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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43화 (243/450)

243. 합리적인 계산은 갈등을 줄인다

243. 합리적인 계산은 갈등을 줄인다

루산에 대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변경의 동료들은 그가 무슨 일을 겪었으며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나마 과거 그의 상관이었던 트리어가 그의 출신과 가문의 사정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가 반란 사건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율리안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문이 당한 일과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알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두 사람도 루산이 바덴을 통해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루산이 신사업부 업무를 진행하며 인연을 맺은 노바의 여성 사업가로 이해하고 있었다.

노바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텐커는 루산이 변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바덴이 어느 정도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바덴 또한 루산이 스텐커를 통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변경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전쟁터에서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변경에서의 지위와 역할, 이동하는 전쟁 지역과 임무 정도에 대해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람들은 보통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필요한 정도로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산이 특별히 수다스러운 성격도 아니었다.

오베론 공작에게 복수할 생각이며 복수의 범위가 황제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정신없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바덴의 경우는 좀 다른데, 그녀는 루산의 재산 관리인이자 사업의 포괄적 대리인으로서 누구보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루산의 말에 따라 사업 이외의 것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사업이 워낙 방대하여 사실상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 오다 보니 사업 이외의 일은 루산이 지시한 것 말고는 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바덴이 경영하는 사업, 복수와 관련하여 스텐커가 진행하는 일, 변경 8구역에서 루산의 업무, 아라드 변경 개발 진행 상황, 가프 용병단의 단장으로 개입하는 전쟁 등 루산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일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 자신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 루산은 깨달았다.

원정 사냥을 나가면 길게는 한 달도 넘게 걸리고, 전쟁을 나가면 반년을 넘기기도 했다.

그의 몸은 하나뿐.

그가 장기간 부재중일 때 노바의 일을 처리하고, 변경 8구역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모든 상황을 파악해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노바에서 벌이는 사업의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복수를 위한 계획이 더 깊이 진행될수록, 변경에서의 지위와 권한이 더 높아질수록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권 대리인이 필요했다.

클라크를 그런 존재로 키우려 했기 때문에 노바로 유학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일로 믿음이 살짝 흔들렸고, 대학을 무사히 마치려면 적어도 5년은 더 걸릴 예정이라 당장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 루산의 머릿속을 채운 사람이 바로 바덴이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이면서 지금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결혼을 약속했기에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산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처리해야 하는 문제를 바덴에게 조금씩 이야기해 주었다.

만나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두 사람의 데이트 방식이었다.

다행히 바덴은 잠깐 짬을 내 단둘이 산책을 하는 와중에 루산이 달콤한 말을 자신의 귓가에 속삭여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대화를 즐겼다.

“···그러니까 트리어와 켐니츠, 두 사람 모두 함께 갈 사람이라 어느 한쪽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변경에서 쓸 만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거든요.”

루산의 말에 바덴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쓸 만한 사람은 노바에서도 찾기 어려워요.”

“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어쨌든 말씀을 들으니 변경이 아니라도 인재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고 기사님께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겠어요.”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덴에게 대단한 해결책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을 알려 주려고 한 것일 뿐.

그런데 바덴의 이야기를 듣고 루산은 감탄하고 말았다.

“선박과 선착장 건조비는 맨 처음 말씀하신 대로 기사님께서 지불하시는 게 좋겠어요. 100만 골드가 큰 금액이기는 하지만, 레이크 시티 세금 수입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없는 액수는 아니고 중요한 사람을 실망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죠.”

루산은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 역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100만 골드는 보름스 가문이 사기 당한 액수의 4분의 1에 달할 만큼 무척 큰 금액이지만, 현재 자신의 수입을 생각하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다.

- 변경 8구역 공식 직책 급여

(레이크 시티 시장, 신사업부 부장, 제2 기동 전단장)

- 사냥으로 얻는 괴수 부산물 수입

(성과 보상금 분배 비율은 실력과 실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 2전단에서 루산의 성과 보상금 분배 비율은 누구보다 높았다)

- 레이크 시티 징세권으로 얻는 세금 수입

공식적인 수입도 어마어마했지만, 비공식적인 수입은 더 엄청났다.

- 레오파드 밀수 수수료

(원시의 땅을 통과해 아라드 왕국으로 보내는 레오파드 밀수 수수료)

- 전쟁에서 획득한 멕 나이트, 멕 워커 등 전리품

(현금화가 어려워서 그렇지 금액으로 따지면 이것이 가장 컸다)

이 외에도 레이크 시티 정비 공장에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재조립하고 벌어들이는 수입, 몰래 빼돌리는 멕 나이트들이 루산의 것이었다.

여전히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데 인색했지만, 이제 100만 골드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재력가가 된 것이다.

“건조비도 회수하면 되죠. 요금을 받으면 됩니다.”

“······!”

