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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92화 (292/450)

292. 목숨이 열 개라도

292. 목숨이 열 개라도

“어머니는 좀 어떠신가요?”

바덴이 줄리아에게 물었다.

에를랑겐 쇼핑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첫 번째 한 일은 줄리아와 만나는 것.

마음속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결과로 증명한 줄리아의 실력을 알면서도 활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 속에 있는 아이도 이런 여유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래서 자동차를 보내 초대한 것이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식사하고 산책하고 그런 부분은 도움을 받아 하고 계세요. 사장님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줄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살이 좀 빠졌지만, 여전히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힘든 일을 겪어서인지 거기에 쓸쓸함이 배어 더욱 시선을 잡아끌었다.

“근데 사장님은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네요. 안색도 조금 안 좋아 보이고··· 괜찮으세요?”

입덧이 심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살짝 들었지만, 바덴은 꾹 참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그러시군요.”

시에나가 주저하다 어렵사리 말했다.

“건강··· 잘 챙기세요.”

“고마워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가요?”

“에를랑겐 쇼핑 거리, 에를랑겐 백화점을 아시나요?”

“알아요.”

노바에 사는 귀족 여인들치고 에를랑겐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덴이 줄리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지 캐릭터 조형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에를랑겐을 아는 노바의 젊은 귀족 여성인 것이다.

“이번에 에를랑겐 유통 상사와 협력하게 되었는데, 최대한 빨리 그 거리와 백화점을 살려야 해요. 그래서 거리 조경부터 미화, 광고에 이르기까지 에를랑겐 재생 프로젝트를 전반을 부탁하려고요. 물론 에를랑겐 쪽과 협업하는 모양새가 되겠지만, 미스 아이젠이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자작나무숲 미술 팀을 이끌고 이 일을 맡아 주세요.”

줄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듣기만 해도 엄청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바덴은 그녀가 이 일을 수락하는 것으로 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제품도 입정할 겁니다. 반달 그룹 식품관, 용감한 나라 장난감점, 그리고 카페 두 종류.”

“카페라고요?”

“네. 차 사업을 하기로 했거든요.”

“아···, 네.”

“막연한 생각이지만, 에를랑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하나는 완전히 귀족적이고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것으로 할 생각이에요. 백화점은 우아하고 귀족적이고 차가운 느낌, 쇼핑 거리는 열정적이고 따뜻하고 가족적인 느낌.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정도로밖에 말을 못 하네요.”

“아니에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괜찮으시면 메모를 좀 해도 될까요?”

“그럼요!”

바덴이 종이와 펜을 줄리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카페도 이 두 가지 느낌을 살려서 각각 다르게 오픈할 생각이에요. 에를랑겐 노블, 에를랑겐 유스. 대강 이런 느낌으로.”

“···네.”

“물론 귀족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거죠.”

“···네.”

“백화점이든 쇼핑 거리든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해도 좋을 거예요. 거리 곳곳에 조각을 세워도 괜찮아요.”

결국 예술을 사업에 이용하는 것이지만, 바덴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수많은 예술가를 돕는 일이고, 소비자도 예술적 체험의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장원 별장 사업, 줄리아의 광고를 통해 그 효과를 체감한 바 있는 바덴은 예술과 예술적 감각이 에를랑겐 쇼핑 거리를 충분히 되살릴 수 있다고 - 앞으로 되살아나겠지만 그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 판단했다.

이후로도 바덴은 줄리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를랑겐 재생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을 맡기려는 것이어서 기획, 전략 등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바덴과 이렇게 깊은 대화를 장시간 나눠 본 것이 처음인 줄리아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를랑겐 재생 프로젝트는 단지 유통 상사 하나를 되살리는 계획이 아니었다.

에를랑겐의 이미지를 고슬라 그룹의 주요 제품과 새로 시작하는 차 사업 홍보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가칭 에를랑겐 카페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말에도 놀랐지만, 그것이 차 사업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아무리 지점을 많이 늘려도 수입하는 모든 차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카페에서 모두 소화할 수는 없는 일.

도소매 제품군, 포장과 가격, 홍보 전략, 다기와 가구에 이르는 연관 산업에 이르기까지 바덴은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디자인과 홍보 등을 모두 줄리아에게 맡겼다.

“저를 높게 봐 주시는 건 고맙지만, 이 많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요, 미스 아이젠. 일로 잊어요.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우리는 또 살아가야 하잖아요. 일로 성공해요, 우리.”

줄리아는 바덴에 대한 마음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

“해 볼게요.”

“고마워요.”

바덴은 줄리아를 곁에 두고 쓰기로 했다.

그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은 무척 아까운 일이고 그녀의 능력을 활용하면 사업이 크게 성공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라리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약간은 작용했다.

***

도우나 강 서쪽 동방군 사령부.

동방군 사령관 라이네 후작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과 참모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죄수 부대만 선봉에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들에게 무슨 의욕이 있겠습니까? 남은 가족들이 있으니 배신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가족들이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해 의욕적으로 싸우려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다른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집착은 강한 것이다. 적이 공격해 오면 맞서 싸우게 돼 있지.”

