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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88화 (288/450)

288. 더 힘을 낼게

288. 더 힘을 낼게

병원에서 나온 바덴은 다시 군무부로 향했다.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에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바덴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앞으로는 조심해야죠. 그런데 이번 일정은 뺄 수가 없어요.”

“···네.”

“미스 타란토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변경으로 돌아갈 건가요?”

“아! 아니오. 부르사로 가야죠.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위험하지 않겠느냐, 동료들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으나 바덴은 꾹 삼켰다. 시에나는 루산과 함께 여러 전쟁터를 누벼 온 멕 나이트 파일럿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시에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각을 떠올렸다.

“부르사에서 철광석을 실어 피닉스 제철까지 운반하는 배들이 있어요. 그 배를 타고 부르사로 갈 수 있도록 부탁해 놓을게요.”

“아! 고맙습니다.”

“배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니까 피닉스 제철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거예요.”

“피닉스 제철에서요?”

“피닉스 제철 근처에 브레머 시가 있는데 노바 다음으로 큰 도시예요. 배 시간만 확인하고 브레머에 있는 호텔에 머물면서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고, 그러면 될 거예요.”

“알아요, 브레머.”

시에나는 필센 제국으로 처음 들어올 때에도 브레머 항을 통해 들어왔고 이번에 마리노 공화국으로 떠날 때에도 브레머 항에서 배를 탔다.

바덴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나를 내려주고 미스 타란토를 회사로 모셔서 다른 비서에게 회사 차로 피닉스 제철까지 안내하라고 하세요.”

그러고는 즉석에서 편지를 써서 소피아에게 전하며 말했다.

“이건 피닉스 제철에 보내는 편지. 슈텐달 남작님이 안 계실 때에는 그다음 책임자한테 보이면 된다고 하세요. 내 친구이니 소홀함이 없도록 모시라고 하고.”

“네, 사장님.”

내 친구라는 말에 시에나는 가슴이 왠지 간질간질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덴을 향한 호의가 뿌듯하게 자라났다. 전에도 나쁜 사이가 아니었지만,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았다.

바덴이 시에나에게 말했다.

“미스 타란토도 짐작하고 있을 거예요.”

“······?”

“기사님의 아이예요.”

“······!”

시에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기사님이 어려운 길을 가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죠?”

시에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을 무너뜨린 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누구에게도 자신과 관련된 일을 자세히 말하지 않아요. 지금 하시는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결혼한 사실도 아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시에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혼···이요?”

“네. 우리 결혼했거든요.”

“아!”

연이은 충격에 넋이 나간 듯한 시에나를 보고 바덴은 곤란한 미소를 짓다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네? 네.”

“그리고 기사님한테는, 상황을 봐서 얘기해 주세요. 아기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 네!”

“오늘,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뭘 그런 걸······.”

시에나가 쑥스러워했다.

그런 시에나가 바덴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자동차는 어느새 군무부 앞에 도착했다.

“미스 타란토!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할게요.”

“네, 사장님. 사장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아기도 건강하게 자라길 빌게요.”

“고마워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네!”

바덴이 차에서 내리자 군무부 조달국 건물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반달 식품 사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늦었습니다, 사장님.”

“중간에 일이 있었어요. 가시죠.”

“네!”

바덴이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에나는 그 모습을 보다 차를 타고 떠났다.

‘대장님이 사장님과 결혼을 하고, 사장님 뱃속에 대장님 아이가 있다니!’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몽롱했다.

그러나 꿈과 달리 깨고 난 뒤에 잊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점점 더 선명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

간편식 레오파드 월 100만 상자 공급 기념행사에서 반달 식품 사장은 감사패를 받았다.

어쨌든 그가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가 진짜였다.

조달국장과 조달국 담당자들이 바덴과 반달 식품 사장 맞은편에 앉았다.

조달국장이 먼저 레오파드 간편식이 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병사들을 위로하고 소소한 기쁨을 주고 있는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전쟁 비용의 증가, 비용 절감의 필요성, 애국, 국가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비용 절감에 협조하지 않으면 다른 업체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은근한 위협도 빠뜨리지 않았다.

“···10퍼센트 인하면 그리 큰 요구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눈이 바덴에게 쏠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덴이 반달 식품의 중요한 의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덴이 말했다.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보다 더한 거짓은 없다는 속담이 있죠. 그런데 이걸 어쩌죠? 우리는 레오파드 간편식을 남는 것 없이 팔고 있거든요. 사장님, 장부를 좀······.”

중년의 반달 식품 사장은 긴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가방에서 냉큼 낡은 장부 여러 권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바덴이 말했다.

“검토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남는 게 없어요. 우리는 좋은 원료를 아끼지 않고 써서 맛있고 영양 많은 군용 간편식을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애국한다는 마음으로 레오파드 간편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 가격으로 이 품질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면 납품 업체를 바꾸셔도 됩니다.”

단호한 바덴의 말에 조달국장이 오히려 당황했다.

“아니, 고슬라 사장님! 그런 게 아니라······.”

“솔직히 지금도 손해를 보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식재료 가격이 조금 안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레오파드 간편식 생산량이 늘면서 손해가 꾸준히 늘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차마 가격을 올려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고통 분담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최소한 9퍼센트는 올려야 적자를 면하고 약간의 이익을 남겨 맛과 영양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가 있는데, 이대로 매월 200만 개를 생산한다면 우리는 파산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생산량을 줄이고 싶은 심정이에요.”

바덴은 레오파드 간편식에 한정하면 약간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 맞지만,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큰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홍보 효과는 민간뿐 아니라 군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달 식품에서 군대에 납품하는 것이 레오파드 간편식만이 아니었다.

