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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52화 (252/450)

252. 시간은 해결하지 못한다

252. 시간은 해결하지 못한다

“현재 이곳에 15만 명 정도는 족히 들어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아라드 변경 개척을 이끌어 온 호른이 루산에게 현황을 설명했다.

아라드 변경을 개척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그사이 부쩍 늙어 버린 그의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속으로는 100마리 능구렁이를 품고 있을망정 적당한 몸집에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던 호른 영감이 팍삭 늙고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앓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워낙 피란민이 많이 밀려와 제대로 개척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짧은 기간에 두 차례나 침략을 받는 바람에 필센 제국으로 들어온 피란민만 수십만 명이었다.

아라드 왕국 내의 피란민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나마 대부분 수도로 몰려갔고, 수도에서도 수용을 못한 인원이 변경까지 밀려온 것이다.

변경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지원을 받으면서 조직 가능한 사람이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민이 아니다.

필센 제국이 자국 변경에 난민을 수용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잘 조직된 변경 본부에서 난민들이 개척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집과 일터를 제공하고 생필품을 공급해 주었으며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안을 유지하고 괴수로부터 안전을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아라드 변경 본부는 엄청나게 밀려들어 오는 난민을 관리하고 식량을 배급하기에도 벅찼다.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변경을 개척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직접 보죠.”

“그러시지요.”

호른은 루산을 새로 건설하고 있는 개척 도시로 안내했다.

그들은 아라드 레인저 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탐탐을 타고 갔다.

바이크와 시에나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멕 나이트를 타고 일행의 양옆을 지켰다.

아라드 변경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아라드 변경은 높고 단단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개척촌 몇 개가 전부였다.

아라드 왕국은 가난한 나라라 변경에 멕 나이트를 배치할 여력이 없어서 필센 제국처럼 공격적인 변경 개척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처에 개척촌이 들어서 있었고 조금이라도 넓은 들판에는 개척 도시가 세워지고 있었다.

문제는 말이 도시이지 가까이 가서 보면 나무와 흙으로 엉성하게 만든 판잣집과 낡은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난민 수용소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루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많은 피란민들이 몰려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호른이 아라드 변경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기본 틀을 확실히 세워 두고 개척 도시 위치를 선정하고, 개척 도시의 혼란을 막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해 질서가 무너지지 않게 했으며, 루산이 전쟁에서 획득해 이 땅에 투입한 멕 나이트와 아라드 레인저를 이용해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나 방어벽이 허술한 개척 도시들을 지킴으로써 인간이 괴수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 왔다는 것이다.

30년 이상 변경 개척을 해 온 전문가로서의 경륜 덕분에 대참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만도 한데 이렇게 살면서도 왜 여기 버티고 있는 겁니까? 돌아가지 못하게 변경 입구를 막거나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잖아요?”

필센 제국 변경은 변경으로 들어온 개척민이 국가로부터 지원 받은 금액을 모두 갚기 전까지는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에 동의하고 서류를 작성한 뒤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드 왕국은 필센 제국처럼 치밀한 변경 통치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피란민을 붙잡아 두기가 어려웠다.

“그게, 두 번의 전쟁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이 나라 백성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쉽게 믿지 못합니다.”

호른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리노 공화국의 침공을 물리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로라 연합군의 대군이 쳐들어왔다.

