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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75화 (275/450)

275. 아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275. 아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루산은 이 앞에 왔을 때 니트라 공작과 아라드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감정가를 산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신형 레오파드로 교환해 주기로 한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가 아라드 왕국 수도에 건설한 멕 나이트 수리 공장에서 아우로라 연합의 기체들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졌다.

감정가는 가프 마법 연구소의 마법사 칼리슈와 아라드 왕국 궁정 마법사가 양측 기술자들을 이끌고 기체를 상세하게 살핀 뒤 항목별로 엄격히 평가를 내려 결정했다.

그래서 루산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결정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루산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루산으로서는 이 교환 자체가 큰 이익이었다.

멕 나이트를 구하기 어려운 부르사 왕국에는 중고 기체를 넘기는 대가로 대당 22만 골드를 받기로 했고, 아라드 왕국에는 중고 기체를 감정가로 인수하기로 한 것이라 한 대를 팔았을 때 차액이 무려 15만 골드 이상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멕 나이트 대금은 피닉스 제철로부터 받고, 피닉스 제철이 여력이 없어 당장 수중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 뒤에는 이번 멕 나이트 거래로 대형 거미 잔금을 모두 치르고도 남을 만큼의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그래서 칼리슈에게 당부했다.

“너무 빡빡하게 하지는 마세요.”

“걱정 마세요, 기사님. 저쪽에서는 이번 거래를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아라드 왕국은 루산이 두 번의 전쟁에서 성능을 증명한 레오파드를 선호하기 때문에 노획한 중고 아우로라 연합의 기체를 헐값에 넘기더라도 신형 레오파드를 받는 이번 거래를 좋게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이미 가격 산정보다는 기술 교육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입니다. 아라드 왕국에 몇 명 없는 멕 나이트 연구 마법사들과 아라드 왕국군 소속 정비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있거든요.”

아라드 왕국 같은 소국에서는 멕 나이트를 직접 제작하는 연구소의 마법사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외판을 뜯고 내장 부품을 감정할 때 칼리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한 배움의 기회로 여기고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산은 이런 아라드 왕국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전 국토가 황폐해졌지만,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멕 나이트 기술 교육을 겸하고 있어 감정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이번에 모두 가져갈 게 아니니까 헤비 스틸 아홉 대를 먼저 감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님. 최대한 서둘러 보죠.”

“고맙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딴 곳에 가 있었다.

아라드 왕국 수도에 바덴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라드 왕국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바덴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워낙 바쁜 데다 여자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생각하면 굳이 아라드 왕국까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다.

그런데 직접 온 것이다.

루산은 칼리슈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서둘러 정비 공장을 떠났다.

***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

1. 호리아 평원 개발

호리아 농업 회사

호리아 공단

2. 수도 개발

경공업 중심

3. 룬드 항 개발

조선소, 제철소, 철강 산업 중심

4. 철도 부설

룬드 항-호리아 평원-수도-변경 노선 완성

호리아 평원-필센 제국 노선 신설

5. 주택과 마을 재건

벽돌 공장

석회석 공장

목재 공장

주거 환경 개선

바덴은 이 다섯 가지 사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을 발표하여 아라드 왕국 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미 루산으로부터 대강의 내용을 들은 니트라 공작도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내용이었으니 처음 듣는 관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덴은 국왕과 재상 앞에서 다시 한번 브리핑했다.

루산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니트라 공작은 그에게도 참석할 것을 부탁했다. 국왕에게 필센 제국이 이 사업을 은근히 지원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루산은 기꺼이 참석해서 국왕을 만나 아라드 전쟁의 영웅으로서 환대를 받은 뒤 국왕 집무실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바덴의 브리핑을 들었다.

바덴은 포이어에게 각종 자료, 도표, 사진까지 포함된 차트를 넘기도록 하고 준비해 온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을 발표해 나갔다.

