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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95화 (295/450)

295. 잘하고 있는 녀석을 계속 밀어준다

295. 잘하고 있는 녀석을 계속 밀어준다

바르나 왕국의 수도 라브나에서 시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모든 기체가 레오파드 스피드로 이루어진 특별 전단 4개 부대는 라브나 동쪽으로 이동했다.

적의 원군과 보급품을 끊고 언제든 적의 배후를 칠 수 있도록 페르보 제국과 라브나 사이를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아우로라 연합에서는 시가전에 투입되지 않은 예비대 4개 전단을 뒤로 빼 특별 전단을 상대하게 했으나 레오파드 스피드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특별 전단은 적의 규모가 더 클 때는 절대 싸워 주지 않았고, 적이 추격하면서 대열이 흐트러지거나 대열이 늘어지면 빠른 속도로 적의 허리를 끊고 포위하여 섬멸했다.

특별 전단을 추격하는 아우로라 연합군 멕 나이트 부대는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특별 전단을 추격하지 않고 특별 전단이 라브나 동쪽에서 공격해 들어와 아우로라 연합군의 배후를 치지 않도록 경계만 했다.

그런데 그때 동방군에 새로운 부대가 도착했다.

반란에 가담했던 툴롱 마법 연구소가 보름스 가문의 장원 깊숙한 땅에 공장을 세우고 만들어 낸 두 종류의 멕 나이트 가운데 하나인 경량 멕 로쿠스타로 이루어진 부대가 마침내 편성을 마치고 바다 건너 부르가스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훈련을 마친 뒤 가장 중요한 전장에 보내진 것이다.

로쿠스타 전단은 3개.

그중 하나를 루산의 1년 선배인 블란트 베른카슈가 지휘하고 있었다.

라이네 후작은 로쿠스타 전단을 이미 작전에 투입한 레오파드 스피드 전단과 마찬가지로 적의 후방인 라브나 동쪽에 투입했다.

그런데 블란트가 보기에는 딱히 공을 세울 만한 곳이 아니었다.

로쿠스타는 레오파드 스피드보다 키가 작고 중량도 더 적은 경량 멕.

그 덕에 레오파드 스피드보다 더 험한 산도 빠르게 오를 수 있지만, 적의 일반형 기체와 정면으로 맞붙을 수 있는 멕 나이트가 아니었다.

정찰, 적의 전령 차단, 원거리 견제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주로 적을 감시하고 정찰하다가 간간이 전투에 투입되어서도 마나 진동 투창으로 적의 주의를 분산하고 퇴로를 끊으면 레오파드 스피드 전단이 흐트러진 적의 멕 나이트를 무찌르면서 전과를 쓸어 담았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근위대에서 근무하다 젊은 나이에 멕 나이트 100대를 지휘하는 전단장 - 정식 전단장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불렸다 - 으로 임명되어 큰 공을 세우리라는 포부를 안고 동방까지 달려온 그로서는 성에 안 찰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왜 하필 로쿠스타 부대를 맡겨 가지고······.”

레오파드 스피드 전단만 해도 전공을 세울 수 있는 부대인데, 로쿠스타 부대는 그야말로 죽어라 산을 넘고 들판을 달려 남 좋은 일만 하다 마는 부대였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군무부와 동방군 지휘부에 불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하들과 가장 많은 멕 나이트 -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 를 지휘하고 있는 지금, 불평만 할 수는 없었다.

로쿠스타 전단으로 어떻게든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로쿠스타의 장점을 활용해 공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가볍고 빠르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일반형 멕 나이트를 상대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부대를 공격하면 된다.

전쟁은 멕 나이트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정찰 부대, 경비 부대, 정비 부대, 수송 부대, 마나포 부대, 공병 부대 등 여러 부대의 많은 병력이 멕 나이트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했다.

라브나에 20개 넘는 멕 나이트 전단이 들어와 있는 아우로라 연합군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부대가 함께 와 있었다.

라브나에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 부대들은 멕 나이트 부대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라브라 동쪽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블란트는 동방군 정찰 부대를 통해 라브나 외곽 지형과 적 부대의 주둔 위치를 세세히 파악해 마침내 공격을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로쿠스타 부대가 산을 넘어 적의 멕 나이트 부대 주둔지 사이를 돌파해 정비 부대를 공격했다.

