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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49화 (249/450)

249. 황궁이라고 예외가 되겠느냐

249. 황궁이라고 예외가 되겠느냐

울름 남작의 장례식에는 오베론 공작의 가신들, 오베론 공작과 친한 귀족들, 공작의 일파로 분류되는 귀족들, 정부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좋은 말이 끄는 기품 있는 마차들과 깨끗하게 닦은 고급 자동차들이 주차할 공간이 없어 장례식장 밖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베론 공작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장례식에 참석한 뒤 유족들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 돌아갔다.

루트는 자신의 마차를 타고 공작의 다른 측근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오베론 공작이 탄 마차의 뒤를 따라갔다.

“분위기는 어때?”

루트의 질문에 비서 레톤이 대답했다.

“다들 황제의 소행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귀족파가 공작님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결집하지 않으면 황제에 의해 모두 숙청된다는 이야기도 은근히 돌더군요.”

루트가 코웃음을 쳤다.

“귀족파를 싹 쓸어버리는 데 앞장선 게 공작 각하인데 이 일이 귀족파 결집의 계기가 되려나? 세상 참 우습군그래.”

“······.”

“남은 귀족파가 있기는 하나? 황제의 충실한 개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거나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어?”

레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파의 결집이라······.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군. 황제의 막강한 힘 앞에 가장 먼저 쓸려나가는 건 남은 귀족들일 테니까. 장사꾼으로 변신한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은 뒷방 늙은이가 되겠지.”

“······.”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지켜보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신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 다 모였으니······.”

“뒤로 미루는 게 좋겠어. 좋은 일도 아닌데 설치고 다닌다는 인상을 받으면 좀 그렇잖아.”

“네.”

“공작 각하로부터 공식적인 권한을 받은 뒤에 움직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루트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차와 자동차 들이 공작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공작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가신들은 그런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일은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합니다!”

한두 사람이 포문을 열자 이미 분노가 가슴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황제에 대한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공작은 여전히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가신들의 목소리에 잠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수족 노릇을 해 온 심복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루트가 나서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 일이 황제 폐하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듯이 말하는군요?”

“증거는 없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경찰이 체포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요. 공작 각하를 무시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럴까요? 동부 공업 지구 사태라는 매우 엄중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걸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귀족이든 고관이든 누구라도 동부 공업 지구 사태와 관련되었다면 조사를 받았을 겁니다. 게다가 황제 폐하는 공작 각하와의 면담 뒤에 울름 남작을 곧바로 풀어 주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죽일 이유가 있을까요?”

“흐음······.”

“공작 각하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서? 아니면 남은 귀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려고? 그러려면 차라리 대놓고 반란 혐의를 씌워 처리할 일이지 이처럼 누구 짓인지 모르게 암살을 한단 말입니까?”

어느새 가신들뿐 아니라 오베론 공작까지도 루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자께서는 누가 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오?”

“황제 폐하는 아닐 겁니다.”

루트가 냉정하게 말했다.

“왜 그렇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분열을 일으킬 만한 일을 할 만큼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황제가 공작 각하나 다른 귀족들을 적으로 돌릴 만한 일을 지금 시점에서 할 만큼 어리석다고 보십니까?”

황제에 대한 표현은 불경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수긍했다.

“이 시점에서 황제 폐하와 공작 각하를 반목시켜 가장 큰 이익을 볼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자가 누구입니까?”

“아우로라 연합.”

“······!”

“설마 아우로라 연합의 간첩들이 동부 공업 지구에서 작전을 벌인 뒤에 모두 본토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우로라 연합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전쟁 상황을 어떻게든 뒤집으려 획책할 겁니다. 그 방법에는 이런 것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테고 말입니다.”

루트의 말에는 증거가 없어서 다소 갑작스럽고 허황되게 들렸지만, 그 위험성과 논리성은 확실했다.

지금 시점에서 황제와 공작의 불화, 황제와 귀족들의 불화는 필센 제국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고 오직 아우로라 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루트의 말은 묵직했고, 공작과 가신들은 그에게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지금, 우리는 황제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과연 우리 황제가 그 원망을,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지,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줄 성품입니까? 황제를 함부로 원망했을 때 우리가 당할 일을 생각하면 지금 이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가요?”

“으음······.”

“그러니 원망은 꾹꾹 눌러 두시고, 범인을 아우로라 연합으로 지목하는 것이 우리 가문과 필센 제국을 위해서 더 나은 겁니다.”

가신들은 사실 루트에 대해 잘 몰랐다.

무려 17년 전부터 오베론 공작의 지시를 받고 반란 계획을 주도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공작의 최측근 몇 사람뿐이었다.

그동안 가문의 일은 오베론 공작과 첫째 공자 바트가 처리해 왔고, 루트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 루트가, 울름 남작의 사망 이후 분노에 휩싸인 공작과 가신들을 냉정하게 휘어잡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에 대한 분노를 거두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말은 분명 여지를 준 것이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

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작을 향했다.

