개뿔······, 다 빚이지.”

“빚도 능력이 되니까 내는 거 아닙니까.”

트리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쩌겠어? 그렇다고 그림이 빤히 보이는데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갈 수는 없지 않겠어? 어느 천년에 다 해? 한꺼번에 해치워야지.”

그만큼 그는 이 북부 개발 계획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산의 엄청난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조급함을 느껴서 무리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황금 계곡은 확실한 거예요? 냇물에 금모래 몇 개 있다고 이 난리를 치는 건 아니죠?”

“야! 날 뭐로 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집에서 쫓겨나실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러죠.”

루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비록 처가에 빚을 많이 지기는 했어도 또 워낙 잘하니까 그 정도 대접은 안 받아. 걱정 마. 처가에 해 준 게 얼만데!”

트리어 역시 장난스럽게 대꾸하고는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금맥 전문가들 투입한 지 오래됐다. 개척부에서는 전부터 알고 있었지.”

“오! 그래요?”

“안 그랬으면 허락이 떨어졌겠냐? 나 혼자 몰래 꿀꺽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북부 개발 계획이 성공한다면 금광에 대한 관리권은 8구역 본부에서 행사하더라도 루산처럼 20년 징세권 정도는 받고 싶은 것이 트리어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왕 얼굴을 보게 됐으니 부탁 좀 하자.”

“뭔데요?”

“레오파드 라이트닝 다섯 대만 배정해 줘.”

“갑자기요?”

“황금 계곡 일대에 출몰하는 괴수들이 워낙 잽싸게 산을 타고 다니니까 잡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산악형 멕이 필요해.”

“그건 본부에 신청을 하셔야지 저한테 말한다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누가 그걸 모르냐? 그런데 신규 물량은 전부 전선으로 보낸다고 여력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더라.”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남는데 안 팔 리가 있겠어요?”

“그래도 네가 말하면 다르잖아.”

루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부탁을 한다면 가라로슈는 어떻게 해서든 넘겨주려 애를 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무리가 생기고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

비록 실금일지라도 루산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프에서는 제국군에 넘겨주는 것이 우선이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군에 납품하는 물량이 한없이 늘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생산 설비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니 곧 잉여 물량이 쌓일 겁니다.”

“누가 모르나? 당장 급해서 하는 말이지.”

“음······, 이건 어때요? 변경에 판매할 여력이 될 때까지 2전단이 보유하고 있는 라이트닝을 쓰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 2전단은 활동 범위가 워낙 넓어서 라이트닝이 필요하지 않아?”

트리어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루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없을 때에도 변경에서 사냥하고 정찰하고 다 했잖아요. 우선 바이크가 타고 온 라이트닝하고 1전단 멕하고 바꾸도록 하죠.”

“그렇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한시름 던 트리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

멕 나이트를 바꿔 타라는 지시를 들은 바이크가 입을 댓 발이나 내민 채로 1전단 파일럿과 멕 나이트를 바꾸러 간 사이에 루산은 트리어의 숙소로 들어왔다.

전단장 숙소라고 해서 나머지 숙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경의 개척 건설 요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임시 숙소, 주택, 공용 건물들을 짓는데, 매뉴얼에는 통상 사용하는 자재의 규격까지 정해져 있었다.

빠르게 많은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숙소도 현지에서 나무를 베고 돌을 캐서 짓는 게 아니라 가까운 전진 기지의 제재소에서 규격대로 마련된 자재를 멕 워커로 운반해 와 빠르게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렇게 임시 숙소를 짓다가 이곳에서 제재소를 완성하게 되면 주변의 나무를 베고 규격대로 자재를 생산해 본격적으로 각종 공사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개척 속도가 빨라진다.

전단장의 숙소라지만, 바람이 들어오거나 벌레가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꼼꼼히 지어졌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의 숙소와 별다를 게 없는 목재 건물.

루산은 트리어가 서류를 검토할 때까지 간소한 짐밖에 없는 이 평범한 임시 숙소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내 서류를 다 읽어 본 트리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선착장 두 개의 건설비가 25만 골드, 바지선 세 척과 쾌속선 두 척의 건조비가 외부에서 들여오는 엔진까지 포함하여 70만 골드라······.”

“확정은 아니에요. 레이크 시티에 조선소가 없기 때문에 레오파드 생산 단지에 들어와 있는 철강 가공 업체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 업체들도 다 바빠서 제대로 협의를 마치고 공사를 시작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요. 그래도 바지선 몸체를 만드는 데는 두 달이면 충분하다고 하네요. 여하튼 최종 비용은 아니고 대략적인 비용이 그렇답니다.”

“어쨌든 대략 100만 골드가 든다는 거지?”

“네.”

트리어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처음 반달 호수에 배를 띄운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거대한 뗏목에 괴수 체액 드럼통을 실어 왕복하는, 그야말로 단순한 그림을 떠올렸다.

이렇게 엄청난 비용이 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무거운 고가의 화물을 배로 운반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지 몰랐다.

루산도 자신과 마찬가지였기에 예상 비용을 보고 화들짝 놀라 찾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선착장과 화물선을 바로 루산이 지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트리어는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비용을 반반으로 해야 하나?”

물론 돈이 없지만, 루산의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루산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돈 있어요?”

“아니, 없지. 말했잖아, 이거 다 빚이라고.”

트리어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약속대로 내가 지을 거예요.”

“······!”

트리어가 놀란 눈을 치켜뜨고 루산을 쳐다보았다.

“그 대신, 요금을 받을 겁니다.”

“뭐?”

“이건 노 저어서 가는 배가 아니에요. 승무원, 선착장 관리, 마나 연료, 고장 수리, 유지 보수···, 이런 데 꾸준히 비용이 들지 않겠어요?”

트리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건조비의 반을 내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요금이라고 해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괴수 부산물은 매우 비싸다.

종류와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괴수 체액 한 드럼이 1,000골드라고 가정했을 때 1퍼센트 요금이면 10골드나 된다.

한 번에 200드럼을 운반한다면 요금으로 2,000골드나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요금을 10퍼센트로 잡으면 무려 2만 골드나 된다.

트리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요금을 얼마로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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