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굳이 말하자면 내 목표는
253. 굳이 말하자면 내 목표는
호른은 문득 궁금했다.
루산 보름스는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변경에서 부자가 된 사람은 제법 많았다.
변경 파일럿들 중에서 수완이 좋은 사람은 바깥세상의 어지간한 사업가보다 많은 사냥 수입을 올리고 그 수입을 유망한 업종에 투자해 눈덩이처럼 굴려 나간다.
그러나 루산처럼 15만이나 되는 난민을 떠맡겠다고 장담할 만큼 부자가 된 사람은 없었다.
물론 혼자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가프 마법 연구소와 변경 8구역 본부의 지원으로 충분하지 않은 부분을 떠맡게 되겠지만,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루산으로부터 아라드 변경 본부장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호른은 그를 원망했다.
루산이 레이크 시티에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나 연료, 윤활유 생산 시설을 유치하고 그 뒤로 레오파드 생산 단지까지 끌어옴으로써 레이크 시티를 엄청나게 발전시키는 바람에 잘 나가던 레인보우 시티의 성장이 멈추었다.
위기감을 느낀 호른은 무리하게 빚을 내 새로운 개척 기지를 건설하다 결국 파산하게 된 것이다.
‘이주민을 레인보우 시티나 중앙 개척 기지로 조금만 더 보내 주었더라면!’
‘레이크 시티를 개발한다고 나대지 말고 여전히 델타 기지 캡틴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호른은 평민 출신에 정찰병 출신임에도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해 델타 기지 대장이 되고 8구역 남부에 많은 개척촌을 건설해 모두의 인정을 받고 크게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자신감과 자부심이 남달랐다.
자기 자신을 탓하지 않고 루산을 원망했다.
그러나 처음 아라드 변경에 도착하여 이 땅에 있는 멕 나이트와 멕 워커가 모두 루산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원망과 미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능력의 차이가 커도 너무나 컸던 것이다.
질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단장님.”
호른이 루산을 불렀다.
“네.”
“단장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랜만에 술이 한 잔 들어간 것을 핑계로 호른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낯간지러운 질문을 던졌다.
루산도 의외의 질문에 당황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복수가 최종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고 아버지를 화병으로 죽게 만든 원수의 정체를 알아내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는 바덴에게 말했었다.
우리의 현재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문이 망해 명예로운 기사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꿈에 도달할 수 없게 된 만큼 그에 필적할 만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주변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짓밟은 원수를 자신의 인생에서 완전히 걷어 내어 어두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멋지게 살아가고자 한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유년 시절 꿈꿔 온 명예로운 기사보다 더 멋진 삶인지 여전히 그려지지 않았으나 굳이 말하자면 그 모호한 무언가가 자신의 목표였다.
“내 목표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겁니다.”
루산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얼른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목적을 이루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는데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목표라니, 뱅뱅 꼬리를 잡고 도는 이야기였으나 호른은 왠지 루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변경 사람들 대부분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른도 술을 죽 들이켰다.
***
다음 날, 루산은 아라드 변경에서 기동 부대를 이끌고 있는 레보르크와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을 불렀다.
“두세 달 후에 우리는 부르사 왕국으로 갈 겁니다.”
“갑자기 그곳에는 왜 가는 겁니까?”
레보르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파일럿들도 같은 얼굴이었다.
“자세한 이유는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일부를 부르사 왕국에 넘겨주게 될 텐데, 간 김에 최전선으로 끌려간 반란 가담 파일럿들 소식을 알아보려는 겁니다. 빼낼 방법이 있는지도 찾아봐야죠.”
“······!”
파일럿들이 놀란 눈으로 루산을 쳐다보았다.
루산은 파일럿들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당신들만으로 복수할 수 있겠어요?”
“그게 아니라······.”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은 자신들의 거사를 방해한 루산을 원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구해 주고 변경 깊숙이 숨겨 주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 주고 가족들의 편지를 받아 볼 수 있게 도와준 그에게 고마워했다.
어쨌든 그렇게 변경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 루산에게 복수할 의지가 있는지, 변경 파일럿으로 부려 먹기 위해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복수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 같아 감개가 무량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완전히 개운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떠나면 여기는 어떻게 합니까?”
레보르크가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에 약간의 걱정을 실어 물었다.
“호른 본부장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개척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단기간에 너무 깊숙이 미개척 지역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현재 아라드 변경의 모든 개척 도시와 개척촌이 괴수 출몰 지역입니다. 안전하지가 않아요. 우리가 빠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겁니다.”
다른 파일럿들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비록 복수를 위해 변경에 숨어 있는 것이었지만, 이 많은 난민들을 괴수의 먹이로 던져주고 떠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루산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구상에 무척 중요한 아라드 변경을 버릴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일단 멕 나이트를 몇 대나 넘겨줄지, 파일럿이 몇 명이나 필요한지 아직 몰라요. 전부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남방군 출신 파일럿 절반을 넘지는 않을 겁니다.”
부르사 왕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지만, 크고 강한 나라도 아니었다.
왕국 내부가 복잡하게 쪼개져 있어 하나의 세력이 멕 나이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루산은 멕 나이트 20대, 파일럿 40명도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스타드에서 붙잡아 온 아우로라 연합 사냥꾼 포로들을 보냈는데, 아직 투입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루산의 말에 레보르크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게···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을 감시할 인력을 또 빼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말씀하신 대로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른 본부장도 같은 생각으로 그 일을 진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이 많아 생각이 복잡한 건 알겠는데,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들을 감시하는 게 아니에요.”
