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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2화 (282/450)

282. 충분히 많이 부쉈다

282. 충분히 많이 부쉈다

쿵쿵쿵쿵쿵!

무무족의 멕 나이트 40대가 지축을 흔들며 돌진했다.

왼손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원형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묵직한 도끼를 든 무무족 기체들은 기종도 제각각, 속도도 제각각이라 통일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원시의 광전사들처럼 박력이 넘쳤다.

그에 맞서는 므라드의 부대는 가프 용병단으로부터 인수한 헤비 스틸들을 전열에 세워 거대한 방패를 서로 붙여서 방어선을 치고 그 뒤에 재생 기체들을 배치해 충돌 후 교전에 대비했다.

가프 용병단으로부터 넘겨받은 산악형 그레이 울프들은 마나 진동 투창을 들고 후방과 좌우를 경계하고 있었다.

- 감히 신의 사자께 반기를 드는 놈들이다! 굳건히 버텨 섬멸할 것이다!

지휘관의 외침에 므라드의 전사들이 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주문을 힘차게 외쳤다.

- 마얄리와 윙구!

- 마얄리와 윙구!

- 마얄리와 윙구!

외부 확성기로 퍼져 나가는 우렁찬 목소리!

양쪽이 발산하는 강렬한 적의에 긴장감이 급격히 치솟았다.

마침내 가장 먼저 달려온 무무족 재생 멕 나이트가 헤비 스틸의 방패 벽에 몸을 던졌다.

쿠앙-!

이윽고 다음 기체들이 연달아 충돌했다.

콰과과쾅-!

엄청난 운동 에너지에 방패 벽이 출렁이고 틈이 크게 벌어졌다.

가장 먼저 몸을 던져 헤비 스틸 방패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 무무족 재생 멕 나이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도끼가 불그스름한 빛을 뿜어내며 떨어졌다.

- 뒈져라, 악마야!

쩡!

단단한 금속 머리가 쫙 쪼개졌다.

므라드의 전사는 거짓말처럼 갈라진 적의 멕 나이트 머리를 도끼로 연거푸 내리쳤다.

금속 파편과 내장 부품 조각이 뇌수처럼 튀고 머리 부분이 귀신처럼 너덜거렸다.

그러나 므라드의 파일럿도 무사하지 못했다.

뒤이어 방패 벽에 몸을 던지며 난입한 무무족 기체가 무시무시한 도끼로 어깨를 찍었기 때문이다.

므라드 측 재생 기체의 왼쪽 어깨가 흉물스럽게 벌어지고 방패를 든 팔이 너덜거렸다.

선두에서 달려온 무무족 기체들이 왕질군 멕 나이트 방패 벽에 부딪쳐 틈을 벌리고 난전에 돌입하는 사이, 속도가 떨어지는 기체들이 거의 도착했다.

그에 맞춰 왕질군을 좌우와 후방에서 견제하던 무무족 멕 나이트 8대가 슬금슬금 다가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왕질군 멕 나이트 30여 대는 무무족 멕 나이트 50여 대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왕질군 멕 나이트들 가운데에는 이번에 인수한 산악형 그레이 울프가 여러 대 있어 실제로 근접전을 치를 만한 기체가 무무족에 비해 훨씬 적었다.

왕질군 전사들이 신장(神將)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음에도 잔인한 도끼질에 멕 나이트들이 하나씩 하나씩 처참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때 무무족 뒤쪽에서 한 무리의 멕 나이트들이 달려왔다.

바로 가프 용병단이었다.

지휘를 맡은 미켈이 카랑카랑하게 명령했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르며 이동한다! 대열을 가다듬는다! 3열 횡대! 전열은 헤비 스틸이 방패 벽을 세우고, 경량 멕은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뒤쪽에 서라!]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은 오랜만에 지휘에 맞춰 움직이느라 대열을 갖추는 속도가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과거 수없이 훈련했었기에 이내 갈피를 잡아 이동하는 와중에 점차 3열 횡대를 갖추어 나갔다.

[앞에서 싸우고 있다고 조급해 하지 마라! 하나 된 움직임이 적을 위축시킨다! 전후, 좌우 대열 맞춰!]

미켈은 내딛는 발의 순서까지 통제했다.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들은 발을 맞추고 대열을 맞추며 전진해 나갔다.

멕 나이트 25대가 통일된 움직임으로 발을 구르자 제각각 뛰어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소리가 났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25대의 멕 나이트가 하나의 거대한 금속 거인으로 합체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위용에 무무족 후미 멕 나이트들은 저절로 고개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장군! 뒤에서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나 진동 도끼로 적의 멕 나이트 가슴을 찍은 뒤 파일럿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뽑아내던 슈야 마우메가 후방으로 기체를 돌렸다.

