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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7화 (287/450)

287. 축하합니다

287. 축하합니다

바덴은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원 남쪽 중산층 주택가에 위치한 큰 집을 구입한 뒤 몇 달 동안 수리해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가족들과 살아온 친정집을 떠나 함께 살기로 한 루산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눈을 뜨면 낯설고 외로운 느낌이 이불처럼 온몸을 덮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유롭다는 느낌도 들었다. 경제적 독립이야 진즉 이루었지만, 생활면에서도 독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바덴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신중하게 고른 가정부 두 사람이 조용히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적당한 사람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만 함께 살기로 한 비서 소피아가 바덴이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있는지 신문을 빠르게 훑어보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사장님?”

“잘 잤어요, 소피아?”

“네.”

“나는 아직 적응이 안 되나 봐. 아함~”

바덴은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는 기지개를 크게 켰다.

“집이 바뀌면 다들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렇겠죠?”

“네.”

바덴은 소피아와 식사를 했다.

사실 친정집과 가까워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고, 시어머니도 바덴이 선물한 자동차 편으로 매일 음식을 챙겨 보내고 있었기에 식탁은 풍성했다.

바덴은 최근에 몸이 좋지 않아 건강을 생각해 최대한 많이 먹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친정집을 떠나 혼자 살아서 몸이 축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기 위해 억지로 한 입 더 먹고 식사를 마쳤다.

식사 이후에는 티타임이 이어졌다.

이것은 새로 생긴 고상한 취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일의 일종이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모든 차를 구입해 어떤 차가 무슨 맛이 나는지, 식사 후에 더 어울리는 차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각을 잘 느끼지 못해 테스트에 그리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어머니, 시누이, 그들의 지인인 귀부인들, 친정 부모와 지인, 기획 팀 직원들을 통해 계속 테스트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덴 한 사람이 빠져도 테스트에 전혀 지장이 없지만, 성실한 그녀는 티타임을 빠뜨리지 않았다.

맛은 잘 몰라도 향이나 질감, 색, 농도 등에서 자신이 기여할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덴이 자신의 느낌을 말하면 소피아가 꼼꼼히 기록했다. 소피아 역시 자신의 느낌을 적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티타임까지 마치고 나면 출근 준비를 했다.

소피아가 전날 미리 골라 놓은 옷을 입고 화장을 살짝 하는 것으로 준비 끝.

“집에 상주할 비서를 뽑을 때 의상과 미용 쪽에 감각이 있는 사람도 뽑는 게 좋겠어요.”

“제가 실수라도······?”

“그게 아니라 잡무를 너무 많이 떠맡기는 게 아까우니까. 소피아는 할 일이 많잖아요.”

“아!”

“딱 한 달만 살고 나가요. 사장하고 같이 사는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지 뭐예요.”

“저는 괜찮습니다, 사장님.”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사장보다 늦게 자고 사장보다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그래도 조금만 이해해 줘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니 서둘러 적임자를 뽑아요. 입이 무겁고 똑똑한 여자들 두세 명이면 되지 않겠어요?”

“네, 사장님.”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정원은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귀족들이 사는 저택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이 주택가에서는 가장 큰 집이어서 자동차 두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도 상당히 넓은 뜰을 꽃과 나무로 꾸밀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보름스 가문의 저택을 드나들어서 이 집의 정원이 작게 느껴졌다.

‘나중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려면 집이 더 커야 하지 않을까? 황궁 북쪽 저택들 중에 하나를 구입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바덴은 이내 털어 버렸다.

“파르나에 짓고 있는 집은 공사가 많이 진행됐을까?”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사장님.”

“그럼 주변 부지를 좀 더 확보해서 정원은 넓게 하는 게 좋겠어요. 보름스 저택 정도 되도록. 정원 설계는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부지를 여유롭게 확보해 봐요.”

“네, 사장님.”

바덴은 새로운 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몰라도 자꾸 집에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면서부터는 그럴 틈이 없었다.

