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식품 회사를 운영하신다는 거니?
263. 식품 회사를 운영하신다는 거니?
시녀와 함께 직접 정원을 가꾸던 보름스 자작 부인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보고 의아했다.
“누가 오는 거지?”
휴일에 가끔 딸 내외가 손주들을 데리고 찾아와 적적함을 달래 주고는 했지만, 오늘은 휴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식구가 많은 딸 내외는 큰 사두마차를 이용하지 4인승 자동 마차를 타고 오지도 않았다.
가끔 들르는 동생이나 놀러오는 귀부인들이 타고 다니는 차도 아니었다.
그때 차에서 정장을 차려 입은 루산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낳은 아들이지만 쪽 빼입은 아들의 모습은 무도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왕자보다도 빛이 났다.
보름스 자작 부인은 반가움에 품위도 잊고 크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루산! 아이고, 네가 무슨 일이냐? 내가 헛것을 보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헛것이라뇨. 천천히 오세요. 넘어지면 어떡해요?”
“하도 오랜만이라 하는 소리지. 지난번에 왔다면서 왜 안 들르고 그냥 갔어?”
보름스 자작 부인이 루산의 팔을 붙들었다.
아들이 너무나 반가워 팔에 매달리는 어머니를 보자 루산은 순간 목이 메었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바빠서 일만 보고 돌아갔어요. 그래서 다시 왔잖아요.”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들어가자.”
자작 부인이 루산을 집으로 이끌었다.
루산은 어머니를 생각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붙였다.
“별일 없으시죠?”
“뭐 별일이 있겠니?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몇 달째 공사를 하는 통에 시끄러운 것만 빼면 아무 일도 없어서 심심할 지경이지.”
“공사 소리가 크기는 하네요. 근데 대대로 에를랑겐 백작님이 살지 않았어요?”
“그랬지. 그랬는데 전쟁이 벌어지면서 사업이 크게 어려워져 저택마저 팔아야 했던 모양이야.”
에를랑겐 백작 가문은 이반 황제의 개혁에 비교적 잘 적응한 가문이었다.
농지법에 따라 영지를 농민들에게 팔고 거둔 자금과 남은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정부의 정책 지원금으로 노바에 상가를 사들이고 쇼핑 거리로 조성했다.
노바에서 쇼핑으로 가장 유명한 에를랑겐 거리의 상점 건물들 모두가 이 가문의 소유였고, 백화점도 세 개나 보유했다.
이반 황제의 개혁 이후 필센 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귀족, 상인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주머니도 점점 불룩해지자 에를랑겐 가문은 막대한 돈을 쓸어 담았고 다각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주로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가의 귀금속, 고급 의류, 고급 액세서리, 고급 가구 등을 만드는 일련의 공정 일체를 소유하는 쪽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던 것이다.
사업 방향은 틀리지 않아 계속 큰돈을 벌었지만, 경쟁자들이 등장해 더 화려한 백화점을 선보이고 새로운 쇼핑 거리를 조성하는 통에 수익률이 조금씩 나빠졌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전쟁이 벌어져 쇼핑 거리와 백화점에 손님이 뚝 끊기면서 막대한 적자를 떠안는 바람에 파산하게 된 것이다.
“인생사 참 허망하지. 그토록 잘나가던 가문이 전쟁 2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말이야. 그래도 에를랑겐 백작 부인은 참 따뜻한 분이었는데······.”
보름스 자작 부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루산은 어린 시절 에를랑겐 백작을 만나 인사할 때마다 반짝이는 금화를 주며 어깨를 두드려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을 잘 다룬다지? 훌륭한 기사가 되어라.”
어린 마음에도 에를랑겐 백작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늘 금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사업을 완전히 접은 거예요? 어디로 가셨대요?”
“아들이 다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더구나. 거기에 보태려고 저택을 팔았대. 그리고 백작 내외분은 고향으로 가셨단다. 활동하기에는 힘이 부칠 나이기도 하고.”
