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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59화 (259/450)

259. 체력도 필요 없고 전투 기술도 필요 없다

259. 체력도 필요 없고 전투 기술도 필요 없다

다다다다다다!

레이크 시티 레오파드 생산 시설 구석에 있는 빈 격납고 안에서 대형 거미가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수박을 반으로 잘라 엎어 놓은 듯한 몸체 아래에 여덟 개의 다리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꼬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멕 나이트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입니다. 이 녀석에 비하면 멕 나이트는 뭐랄까, 단순하고 우직하지요. 움직이는 원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가라로슈가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대형 거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루산은 가라로슈의 말에 동의했다.

멕 나이트는 탑승자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지만, 대형 거미는 조종자가 방향과 속도만 정하면 여덟 개의 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부드럽게 이동한다.

조작은 간단해도 지형의 변화에 따라 찰나의 순간에 여덟 개의 다리가 서로 연동하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조종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멕 나이트의 동화 기술도 깊이 파고들면 복잡하겠지만, 이미 멕 나이트에 익숙해진 루산에게는 대형 거미의 움직임이 훨씬 신기해 보였다.

그러나 원리니 기술이니 하는 것은 마법사들이나 신경 쓸 문제,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당장 야외에서 움직여도 괜찮은 상태인가요?”

“판매한 마법 연구소 말로는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바로 사용해도 이상이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야외 운행 시험을 해 보고, 내부 부품 상태도 점검해 볼 생각입니다.”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중고라 걱정했는데 상태가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고장은 안 나겠죠?”

“사용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멕 나이트보다는 잔고장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마법사가 없으면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리 매뉴얼만 해도 무척 두꺼우니까요.”

“그건 좀 곤란하군요.”

루산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곤란한 표정을 짓자 가라로슈가 제안했다.

“기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연구소의 젊은 마법사를 붙여 드릴까요?”

“네?”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이 대형 거미가 어떤 목적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 정보를 쌓을 수 있으니까요.”

가프 마법 연구소로서는 실증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그 호의를 냉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칫 가프 마법 연구소가 반란과 관련됐다는 혐의가 씌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루산이 고심하는 것을 보고 가라로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진지하게 덧붙였다.

“기사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 우리 연구소를 통해 외부에 알려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비밀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뜻.

이미 가라로슈는 루산의 복수에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속했고 루산은 자신을 돕는 가프 마법 연구소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가라로슈는 루산의 약속을 믿었다.

그동안 보여준 언행과 실력에 바탕을 둔 믿음이었다.

“고맙습니다, 가라로슈 님.”

루산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허허,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기사님도 우리 연구소의 일원이 아닙니까?

“그런가요? 하하!”

루산은 부담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가프 마법 연구소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유일한 명예 마법사인 루산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짐짓 가벼운 목소리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얼마에 구입하셨습니까? 얼마를 드리면 되죠?”

칼리슈는 새것은 100만 골드도 넘을 것이라고 했다.

멕 나이트 출고가가 약 15만 골드이니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건인 것이다.

중고 가격은 아무래도 그보다 훨씬 낮으리라 기대하며 루산은 살짝 긴장한 채 가라로슈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 녀석은 상태가 가장 좋아서 55만 골드에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55만!”

“네. 앞으로 들어올 나머지 녀석들은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사용 안 한 지 오래되어 고철 값과 운송비만 부담하기로 하고 들여오는 녀석들이 2대, 그보다 살짝 더 낫지만 크게 손을 보지 않으면 가동할 수 없는 3대는 5만 골드 이하, 조금 손만 보면 가동할 수 있는 4대는 20만 골드에서 30만 골드, 그리고 이 녀석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가동에는 문제가 없는 2대는 30만 골드에서 50만 골드까지 주기로 했습니다.”

“네?”

가라로슈의 설명에 루산은 깜짝 놀랐다.

대형 거미를 구입하는 데 수백만 골드나 지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니고, 보름스 장원 사기 금액과 맞먹는 거금을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대 기계 구입에 쏟는 것은 아무리 그의 수입이 늘었다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저는 한 대만 필요한데요?”

“허허, 그러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나 해서 여유 있게 구입한 것이니까요. 기사님께서 쓰지 않는 기체는 우리 연구소에서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루산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자기 말 한마디에 이렇게 거액을 쓴 가프 마법 연구소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가프에는 연구할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돌격형 멕 나이트도 있고, 멕 워커도 있고, 아우로라 연합의 기체도 있고, 반란군 기체도 있고······. 그렇잖아도 레오파드 생산에 투입할 인원도 부족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허허, 연구하는 걸 좋아하니까 마법사가 된 겁니다. 억지로는 못하지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그리고 멕 나이트, 멕 워커는 어차피 같은 계열이라 새로운 연구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마침 새로운 대상을 연구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루산으로서는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물론 자신이 일거리를 늘리기는 했지만, 현재 마법사들이 잠을 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일에 치여 있었다.

증설을 거듭하고 있는 레오파드 설비에서 매달 수십 대의 레오파드를 생산하고, 북부 전선에서 실려 온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재조립하고, 기존 마나 연료·윤활유, 소모품 생산 라인을 관리하고, 레오파드 개선 연구를 비롯한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 새로운 일거리는 무리였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욕심 같았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가라로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가프 연구소는 마나 연료, 윤활유, 괴수 부산물로 만든 소모품을 생산하던 이름 없는 연구소였습니다. 수십 년 전에 멕 나이트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대형 거미 연구도 언젠가는 빛을 보지 않겠습니까?”

