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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4화 (284/450)

284. 대승을 거두어야 한다

284. 대승을 거두어야 한다

산악형 그레이 울프 한 대가 이름과 달리 늑대에 물린 사슴처럼 다리를 절룩이며 애처롭게 달리고 있었다.

동료를 잃고 낙오했는지 주위에 다른 멕 나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메타르파족 재생 기체 세 대가 그 뒤를 맹렬히 쫓고 있었다.

므라드의 군대가 자기네 본거지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을 목격한 메타르파족 전사들은 멕 나이트를 타고 서둘러 돌아가던 중 이 고장 난 적의 기체를 발견한 것이다.

다리를 절룩이든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갔든 멕 나이트는 멕 나이트.

저것이 본거지를 공격하면 막을 수단이 없었다.

어차피 본거지로 가는 길, 이 녀석이라도 해치우고 가야 했다.

그런데 추격을 하면 할수록 왠지 느낌이 싸했다.

[아니, 저거 고장 난 거 맞아? 왜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 같지?]

[좁혀지기는 했어. 다시 벌어져서 문제지. 죽기 싫으니 죽어라고 달리는 모양이지.]

재미없는 동어 반복의 농담이라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러자 농담을 던진 전사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큰소리를 쳤다.

[얼른 잡자고! 세 방향에서 몰아서 절벽으로 밀어 넣어!]

[알았어.]

그러나 산악형 그레이 울프는 그들의 몰이에 당하지 않았다.

곧 잡힐 듯하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 방향을 바꿔 도망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본거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적의 멕 나이트들이 고향 마을을 짓밟아 쑥대밭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메타르파족 전사들은 마음이 급해 속도를 더욱 높였다.

후아아앙-!

후쿵후쿵후쿵-!

마나 엔진이 폭발할 듯 굉음을 내고 재생 기체들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다리를 절뚝이는 산악형 그레이 울프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산모퉁이를 돌기 전에 산악형 그레이 울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리를 절던 눈앞의 기체가 번개처럼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 힝! 속았지?

바이크가 외부 확성기를 켜고 놀리듯 소리쳤다.

경량 멕과 일반형 재생 멕의 차이는 확연했다.

양측의 거리가 금세 벌어졌다.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안 전사들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 이놈! 전사라면 달아나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 이 비겁한 놈아! 신께서는 겁쟁이를 용서치 않으신다!

그러나 입담에서는 바이크를 이길 수 없었다.

- 기종이 다른데 당당히 맞서라고? 너희들은 당당히가 무슨 뜻인 줄 모르냐? 너희야말로 당당히 나랑 달리기로 겨루자! 크크크크!

메타르파족 전사들은 허탈감에 힘이 쭉 빠졌다.

그들의 불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산모퉁이 너머와 자신들이 지나온 뒤쪽에서 새로운 적 기체가 네 대씩 나타난 것이다.

다리를 절룩이며 자신들을 유인한 기체까지 합치면 적은 모두 아홉 대.

게다가 재생 기체를 타고 있는 자신들과 달리 모두 현재 아우로라 연합의 주력 기체를 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달아나는 적을 잡기 위해 온힘을 다해 질주한 바람에 싸울 힘이 없었다.

멕 나이트는 파일럿을 보호하는 단단한 강철 몸체로 인해 기체의 성능과 수, 파일럿 숙련도 차이가 조금만 벌어져도 한쪽에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는 불균형 무기가 확실했다.

마나 진동 무기를 휘두르려 해도 휘두를 공간이 있을 때 가능한 법, 메타르파족 재생 기체를 포위한 헤비 스틸들이 대형 사각 방패로 압착하듯 밀어붙이자 재생 기체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메타르파족 전사들은 비겁한 자들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비좁은 조종실 안이 그대로 자신의 관이 된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두려움에 빠졌다.

그때 적 기체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항복하면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고 살려 주겠다.

- 거짓말 마라!

- 항복하지 않으면 므라드 전하의 군대가 너희 가족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너희 부족을 자근자근 밟을 것이다.

항복하라는 말에는 격렬히 저항하던 전사들도 항복하지 않을 때 일어날 일을 고지하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항복하면 너희들뿐 아니라 너희 가족들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 부족의 희생도 최소화할 것이다. 신께 맹세하지.

침묵이 길어졌다.

방패로 온몸을 짓눌린 재생 기체에서 한참 후에 갈등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정녕 신께 맹세하느냐?

루산은 부르사인들이 섬기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거짓 없이 대답했다.

- 맹세한다.

