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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46화 (246/450)

246. 가격을 제어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246. 가격을 제어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루산은 바덴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한 일을 들려주었다.

그래야 자신이 변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바덴이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트리어와 만난 일에 대해서 바덴은,

“그분도 기사님의 마음을 알아줄 거예요.”

하고 루산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비어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기사님께서도 그런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전혀 몰랐어요. 트리어, 이 나쁜 사람!”

하며 먼저 그를 위로하고 대신 화를 내 주었다.

그런 다음에 탐사 부대를 운용해 원시의 땅 지도를 완성해 나가겠다는 계획에 감탄했다.

“변경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기사님 같은 분은 없었을 거예요. 사실 괴수 부산물의 가격과 영향력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기사님 계획대로 된다면 나중에는 괴수 부산물 가격을 마법 연구소가 아니라 기사님께서 제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나를 너무 띄워 주는 거 아니에요? 변경 구역은 넓고, 마법 연구소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해요. 300년 이상 축적한 재력과 영향력은 어쩌면 황제를 능가할지도 몰라요. 굳이 황제와 부딪쳐 얻을 게 없고 결속력이 약해 이대로 있는 거죠.”

“바로 그거예요. 마법 연구소는 굳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아요. 지난번에 반란 사건에 끼어들었다가 황제에게 완전히 발목이 잡힌 툴롱 마법 연구소 사례를 보고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지겠죠.”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툴롱 마법 연구소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툴롱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들은 반란을 위해 보름스 장원 깊숙한 곳에 건설한 멕 나이트 제작 공장에서 이제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멕 나이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8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변경 구역들은 반란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게다가 북쪽 이스타드 왕국의 변경 또한 아우로라 연합군에 점령되고 수복 전쟁을 치르면서 생산과 유통 면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어요. 남쪽 아라드 왕국의 변경은 괴수 부산물 생산 능력이 완전히 미미하지만, 기사님께서 변경 개발권을 실질적으로 획득하시면서 크게 성장할 일만 남았죠.”

아라드 변경 개발권은 가프 마법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변경 개척은 루산이 이끄는 8구역이 실행하기로 돼 있었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8구역과 아라드 변경만 성장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셈이죠.”

“가격 결정은 물건을 전부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일부만 틀어쥐고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죠.”

루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덴의 이야기는 번개처럼 그의 뇌리에 충격을 주었다.

그가 변경 8구역을 개발하고 아라드 왕국 변경을 장악하려 한 까닭은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변경이라는 외진 곳에서 부를 쌓고 전력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변경 그 자체를 틀어쥐고 무기로 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만큼 파괴력이 강한 무기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것이다.

바덴은 사업가답게 가격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루산은 무기로 이해했다.

괴수 부산물이 없다면 마나 열차도, 공장도, 화물선도, 자동차도, 멕 나이트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우로라 대륙에서는 오카수스 대륙의 변경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침략해 온 것이고, 오카수스 대륙의 필센 제국은 괴수가 있는 변경을 믿고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반란 사건으로 인해 필센 제국은 변경 1구역부터 7구역까지 크고 작은 타격을 받았다.

8구역 역시 조사를 받았지만, 반란 진압의 공으로 유일하게 무사히 넘어갔다.

일곱 개 변경 구역은 최고 통치자부터 일선 파일럿까지 체포되거나 조사를 받으면서 지휘 계통이 마비되고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해 생산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

그로 인해 해당 구역에서 괴수 부산물을 공급받던 마법 연구소들은 크나큰 타격을 받았고 괴수 부산물 가공품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규모가 작은 축에 속하던 가프 마법 연구소는 8구역에서 안정적으로 괴수 부산물을 수급하여 그 위치가 크게 올랐다.

가프 마법 연구소가 괜히 루산에게 쩔쩔 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주도권이 마법 연구소가 아닌 8구역에 있는 것이고, 8구역의 핵심은 루산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8구역과 아라드 변경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면 확실히 가격 결정권을 갖는다!’

물론 일개 변경 구역이 함부로 가격을 좌지우지하거나 괴수 부산물을 납품하지 않는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기는 어려웠다.

내부적으로는 변경 본부와 파일럿들이 수긍하지 못할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필센 제국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갖고 변경을 장악한다면 내부 구성원들을 다독이거나 통제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압군을 막을 수 있다.

변경은 괴수가 함부로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험준한 자연 환경을 경계선으로 하기 때문에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은 한정돼 있었다. 그곳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 후방에서 괴수 부산물을 통제하면 마나 연료를 비롯한 괴수 부산물 가공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겠지? 필센 제국으로서는 무척 곤란한 사태가 벌어지는 거야.’

루산은 필센 제국을 마비시키는 방법, 더 나아가 망하게 하는 방법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 방법을 실행할 능력을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방법을 실제로 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필센 제국이 혼란에 빠지고 결국 멸망한다면 아우로라 연합군을 불러오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복수 대상은 필센 제국이 아니라 오베론 공작, 더 나아가 황제였다.

이 나라를 마비시켜 무수히 많은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은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제국을 혼란에 빠뜨릴 변경 통제력을 자신이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거대 권력자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자신감.

루산은 바덴의 말을 듣고 떠오른 변경 통제권을 가능성의 하나로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다.

바덴과의 대화는 늘 즐거웠다.

