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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297화 (297/450)

297. 내가 있는 곳이 본진이다

297. 내가 있는 곳이 본진이다

그라데 평원.

듬성듬성 야산과 낮은 언덕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7천여 대의 멕 나이트가 충분히 어울릴 만한 너른 들판.

아우로라 연합군은 동쪽, 필센 제국 동방군은 서쪽에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적이 우리보다 멕 나이트가 많다지만 상당수는 경량 멕이다. 경량 멕을 제외하면 병력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굴다크 공작이 사기를 올리기 위해 동방군의 단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부각시켰다.

“계속된 전투로 파일럿의 피로도가 매우 높다. 툭 치면 쓰러질지도 모르지.”

지휘관들의 긴장을 풀기 위해 과장을 해 보았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툭 치면 쓰러질지도 모르는 적에게 패하여 라브나를 빼앗기고 여기까지 달아난 사람들이 바로 아우로라 연합군 파일럿들이니까.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 약간 당황했으나 굴다크 공작은 티를 내지 않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엇보다 적은 우리의 돌진형 멕 나이트를 맞상대할 돌진형 멕 나이트가 없다. 아우로라 연합의 드넓은 평원에서 대회전을 치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죽고 나서 깨달을 것이다.”

장군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멕 나이트 수에서 1천여 대 밀리더라도 그중 상당수가 경량 멕이 차지하고 있었고, 돌진형 멕 나이트를 앞세워 적의 진형을 무너뜨린 뒤에 공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의 장점을 살려 적을 짓밟고 여세를 몰아 부르가스까지 점령할 것이다!”

“네, 사령관님!”

한편 동방군 사령부에서도 아우로라 연합군의 돌진형 멕 나이트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었다.

멕 나이트가 적보다 많다지만, 일정한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멕 나이트 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격돌의 순간 돌진형 멕 나이트에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참모들은 돌진형 멕 나이트를 사전에 저지할 방법은 없는지, 돌진의 충격을 흡수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없는지, 아군을 들이받은 적의 돌진형 멕 나이트를 최대한 빠르게 처치할 방법은 없는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런 뒤 마침내 최종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아우로라 연합군은 돌진형 멕 나이트 골드 라이노 100대를 앞세우고 그 뒤에 16개 기동 전단이 뒤를 받쳤다.

골드 라이노의 돌격과 동시에 1,600대의 멕 나이트로 동방군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간명한 작전이었다.

나머지 병력은 예비대로 두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는 동방군은 전열에 돌진형 멕 나이트를 저지할 방패 부대를 세우고 그 뒤에 800문에 달하는 마나포를 배치했다.

처음에는 마나포를 맨 앞에 세워 적의 돌진형 멕 나이트에 집중 사격을 가해 쓰러뜨리는 방법도 생각해 봤으나 워낙 몸체가 두꺼워 쓰러지지 온몸에 마나 진동 화살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폐기했다.

괜히 아까운 마나포와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을 낭비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의 돌진형 멕 나이트는 맨 앞에 선 방패 부대가 저지하고, 돌진형 멕 나이트 뒤에 따라오는 적의 일반형 멕 나이트를 향해 화살비를 퍼붓기로 하고 2선에 마나포를 배치한 것이다.

그런데 핵심은 이것이 아니었다.

전열에 배치한 방패 부대는 일반형 멕 나이트 전단 10개.

나머지 일반형 멕 나이트 전단은 진형의 좌우에 배치해 달려오는 적을 좌우에서 감싸도록 한 것이다.

화살 비를 맞으며 돌진형 기체 뒤를 따라 달려온 적의 주력 부대를 좌우에서 공격하려는 계획이었다.

특별 전단에는 더욱 특별한 명령이 내려졌다.

<전투가 최고조에 달할 때 적의 지휘부를 공격해 적의 예비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 놓거나 본진 지휘부를 제거하라.>

특별 전단의 멕 나이트들은 일반형 멕 나이트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중 레오파드 스피드는 적 멕 나이트와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엔진을 장착한 일반형 기체였기에 가능한 명령이었다.

결국 동방군은 적의 본대와 본진을 동시에 궤멸시키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한편 라브나 공방전에서 선봉대를 맡았던 부대는 예비대로 남겨 두었다.

이번 전투로 적을 짓밟아 지금까지의 모든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굴다크 공작.

이번 전투에서 적을 포위, 섬멸하여 페르보 제국에 무혈입성하겠다는 라이네 후작.

그리고 개개인의 의지로 살아남기 어려운 이 대규모 전투에서 어떻게 하면 구귀족파 기사들을 지켜 낼 수 있는지 고심하는 루산과 로쿠스타 전단을 이끌고 적의 사령관을 잡아 최고의 공을 세우고야 말겠다는 블란트.

모두가 최고의 긴장감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애를 쓰는 가운데 그라데 평원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공격 개시!]