범상치 않은 위용을 뿜어내는 부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슈야 마우메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는 대열을 갖출 줄 아는 부대가 강하다는 것을 알지만,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저놈들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더냐? 당황할 것 없다! 이놈들을 먼저 다 죽이고, 저놈들을 죽이면 된다! 이놈들을 빨리 죽일수록 저놈들이 다가올 때까지 쉴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야.]

그의 여유와 자신감이 부하들에게 전해졌다.

무무족 전사들은 후방에서 다가오는 멕 나이트 부대를 무시하고 왕질군에 악귀처럼 달라붙었다.

루산과 미켈의 예상을 벗어나는 움직임이었다.

무무족이 왕질군 본대를 공격해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고 있을 때 가프 용병단이 뒤에서 덮치면 당황한 무무족은 일부는 달아나려 하고 일부는 계속 싸우려 하여 혼란에 빠질 테고 그때 포위하면 왕질군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히고 무무족 멕 나이트 부대를 섬멸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켈이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미켈은 루산의 주문을 완벽하게 수행해 무무족이 왕질군을 덮치는 순간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휘관이 뛰어나다!’

루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이 양쪽에서 협공을 가하려 할 때 시간차를 이용해 먼저 한쪽을 쳐부순 뒤 나머지 적을 물리치면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겨 성공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부하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가프 용병단이 이대로 칼 같은 대열을 유지한 채 전장으로 이동한다면 왕질군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빠르게 달려간다면 파일럿이 지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경량 멕 비중이 높아 난전을 치르다 많은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되었든 통일 전쟁은 첫발을 내딛자마자 좌초되는 것이다.

루산은 결정을 내렸다.

[내가 먼저 달려가 무무족을 괴롭힐 테니까 나머지 병력은 이대로 오세요.]

루산은 미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대열에서 이탈해 멀리 보이는 전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루산과 함께 작전을 나간 적이 없는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우려했다.

[혼자 가서 어쩌겠다는 거야?]

[여기서부터 달리면 지쳐서 싸우지 못할 텐데?]

그때 바이크가 괜히 우쭐거리며 말했다.

[자기 몸이나 챙겨요. 우리 대장님은 괴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

루산이 탑승한 헤비 스틸은 다른 헤비 스틸들처럼 거대한 사각 방패를 들지 않고 대검 한 자루만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키지 않은 채 왼손에 쥐고 달려갔다.

그는 좀처럼 방패를 들지 않았다.

그것은 대규모 멕 나이트 전투가 벌어지는 오늘날의 전쟁 양상에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다.

지금은 개인의 기량보다 군대의 규모와 조직력으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년 시절부터 수련해 온 검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고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대검으로 공방일체의 묘리가 담긴 검술을 구사하는 그에게 방진의 일개 구성원으로 방패를 들게 하는 것은 오히려 족쇄를 채우는 일인 것이다.

군에 입대했다면 명령에 따라야겠지만, 자신이 직접 조직한 용병단에서 스스로 족쇄를 찰 필요는 없었다.

전장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무무족과 왕질군의 멕 나이트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더욱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루산은 자신이 부르사의 전사들을 내심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페르보 제국의 속국으로 억눌려 지내다 외부 상황에 의해 독립을 이루었으나 그 뒤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가난하고 치안이 엉망인 나라.

그런 나라의 전사들이 싸우면 얼마나 잘 싸우랴 싶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전투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신앙과 적의로 무장한 부르사의 전사들은 기습에 특화된 작고 두꺼운 방패와 한 방, 한 방이 치명적인 묵직한 전투 도끼를 든 재생 멕 나이트를 타고 그야말로 맹수처럼 싸웠다.

마나 진동 대검으로 전투를 치를 때는 거의 볼 수 없는, 몸체가 쩍쩍 갈라지고 깨지며 파편이 마구 튀는 살벌한 전투는 오랜만에 루산을 긴장시켰다.

페르보 제국의 속국 시절부터 오랫동안 분열이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저항하고 싸워 온 부르사의 전사들은 실전으로 다져진 치명적인 전투 기술을 몸에 익혀 왔고 그것을 대물림해 왔던 것이다.

페르보 제국에 저항하는 동안 유격전이 몸에 배었다는 말은, 수적 열세로 인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그뿐 아니라 기습을 가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면 그 얻기 힘든 기회에 최대한의 피해를 가하고 물러나는 전투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전에서 이들과 동수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치명적인 전투 기술과 상대를 압도하는 박력은 그야말로 난전에서 최강의 전투 능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루산의 눈길을 사로잡는 기체가 있었으니 바로 무무족의 장군 슈야 마우메가 타고 있는 재생 멕 나이트였다.