***

사업의 확장은 전례가 중요했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사업을 확장시키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바덴은 루산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변경 8구역에서 가장 먼저 농업 기지 사업을 성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변경 구역, 아라드 왕국의 호리아 평원, 필센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매일 8구역 본부에서 보내 준 개척 요원들, 부하 직원들과 함께 대상지를 돌며 경지 면적을 산정하고, 재배하기에 적합한 작물 품종을 의논하고, 저장과 유통 계획을 세워 나갔다.

변경 8구역 정찰병들의 호위 속에서 탐탐을 타고 드넓은 반달 호수 지역을 돌며 개척 건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반달 농업 회사의 입지, 마을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농업 기계를 대거 투입할 예정이라 식량 생산 농지는 이왕이면 넓은 게 좋지만, 그렇다고 숲이나 갈대밭을 다 밀거나 저수지, 연못 같은 것들을 메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관은 중요하니까요.”

바덴은 가장 먼저 시작한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사업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기에 자연 경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름스 장원도 경관을 가꾸는 데 공을 들였고, 그로 인해 그곳에 사는 농부들과 고용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더욱 아끼며 가꾸어 나갔다.

브레이브 랜드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보름스 장원을 드나드는 귀족들도 아름다운 전원 풍경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세심하게 신경 쓰는 그녀의 노력에 감탄한 율리안은 사업 진행 상황을 특별히 챙겼다.

“우리 8구역에 투자한 사업가 중에 이렇게 오래 머물며 공을 들인 사람이 있었던가? 고슬라 사장이 추진하는 사업의 성공은 곧 우리 8구역의 성공이니 모든 부서가 나서서 돕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통치자님.”

마침내 기본 설계가 끝나고 중앙 개척 기지가 있던 자리에 반달 농업 회사 건물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펜트 사의 농업 기계 열 대가 열차에 실려 레이크 시티에 도착했다.

시범적으로 도입한 이 기계의 성능이 증명되면 투입 대수를 더욱 늘릴 예정이었다.

이 농업 기계들이 멕 워커들과 함께 대규모 경지 조성 공사를 시작하는 날, 율리안을 비롯한 8구역 주요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동안 꾸준히 소형 괴수까지 소탕해 왔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정찰병과 개척병이 도처에서 경계를 서고 멕 나이트도 두 대가 동원되어 높은 곳에서 사방을 주시했다.

트르르릉-!

힘찬 엔진음과 함께 시동이 걸리고 농업 기계 열 대가 나란히 땅을 뒤집으며 나아갔다.

마른 풀들로 두껍게 덮여 있던 대지가 도화지에 굵은 붓으로 물감을 칠한 것처럼 검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쭉쭉 갈려 나갔다.

원시의 땅이 순식간에 비옥한 농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멕 워커로는 낼 수 없는 경이로운 속도에 율리안과 변경 간부들이 찬사를 보냈다.

멕 워커들은 농업 기계들이 나아가는 진로 앞에 박혀 있는 바위를 뽑고 나무를 벤 뒤 뿌리를 뽑았다.

“정말 경이로운 세상이군요! 축하합니다, 고슬라 사장님!”

율리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직 축하를 받기에는 이르지만, 지금 받은 축하가 무색하지 않도록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통치자님.”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농지조성 공사가 시작된 날, 그녀는 노바로 떠났다.

그녀가 떠나기 전, 루산이 말했다.

“아라드 변경에 다녀와야 하니 두 달 후쯤에 노바로 갈 겁니다.”

그때 노바로 가서 양가 부모님의 승낙을 받고 비밀리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바덴이 볼이 빨개진 채 말했다.

“기다릴게요, 기사님.”

마나 열차가 레이크 시티 역을 출발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변경에서 보낸 바덴은 이별의 아픔에 가슴이 울컥했다.

두 달 후면 루산과 결혼한다!

바덴은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두 달!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흘러갔다고 말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올 것 같지가 않은 긴 시간이었다.

그녀는 유독 길게 느껴지는 두 달이라는 시간으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였다.

변경의 풍광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

“울름 남작을 죽여.”

비쩍 마른 루트가 섬뜩한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네?”

데사우로 형제는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쳐들었다.

“공작께서 기어이 황제와 담판을 지어 그를 빼낸 모양이야.”

“······.”

“그가 사라져야 내 자리가 생긴다.”

“······!”

“사고사면 더욱 좋겠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루트가 경호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그가 나간 뒤에도 데사우로 형제는 한참 동안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귀빈의 자동 마차가 떠났습니다.”

밖에서 부하가 보고하자 그제야 형제는 고개를 들고 일어나 테이블에 앉았다.

루트가 손도 대지 않은 고급술을 동생이 잔 두 개에 따라 한 잔은 형 앞으로 밀고 다른 잔은 자기가 들었다.

그러나 바로 마시지는 않았다.

2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살인을 지시하는 루트를 보고 입맛이 싹 달아난 것이다.

“개새끼, 그동안 부려 먹은 값도 안 주고 또 부려 먹으려 하네.”

동생이 술잔을 휘휘 둘리며 뇌까렸다.

“할 거요?”

“···해야지.”

형이 대답했다.

“왜?”

“못 받은 건 받아야 하니까.”

“줄 놈이 아닌데?”

“그동안은 줄 수 없어서 못 준 거고. 이제 가문을 갖겠다는 거잖아. 줄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거지.”

“아하!”

“가자.”

“알았소!”

형은 술잔을 들지 않았고, 동생 역시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일하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술잔 안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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