소피아가 오늘 일정을 보고하고 중요한 신문 기사를 브리핑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온전히 사업을 위해 할애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일정은 오전 아홉 시부터 시작된 농업 기지 사업 관련 회의.

“현재 제국 변경 구역들 가운에 절반에 해당하는 4개 구역과 협약을 체결하고 농업 회사를 설립했고, 필센 북부를 비롯해 4개 지방에서 7개 농촌 지역에 농업 회사를 세웠습니다.”

현재 변경 8구역의 반달 농업 회사를 포함하여 11개의 농업 회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견학 프로그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 100번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한 번 보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반달 농업 회사의 지원을 받는 변경 8구역의 농가가 다른 지역 농가보다 경지 면적이 훨씬 넓고 생산량과 수입도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가서 보고 설명을 듣고 나면 우리 농업 회사에 부정적이던 다른 지방 농업 담당관들도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현재 8개 농촌 지역과 농업 회사 설립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고, 95개 지역 담당자들이 변경 8구역으로 견학할 예정입니다.”

필센 제국 전체 농촌 지역 수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변경 8구역에 농업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업 기지 사업의 확장 속도는 놀라웠다.

농기계와 멕 워커를 이용한 기계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노동력 수요를 고려한 농업 노동자들의 효율적 투입 방식, 체계적인 생산 관리, 수매 보관 유통의 일원화···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수익을 증대하는 농업 회사 시스템의 장점을 사람들은 견학을 통해 금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업이 빠르게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모두 관리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할 거예요. 농사에 필요한 모든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농업 회사라고 홍보만 요란하고 실제로 농기계 한 대도 제때 보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만 생기게 될 테니까요.”

“네, 사장님. 그래서 농업용 멕 워커 생산 프로젝트를 가프 쪽에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고, 농기계를 생산하는 펜트 사에 설비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잘하셨어요. 하지만, 농업의 특성상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각 지역에 필요한 일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중앙 기구가 필요하죠. 그리고 각 지역의 농산물 생산 현황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어요.”

농업 회사가 관리하는 지역에 필요한 일손의 효과적인 모집과 공급, 농산물의 유통과 저장을 관리하는 중앙 기구.

농업 기지 사업이 확대될수록 이 기구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이다.

“가칭 필센 농업 생산 관리 회사를 세워서 앞으로 농업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일을 주관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업이라는 말 한마디에는 수많은 품종의 작물들과 다양한 가축들과 지방마다 다른 농민들의 생활과 풍토가 모두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 모두를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아직은 기우에 불과하지만 식량을 일개 기업이 독점하게 된다면 크나큰 반발이 나올 우려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했다.

그래도 바덴은 대전쟁으로 식량 가격 폭등을 경험한 필센 제국 백성들이 다시는 불안에 떨지 않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대전쟁으로 인해 장차 식량난을 겪게 될 아우로라 대륙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농업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농업 기지 사업 관련 회의가 끝나고 오후 열한 시에는 군무부에서 미팅이 있었다.

레오파드 간편식 월 100만 상자 공급 기념행사가 있다고 초청받은 것이다.

월 200만 상자 공급이 목표이지만, 현재 월 120만 상자를 생산했고 그중 일부는 아라드 변경과 시중에 공급하고 있었다.

어쨌든 기업이 단순히 공급량을 늘렸다고 정부에서 기념해 줄 리가 없었다.

바덴은 이 행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전쟁이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될수록 엄청난 비용이 소모된다.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그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파드 간편식 100만 상자라 해도 그 가격은 멕 나이트 한 대 값밖에 안 되지만, 가장 줄이기 쉬운 비용이 먹거리 비용이라 표적에 들어간 것이다.

말이 축하하는 자리이고 기념행사이지 납품 단가를 깎기 위한 협상의 자리였다.

간편식 레오파드는 현재 이익이 거의 남지 않았다.