무무족에 맞선 왕질군의 전사들도 맹수처럼 싸웠으나 그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왕질군 멕을 말 그대로 깨부수며 진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마치 소형 육식 괴수들 사이에서 날뛰는 포악한 대형 괴수 같았다.

루산은 감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군대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힘을 합쳐야 하는 왕질 므라드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손으로 대검 손잡이를 잡고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희뿌연 빛이 대검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미 가프 용병단 쪽을 의식하고 있던 무무족 후미의 멕 나이트들이, 돌진해 오는 루산의 기체에 반응했다.

- 어처구니없는 놈이네.

- 먼저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보지.

혼자서 돌출하는 루산의 헤비 스틸을 보고 뇌까리던 전사 두 명이 달려들어 핏빛을 뿜고 있는 전투 도끼로 루산이 타고 있는 헤비 스틸의 가슴과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나 루산은 헤비 스틸의 오른발로 지면을 강하게 찍어 왼쪽으로 기체를 빠르게 이동해 오른쪽 적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면서 대검으로 왼쪽 적의 전투 도끼를 튕겨 낸 뒤 그대로 무무족 멕 나이트 두 대를 지나갔다.

- 어?

- 흥!

그 모습을 본 세 번째 기체가 달려와 전투 도끼를 횡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루산 역시 수평으로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적의 전투 도끼가 허공을 스친 반면 루산의 대검은 적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쓰릉!

비록 깊지는 않았지만, 장갑판을 뚫고 몸체 허리 부분을 살짝 벤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루산은 세 번째 적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난전이었다.

이미 교전을 벌이고 있는 양측 멕 나이트들이 지근거리에 있었다.

루산은 대검을 몸체 가까이 붙이고 무무족 멕 나이트 곁을 지나며 쓱쓱 베고 지나갔다.

도끼가 떨어지면 도끼를 막으며 그대로 베고 지나갔고, 방패로 막으면 대검을 방패에 댄 채로 칼날을 미끄러뜨려 어깨와 머리를 베고 지나갔다.

일격으로 적의 멕 나이트를 완파시킬 필요는 없었다.

난전에 뛰어들어 쓰러지지 않고 적 기체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자신이 탑승한 기체에 상처가 나고 있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의식한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눈앞에서 상대하는 적 외에 다른 적을 찾아 눈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만들기만 하면 아군이 쓰러뜨려 주는 것이다.

루산은 금속 몸체를 쩍쩍 가르거나 깨거나 파편을 마구 튀기지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바람처럼 기체들 사이를 지나가며 실금을 늘려 나갈 뿐이었다.

[잡아라!]

어느새 무무족 멕 나이트들이 루산을 의식하고 포위하기 위해 몰려왔다.

루산은 맞서 싸우지 않았다.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벨 수 있을 때 작은 상처를 새로 만들어 주면서 물러났고, 다시 접근해 적 파일럿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는 왕질군 멕 나이트 뒤로 숨었다.

그러는 동안 미켈이 이끄는 가프 용병단 멕 나이트 부대가 칼날 같은 대열을 유지한 채 다가왔다.

이미 왕질군 방어진을 무너뜨리고 깊숙이 들어가 홀로 세 대의 멕 나이트를 두드리고 있던 슈야 마우메는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의 멕 나이트와 아군의 멕 나이트가 수에서는 비슷하고 전투 능력은 자신들이 다소 앞서지만, 훈련 상태에서 새로 접근하는 적들이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혼자서 전사들의 강렬한 전투 의지를 흐트러뜨리는 적의 존재가 거슬렸다.

그래도 자신과 휘하 전사들의 무용을 생각하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왕질군의 멕 나이트는 여기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충분히 많이 부쉈다! 이곳을 빠져 나간 뒤 전열을 정비할 것이다!]

무무족 전사들이 탄 재생 멕 나이트가 한쪽 방향으로 일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왕질군 멕 나이트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공격을 가했지만, 슈야 마우메는 부하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맨 뒤에 남아 덤벼드는 왕질군의 멕을 모조리 부수고 유유히 떠나갔다.

[추격할까요?]

미켈이 물었다.

[가능하겠어요?]

[피해가 크겠지요.]

[그럼 됐습니다.]

왕질군은 멕 나이트 피해가 심각해 더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루산은 가프 용병단의 피해는 없었지만 무무족과 부르사 전사들의 전투 능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껴 굳이 적을 쫓지 않았다.

사실상 아군이 패배한 전투였다.

이 패배로 인해 앞으로 통일 전쟁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루산은 그에 대한 생각보다 멀어져 가는 적,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적 멕 나이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공격할 때는 강하게 치고 물러날 때는 단호하게 빠지는 적의 지휘관.

떨어져 나간 멕 나이트 몸체와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들이 강렬한 태양 빛에 반사해 눈부시게 반짝였다.

루산의 눈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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