첫 번째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더 큰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백성들은 아우로라 연합군이 필센 제국군보다 병력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밀려났지만, 또 다시 쳐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도 먹고살 방도가 없다는 겁니다. 집은 무너지고 농지는 멕 나이트에 짓밟혀 다져지고 가축은 다 군인들 배 속으로 들어가고 치안은 회복이 안 되어 도둑들이 창궐하고 왕국은 백성을 지원해 줄 여력이 없으니 돌아간들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나마 이곳은 충분하지 않더라도 양식은 배급해 주거든요. 그 소식을 듣고 전쟁이 끝난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아라드 왕국에서 변경 개발권을 확보한 가프 마법 연구소는 필센 제국에서 식량을 들여와 난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1년이면 변경 8구역에서 파견 나온 개척 요원들이 난민들을 정착시켜 자급할 식량 생산은 가능하리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그러나 관리할 난민의 수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자 변경 개척 속도는 더뎌지고 필센 제국의 식량 가격이 급등하자 가프 마법 연구소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군인들 간의 교전 행위가 그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데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루산 일행이 새로 개척하고 있는 도시 - 사실은 굵은 원시의 나무로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천막과 오두막이 가득 차 있는 난민 수용소 - 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두려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다 하나둘씩 다가와 둘러싸기 시작했다.

“먹을 거 좀 주세요!”

“레오파드 주세요!”

아라드 레인저들이 아이들을 제지하며 소리쳤다.

“다친다! 물러나지 못해!”

멕 나이트에 밟히는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루산과 호른이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되어 오히려 호통을 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혹시나 하며 포위를 풀지 않았다.

“레오파드 좀 주세요!”

아라드 레인저들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주머니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레오파드 간편식을 꺼내 멀리 던지며 소리쳤다.

“오늘은 이게 전부야! 다시 오면 혼꾸멍낼 거야!”

와아!

아이들이 우 하고 몰려가 레오파드 간편식을 얻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 아이가 잽싸게 레오파드 간편식 하나를 주워 달려가면 나머지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가고 다시 또 다른 아이가 빼앗아 달아나면 그 뒤를 아이들이 또 따라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멀어졌다.

“어디서 난 겁니까?”

나라를 구해 준 전쟁 영웅의 질문에 챠콜 레인저 대원 하나가 민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는 보급을 받습니다. 필센 제국에서 원조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아!”

레오파드 간편식이 아라드 왕국군에까지 보급된다는 것을 루산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이 아라드 왕국 피란민 아이들 입에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다투고 다투다 포장이 찢어지고 부서져 흙 묻은 작은 조각 하나를 겨우 얻을 뿐이었지만, 아이들은 개선장군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루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식량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고 했지요?”

루산의 질문에 호른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보내오는 식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이크 시티에 있는 레오파드 간편식 제조 공장이 얼마 전에 증설 공사를 마쳤습니다. 앞으로 원시의 땅을 통해 최대한 많은 물량을 보낼 테니 어려움을 잘 이겨내 주세요.”

호른과 아라드 레인저들이 눈을 크게 떴다.

루산이 레인저들을 둘러보며 당부했다.

“외부에는 비밀입니다. 아라드 왕국 전체의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은 없으니까요. 아라드 왕국에 대한 원조는 필센 제국 정부에서 하겠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 대장님!”

감동한 아라드 레인저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놀란 난민들이 그들을 쳐다보자 루산은 탐탐을 재촉해 이동하여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의 개척 도시를 둘러보고 도시 외곽에 주둔해 있는 기동 전투 요원들의 숙영지를 방문했다.

호른은 원래 필센 제국 변경의 전진 기지처럼 개척 도시를 구상했으나 난민들이 점점 늘어나는 바람에 개척 요원들과 난민들의 상호 안전을 위해 실질적인 개척단을 도시 밖으로 뺀 것이다.

그곳에서 루산은 이 도시 외곽의 순찰 상황과 괴수 사냥 현황을 보고받은 뒤 배후에 있는 개척촌들까지 순시하고 나서 호른이 머물고 있는 아라드 변경 본부로 돌아왔다.

모든 개척촌과 개척 도시를 다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원시의 땅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간 개척 도시와 그 뒤쪽에 새로 건설하고 있는 개척촌을 둘러봄으로써 이곳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해 본 것이다.

루산은 아라드 변경의 사정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호른이 그리고 있는 아라드 변경의 원대한 구상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밤이 이슥할 무렵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라드 변경에 오신 걸 후회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캡틴. 아! 지금은 캡틴이 아니시죠.”