멕 나이트 레오파드를 홍보하고, 뛰어난 맛과 영양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반달 식품의 이미지를 제고함으로써 반달 식품 그룹에서 생산하는 다른 제품들의 판매량을 높이고, 용감한 나라 장난감을 홍보하는 용도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좋은 재료로 다양한 맛을 만들어 저렴하게 군납하고 있기 때문에 간편식만 생각하면 전혀 이익이 남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덴의 입장이고 군무부 조달국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바덴은 어떻게 협상에 임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군무부로 가실 시간입니다, 사장님.”

“알았어요.”

바덴은 끄적끄적 메모한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마리노 공화국에 갔던 시에나가 찾아왔다.

바덴은 군무부 조달국장보다 시에나가 더 중요했지만, 군무부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나요?”

“헤헤, 잘됐어요.”

바덴은 소년처럼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시에나가 더없이 반가웠다.

“미스 타란토, 괜찮으면 같이 가면서 얘기할까요?”

“바쁘신 것 같은데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귀한 분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죠.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뭐······.”

시에나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승낙하자 바덴이 소피아에게 지시했다.

“반달 식품 사장님께는 다른 차를 타고 먼저 가시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덴을 기다리고 있던 반달 식품 사장이 다른 차를 타고 떠나고, 바덴은 시에나를 옆자리에 앉혔다.

자동차가 출발했다.

“고향에 오랜만에 간 걸로 아는데, 별일 없던가요?”

“그대로더라고요.”

시에나는 자신의 귀향담을 재잘재잘 늘어놓았다.

크게 성공한 사람처럼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동네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언니들 이야기, 배 타고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매일 잔치를 벌인 이야기, 돌아온 아버지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아버지가 승낙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신나게 해 나갔다.

바덴은 마음씨 좋은 언니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탄성을 지르며 시에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 내 이름을 따서 시에나 무역 상사라는 회사를 세울 거라고 했어요. 회사가 잘되면 지분도 준다고 하는데, 그건 됐다고 했어요. 그런 거 안 받아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잘했죠?”

“훌륭해요, 미스 타란토. 그래도 아버지를 이어 무역 회사를 경영할지도 모르니까 지분을 주신다고 하면 받지 그래요?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마리노 공화국에서는 글렀어요. 특히나 뱃사람들은 여자가 사업한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할걸요? 선상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죠.”

시에나의 과장된 말투에 바덴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으나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필센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그래도 나 같은 사람도 하잖아요, 사업.”

“사장님은 특별하시잖아요. 좋은 대학 나오고, 엄청 똑똑하시고······.”

“특별할 거 없어요. 특별하기로 따지면 미스 타란토가 훨씬 특별하죠.”

시에나가 ‘그런가? 내가 특별한가?’ 하는 생각을 할 때 바덴의 표정이 갑자기 나빠졌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구토를 하려고 했다.

운전기사가 빠르게 차를 길가에 대자 바덴이 얼른 튀어 나가 가로수 아래에서 토했다.

깜짝 놀란 시에나와 소피아가 바덴의 등을 두드렸다.

바덴은 위를 모두 비운 뒤에도 한참이나 헛구역질을 하다가 겨우 구토가 멈추었다.

“괜찮으세요?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 보여요.”

“괜찮아요. 출발해요.”

운전기사와 비서는 사장의 지시를 거역하기 어려웠다.

자동차가 다시 출발하자 바덴은 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시에나가 소리쳤다.

“당장 병원으로 가요!”

“괜찮······.”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어서요!”

바덴은 자신의 증세가 무엇 때문인지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에 극구 말렸으나 이미 힘이 없었고, 바덴의 부하 직원이 아닌 시에나가 멕 나이트 파일럿의 패기로 소리를 지르자 바덴이 걱정되었던 운전기사는 가까운 병원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차가 멈추자 시에나가 바덴을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여기요! 아픈 사람이 있어요! 빨리요!”

몸에 식은땀이 나고 속이 메스꺼운 와중에도 바덴은 시에나의 등에서 헛웃음이 났다.

잠시 후.

의사가 바덴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임신이네요.”

바덴은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고 그녀 뒤에 서 있던 시에나와 소피아의 눈이 황소처럼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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