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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3화 (283/450)

283. 우리가 데려가겠다

283. 우리가 데려가겠다

멕 나이트 40대와 가프 용병단의 합류로 야심만만하게 통일 전쟁을 시작한 므라드의 군대는 무무족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20여 대의 멕 나이트를 잃고 말았다.

수천, 수만 대의 멕 나이트가 동원되는 대전쟁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는 수였으나 멕 나이트 한두 대로 한 지역을 지배하는 장군이 되고 군벌이 되는 부르사에서는 엄청난 숫자였다.

므라드를 지지하는 부족들은 충격을 받아 이 전쟁을 지속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 부족들이 보낸 병력으로 만들어진 므라드 군이 진격을 멈춘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참 나, 전쟁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계속할지 말지 고민을 한다는 거야? 소꿉장난 같이 작은 전쟁 가지고 말이야.”

바이크가 뙤약볕을 피하느라 멕 나이트 그늘에 앉아 셔츠 깃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그래 봐야 시원한 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멕 나이트가 거대한 그늘을 드리워 주기는 했으나 금속으로 만들어져 뜨겁게 달궈진 상태라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냉방 장치가 장착된 멕 나이트 안에 타고 있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보급로를 안전하게 확보할 때까지는 당분간 마나 연료를 아껴 써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이 뜨거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더위 때문에 짜증이 나는데 아라드 전쟁이나 이스타드 전쟁과 비교하면 상대도 되지 않는 작은 전쟁을 계속할지 말지 논쟁을 벌이느라 군대가 멈춰 있다고 하니 울화가 치민 것이다.

“허허! 소꿉장난 같은 작은 전쟁이라니? 자네 같은 역전의 용사에게는 작은 전쟁이라도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미켈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바이크는 ‘소꿉장난 같이 작은 전쟁’이라는 자신의 표현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으나 돌이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전쟁을 이미 결행했잖아요. 그때 각오를 덜했다는 거예요? 아니면 매번 이길 줄 알았나?”

“그랬나 보지. 패배를 예상하고 전쟁을 벌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도 이미 내친걸음이잖아요. 이제 와서 물러난다고 죽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야 그렇지.”

이미 적대 부족을 점령하여 피로 물들인 뒤였다.

전쟁을 그만두고 물러난다고 하여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대장님은 어딜 가신 거예요?”

“어디겠어? 이 문제 때문에 불려가셨지.”

“신관인지 뭔지가 부른 거예요?”

“말을 조심하게. 모든 문제는 혀가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다네.”

“쳇!”

“우리나라처럼 예배당을 지키는 사제 정도가 아니야, 이 나라 신관은. 신관의 말 한마디에 전사들이 목숨을 던지고 한 부족이 피바다가 되는 나라야.”

“···알아요.”

“차분히 쉬고 있어. 대장님이 가셨으니 해결되겠지.”

바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루산이 가면 해결된다는 믿음은 경험적으로 체득한 법칙 같은 것이었다.

***

전쟁을 계속하느냐 중단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루산이 므라드의 궁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왕의 조카이자 가르다이아 지방의 신관 므라드 암쿠 음파시가 친정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므라드의 안전 문제와 전쟁의 피로 신성이 오염되는 문제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므라드는 강력한 영도력으로 반대 목소리를 제압했다.

“악을 물리치는 것이 바로 신성이다. 신께서는 당신의 종이 한가로이 안전한 곳에 머물러 승전보나 기다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부지런히 신의 말씀을 전하고 악의 땅을 정화하리라!”

반기를 든 부족의 사람들도 신을 섬기고 신관을 받드는 것은 마찬가지라 므라드의 친정은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군의 사기를 꺾는 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문제는 실제 전투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부르사 백성들이 믿는 신이 멕 나이트 공격을 막아 주고 멕 나이트를 부술 수 있는가?

장군, 전사, 백성들 중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므라드는 신관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통치를 위해 이용할 줄 아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산을 부른 것이다.

“가프 용병단은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지?”

므라드의 질문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은 것 아니냐?

피해가 전혀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이냐?

작전에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

므라드가 전투 전후 상황에 대해 모두 보고를 받았다면 첫 번째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루산은 생각했다.

그래서 변명을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질문 그 자체에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히 강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체 몇 대가 긁힌 것 말고는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렇군.”

“네.”