정비 부대는 멕 나이트 운용에 필수적인 부대라 멕 나이트가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고 아군 멕 나이트 부대들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적이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산을 넘어온 로쿠스타 부대에 순식간에 짓밟혔다.

경비를 서던 멕 나이트 세 대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마나 진동 투창을 꽂은 채 쓰러졌다.

로쿠스타가 덩치가 작고 가볍다 해도 일반형 멕 나이트와 비교할 때 그런 것이지 키가 6미터에 강철 골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멕 나이트가 쓰러지자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로쿠스타들은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멕 나이트 방패와 장갑판, 마나 진동 대검, 내장 부품, 윤활유, 마나 연료봉을 부수고 짓밟고 불태웠다.

로쿠스타가 떠난 자리는 폐허만 남았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산을 넘어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의 중요 시설을 파괴하고 수많은 멕 나이트 장비와 부품을 훼손한 일로 블란트는 물론 그의 부하들도 사기가 충천했다.

블란트는 자신감이 생겼다.

로쿠스타 부대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좋을지 확실히 깨달았다.

“멕 나이트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야.”

제아무리 멕 나이트 파일럿이라도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싸울 수는 없었다.

경비 병력이 철저히 호위하지 않으면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없다.

아군 병사들이 겁에 질려 탈영하기 시작하면 멕 나이트 파일럿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는 산을 넘어 멕 나이트 부대 사이를 돌파해 공병 부대, 수송 부대의 멕 워커들을 파괴하고 수레를 짓밟았다.

식량과 각종 보급품을 지키고 있던 창고를 무너뜨리고 불을 질렀다.

시가전 이후 마땅히 할 일이 없이 불안하게 대기하고 있는 보병 부대를 급습하여 막사를 짓밟았다.

그 끔찍한 일을 주저하는 부하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 살고 싶으면 달아나라! 달아나지 않으면 적대하겠다는 것이다! 적대하겠다는 적을 무찌르지 않으면 어찌 필센 제국의 군인이라 하겠는가!

아우로라 연합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로쿠스타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로 물든 천막만 남아 있었다.

시가전이 벌어진 이후 진격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답답함을 느끼던 라이네 후작이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지! 후방 교란은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 누구라고? 블란트 베른카슈? 뭐 하던 녀석이지?”

“제국 기사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줄곧 근위대에 근무하다 이번에 전장으로 차출된 기사인데, 이제 겨우 30대 초반입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수석 졸업에 근위대라, 역시 근본 있는 녀석이군.”

“하지만, 명령 범위를 벗어난 일을 자주 하고, 공적에 눈이 멀어 위험한 일을 자주 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멕 나이트로 보병을 짓밟는 일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다는 말도 있고 말입니다.”

참모의 말에 라이네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런 거는 겁쟁이들이 하는 소리지. 소꿉놀이도 아니고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적의 안전을 고려해 살살 해야 하겠나?”

“그런 건 아니지만······.”

“욕심이 있어야 좋은 군인이다. 시키는 대로만 할 거면 노예를 쓰지 왜 비싼 돈을 들여 교육하고 급료를 주고 대우를 해 주겠나? 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는 한 그 안에서 자기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해야지.”

“네, 사령관님!”

“내가 칭찬하더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라이네 후작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오스카 빈켈은 어떻게 하고 있나? 여전한가?”

“네. 전혀 사리지 않고 중앙을 돌파하며 왕궁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죄수 부대 사망자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파괴시킨 적 기체가 훨씬 더 많기에 이제 적들도 오스카의 부대를 보면 뒷걸음질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확실히 다른 부대에 비해 진군 속도가 빠릅니다.”

라이네 후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야심 있는 녀석이 강하지 않은가! 죄수 부대에서 생긴 결원은 보충해 줘. 노바에서 새로 편성해서 보내온 멕 나이트를 투입하란 말이야.”

“다른 부대로 교체하지 않고 빈켈 경에게 계속 맡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잘하고 있는 녀석을 왜 바꿔? 내 손으로 기세 떨어뜨릴 일 있어? 라브나 전투는 오스카 빈켈에게 맡겨.”

도하부터 왕궁 함락까지 오스카에게 맡긴다는 뜻이었다.