“켐니츠의 말대로 이익을 보는 건 북부 쪽인데 이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어렵죠. 지어주는 건 가능하다 해도 운영과 유지에 드는 비용은 어떤 식으로든 저쪽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럴 바에는 애초에 화물과 승객에 대해 요금을 설정해 받는다면 북부에서는 단번에 거액의 건조비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레이크 시티에서는 건조비를 회수하면서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 북쪽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겠죠.”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루산이 생각할 때 양쪽 다 불만이 있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단, 요금을 과도하게 책정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바덴은 요금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었다.

“북쪽에 새로 짓는 개척 기지에서 레이크 시티까지 육로로 화물을 운반하는 것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것, 두 가지 방식은 시간 차이가 생기겠죠. 그 시간 차이가 바로 반달 호수에 배를 띄웠을 때 북부에서 얻는 이익이에요.”

“그렇군요.”

계산 방식은 어렵지 않았다.

멕 워커 한 대가 괴수 체액 드럼을 짊어지고 반달 호수를 빙 돌아 레이크 시티로 왔다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

멕 워커가 북쪽 선착장에 건설하는 창고에 괴수 체액 드럼을 옮기고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차이를 계산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호위에 투입되는 멕 나이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비용 계산이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차이 나는 시간 동안 발생하는 멕 워커 연료비와 감가상각비, 멕 워커 파일럿의 인건비가 북부에서 얻는 이익이 된다.

“그게 바로 걷을 수 있는 요금의 최대 액수가 되는 거죠.”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문제는 그 최대 액을 걷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북부에서는 화물선을 이용해서 얻는 이익이 전혀 없으니까요. 괴수를 잡는 수고는 자신들이 하고 이익은 배를 띄운 사람들이 본다고 원망을 하겠죠.”

“그렇겠군요.”

“반달 호수에 띄운 배를 이용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의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 이 정도가 요금으로 적당할 것 같아요. 30퍼센트를 넘어서면 이익을 보더라도 사람은 원망하고 시기하게 될 거예요.”

루산은 바덴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그는 살면서 사업가, 상인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다른 사람을 최대한 쥐어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전시에 백성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식량을 매점하고 폭리를 취하려는 상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자신의 인식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겠지만, 바덴을 통해 느껴지는 사업가는 조금은 다른 존재였다.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만약 어떤 사업가가 반달 호수에 배를 띄우는 아이디어를 내고 요금제도 고심해 마련했다면 변경 8구역 전체의 부를 늘리면서 그 부를 둘러싼 갈등도 해결하는,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변경 8구역의 늘어난 부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증가한 수입으로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추가적으로 구입해 투입하면 사냥 수입은 더욱 늘어나고, 그 일이 반복되면 부는 구르는 눈덩이처럼 증가하는 것이다.

국가 전체로 보면 사업가들은 얼마나 이 나라의 부를 늘렸을 것인가!

이반 황제가 개혁 헌법을 수립한 지 60년이 넘었다.

토지에 대한 귀족들의 권한이 크게 축소되고 보유하고 있던 재산을 사업으로 전환하여 성공한 가문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이었다.

오늘날 필센 제국은 귀족이 아닌 사업가의 나라인 것이다.

그 차이는 단지 귀족의 몰락과 상인의 득세라는 짧은 평가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센 제국의 부가 전에 비할 수 없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부를 바탕으로 필센 제국은 남과 북에서 압박해 오는 아우로라 연합군의 침공을 전쟁 2년 만에 물리치고 전선을 아우로라 대륙으로 완전히 옮기기 직전이었다.

‘이전의 대전쟁은 25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상태라면 이번 전쟁은 압도적인 승리로 훨씬 빨리 끝이 날지도 모른다!’

이 역시 추측일 뿐이지만, 바덴의 말을 듣고 루산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황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국가의 체질을 바꾼 이반 황제.

변화에 저항한 귀족파를 일거에 쓸어버린 프리드리히 황제.

이 두 명의 황제가 필센 제국이라는 나라를 아우로라 대륙 전체와 맞붙어 승리할 수 있게 바꾼 것이 아니겠는가!

루산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러한 존재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기사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루산을, 바덴이 걱정스레 쳐다보며 물었다.

“아! 아니에요.”

루산은 미소를 지으며 바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예쁘고 든든할 수가 없었다.

황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 곁에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루산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덴에게 키스했다.

바덴이 깜짝 놀라다 어느새 발끝을 세우고 루산의 목을 감았다.

루산은 키스가 끝난 뒤에도 매달리는 바덴을 꼭 껴안아 준 뒤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트리어를 만나고 올 테니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기사님.”

볼이 빨개진 바덴이 수줍게 대답했다.

루산은 바이크, 시에나와 멕 나이트를 타고 떠났다.

멕 나이트 걸음으로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그리고 그 길의 위험성이 얼마나 높은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합리적인 계산은 갈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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