“그렇군요.”
루산은 우울한 이야기에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뭐 하고 계셨어요? 아까 보니까 직접 정원을 가꾸시는 것 같던데······.”
“그냥 소일하는 거지 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씨앗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그러면 기분도 좋고 하루가 금방 가거든.”
루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분이······.”
“호호, 그 예전이 언제 적 예전이냐? 그때는 땀 흘릴 정도로 움직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 사기를 당하지도 않았고.”
“······.”
“그때는 나도 젊었지.”
“지금도 젊고 예쁘세요, 어머니.”
“우리 아들이 오늘 왜 이럴까? 호호호!”
보름스 자작 부인은 빈말이라도 아들의 말에 행복했다.
“그런데 집에 사람이 몇 명이에요?”
“응? 그건 왜?”
“이 큰 집에 너무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요.”
“식구도 없는데 사람이 많을 필요가 있니? 네 명이면 충분하지.”
“생활비가 부족하세요?”
루산은 봐렌 철골 부지 - 보름스 장원 안에 있는 반란군 멕 나이트 생산 공장, 현재는 국가에서 멕 나이트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땅 - 임대료로 매달 받는 600골드를 어머니 생활비로 드리고 있었다.
노부인 한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물론 귀족적인 씀씀이라면 부족할 수 있지만.
“부족하긴! 아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사실 최대한 생활비를 아껴 루산 결혼 자금으로 쓰려고 모으는 중이었다.
“안 그러셔도 되니까 너무 옹색하게 지내지 마세요. 부족하면 더 드릴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네가 걱정이지 내가 걱정이니?”
보름스 자작 부인은 아들이 찾아와 기분이 무척 좋았다.
평소보다 말도 많고 목소리 톤도 훨씬 더 높았다.
자작 부인은 집으로 들어가 루산에게 차를 내 주었다.
루산이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 뒤 말했다.
“저, 결혼하려고요.”
루산의 말에 차를 마시려던 자작 부인이 눈을 껌벅이다 찻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뭐라고?”
제대로 들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한다고요.”
“정말?”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었다.
자작 부인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누구냐? 어느 가문 여식이야?”
“가문이 중요한가요?”
“그럼! 중요하지. 물론 우리 아들이 좋다면 가문이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나는 환영한다만······.”
루산은 순탄치 않으리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가문이 망했다 해도 자작 가문.
게다가 재산도 이미 회복한 상태였다.
평생을 자작 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가문이 망했던 일로 보상 심리가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뚫고 갈 관문이었다.
“부모님이 빵집을 하세요.”
“응? 뭐? 빵? 식품 회사를 운영하신다는 거니?”
“아니오. 동네 빵집을 하세요.”
“······.”
보름스 자작 부인은 얼른 루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위···는?”
“작위는 무슨 작위에요? 평민이죠.”
“그렇지. 작위를 가진 귀족이 동네 빵집을 하지는 않겠지?”
“그럼요!”
“······.”
“······.”
“그렇구나.”
자작 부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루산이 얼른 덧붙였다.
“결혼할 사람은 매우 똑똑하고 현명해요. 노바 대학 법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죠. 규모가 어마어마한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할 만큼 능력이 많은 사람이에요. 어머니도 만나 보면 좋아하실 거예요.”
“······.”
“사실 우리 재산을 되찾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우리 재산을 관리해 주고 있죠. 이 사람이 없었으면 절대 가문의 재산을 되찾지 못했을 거예요, 어머니.”
루산은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중대사와 관련하여 몇 분 만에 자신의 마음을 전해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면 대우를 더 잘해 주고 재산 관리인으로 고용하면 되지 않겠니?
“네?”
“내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빵집을 하는 평민 딸과 결혼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 아들은 아무나 가지 못하는 제국 기사 아카데미에 당당히 합격하여 교수님들께 역대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들이란다.”
“······.”