루산의 대답을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므라드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전에 슈텐달 남작이 찾아왔을 때 멕 나이트를 몇 대까지 줄 수 있다고 했던가?”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떠 보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루산은 전에 자신이 슈텐달 남작에게 말한 수치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로 한정하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80여 대,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여기에 50대 이상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음!”

므라드는 루산의 대답을 듣고 필센 제국이 개입한 것이 틀림없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필센 제국의 일개 사업가가 이 정도나 많은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필센 제국이 우리 부르사를 페르보 제국을 공격하는 통로로 삼으려는 것인가! 어쨌든 필센이 우리나라를 이용하려 한다면 나 역시 필센을 이용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이용해야지!’

므라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90대를 추가로 구입하겠네. 40대는 곧장, 나머지 50대는 준비가 되는 대로.”

어차피 대금은 개발권으로 주는 것이라 당장 돈이 들지 않았다.

그만한 돈도 없지만.

그러나 루산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줄 것을 가지고 있는 측에서 끌려 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므라드는 당황했지만, 루산을 자신의 부하로 여기지 않고 협상 상대방으로 생각하는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최대한 감정을 숨긴 채 물었다.

“어떤 점이 곤란하다는 건가?”

“아시다시피 멕 나이트 대가로 받는 개발권은 최소한 가르다이아 지방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철로가 개통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르사 중부의 자원을 서쪽에 있는 항구까지 나르려면 철로를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길이 지나는 땅을 안전하게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멕 나이트를 부르사로 실어 와 전하의 궁전까지 가져오는 동안 주변 부족들이 모두 전하의 의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적들이 미리 대응하지 못하도록 전쟁 속도라도 높여야 하는데 주변 부족들을 하나하나 점령하느라 진군 속도가 매우 느리죠. 이런 식으로는 가르다이아 지방을 모두 점령해 지배하신다고 해도 다른 지방들이 이미 똘똘 뭉쳐 전하의 군대를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속도가 느리다!

적대 부족을 완전히 제압하지 않고 더 멀리 진군했다가 퇴로가 끊길 것을 우려하여 점령지를 차근차근 다지면서 가는 것이지만, 그 시간에 왕의 조카 므라드의 야심이 부르사 땅 전체에 알려져 다른 지역의 지배자들이 경계하고 대비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통일 전쟁은 가르다이아 지방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가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전쟁 속도가 이렇게 느리면 90대를 더 투입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르사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90대 추가 투입해도 여러 곳에 분산하면 티도 나지 않을 겁니다. 유일한 방법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죠. 적의 멕 나이트만 제압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치안 유지 병력은 그 이후에 들어와 점령지를 다스리면 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네. 결국은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군!”

“네, 전하! 어차피 빠른 속도로 여러 부족을 제압한다면 전하의 위명은 더욱 빠르게 퍼지게 될 것이고 많은 부족들이 싸우지 않고 전하께 고개를 조아릴 것입니다.”

“내 생각과 같다!”

므라드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루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쨌든 멕 나이트 추가 구입을 요청하셨으니 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개발권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음?”

“멕 나이트 130대 이상이 투입되는 일입니다. 파일럿 급여를 제외하더라도 대당 가격을 22만 골드로 하기로 했으니 총금액 3천만 골드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업이죠. 도입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루산이 숫자를 거론하자 므라드는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공급 여부를 결정하는 쪽이 상대방이라 일단 듣고 있었다.

“앞으로 소모될 연료, 윤활유, 각정 소모품, 부품, 무기 등을 생각하면 최소 그 두 배를 상정해야 합니다. 6천만 골드는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걸 언제 이용 가능할지 모르는 개발권을 받는 것만으로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통일군의 전투 능력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므라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프 용병단은 한 대도 부서지지 않았는데 므라드 군은 20여 대나 망가졌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멕 나이트를 더는 넘겨주지 못하겠다고?”

“막연한 개발권 외에도 확실한 보장이 필요합니다.”

므라드는 대화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면 향후 페르보 제국을 공격할 때 길을 터주기를 희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결국 그것을 위해 필센 제국이 자신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루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전하께 대항하는 전사들의 목숨을 원합니다.”

“뭐라?”

“어차피 죽게 될 목숨 아닙니까?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부르사에서는 적대 부족의 지도자나 전사를 살려 두지 않는다.