세부적인 계획과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듣노라니 아라드 왕국의 풍요로운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전란으로 망가진 집들이 아름다운 마을로 탈바꿈하고, 철도와 도로가 각 지방을 연결하고, 비옥한 농지에서 농기계들이 곡식을 수확하고, 커다란 공장들이 쉼 없이 돌아가고, 백성들이 환하게 웃음 짓는 풍요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국왕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과연 일개 사업가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란 말인가!”

바덴은 국왕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했지만, 일부러 다른 쪽을 강조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쪽 노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라드 왕국의 전폭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토지 개혁, 사회 개혁을 동반하지 않으면 개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미 니트라 공작으로부터 이 개발 계획이 귀족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것이지만 아라드 왕국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고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국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덴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 사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물으신다면,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손을 대서 실패한 사업이 없고, 최근에 제가 투자하고 있는 사업들은 가까운 장래에 크나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국왕과 재상은 책자에 나와 있는 바덴의 주력 사업체 현황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여성이 이런 대단한 사업체를 그렇게나 많이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손을 대서 실패한 사업이 없단 말인가? 흐음······!”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국왕은 아라드 왕국의 신료들에게서 이러한 자신감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덴의 말에 국왕과 재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저는 아라드 왕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사업 계획을 더욱 구체화했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업을 실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만들고, 이 나라 백성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조달할 방안을 마련하고, 우리가 조성할 공단에 입주할 업체들을 선정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4일 동안 열차를 타고 이 나라에 와서 벌써 6일째 이 부서, 저 부서 관리들 앞에서 사업 설명만 하고 있습니다.”

일국의 국왕 앞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오만한 태도에 니트라 공작이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바덴은 개의치 않았다.

루산이 이야기했을 때는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기로 했던 니트라 공작이,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온 자신을 만나고 지지부진해진 이유는, 실행을 앞두고 귀족들과 줄다리기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탓도 있겠지만,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언제까지 설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아쉬운 쪽은 아라드 왕국이 아니겠는가!

“수용 여부를 빨리 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센 제국에도 농업 기지 사업을 할 지역은 많고, 이미 사업하기에 적합한 법령과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또한 굳이 이 나라에 공단을 짓지 않아도 투자할 곳은 많습니다. 저뿐 아니라 아라드 왕국 백성들에게도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폐하!”

자신감을 넘어서서 오만하기까지 한 바덴의 태도에 국왕 집무실이 고요해졌다.

국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니트라 공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 호통을 치기 직전이었다.

그때 국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유! 무능한 국왕 때문에 백성들에게도 귀한 시간이 아깝게 흘러가는군. 맞는 말이야.”

“폐하!”

“재상, 솔직히 우리가 잃을 것은 없지 않소?”

“폐하······.”

“손해를 보더라도 투자하는 측에서 보는 거지 우리는 잃을 게 없지 않은가?”

니트라 공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국왕이 그런 재상을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상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당분간 다시 칼을 차고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소.”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토지 개혁, 사회 개혁은 불가피하다.

귀족들이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그 저항은, 필센 제국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지 말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저항을 무력으로 억누르고서라도 이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을 실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전직 총사령관이자 현직 재상인 늙은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왕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꺼이 칼을 들겠나이다, 폐하!”

국왕이 늙은 재상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 엄숙하고 결연한 장면에 바덴은 몸을 떨면서도 이 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꼈다.

루산이 남몰래 바덴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눈을 찡긋했다.

‘멋지다, 내 부인!’

그때 국왕이 바덴에게 말했다.

“계약서를 주시오.”

“여기 있습니다, 폐하!”

아라드 왕국의 국왕이 두툼한 계약서에 굳이 직접 옥새를 찍었다.

이미 각오한 일,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었다.

쾅!

<아라드 왕국 개발 계획>이 마침내 성사되었다.

***

국왕의 집무실에서 나온 세 사람은 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유! 저는 사장님 때문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포이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작게 웃었다.