잠시 후 조종실 가슴 덮개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헤비 스틸 파일럿이 방패로 압착하는 힘을 살짝 빼자 재생 기체의 가슴 덮개가 시원하게 열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메타르파족 파일럿들이 동화기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프 용병단 단원들이 멕 나이트 시동 열쇠를 압수하고 그들을 포박했다.

시동 열쇠를 넘겨받은 가프 용병단 예비 파일럿들은 메타르파족 재생 멕 나이트에 탑승한 뒤 포로를 손에 쥔 채 달렸다.

작전에 동원된 멕 나이트도 달렸다.

부르사 땅에서 그들이 운용하는 기체는 25대뿐이었기에 무무족 연합군에 포함된 군소 부족 멕 나이트를 모두 처리하려면 멕 나이트의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 했던 것이다.

루산도 크사비족 기체를 처리하기 위해 현장을 벗어났다.

바이크가 그 옆에서 쉬지 않고 자신의 공을 떠벌렸다.

[···결국 누가 더 잘 속이느냐의 싸움 아니겠어요? 이제 전투가 뭔지, 전쟁이 뭔지 조금을 알 것 같아요.]

[그래 잘했다, 바이크.]

[하하, 뭘요. 유인이란 상대가 의심할 여유를 주지 않고 더 먹음직스럽게, 더 매력적으로······.]

루산은 바이크와의 통신을 차단하고 앞서가는 기체들을 따라 달렸다.

[대장님? 대장님? 아아! 이거 통신기가 고장 난 것 같은데요? 대장님! 아아! 아아······.]

***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군소 부족의 멕 나이트들이 빠져나가자 50여 대에 육박하던 무무족 연합군의 기체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빠져나간 기체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노획되고 나머지 절반가량은 파괴되었다.

므라드 군 전사들은 단기간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가프 용병단을 경탄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형 거미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고, 므라드 군 내에서 가프 용병단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졌다.

멕 나이트를 들여오고 가프 용병단을 고용한 사람은 바로 므라드.

왕의 야심만만한 조카는 가프 용병단의 전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자신을 떠받드는 부족들을 경쟁시킬 줄 아는 영리한 지배자였다.

무무족의 본거지 바야드를 눈앞에 두고 므라드가 각 부족의 장군들을 소집했다.

“내가 고용한 용병들이 전쟁을 다하는군. 부르사의 장군들 중에는 승리할 줄 아는 이가 없단 말인가?”

므라드를 섬기는 부족의 장군들이 경쟁적으로 나섰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전하!”

“이번에는 우아르족이 선봉에 설 차례입니다!”

그러나 므라드는 그들의 용기를 치하할 뿐 선뜻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

“무무족 멕 나이트는 여전히 30대가 넘는다. 반면 그대들은 각각 한두 대, 많아야 대여섯 대씩 가지고 있을 뿐이지. 지휘권이 통일되지 않고서야 어찌 전쟁을 치를 수 있겠는가?”

맞는 말이었다.

“이번 싸움은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통일 전쟁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를 통일하기에 앞서 우리 군의 지휘체계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므라드의 말에 각 부족의 장군들이 긴장했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멕 나이트와 병력을 므라드가 홀라당 집어삼킬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므라드는 그렇게 무식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장군들과 멕 나이트 전사들의 자식들 가운데 실력이 출중한 차남 이하의 아들들로 부르사 통일군을 조직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하사하는 멕 나이트를 받아 잘게 쪼개진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

“······!”

각 부족의 장군들은 깜짝 놀랐다.

므라드가 이런 식으로 신관 직할의 통일군을 조직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문을 잇게 될 장남으로 통일군을 조직하면 인질로 삼는 느낌도 들고 가문을 통째로 빼앗기는 느낌도 들어 거부감이 생길 수 있지만, 차남 이하의 아들들로 군대를 조직하면 가문을 잇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멕 나이트는 부족의 지배자나 장군들에게 가장 귀한 자산, 아무리 받들어 모시는 신관의 지시라 해도 곱게 바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므라드는 자신을 따르는 부족의 멕 나이트를 강제로 징발하지 않고 루산이 노획한 멕 나이트 13대를 새로이 만들어지는 통일군 전사들에게 나눠 주기로 한 것이다.

전리품은 반반으로 나누기로 계약했지만, 루산은 자신의 몫을 나중에 받기로 하고 일단 므라드에게 모두 밀어주었다.

이로써 순수한 자신의 병력이 없던 므라드에게 멕 나이트 13대를 운용하는 직할 부대가 생겼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통일군이 탄생한 것이다.

므라드를 받드는 부족들은 므라드의 뛰어난 지도력에 더욱 감복했다.