레오파드 간편식의 인기에 힘입어 밀가루를 포함한 각종 식자재를 점점 더 많이 납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협상의 자리에서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홍보 효과를 어느 정도로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어쨌든 지금은 레오파드 간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10퍼센트를 더 깎으면 레오파드 생산 라인을 이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애국하는 길일까요? 가격을 10퍼센트 인하하여 레오파드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거나 품질과 맛이 떨어지는 쪽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음!”

이것으로 사실상 협상은 끝이 났다.

레오파드 간편식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다지만 모든 병사들이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멕 나이트 부대와 정찰대, 공병대, 마나포 부대 정도이고 나머지는 점령지 치안 유지, 보급품 운반, 물자 운송, 경비 임무 등에 동원되고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간편식이 아닌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된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서 정상적인 식사를 하기 어려운 최전선에서 레오파드 간편식은 생명줄이 되어 주는 소중한 식량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는 후방에서도 레오파드 간편식은 간식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맛있는 간식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각종 과일 맛, 견과류 맛이 나는 맛있는 과자를 하루에 한 개씩 맛볼 수 있게 해 주는 레오파드 간편식은 병사들에게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

게다가 공들여 제작한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것은 별다른 재미가 없는 군대에서 가장 즐거운 취미였다.

이것을 얻기 위해 도박을 하거나 훔치거나 고가에 사고파는 등의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레오파드 마스코트의 인기는 무척 높았다.

최전방에는 한 달에 두세 상자, 후방에는 두 달에 한 상자 정도 배급되고 있는 지금, 후방에도 한 달에 세 상자를 배급해 달라는 병사들의 요구가 많을 정도였다.

모든 군납 제품에 기념행사를 열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레오파드 간편식이기에 이런 행사도 열어 주는 것이다.

전쟁에 나선 병사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레오파드 간편식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강하게 나오는 납품 업체 사장을 본 적이 없기에 조달국장은 당황했으나 큰 준비 없이 가격 협상에 나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떻게 체면을 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갈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때 바덴이 말했다.

“그럼에도 저희 반달 식품은 어떻게든 정부 방침에 협조하고 전쟁으로 인한 고통 나누기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고민해 봤는데, 이런 건 어떨까요?”

“어떤······?”

조달국장과 조달국 관리들, 반달 식품 사장 모두가 바덴의 입을 주시했다.

“레오파드 간편식 대금의 85퍼센트를 현금으로 받고 15퍼센트는 전쟁 채권으로 받겠습니다.”

당장 조달국에서 제안한 10퍼센트보다 더 큰 15퍼센트 가격 인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조달국장과 관리들이 반색했다.

바덴으로서도 손해가 아니다. 전쟁이 끝나면 이자와 함께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간편식 대금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자금이 묶인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금액은 전체 사업에서 큰 비중도 아니었다.

게다가 전시에 전쟁 채권을 구입하는 것만큼 애국심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좋습니다, 사장님. 군납품을 이렇게 결제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조달국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바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레오파드 간편식 생산량을 더 늘리려면 현재 가격으로는 곤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전쟁 채권으로 받는 만큼 자금 여력이 더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씀인데, 우리 반달 식품 식자재를 더 많이 받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른 데서 이익이 나야 레오파드 간편식 생산으로 보는 손해를 벌충할 수 있으니까요.”

“네?”

이렇게 대놓고 청탁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아니라 조달국장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바덴은 당당했다.

“부당하게 다른 회사 납품 물량을 빼고 우리 것을 받아 달라는 뜻이 아니에요. 어차피 병력을 증원하지 않습니까? 식자재도 그만큼 더 필요할 테고요. 그때 공정한 기회를 주시면 됩니다.”

“공정한 기회라······.”

“품질과 가격만 보고 선정한다면 우리 반달 식품 제품들이 압도하리라고 자신합니다.”

“음!”

“조만간 부피나 용량을 늘린 대용량 포장 제품 카탈로그를 제출하겠습니다. 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군대에서 한 번에 사용하는 식자재의 양은 어마어마하기에 민간처럼 소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만들면 포장뿐 아니라 운반과 유통 비용도 절감된다.

“아!”

조달국장과 조달국 관리들, 그리고 반달 식품 사장은 감탄했다.

이런 제안이라면 공정성 문제도 없고, 전쟁 비용을 줄인다는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고슬라 사장님! 사장님의 애국심과 경영 능력에 탄복했습니다. 필요하시면 군용으로 적합한 식자재 포장 규격을 연구하는 데 우리 쪽 인원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그럼 좋은 식자재와 레오파드 간편식을 많이 생산해 납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달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덴과 양측 사람들이 모두 따라 일어났다.

조달국장이 악수를 청하고, 바덴은 기꺼이 응했다.

훗날 반달 그룹의 회장이 되는 반달 식품 사장은 그날의 악수가 반달 그룹의 식자재가 장차 200만에 달하는 필센 제국군 장병 3분의 2를 먹여 살리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어쨌든 바덴은 군무부 조달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에도 상무대신과의 점심 약속, 기획 팀 차 사업 회의까지 마치고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보람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보람은 뱃속에 있는 아기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

아직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겉으로 그리 티도 나지 않지만, 엄마의 몸을 힘들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알리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아빠가 올 때까지 엄마가 더 힘을 낼게.’

바덴은 배를 어루만지며 억지로 밥을 먹었다.

그러고는 토했다.

몸이 힘들어 일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줄여 나갈지 막막했다.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집에서 더는 외로움과 낯섦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직접 할 일과 다른 사람에게 과감하게 넘길 일을 정리하던 바덴은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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