“제국을 굳건히 떠받칠 재목이라는 소리를 듣던 아들이란다. 비록 불행한 일을 당해 뜻을 펴지는 못했지만,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변경으로 떠나 기어이 가문을 다시 세운 기특한 아이란다. 변경에서도 제국을 위해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황제 폐하께 훈장도 받은 아이인데, 뭐가 부족해서 빵집 딸과 결혼을 한다는 말이냐?”
보름스 자작 부인은 최대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답답해서 울고 싶은 것은 루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시간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설명하고 자주 길게 만나 어떤 사람인지 직접 알아보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분명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없어요. 5일 안에 결혼해야 되거든요.”
“뭐라고? 5일?”
“네. 휴가를 더 길게 쓸 수는 없으니까요. 돌아가서 할 일이 많다고요!”
“결혼이 장난이니?”
“장난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리 알려 드리지 못했어요.”
“비밀?”
소매로 눈물을 찍던 자작 부인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덴은, 결혼할 사람 이름이에요, 바덴은 규모가 매우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 사람이 나와 결혼한다면 우리 가문의 원수가 주목할 만한 대단한 사업체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결혼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고,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거예요.”
자작 부인은 진정하고 아들의 말을 이해해 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루산은 인내심을 갖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자작 부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한번 지나간 인연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고 너도 괴로울까 봐 말을 안 했다만, 이왕 네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으니···, 줄리아는 어떠니?”
어머니가 줄리아를 언급하자 루산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줄리아 얘기가 왜 나와요?”
“너는 분명 내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솔직히 변경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느 가문에서 너를 사윗감으로 생각하겠니?”
“······.”
“그래도 줄리아는 너와 남다른 사이였고, 그 부모님도 너를 예뻐하셨고, 줄리아가 너를 잊지 못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다고 하더구나. 가문도 그만하면 명예롭고, 줄리아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어여쁘고, 예술적 소양도 뛰어나다 들었다.”
루산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가 괴로웠다.
바덴과의 결혼을 생각하고 상경했는데 갑자기 줄리아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그러나 보름스 부인은 빵집 딸이라는 이야기에 기겁을 하여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아이젠 자작께서 작고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장 결혼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추진해 보겠다. 슬픈 일을 겪을 때 다가가 위로해 주는 사람만큼 고맙고 힘이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야. 너와 줄리아 사이의 긴 공백도 충분히 메우고 남을 테지.”
“네? 아이젠 자작께서 작고하셨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몰랐구나? 얼마 전에 유해가 도착했다고 하더구나. 장례식도 끝났단다.”
루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북부 전선에서 아이젠 자작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망했다니!
어머니와 결혼 이야기를 나누던 것도 잊고 루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갔다 올게요.”
“루산, 어딜 가니?”
그러나 루산은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타 저택을 벗어났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보름스 자작 부인은 옆집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공사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다 기어이 한마디 했다.
“저놈의 소리, 언제까지 내려는 건지 원. 가서 따져야겠다!”
“참으세요, 부인!”
시녀와 정원사가 자신들이 대신 전하겠다며 말렸지만, 루산의 어머니는 가뜩이나 복잡한 심사에 몇 달째 계속된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겹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옆집을 찾아가 항의했다.
“죄송합니다, 부인. 최대한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한 달 내에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루트 오베론의 호위 기사 군터의 사과를 받아 냈다.
보름스 자작 부인은 작은 승리감을 느끼며 돌아섰지만, 이내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들이 직접 전해준 결혼 소식이 마냥 행복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너무 구식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직접 만나 보면 아들 말대로 바덴이라는 신붓감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평민과 결혼시켜서야 귀부인들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갑자기 줄리아가 떠올라 대안으로 제시하기는 했지만 안 좋은 소문이 도는 줄리아를 과연 며느리로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보름스 자작 부인은 온갖 생각들이 들끓어 혼자 판단을 내릴 수 없어 사람을 보내 딸과 사위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