“우리 쪽에서 황제에 대한 원망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모두 입조심을 해야 할 것이야. 범인은 황제가 아닌 아우로라 연합이니까.”

공작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가신들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루트는 나를 도와야 할 것이다. 이번 일로 상심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 그들을 추스르고 안팎을 다잡아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가문의 힘을 결집시켜야 할 것이야.”

루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많은 가신들 앞에서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할 권한을 오베론 공작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루트는 흥분을 감추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공작의 결정에 반대하는 가신은 없었다.

오베론 공작은 나랏일을 하느라 바빴고, 첫째 아들 바트는 아우로라 대륙으로 원정을 떠나 있었고, 심복인 울름 남작의 사망으로 가문이 뒤숭숭했다.

게다가 방금 전, 루트는 차분하고 현명하게 가문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오히려 가신들은 공작이 말한 ‘이 전쟁’이 아우로라 연합과의 전쟁인지 황제와의 전쟁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울름 남작의 체포와 사망 사건으로 자신들의 주군과 황제가 같은 배에 탈 수 없다는 것을 모두들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울름 남작의 장례식 모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가신들이 돌아간 뒤 오베론 공작은 루트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

“울름 남작이 부리던 자들을 수습해야 할 것이야.”

루트는 이미 그 일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노바에 저택을 여러 채 마련하는 게 좋겠다. 이왕이면 황궁 주위에.”

“네? 어디에 쓰시려고요?”

“오베론 파일럿 훈련 학교 졸업생 중에 실력이 뛰어나고 충성심 강한 아이들을 뽑아 데려오고, 우리 가문이 관리하는 마법 연구소에서 그 녀석들을 위한 파워 아머를 만들도록 해라.”

“······?”

“아우로라 연합의 책동에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리고 황궁이라고 아우로라 연합의 공격에서 예외가 되겠느냐?”

오베론 공작이 싸늘하게 말했다.

루트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황제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과거 보름스 가문의 장원을 빼앗아 그 땅 깊숙한 골짜기에 비밀스럽게 멕 나이트 공장을 만든 것과 비슷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다만 그 일은 이미 한 차례 실패했고, 황궁과 가까운 곳에는 그럴 만한 부지를 마련할 수 없기에 멕 나이트가 아닌 파워 아머를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미리 대비해 두자는 것이다. 미리.”

“알겠습니다.”

루트는 충실한 아들처럼 대답했다.

다음 날, 공작은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고 울름 남작 사건에 아우로라 연합 간첩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황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작을 위로했다.

“상심이 크실 텐데 나랏일로 인해 쉬지 못하니 안타깝소.”

“아닙니다, 폐하. 어려운 일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어찌 쉴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아우로라 연합의 간첩을 박멸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오. 아울러 이 전쟁을 더욱 빨리 끝내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공작이 물러간 뒤 황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우로라 연합의 간첩이라······.”

비서가 조심스럽게 그 말을 받았다.

“턱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옵니다.”

“그런가?”

“네, 폐하!”

“하긴, 우리도 저 땅에 많은 요원들을 심어 놓았으니······.”

전쟁은 벌판에서 창칼을 맞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러나 황제는 오베론 공작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아우로라 연합의 간첩······. 그토록 숨길 일이 많단 말인가? 허!”

울름 남작의 죽음은 겉으로는 별다른 일을 남기지 않았지만, 황제와 공작의 마음속에 깊은 불신을 새겨 놓았다.

***

루산은 아라드 변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에 접시꽃 분지에 들러 괴수 목장 상황을 확인했다.

레이크 시티에서 보고를 듣기는 했지만, 그동안 남쪽 아라드 전쟁과 북쪽 이스타드 전쟁에 뛰어드느라 이곳 상황을 전혀 살피지 못해 궁금했던 것이다.

반달 호수 지역은 계속된 괴수 소탕 작전으로 인해 중대형 괴수는 물론 소형 괴수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수중 괴수들이 간간이 튀어나와 장벽 앞으로 유인하여 사냥하기는 하지만, 2전단은 반달 호수 근처에 안정적인 사냥터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괴수 부산물을 얻기 위해 장기간 원정 사냥에 나서거나 이 괴수 목장에서 혈액을 뽑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물론 레이크 시티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수입이 괴수 부산물 수입을 넘어설 만큼 크게 늘었지만, 그 세금 수입의 적지 않은 부분이 마나 연료·윤활유 생산 시설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원료 공급은 여전히 중요했다.

게다가 막대한 세금 수입은 그대로 루산과 율리안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레이크 시티와 반달 호수 지역 개발에 투입되었다.

2전단의 괴수 부산물 수입은 예전에 비해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것은 멕 나이트 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대당 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실정이라 루산은 괴수 부산물 수입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슐츠 씨,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단장님!”

괴수 목장 책임자 미켈 슐츠가 검게 그을린 얼굴로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루산을 맞이했다.

그동안 자신이 이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 구축해 놓은 결과물에 대해 자부심을 보이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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