이미 전공이 엄청나기에 정말로 최연소 군단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파일럿들을 보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훈련만 마치고 실전을 겪어 보지 못한 애송이들을 선봉대로 보내면 공연히 선봉대의 공격력을 떨어뜨려 기세를 무디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애송이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애송이로 있을 거야? 실전을 겪어 봐야지. 그리고 신참을 지휘해 숙련된 파일럿으로 기르는 것도 지휘관의 능력이야.”

오스카의 능력을 점검해 본다는 의미도 되지만, 오스카를 확실히 키우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전투는 필센 제국의 황제까지 관심을 갖는, 대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그러나 이번 전투로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필센 제국은 아우로라 대륙을 완전히 정벌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앞으로도 많은 싸움이 남아 있었다.

라이네 후작은 그 목표를 위해 싹이 보이는 젊은 장군들을 키우려는 것이다.

“잘하고 있는 녀석들은 계속해서 밀어주고, 못하는 녀석들은 애꿎은 부하들 죽이지 못하게 곧바로 보고해. 후방에도 할 일은 많으니까.”

사령관의 단호한 명령에 참모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라브나 공방전은 무척 더디게 진행되었다.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멕 나이트가 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로 인해 모든 멕 나이트를 충분히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 전체를 고려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최선봉에 선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적과 힘겨운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루산은 이미 80여 명의 구 귀족파 기사들을 빼돌렸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수가 많았다.

그리고 빼돌린 숫자만큼의 결원으로 인해 죄수 부대 단독으로 빼돌리는 전투를 결행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때 사령부에서 충원 병력을 보내왔다.

실전 경험이 없는 젊은 파일럿들이었다.

폐허가 된 시가지와 파괴된 멕 나이트 잔해를 보고 오는 동안 그들은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잔뜩 긴장해 있었다.

- 애송이들! 쫄지 마! 뒈지기밖에 더 하겠어?

바이크가 후임을 반기는 선임인 양 골목 안에 서 있다가 대로를 통과하는 멕 나이트들의 등짝을 괜히 두드려 주며 소리쳤다.

“···이렇게 되었는데, 새로 온 파일럿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스카가 루산에게 물었다.

시가지에서 6군단 3전단이 세우고 있 전공은 거의 다 루산이 죄수 부대를 이끌고 만들어 낸 것이었다.

죄수 부대의 멕 나이트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구출 작전을 펼쳐 나갈지 물어보는 것이다.

“새로 배정된 파일럿들이 타고 온 신품 기체는 3전단 고참들에게 주고, 3전단 고참들이 타고 있는 기체는 죄수 부대 교체 파일럿들에게 넘기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죄수 부대 단독으로 적을 뚫고 구출 작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루산은 구출 작전 외에도 조언했다.

“그러면 새로 배속된 파일럿들은 멕 나이트가 없어지겠죠. 3전단 파일럿들의 서브 파일럿으로 삼아 이동, 전장 정리, 경비 등 비교적 쉬운 임무부터 맡기고 메인 파일럿들의 지도를 받으며 점차 전투에 투입하면 어떨까요? 3전단 파일럿들의 피로도도 줄이고, 신입 파일럿들의 생존률도 높아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라이네 후작의 생각과 다르게 3전단은 신입 파일럿들을 곧바로 전투에 투입하지 않았다.

죄수 부대에 멕 나이트가 없는 예비 파일럿들이 상당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멕 나이트를 주고 신입 파일럿들은 3전단 서브 파일럿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루산은 죄수 부대를 이끌고 단독으로 최선봉에서 길을 뚫으면서 혁혁한 전공 - 오스카에게 돌아가는 전공 - 을 세우고 구출 작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라브나 시 서쪽으로 진입한 동방군이 점차 동쪽으로 진군하는 동안 아우로라 연합군은 건물을 바리케이드 삼아 악착같이 막으며 적의 전진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나 동쪽 후방에서 동방군 특별 전단, 그중에서도 블란트의 기동 전단이 보병 부대와 보급 기지를 마구 부수고 다니는 바람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우로라 연합군 사령부는 후퇴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계속 싸우며 원군을 기다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치열하게 싸웠으나 마침내 후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점점 기울어 갔다.

그런데 오스카가 이끄는 선봉대가 적의 멕 나이트를 부수며 왕궁이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다가왔을 때 아우로라 연합군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굴다크 공작께서 원군을 이끌고 달려오고 계십니다! 17개 기동 전단을 이끌고 오고 계시니 흔들리지 말고 사수하라는 명령입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아우로라 연합군의 사기가 다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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