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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55화 (255/450)

255.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255.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전에 루산이 노바로 호송되는 변경 7구역 반란 파일럿들을 풀어 주었을 때 칼리슈는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거사를 끝낸 루산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변경으로 달아날 수 있도록 대형 거미로 태워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루산에 대한 개인적인 친분과 안타까움, 마법사로 살아갈 때 느낄 일이 거의 없는 짜릿한 모험에 대한 동경,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향후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 등에 바탕을 둔 호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칼리슈가 필센 제국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칼리슈뿐 아니라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영주, 왕, 황제,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권력자들은 마법사의 힘을 빼앗아 자신들의 힘을 늘리려는 사람들이었고, 마법사들은 그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란이 일어나고 통치자가 바뀌어도 큰 감흥이 없었다.

마법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되는가, 사업에 지장은 없는가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루산을 도운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마법 연구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일.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는 크나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칼리슈는 코부스 지방과 변경 구역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고 대형 거미 조종에 능숙했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기사님, 대형 거미는 멕 나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마법 기계예요. 멕 나이트보다 훨씬 복잡하고 가격도 비싸서 만약에 사용하다 들킨다면 출처가 금방 탄로 날 겁니다.”

“지난번처럼 들키지 않으면······.”

“그건 제가 코부스 지방과 인근 변경 구역을 잘 알아서 그런 거죠. 그렇게 덩치가 큰 물체가 이동하면 눈에 띄지 않겠어요?”

“밤에 움직이거나 산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그러나 칼리슈는 근심 어린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기사님.”

칼리슈의 완곡한 거절에 루산은 더는 조르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리한 부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있으면 계획한 일을 수행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칼리슈 님, 혹시 구입할 방법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대형 거미를요?”

“네.”

“이건 굉장히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운데······.”

“얼마나 하죠?”

“그건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칼리슈가 직접 구입한 물건이 아니라 가프 마법 연구소에 오래전부터 물려져 내려온 것이었다.

“대형 거미는 멕 나이트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거예요. 산도 넘을 수 있고 늪도 지날 수 있고 여하튼 험한 변경을 정찰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멕 나이트가 등장하고 나서 도태되기 시작했어요. 멕 나이트가 대형 거미보다 더 튼튼하고, 덜 복잡하고, 재료를 구하기도 쉽고, 가격도 덜 나가니까요.”

대형 거미는 가볍고 다리가 많아 멕 나이트가 오르지 못하는 산도 부드럽게 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장점은 사라졌다.

굳이 산을 오를 일이 있으면 정찰병을 투입하면 되고 나머지는 멕 나이트가 대체하게 되니 제작비가 훨씬 비싼 대형 거미는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구하려는 사람이 없어 주문이 들어올 때만 제작을 하지 대량 제작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구입하려면 100만 골드도 넘을걸요?”

“그렇게나 비싸요?”

“아시다시피 대량 생산은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리잖아요. 주문 제작은 비싸고.”

“그렇긴 하죠.”

“그리고 멕 나이트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복잡해서 비쌀 수밖에 없어요. 비싼데 사용 효율이 떨어지니 이걸 쓰려는 곳은 점점 줄어들고, 그래서 가격은 점점 오르죠. 말이 백만 골드지 그보다 더 비쌀지도 모르겠어요.”

“음!”

“그리고 주문 제작이라 주문을 하고 나서 완제품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쩌면 기사님이 원하시는 날짜에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이 정도 되자 루산은 대형 거미를 이용할 생각을 접었다.

없어도 상관없었다.

다만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 볼 생각으로 대형 거미를 이용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칼리슈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아!”

“······?”

“필센 제국 변경 구역에서 활동하는 마법 연구소들 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대형 거미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대형 거미는 옛날에 마법사들이 직접 변경을 정찰하고 괴수 서식지를 파악하고 괴수 부산물을 획득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거예요. 그런데 필센 제국은 변경을 변경 본부에 맡겨 개발하고 마법 연구소는 부산물을 변경 본부로부터 구입해 쓰는 것으로 정착이 되었죠. 이제 변경 정찰과 필요한 괴수 부산물 공급을 변경 본부에서 맡고 있는데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죠.”

가프 마법 연구소는 분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8구역의 변경 정보를 얻고, 멕 나이트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비밀리에 획득하기 위해 대형 거미를 운용했다.

그러다 아라드 변경 개발권을 획득하면서 이 땅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으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마법 연구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굳이 필요도 없는데 비싸고 운용비가 많이 드는 대형 거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원하신다면 다른 변경 구역에 알아봐 달라고 스승님께 편지를 보낼까요?”

“용도는······.”

루산은 가라로슈가 목적을 알아도 상관없었지만, 부담을 안기기는 싫었다.

칼리슈가 루산의 마음을 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사님께서 원하신다고 하시면 넘어가실 거예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칼리슈 님.”

“별말씀을요. 다만 알아본다고 해서 꼭 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럼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루산은 칼리슈에게 대형 거미를 부탁하고 아라드 왕국의 수도로 떠났다.