한바탕 피의 복수를 벌여 그동안 쌓인 원한을 푸는 것이다.

“데려가서 무얼 하려는가?”

“아시다시피 큰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물론 이기고 있습니다만, 파일럿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설마 멕 나이트 조종을 시키겠다는 건가? 가능하겠는가? 언제든 등에 칼을 꽂으려 할 텐데?”

“그래서 포로의 가족들까지 데려가려 합니다.”

므라드는 루산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전쟁 포로를 데려가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멕 나이트 조종 노예로 삼겠다는 말이 아닌가?

과연 원독에 찬 전사들이 순순히 그 말에 따를 것인가?

어쨌든 적대 부족의 전사들은 어차피 살려 두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문제는 가족들을 살려 두면 원한이 대물림하여 언제든 복수하려 한다는 것.

필센 제국에서 데려간다면 불순 세력을 뿌리 뽑아 통일된 부르사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흘릴 많은 양의 피가 분열된 부르사의 봉합을 저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였다.

포로를 넘겨주는 구체적인 방식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나쁘지 않아 보였다.

“붙잡은 멕 나이트 전사들을 데려가는 것으로 충분한가?”

“네, 전하. 그렇게 해 주신다면 무무족 연합군을 당장 분쇄하여 부르사 통일을 앞당기겠습니다.”

“좋다! 그리하겠다!”

루산은 곧바로 궁을 나와 가프 용병단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말을 달렸다.

부르사에 오기 전에는 전쟁 포로를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첫 번째 전투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의 실력과 패한 뒤 사그라질 목숨이 아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도 금방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상시에는 멕 나이트 파일럿이 부족한 아라드 변경 개발에 투입하고, 유사시에는 가프 용병단의 일원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에도 기꺼이 선봉에 세울 것이다.

본인과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을 부르사라는 원한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사람이 살 만한 곳 - 비록 평생 만난 적이 없는 괴수들이 가까이 살기는 하지만 도적 떼의 위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변경 - 으로 옮겨 주는 셈이니 목숨을 바치라는 요구가 그리 과한 것은 아니리라!

그야말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으나 루산은 이 생각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

부르사의 전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레오파드 파워.

레오파드 스피드가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으로 확실히 자신만의 역할을 찾으며 가치를 증명해 나가고 있었다면 레오파드 파워는, 무게는 아이언 워리어의 0.8로 약간 가볍지만 레오파드 스피드보다는 훨씬 무거워 살짝 애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회전에서 방패진을 형성한다면 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아이언 워리어나 헤비 스틸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기동전, 산악전에서는 레오파드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산은 레오파드 파워에 부르사의 전사들을 태워 난전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작은 원형 방패와 짧고 묵직한 도끼를 들려 난전에 투입한다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사각 방패와 긴 대검을 든 일반형 멕 나이트들을 모조리 깨부술 것 같았다.

재생 기체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성능을 지닌 레오파드 파워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려면 부르사의 전사들을 포로로 잡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빨리 이겨야만 했다.

가프 용병단 숙영지에 도착한 루산이 파일럿들을 소집했다.

“적은 지금 무무족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집결한 상태죠?”

“그렇습니다.”

미켈이 대답했다.

“무무족과 연합한 소수 부족들의 병력을 본거지로 돌아가게 만들 겁니다. 우리 멕 나이트가 그들 고향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도록 움직이는 거죠.”

루산은 이 전쟁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아라드에서 추가로 멕 나이트를 운반해 오려 해도 수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무무족 땅을 점령하지 못하면 멕 나이트든 다른 전쟁 물자든 제대로 보급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현재 병력만으로 적을 빠르게 섬멸할 작전을 구상한 것이다.

적의 병력을 흩어 놓는 것!

“본거지를 지키러 오지 않으면 그대로 본거지를 점령하면 되고,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오면 중간에 매복해서 포위하면 됩니다. 포위하기 어렵다면 그대로 보내 줍니다. 그런 식으로 적의 병력을 흩어 놓고 우리는 다시 빠르게 집결해 무무족을 치는 거죠.”

가프 용병단에는 경량 멕이 많았고, 높은 곳에서 적과 아군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대형 거미가 있었다.

“슐츠 경, 지휘하세요.”

“알겠습니다!”

미켈 슐츠가 세부적인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멕 나이트 파일럿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가프 용병단의 멕 나이트가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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