그러나 통일군은 야심 많은 젊은 전사들로 이루어진 신생 군대라서 노련한 지휘관이 없었다.

결국 가프 용병단이 중군으로 총지휘를 맡고 통일군은 루산의 지시에 따라 선봉에, 각 부족들의 보내온 병력은 좌우 날개에 서기로 했다.

멕 나이트 총 수는 60대.

한편 무무족은 본거지로 돌아갈 기회를 놓친 연합 부족들의 멕 나이트를 합쳐 총 32대가 바야드 앞 평원에 진을 치고 있었다.

멕 나이트 수에서는 므라드 군이 2배나 되었지만, 경량 멕이 20여 대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전력이 2배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이 싸움에서 질 경우 무무족은 엄청난 피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 자명했기에 무무족 전사들의 전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무무족의 장군 슈야 마우메는 므라드 군을 돌파한다는 각오로 삼각형 모양의 돌진 진형 맨 앞에 섰다.

그 호방한 기세에 무무족의 사기가 더욱 높이 치솟았다.

- 일인당 두 대씩 쳐부수면 이기는 건가? 살짝 서운한데? 적어도 다섯 대씩은 상대해야 진정한 전사라 할 수 있지. 안 그래?

- 맞습니다!

무무족 전사들이 지휘관을 따라 호탕하게 소리쳤다.

그들의 목소리가 바야드 앞 벌판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모습을 보던 통일군 전사들도 질세라 외부 확성기로 외쳤다.

- 악마를 쳐부수자!

- 다 죽인다!

흉흉하고 무서운 말들이 쉼 없이 터졌지만, 무무족 전사들처럼 여유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루산은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무무족 지휘관은 걸물이다!’

루산은 무무족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 냈다.

혼자 바야드 시 뒤로 돌아 숨어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나타나 바야드 시를 짓밟으면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무무족 대열이 흐트러질 것이고 그때 일제히 공격하여 섬멸하는 방법.

밤에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몰래 숨어들어 족장과 전사들을 죽이는 방법.

그러나 이 방법들은 옳지 않았다.

용감하고 호방한 적을 이렇게 상대하는 것은 오히려 아군의 사기를 꺾고 적의 반감을 더욱 키울 뿐이었다.

정면으로 맞붙어 당당히 꺾을 필요가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의 승리뿐 아니라 앞으로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므라드 군의 강함을 세상에 증명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군의 피해를 줄여야 했다.

[슐츠 경, 통일군의 젊은 전사들을 뒤로 빼세요. 여기서 잃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병력입니다. ]

목숨은 다 귀하다지만, 이제 막 창설된 통일군이 무너지면 므라드를 떠받치는 힘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 대신 내가 선두에 서서 적의 장군을 상대할 테니 가프 용병단은 방패 벽으로 적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도록 하세요.]

이 정도 설명만으로 미켈은 루산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러나 가프 용병단 아니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에게 루산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구심점이었다.

루산이 없으면 그들은 머물 곳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루산의 실력이 출중하다지만, 전투에서 늘 선봉을 맡길 수는 없었다.

[대장님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크게 이겨야 해요. 부르사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승을 거두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미켈은 할 수 없이 선봉에 선 젊은 전사들을 뒤로 물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을 빼앗으려 한다고 투덜댔지만, 총지휘권은 가프 용병단에 있었기 때문에 명령에 따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섰던 자리로 헤비 스틸 한 대가 방패 없이 마나 진동 대검만 든 채 걸어 나가 오연하게 자리했다.

그 뒤로 가프 용병단의 방패진이, 가프 용병단의 좌우에 므라드를 지지하는 부족들의 멕 나이트가, 통일군의 재생 멕 나이트는 가프 용병단 바로 뒤에 위치했다.

작은 원형 방패와 묵직한 마나 진동 도끼를 든 슈야 마우메의 재생 멕 나이트.

마나 진동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루산의 헤비 스틸.

두 기체가 부하들을 등에 업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바야드 앞 벌판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어디 쪽에서 먼저 불었는지 알 수 없는 고전적인 뿔피리 소리가 전투 개시를 알렸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삼각형 모양의 무무족 진형.

역삼각형과 돌출한 점 하나로 이루어진 므라드 군 진형.

양군 멕 나이트 부대가 서로를 향해 나아갔다.

무무족은 격렬하게, 므라드 군은 차분하게.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장 먼저 격돌한 것은 슈야 마우메와 루산 보름스였다.

쾅!

피처럼 붉은빛을 뿜어내는 슈야 마우메의 도끼와 시릴 것처럼 푸른빛을 발산하는 루산의 대검이 강하게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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