루산이 알아듣게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최전방 개척 도시 다섯 개는 괴수들의 서식지라고 할 만한 광활한 숲이나 밀림, 늪지 가까이 있습니다. 향후 우리의 주요 사냥터가 되겠죠.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개척 도시와 개척촌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겁니다. 이 땅에서 웨이브가 발생해 인간 영역으로 밀려오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개척 도시와 개척촌이 죄다 쓸릴 테니까요.”
파일럿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호른 영감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개척 도시를 건설했다고 우려한 것이다.
루산이 지도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전방 개척 도시 다섯 개 너머, 원시의 땅에 더 깊숙이 들어가 사냥 캠프를 짓습니다. 말 그대로 괴수를 사냥하기 위해 마련한 캠프죠. 개척민 이주를 목표로 한 개척 기지가 아니에요. 사냥터의 규모와 개척 도시의 위치를 볼 때 각 개척 도시 당 네 개 정도씩 사냥 캠프를 지어요. 개척 도시로부터 거리는 삼 일 정도 떨어지게.”
약 20개의 사냥 캠프를 건설한다.
“그 사냥 캠프에서 괴수를 꾸준히 사냥하면 원시의 땅에서 괴수를 솎아내는 효과가 생깁니다. 웨이브가 발생하는 것을 막거나 발생하더라도 개척 도시까지 미치는 충격이 줄어들겠죠. 일종의 방어선 역할을 하는 거예요.”
루산이 손가락으로 그 사냥 캠프들을 죽 잇는 선을 그렸다.
인간의 영역을 보호하는 가상의 방벽이 완성되는 것이다.
“각 사냥 캠프에는 멕 나이트 한두 대, 멕 워커 두세 대씩 배정합니다. 나중에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추가로 도입하게 되면 더 배정하겠지만, 일단 이 정도도 빠듯하죠. 인원은 각 캠프 당 100여 명, 멕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머지 인원들도 노는 게 아니에요. 사냥 캠프를 확장하고 더욱 튼튼하게 지어 나가야죠. 그곳이 향후 몇 년 간 그들의 집이 될 테니까.”
루산은 이스타드 변경에서 포로로 붙잡아 온 아우로라 연합의 사냥꾼 2천여 명을 전진 사냥 캠프에 100여 명씩 분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감시는 필요 없어요. 괴수들의 서식지 한가운데에서 그들이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들은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이용해 괴수를 사냥해서 부산물을 획득하고 괴수 혈액과 체액을 모아 놓습니다. 그러면 개척 도시에서 주기적으로 그것들을 수거해 오면서 생필품을 공급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마나 연료봉인데, 마나 연료봉을 제한적으로 공급하면 만에 하나 그들이 멕 나이트로 개척 도시를 공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아!”
레보르크를 비롯한 파일럿들이 루산의 설명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들은 노예가 아니에요. 군인 포로도 아니죠. 이스타드 변경에서 2년 가까이 괴수 사냥을 해 온, 경력은 부족하지만 나름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을 착취하지 말고 대가를 주고 사냥을 시키세요. 물론 포로 신분이기에 민간 사냥 팀에 주는 것만큼 많이 줄 필요는 없지만, 대략 3분의 1 정도 대가를 지불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아요. 대가를 받으면 적개심이나 저항 의지도 줄어들 테니까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 믿음이 쌓이면 개척 도시로 나와 휴가를 즐길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어차피 변경 입구 검문을 강화하면 도주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훗날 전쟁이 끝나고 아라드 변경이 그들 없이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자유롭게 풀어 줄 겁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시적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개척 도시의 안전을 강화하면서 괴수 부산물 수입을 늘리게 되는 것이고, 그들 또한 자유가 제한되지만 포로로 붙잡혔어도 죽지 않고 차곡차곡 돈을 모을 수 있게 되니 서로 이로운 일이죠.”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지금 당장 사냥 캠프 건설을 시작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두세 달밖에 없어요. 두세 달 안에 사냥 캠프 20개를 지어야 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요?”
“캠프 울타리를 지어 주고, 필요한 연장과 자재를 공급해 주고, 최소한의 생필품만 지급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살아가겠죠.”
그들에게는 가혹하지만, 아라드 변경 본부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루산은 호른에게도 똑같은 설명을 해 주었고, 이스타드 변경에서 잡아 데려 온 아우로라 연합 사냥 팀 대표들을 불러서도 사냥 캠프 계획을 알려 주었다.
호른은 감탄하며 받아들였고, 포로들 역시 수용했다.
포로들로서는 사실 수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거부는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당신들 처지에서는 믿기가 쉽지 않겠지만, 장담하건데 이스타드 변경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그때쯤 되면 어쩌면 이곳에서 가정을 꾸려 눌러앉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포로들은 루산의 말에 드러내 놓고 반박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루산은 표정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루산은 진심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값을 쳐주지 않는, 인간의 무가치한 피를 굳이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변경에서는 괴수의 피를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부디 무의미한 시도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제 징집되어 변경 요새에 배치된 군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비록 집에는 못 가더라도 여러분의 성실한 근무는 군인답지 않은 높은 급여와 휴가증으로 보답 받을 겁니다.”
마침내 첫 번째 전진 사냥 캠프를 건설하기 위해 자재와 생필품을 잔뜩 실은 멕 워커들이 멕 나이트의 호위를 받으며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루산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 서둘러 개척 도시를 떠났다.
여전히 아라드 왕국에서 처리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가 탄 003의 발걸음은 사냥 캠프를 건설하기 위해 원시의 숲으로 들어간 멕들보다 훨씬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