아라드 변경에서는 전투 단장이 루산의 공식 직함이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부르세요.”

“네, 죄송합니다. 어쨌든 갑자기 늘어난 인구는 개척에 큰 부담을 주지만, 결국 인구가 힘이지요. 사람이 있어야 개척도 할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는 오히려 아라드 왕국 수도로 몰려간 난민들까지 수용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자 호른이 피곤한 얼굴에 오랜만에 자신감 어린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실 개척 자원만 놓고 보면 크게 어려울 게 없습니다. 멕 나이트는 변경 8구역보다 많고 멕 워커도 130여 대나 있으니까요. 숙련된 개척 요원들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지만, 다행히 레이크 시티에서 온 요원들이 난민들 중에 쓸 만한 사람들을 찾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멕 워커 파일럿은 충분한 상태이고 멕 나이트 조종이 가능한 파일럿도 몇십 명은 됩니다.”

적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괴수를 잡는 데 투입하는 것이므로 검술이 뛰어날 필요는 없었다.

아라드 왕국에서 멕 나이트는 기사들만 타지만, 호른은 필센 제국 변경 요원 출신이라 신분에 제약을 두지도 않았다.

“단장님께서 레인보우 시티를 건설하실 때 창설한 개척병 제도도 도입해 아라드 레인저들을 교관으로 훈련시키고 있지요. 시간과 돈만 있으면 아라드 변경은 단기간에 7구역 정도의 규모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변경 7구역.

필센 제국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으며 부유하고 강력한 변경 구역.

인구가 약 20만 명에 반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보유한 멕 나이트 수가 무려 4백 대에 육박했다.

그리고 그곳의 사냥 수입은 어지간한 국가의 전체 수입과 맞먹을 정도였다.

아라드 변경을 필센 제국의 변경 7구역에 맞먹을 정도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질 정도로 호른은 통이 큰 사람이었다.

“그 정도가 되면 어쩌면 아라드 변경은 아라드 왕국보다 강해지겠군요.”

루산이 맞장구를 쳐 주자 호른은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럼요! 비교가 안 되지요!”

변경의 괴수 부산물 가치는 어지간한 사업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막대하기 때문에 이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들어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8구역으로부터의 지원을 더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압니다.”

변경 8구역은 급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만큼 투자를 했기에 자금 여력이 없다는 뜻이고 더 큰 성장을 위해 계속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나먼 아라드 변경에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없었다.

호른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전망은 보이는데 시간과 자금이 부족해 마음이 급해지고, 그러다 보니 더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진 것이다.

루산은 그런 호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라드 변경의 지도에 눈길을 던졌다.

이전의 아라드 변경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게 확장된 새로운 변경.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선 다섯 개의 개척 도시 근처에는 광활한 밀림, 드넓은 늪지,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막대한 괴수 부산물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냥터 가까이에 개척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 최전선 개척 도시들 뒤쪽으로 많은 개척촌 - 실제로 가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 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언제 완성될지 기약할 수 없으나 다섯 개의 개척 도시 뒤로 수많은 농지들이 펼쳐져 있는 구조인 것이다.

루산은 그것을 알아보았기에 호른의 아쉬움을 이해했다.

루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지도로 가서 다섯 개의 개척 도시를 짚으며 말했다.

“여기가 종착역이 되어서는 곤란하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변경 8구역에서 지원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제 수입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고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거든요.”

괴수 목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른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식량 사정도 2년 안에 풀릴 거예요. 필요한 자재나 설비는 원시의 땅을 통해 최대한 빠르게 공급하겠습니다. 그러니 꿈을 더 크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루산은 불콰해진 얼굴로 눈만 껌벅이는 호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은 해결해 드릴 방법이 없네요. 하지만, 본부장님은 워낙 욕심이 많은 분이라 할 일을 이렇게나 남겨 두고 일찍 가실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 변경 7구역보다 목표를 더 크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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