***

루산은 밀수용 레오파드를 아라드 왕국군에 넘기고 니트라 장군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니트라 장군은 여전히 아라드 왕국군 총사령관직에 앉아 있었으나 전과 달리 공작으로 승작하여 총리대신직을 겸하고 있었다.

사실상 아라드 왕국의 군권과 행정권을 모두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권력자로서 전횡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군사적으로는 또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아우로라 연합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기동 군단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고, 내정 면에서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를 복구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나라라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변경 개발권을 가프 마법 연구소에 넘기고 그 대가로 일단 레오파드 50여 대를 받았다.

그리고 루산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멕 나이트 몇십 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수로는 거대한 전쟁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필센 제국에서 아우로라 연합을 공격하면서 동맹국들에 참전 요청을 해 왔다.

국토를 방어하고 무너진 마을과 도시를 재건하는 데 투입하기에도 빠듯한 병력을 해외에 파견하게 생긴 것이다.

전쟁 복구는 더욱 난망했다.

많은 백성들이 피란을 떠나는 바람에 수도 동쪽 지방은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고 수도는 수십만의 난민들이 점령해 난민 수용소로 변해 버렸다.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 필센 제국에서 보내온 지원 물품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백성들의 원망과 절규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니트라 공작은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루산이 면담 신청을 한 것이다.

니트라 공작은 이 나라의 실권자이지만, 루산은 아라드 왕국을 두 번이나 구해 준 은인이자 영웅이라 만사 제치고 영접했다.

“이런, 이런!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아서 아우로라 대륙 공략 부대로 참전했나 했소.”

“그동안 북부 전선을 푸느라 애를 좀 썼습니다.”

루산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예를 올렸다.

그는 원시의 땅을 거쳐 오느라 수염도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고 입고 있는 옷에도 땀 냄새가 났지만, 그것이 더욱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일부러 차고 들어와 니트라 공작의 경호 기사에게 넘긴 은빛 사자 검이 강인함에 품격을 더해 주었다.

“어쩐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던 필센 제국 북부 전선이 어느 순간 풀렸다더니, 바로 공이 그곳에 있었구려!”

니트라 공작이 루산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당연히 루산 혼자서 전선의 어려움을 해결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끄는 산악 특임 기동 전대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루산은 대답하지 않고 은은한 미소를 지음으로써 북부 전선에서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니트라 공작이 새삼 놀라며 루산에게 서둘러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비서가 냉각기에서 방금 꺼내온 시원한 음료수 병을 니트라 공작과 루산 앞에 놓고 나갔다.

‘가난한 나라지만, 권력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루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시원한 음료수로 입 안을 적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아시다시피 제가 드리는 말씀은 우리 제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니트라 공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고 있는 루산은, 산악 특임 기동 전대장, 가프 용병단장이라는 신분으로 활동하면서 필센 제국이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 없는 일을 처리하는 제국의 특수 요원이었다.

소수의 멕 나이트로 적을 물리쳐 아라드 왕국을 구한 엄청난 전투력, 가프 마법 연구소의 이름을 빌린 용병단의 단장을 자처하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 변경 개발권을 넘기도록 권유하는 활동,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생산하는 신형 멕 나이트 레오파드 밀수···,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필센 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첫 만남이 필센 제국의 장군인 아이젠 자작의 소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 믿음의 기초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루산은 의심할 여지없이 필센 제국의 비밀 요원으로서 군사뿐 아니라 외교, 민간 교류에까지 관여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루산의 말은 비공식적인 필센 제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아우로라 대륙으로 많은 병력이 출정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병력이 바다를 건널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병력 규모와 동선을 저들도 감시하고 대강 예측하리라는 점이죠. 그래서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노획한 아우로라 연합군의 멕 나이트를 전선에 투입하기로 한 겁니다.”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투입해 전선에 혼란을 준다?”

“네, 각하.

“좋은 작전이오!”

“그래서 전에 아라드에서 획득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순차적으로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져가 변경에 투입한 기체들을 먼저 운반하고, 필요하면 아라드 왕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체들도 투입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냥 가져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한 감정을 거쳐 해당 금액만큼의 기체를 레오파드로 드리겠습니다.”

루산은 부르사 왕국으로부터 철광석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멕 나이트를 보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미리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해 놓으려는 것이다.

니트라 공작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아라드 왕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의 기체도 루산이 획득해 넘겨준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레오파드가 아라드 왕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두 번의 전쟁을 통해 이미 증명이 되었던 것이다.

“알겠소. 기꺼이 협조하겠소.”

“정확한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두세 달 뒤에 룬드 항에 수송선이 도착할 것이고 변경에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가 나올 것입니다. 미리 연락을 드릴 테니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 군에서 길을 안내하겠소. 그러면 통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니트라 공작은 루산이 요구한 것보다 더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렇게 루산은 마침내 부르사 왕국에서 철광석을 들여오는 대가로 멕 나이트를 넘기는 문제를 해결했다.

진행 단계는 복잡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아라드 왕국 통과 문제를 어렵지 않게 처리한 것이다.

그러나 루산이 니트라 공작과 나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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