“앞으로 바빠질 거예요. 나도 당분간 왔다 갔다 하겠지만 바겐 씨, 아니 바겐 사장님이 아라드 왕국에 상주하면서 총괄하세요.”

“그럼요, 사장님! 온몸을 던지겠습니다.”

포이어가 다부진 각오를 내비쳤다.

사실 이 사업은 처음에 포이어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아라드 왕국으로 가서 호리아 평원을 빌리든 구입하든 호리아 평원 개발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라드 왕국 내부에 필센 제국이 제때 도와주지 않아 전쟁 피해가 커졌다는 원망의 목소리가 가득하여 필센 제국의 사업가가 제안한 이 프로젝트는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거부당했다.

그것을 아라드 왕국의 은인이며 전쟁 영웅이라고 불리는 루산이 다시 살려내고 바덴이 성사시킨 것이다.

포이어 탓이라기보다 당시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는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 실패를 만회하고 능력을 보이리라 다짐했다.

“아라드 왕국군이 우리 쪽 관계자들 경호에 나설 거예요.”

“경호라고요?”

“앞으로 누군가의 미움을 사게 될 테니까요.”

포이어도 뒤늦게 이 사업의 의미를 깨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반드시 피를 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바덴은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성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필센 제국의 선례를 들고 적절한 보상을 제시하면 귀족들의 생각도 바꿀 수 있으리라 보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아요. 귀족들이든 국왕 쪽이든 양보하기 시작하면 개발 계획은 무산될 거예요. 호리아 평원부터 시작해서 다섯 가지 사업 책임자들에게도 강조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아라드 왕국 백성들을 노예처럼 다뤄서는 안 됩니다. 원칙을 세우고 엄격하게 대하되 약속한 보상은 철저히 지급하고 의무 외의 일은 시키지 마세요. 백성들의 미움을 사도 우리 사업은 실패하는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바덴은 필센 제국에 벌여 놓은 일이 한가득하여 아라드 왕국에 계속 머물 수가 없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부하 직원에게 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걱정이 앞서서 그칠 수가 없었다.

포이어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나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바덴은 쉴 새 없이 주의할 점을 일러 주며 궁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루산은 빙긋이 웃었다.

“먼저 돌아가세요. 나는 기사님과 의논할 게 많으니까요.”

바덴은 포이어에게 루산과 결혼했고,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자신을 대신해 큰일을 맡을 사람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루산을 만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포이어가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비밀을 누설할 사람은 아니었다.

포이어는 루산을 쳐다보고 어색하게 눈을 맞춘 뒤 인사를 꾸벅하고 말했다.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기사님.”

“다음에 또 봅시다.”

루산도 살짝 목을 숙여 답례했다.

포이어가 돌아가자 바덴은 자신의 운전기사가 마부석에 앉아 있는 마차로 루산을 이끌었다.

루산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대장군 같았어요, 바덴.”

바덴은 웃음으로 넘겼다.

“국왕과 재상 앞에서 보인 그 기개에 어느 누가 감히 대적하겠어요? 모두 고개를 조아리거나 달아나고 말 거예요.”

“그만 놀리세요, 기사님.”

“놀리는 거 아닌데? 진심으로 감탄해서 하는 말이지. 정말 멋졌어요. 내 부인이 이렇게 사업을 하는구나! 전쟁터에 나선 장수처럼 용감하게! 목숨 걸고!”

“걱정하지 말아요, 루산. 통할지 안 통할지 상황을 봐 가면서 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걱정되니까.”

자신이 걱정된다는 말에 바덴은 루산에 대한 사랑이 급격히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얼른 마차에 올라 출발하라고 지시한 그녀는 창을 닫고 커튼을 쳤다.

루산은 바덴의 행동에 기대감이 끓어올랐으나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장난을 쳤다.

“뭐 하는 거예요? 이 더운 나라에서 왜 창을 닫아요?”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잖아요!”

바덴이 두 팔로 루산의 목을 감았다.

마차가 덜컹덜컹 달렸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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