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260.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라로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형 거미를 마나포로 무장한다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이를 실현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뭐죠?”
루산은 전문가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지 정말로 궁금했다.
“대형 거미는 지형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부드럽게 이동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게입니다. 일단은 가벼워야 하지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특별한 금속과 특별한 괴수 부산물을 쓰고 특수 공법으로 가공한다.
“멕 나이트처럼 몸체가 통짜 주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금속판을 붙여 만들어 속이 비어 있습니다. 멕 나이트나 중대형 괴수와 충돌하면 종잇장처럼 구겨질 겁니다. 원거리 공격용이라고는 하지만, 혼란스러운 전쟁 상황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괴수 사냥 현장에서 적의 멕 나이트나 괴수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가능할까요? 열 번 조심해도 한 번 부딪치면 그것으로 박살이 난다는 말이지요. 멕 나이트가 등장한 이후 대형 거미 사용이 줄어든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변경 정찰용으로 만들어진 대형 거미.
그러나 방어력이 약해 멕 나이트처럼 함부로 굴릴 수가 없었다.
상전 모시듯 조심조심해야 한다면 사용 빈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원거리 투사 무기는 명중률이 매우 낮습니다. 멕 나이트나 괴수가 덩치가 크다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저 점일 뿐이죠. 사수의 숙련도, 바람과 습도, 마나포 폭발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 마나 진동 화살 표준화 기술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지간히 가까운 거리가 아니고서는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가라로슈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형 거미가 마나포를 발사할 때 발생하는 강력한 반동을 어느 정도나 제어할지 몰라도 아마 완전히 제어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명중률 문제는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이죠. 가까이 다가가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안전하게 적을 쓰러뜨리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겁니다.”
루산은 명중률에 대한 가라로슈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했다.
“전투 거미, 흥미로운 구상입니다만,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가격이 되겠죠.”
결국 비용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번에 대형 거미 제작 능력을 보유한 마법 연구소들에 가격을 문의해 보니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120만 골드부터 150만 골드까지 부르더군요.”
“와!”
멕 나이트 8대에서 10대나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사용 가치가 그 정도나 된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요즘 굳이 대형 거미를 사용하려는 사람이나 조직이 거의 없고, 이것을 제작하는 마법 연구소 입장에서도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대형 거미에 매달리느니 전시 특수를 노리고 멕 나이트나 멕 워커를 제작하는 게 더 낫기 때문에 그리 반기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어쨌든 이런 이유로 대형 거미 한 대 가격이 무려 멕 나이트 10대에 육박하는데, 여기에 마나포와 마나 진동 화살 가격까지 합치면 전투 거미 한 대를 무장하는 데 드는 비용은 멕 나이트 13대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순수하게 최초 구입비라는 것입니다. 마나 진동 화살은 회수해서 쓸 수 있다지만 고장률을 생각하면 소모품에 가깝고, 대형 거미나 마나포 둘 다 마나 연료를 막대하게 소모하기 때문에 전투를 치르면 치를수록 멕 나이트와의 운용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겁니다.”
계산 능력이 뛰어난 가라로슈는 그 차이를 숫자로 설명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한 번의 전투에 마나 진동 화살 30발을 사용하고 10번의 전투를 치르는 동안 파괴되지 않는다고 할 때 소모되는 마나 진동 화살 가격으로 멕 나이트 약 20대를 구입할 수 있지요. 연료비나 고장 수리비까지 고려하면 여기에 몇 대 추가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전투 거미 1대로 전투 10회를 치르는 동안 멕 나이트 약 35대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멕 나이트 35대 대신 전투 거미 1대를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요? 더군다나 무식하게 두꺼운 방패 하나만 있으면 마나 진동 화살을 막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루산은 가라로슈의 말에 담겨 있는 취지를 충분히 이해했다.
전쟁은 결국 경제력 다툼인데,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돈이 무한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비용 대비 효율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어진 예산으로 어떤 무기를 도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투 거미의 효율은 멕 나이트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져 대형 거미를 전투용으로 쓰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취지에 공감한다 해서 가라로슈가 말하는 내용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가라로슈는 기존의 가격, 기존의 성능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고, 1 대 35라는 비율 또한 구체적인 전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일반화한 상황을 가정해 도출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루산은 다섯 살 때부터 검을 수련하고, 6년 동안 기사 아카데미에서 전략 전술을 비롯한 각종 전쟁 과목을 배웠으며, 멕 나이트를 타고 10여 년 동안 변경을 누비고 전쟁터에서 활약한, 나름 전쟁 전문가이자 바덴을 통해 사업에도 눈을 뜬 반쪽짜리 경영자로서 기계 전문가인 가라로슈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리 길지도 않았다.
“대량 생산을 하면 대당 가격은 떨어지겠죠. 대량 생산을 하려면 수요가 늘어나야 하고, 수요는 위력을 증명하면 생기겠죠. 안 그렇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가라로슈는 루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
당장의 가격은 문제가 아니었다.
위력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제아무리 복잡한 기계라도 주문 생산이 아닌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되면 생산 단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나포의 명중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마나포의 폭발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마나 진동 화살을 균질하게 생산하는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알 바 아니었다.
그것은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루산이 가라로슈에게 말했다.