“그것도 옳은 말씀이지만, 3년 동안 그렇게 싸워서 남은 것은 동료들의 주검뿐이었습니다. 3년이면 의욕이 꺾이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다른 전투라면 모르겠으나 이번과 같이 중요한 전투에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두보를 확보할 부대를 선봉에 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죄수 부대로 하여금 그 뒤를 받치게 하고 본대가 마지막으로 도강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죄수들도 우리 군이 자신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생각해 남은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오스카의 말에 라이네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바로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먼저 도강하는 부대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아직 전투가 많이 남았는데 아까운 병력을 희생해도 될 것인가?”

이것이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죄로 끌려온 죄수 부대야 죽어도 그만이지만,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안타까웠다.

오스카가 다시 나섰다.

“말을 꺼낸 제가 해 보겠습니다.”

“자네가?”

“네, 사령관님!”

“지휘관이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법이다!”

“공명심이 아니라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예비 기체를 충분히 지원해 주시고, 죄수 부대 지휘권을 주시면 큰 희생 없이 반드시 교두보를 확보해 보이겠습니다!”

군인다운 절도와 패기 그리고 용기.

오스카의 말은 라이네 후작의 마음을 흔들었다.

많은 뛰어난 지휘관이 그러하듯 그 역시 뛰어난 부하를 밑에 두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전에 잠깐 만난 사이였음에도 순환 근무를 마치고 다시 오라고 직접 편지를 썼던 것이다.

오스카가 순환 근무가 끝나고 동방군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원래는 곁에 두고 군기 참모로 쓰려고 했으나 지난 3년 동안 전투가 워낙 치열하여 지휘관급 파일럿들이 많이 사망했고, 전시 증편으로 많은 부대가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전단장급 인물이 부족해 조금 이른 나이지만 전단장을 맡겼다.

동방군 제6군단 제3 기동 전단장 오스카 빈켈.

죄수 부대의 남은 파일럿은 200여 명. 기체는 약 150대.

그들은 늘 선봉에 서서 많은 전투를 치러 왔기에 동방군 내에서도 가장 기체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오스카가 죄수 부대를 지휘한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기동 군단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그 나이에 전시가 아니라면 전단장도 빠르다 할 수 있는데 군단장이라니, 과연 공명심에 눈이 뒤집혔단 말인가?

그러나 오스카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이번 작전에서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면 상륙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이 중요한 작전을 죄수 부대에만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군인이 이만한 자신감은 있어야지!’

라이네 후작은 결국 오스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대에게 죄수 부대 작전 지휘권과 예비 기체 30대를 준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요청하도록!”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오스카 빈켈이 이끄는 부대가 도우나 강 도강 작전의 선봉을 맡게 되었다.

전입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 전단장이 공을 위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투덜대는 파일럿들도 있었으나 동방군 파일럿답게 묵묵히 전투 준비를 하고 작전 회의에 참여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파일럿들 가운데에는 새로운 파일럿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워낙 새로운 부대가 많이 창설되고 병력 충원도 자주 일어나다 보니 오스카의 부하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루산 일행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방군에 스며들었다.

“아휴, 대장님 따라다니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구나!”

도강의 선봉에 서게 된다는 말을 듣고 바이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옛날 전선 파일럿으로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변경 파일럿이 되었을 때의 패배감이 떠올라 짜릿했다.

비록 가짜 신분이지만, 적과 맞서 싸우는 당당한 필센 제국군 파일럿이 된 것이다.

“시에나, 내가 죽거든 당당한 제국군 파일럿으로 싸우다 죽었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울지 말고 잘 살아라!”

바이크는 혼자 괜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눈물을 슬쩍 훔치고는 새로운 기체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에 돌입했다.

***

제2차 대전쟁이 발발한 지 3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난 가을날.

아우로라 대륙 남서부 내륙에 있는 작은 나라 바르나 왕국에서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동방군은 바르나의 수도 라브나를 점령하기 위해 도우나 강 세 군데 지점에서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다.

공병대 멕 워커들이 본국에서 제작해 온 철제 부품들을 조립해 다리 건설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건너편 아우로라 연합군 마나포 부대에서 거대한 마나 진동 화살을 쉴 새 없이 발사했다.

슈슈슈슉!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철판을 뚫는 강력한 위력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동방군 멕 나이트들이 전신을 가리는 철제 방패를 세 겹으로 엮어 들고 작업하는 공병대 멕 워커들을 보호했지만, 운 나쁜 멕 워커는 마나 진동 화살에 얇은 철판이 관통당해 픽픽 쓰러졌다.

그럼에도 공병대 멕 워커 수백 대는 차근차근 다리 부품들을 조립해 나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다리는 점점 강 건너편으로 뻗어 갔다.

강 너머 땅은 적이 지키고 있어서 강 건너편 땅까지 다리로 완전히 잇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

강 건너까지 10여 미터가 남은 상태에서 오스카가 지휘하는 동방군 6군단 3전단이 마침내 움직였다.

아군 멕 나이트의 도하를 돕기 위해 동방군의 마나포들이 쉴 새 없이 마나 진동 화살을 적진에 발사했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슈-!

슈슈슈슈슈슈슈슈슈-!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을 허무하게 쏟아붓는 가운데 멕 나이트들이 공병대가 건설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쿵!

쿵쿵!

쿵쿵쿵쿵!

마나 진동 화살이 서로를 향해 빗발쳤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슈-!

슈슈슈슈슈슈슈슈슈-!

그렇게 라브나 공방전의 서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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