“아!”

“물론 대형 거미 연구로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연구 자료는 축적되어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누군가는 활용하게 될 겁니다.”

루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 발전 과정이 아닌가!

마법 연구소는 일상생활과 정치적 요소를 최소화한 채 인류 발전 과정을 압축해 놓은 지적 연구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괴수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이 모여 머리를 싸매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다 생존과 정치를 배제한 채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자신들의 성과를 인류에 제공하면서 힘을 가지게 되어 더욱 생존과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들.

그렇게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사람들.

물론 그들이 만들어 낸 놀라운 방법들이 권력자들의 힘이 되고, 전쟁에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로 인해 종으로서의 인간은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더욱 번성해 왔다는 것이다.

루산은 마법사들의 존재 의의를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과 함께 자신을 도와준 가프 마법 연구소가 더욱 잘되기를 바랐다.

그들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결국 도태될 것이기 때문에 연구의 결과물이 잘 팔려야 했다.

비록 전쟁에 이용될지라도.

“가라로슈 님, 대형 거미를 이용할 방법이 하나 떠올랐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루산의 질문에 가라로슈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럼요! 기사님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즐거움을 주니까요.”

그동안 루산이 낸 아이디어는 언제나 가프 연구소에 큰 도움이 돼 왔던 것이다.

그리고 막연한 연구보다는 목적을 설정하고 연구해 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루산은 가라로슈를 레이크 시티 병영 창고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정찰병과 개척병이 사용하는 여러 무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루산은 발리스타를 싣고 있는 수레 앞으로 걸어갔다.

“이건 원래 개척촌 방어에 사용하던 발리스타인데, 개척병들이 소형 괴수를 소탕할 때 사용하도록 수레에 실어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이죠.”

가라로슈는 루산의 말을 경청하며 수레 위에 고정되어 있는 발리스타를 살폈다.

머리가 좋은 그는 루산이 무슨 의도로 자신을 데려왔는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수레를 끄는 것부터 문제가 되더라고요. 도로가 깔리지 않은 거친 벌판은 이동 자체가 어렵고, 소나 말은 괴수들이 울부짖으면 겁을 먹고 날뛰고, 또 성벽 위에 설치한 것처럼 안정적이지 않아서 목표를 겨냥하고 쏘아도 화살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기 일쑤죠.”

“반동 때문에 흔들린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대형 거미는 거친 산지도 평지처럼 흔들림 없이 달리더군요. 그렇다는 말은 투사 무기를 발사할 때 생기는 반동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라로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십니다.”

“그렇죠? 가라로슈 님도 아시다시피 이번 전쟁은 마나포를 활용한 전술이 승패를 좌우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남방군의 이동식 마나포 부대는 멕 나이트의 수적 열세를 뒤집었고, 북부 전선에서도 아우로라 연합군이 마나포를 이용해 우리 제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했죠.”

물론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루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마나포가 급격히 부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마나포의 활용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상대는 처음이라 당했지 마나포를 쓸 수 없는 전장을 선택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죠. 아라드 왕국에서 남방군이 아우로라 연합군을 항구까지 밀어붙였지만, 완전히 몰아내는 데 오래 걸린 까닭은 산악 지형에서 마나포의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죠. 산을 넘을 수 없으니까요. 일반 마나포는 물론이고 멕 워커가 운반하는 이동식 마나포도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결국 남방군은 멕 나이트로 큰 피해를 감수하고 들이밀어서 싸움을 끝냈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대형 거미에 마나포를 실으면 어떨까요? 대형 거미가 만능은 아니지만, 멕보다는 산을 훨씬 잘 타지 않습니까? 고지를 점령하고 마나포로 공격하면 멕 나이트는 표적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요.”

“흐음!”

가라로슈가 머릿속으로 루산이 말한 장면을 상상해 보기 시작했다.

“이 전투 거미, 갑자기 떠오른 이름인데요, 이것은 변경에서도 쓸모가 많을 것 같아요. 멕 나이트를 조종하려면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파일럿이라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괴수를 사냥할 검술도 필요하죠. 그런데 이 전투 거미를 움직이는 데는 체력도 필요 없고 전투 기술도 필요 없죠. 조준해서 쏘면 끝인 겁니다.”

숙련도가 필요 없는 무기.

물론 겨냥해서 발사하는 데 어느 정도 숙련도가 필요하겠지만, 멕 나이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대규모 몰이사냥에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겠죠.”

멕 나이트들이 괴수들을 벼랑 아래로 몰이하고, 갑자기 등장한 전투 거미들이 괴수들을 포위한 채 마나 진동 화살을 쉼 없이 발사한다.

슈슈슈슈슈슝!

괴수들이 픽픽 쓰러지고 사냥이 순식간에 끝나는 것이다.

물론 숙련된 멕 나이트 파일럿이 아까운 괴수 혈액 낭비를 최소화하며 사냥할 때와 달리 현장이 엉망이 되겠지만 이러한 혈액의 낭비는 사냥 시간 단축으로 충분히 극복되는 것이고, 또 사냥 상황에 따라 전투 거미 투입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 전투 거미를 만들어 보는 것이.”

루산은 생각만으로도 들떴다.

그러나 루산의 이야기를 들은 가라로슈는 묘한 표정을 지을 뿐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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