“일단 변경에서 괴수를 상대로 전투 거미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레오파드를 테스트했던 것처럼 전투 거미를 테스트해 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격납고에 있는 대형 거미는 조만간 사용하게 될 테니 그대로 두고, 가동에 문제가 없다는 대형 거미 두 대가 들어오면 마나포를 장착해 주세요. 일단 마나 진동 기능이 있는 화살 10발, 마나 진동 기능은 없고 모양과 무게만 똑같은 대형 화살 20발씩을 탑재하고 다니면 될 것 같네요.”
마나포의 엄청난 파워라면 굳이 마나 진동 기능이 없는 화살도 대형 괴수의 두꺼운 피부를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나 진동 기능이 있는 화살과 없는 화살을 몇 발씩 탑재하고 다니는 것이 좋을지도 결국 테스트할 내용이 될 것이다.
“마나포만 탑재하는 건 괴수를 사냥하는 데 비효율적일 수 있으니 발리스타를 전투 거미 좌우에 부포로 탑재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겠네요. 시위를 당기는 건 기계식으로 하는 게 좋겠죠?”
마나포로 중소형 괴수를 잡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였다.
대형 괴수만 마나포를 쓰고 중소형 괴수는 발리스타를 쓰는 것이 현명했다.
그리고 마나포 발사음이 그 일대의 괴수들을 놀라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소음이 적은 발리스타가 사냥에 더 유용할 것 같았다.
“마나포를 더 작게 만들거나 성능이 좋은 기계식 발리스타를 개발하는 것도 좋겠네요. 사수를 보호하기 위해 발리스타 앞에 방패를 설치하면 중형 괴수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고요.”
루산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사냥 상황을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계속 쏟아냈다.
이야기를 듣던 가라로슈가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기사님께서 우리 가프를 종합 무기 연구소로 만드실 작정이시군요? 마나포도 연구하고, 기계식 발리스타도 연구하고, 마나포용 대형 화살도 만들고, 대형 거미 방패도 연구하고···, 할 일이 많겠어요.”
“하하, 너무 과했나요?”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연구하는 걸 좋아해서 마법사가 된 것이니까요.”
가라로슈가 얼굴에 감돌던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기사님. 기사님께서 전투 거미 테스트를 하시면서 더 적합한 무기, 더 적합한 장비, 더 적합한 사냥법과 전술을 찾아내시면 우리 연구소는 그에 부응하는 장비를 제공해 전투 거미를 점점 완성해 나간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가라로슈 님. 대형 거미 몸체를 더 크게 만들거나 더 작게 만드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대형 거미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가라로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상용화에 실패하더라도 생산 능력은 갖출 생각으로 고장 난 대형 거미까지 구입했다.
철저히 분해 연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요.”
“이번에 구입하신 대형 거미가 총 12대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기사님.”
“상태가 좋지 않은 다섯 대는 가프 측에서 연구용으로 쓰시고, 곧바로 가동할 수 있는 기체 3대와 조금 손을 보면 가동할 수 있는 기체 4대는 제가 구입하는 것으로 하죠. 얼마라고 했죠? 대략 200만 골드 정도 되나요?”
“애초에 한 대만 필요하시다면서요? 대략 235만 골드입니다만,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기사님.”
루산이 대형 거미 구입비를 거의 다 지불하다는 말에 가라로슈는 펄쩍 뛰면서도 정확한 금액을 알려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 때문에 계획에도 없는 거금을 지출하셨잖아요. 어차피 제가 쓰기로 한 거니까 제가 대겠습니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이것 참!”
“다만······.”
“네?”
“앞으로 제가 소유하게 되는 대형 거미 일곱 대의 수리, 개조, 무장, 연료는 가프 측에서 책임져 주세요.”
구입비는 내겠지만 유지비를 영구적으로 책임지라는 말이었다.
자칫 뻔뻔하게 들릴 수 있으나 루산은 거리낌이 없었다.
전투 거미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이익은 가프 연구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보지도 않은 장래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공헌에 따른 보상조로 대형 거미를 무상으로 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구입비를 자신이 지불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깔끔하다고 루산은 생각했다.
가라로슈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그, 그럼요! 져야죠, 책임!”
“그리고 하나 더!”
“네? 또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돈 들어갈 일이 많잖아요. 가프 연구소에서 빌린 돈도 많고.”
“그, 그렇죠.”
“235만 골드, 10년 할부로 드려도 괜찮을까요?”
“괘, 괘, 괜찮습니다, 기사님. 암요!”
계획에 없던 전투 거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닉스 제철의 슈텐달 남작은 부르사 왕국 중부의 풍부한 철광석을 도입하기 위해 중부의 통치자를 만났다.
왕의 조카이자 야심 많은 중부의 통치자는 철광석의 대가로 멕 나이트를 원했다.
루산은 전리품으로 획득하여 아라드 변경에서 사용하고 있던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넘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부르사 왕국으로 건너간 김에 동방 최전선 투입된 반란군 파일럿들을 빼돌릴 수 있을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 일에 대형 거미가 도움이 될 것 같아 가프 마법 연구소에 구입을 부탁했다.
그 결과 전투 거미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세상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
인생의 진리 하나를 새삼 깨달은 루산은 계획했던 바덴과의 결혼을 위해 노바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