굴다크 공작의 명령에 골드 라이노 100대가 평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코뿔소와 같은 육중하고 단단한 몸, 높은 출력으로 결코 일반형 기체에 뒤떨어지지 않는 속도.

이 묵직하고 단단하고 빠른 기체를 조종하기 위해 선별된 뛰어난 실력의 파일럿들.

이 골드 라이노 100대는 굴다크 공작이 자신의 패배를 설욕하고 페르보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털어 아우로라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체를 모아 준비한 것이었다.

아우로라 대륙 특유의 드넓은 평원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필승 카드!

- 뿌우우우우우!

- 뿌우우우우우!

일단 소리로 압도하려는 듯 골드 라이노 백 대가 외부 확성기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뿔 나팔 소리를 내며 돌진하자 대열을 유지한 채 그 뒤를 따라가던 일반형 멕 나이트들도 외부 확성기를 열어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 우아아아아아!

- 우아아아아아!

- 우아아아아아!

1,600대의 멕 나이트가 일제히 지르는 함성에 대지가 흔들렸다.

동방군 파일럿들은 두꺼운 금속 재질의 멕 나이트 안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그 소리로 인한 진동이 몸을 흔드는 것 같았다.

압도적인 병력과 실력 앞에서 그런 함성은 두려움을 잊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이네 후작도 아우로라 연합군 파일럿들이 일제히 외치는 함성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기세에서 지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 군의 기세를 보여라! 함성 질러!”

[일제히 함성 질러!]

- 오오오오오오오!

- 오오오오오오오!

- 오오오오오오오!

동방군 파일럿들의 함성에 드넓은 들판의 초목이 흔들렸다.

양군 파일럿들의 함성은 마치 거대 괴수들이 격돌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골드 라이노가 최고 속도로 돌진해 왔다.

[충격에 대비해! 앞에 선 동료의 등을 받쳐라!]

통신기에서 흘러나온 지휘관의 명령이 귀를 때렸다.

정면에서 그 육중한 몸체를 막아야 하는 파일럿은 동료들이 좌우에서 받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눈을 찔끔했다.

쾅!

강렬한 충돌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방패를 들고 밀착해 있던 동방군 멕 나이트들이 부챗살 모양으로 우르르 넘어갔다.

충돌의 충격이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것이다.

뒤로 6열까지 충격을 전달한 골드 라이노의 돌진은 불행히도 끝이 아니었다.

최초의 충돌로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지만, 몇 배가 강력한 엔진 출력으로 계속 밀고 나간 것이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강력한 돌진의 충격에 놀란 동방군 파일럿들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막아라!]

동방군 멕 나이트들이 골드 라이노의 전진을 막기 위해 방패로 앞 기체의 등을 대고 버텼다.

그러나 충돌 이후 쓰러지지 않은 기체들도 대열이 살짝 흐트러지면서 정확한 힘의 전달이 되지 않아 뒤로 쭉쭉 밀렸다.

무시무시한 돌파력이었다.

게다가 골드 라이노는 몸으로 돌진만 하는 기체가 아니었다.

뛰어난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돌진형 기체가 강한 힘으로 두꺼운 방패를 휘두르면 동방군 기체가 허수아비처럼 날아가 쓰러지고 폭이 네 배는 족히 되는 광폭검을 강하게 휘두르면 방패가 쩍쩍 갈라졌다.

“사령관님!”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전장을 내려다보던 참모들이 골드 라이노의 돌파력에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놀라기는 라이네 후작도 마찬가지였지만, 최고 지휘관은 티를 내서는 안 된다.

“호들갑 떨지 마라! 애초에 감안하고 세운 작전이 아니더냐!”

그의 호통에 참모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적의 돌진형 기체를 저지한 것으로 전열은 임무를 다한 것이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골드 라이노는 맨 앞의 저지선을 완전히 뚫지 못했다.

그리고 전열이 크게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충돌로 인해 멕 나이트가 완전히 부서지거나 파일럿이 크게 다친 것은 아니다.

맨 처음 쓰러졌던 기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골드 라이노의 뒤를 따라오던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거나 아군 진형을 헤집고 있는 골드 라이노를 포위했다.

한편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은 골드 라이노가 헤집은 적 진형이 수습되기 전에 쓸어버리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라!]

쿵쿵쿵쿵!

1,600여 대의 멕 나이트가 질주하자 땅이 흔들렸다.

골드 라이노의 돌진에 흐트러졌다 다시 일어나 전열을 정비하던 동방군 멕 나이트 파일럿들은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 방패를 붙이고 충돌에 대비했다.

바로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살들이 쉼 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슈슈슈-!

슈슈슈슈슈슈슈-!

슈슈슈슈슈슈슈-!

800대의 마나포가 아군 머리 위를 넘어 적의 주력 부대를 향해 마나 진동 화살을 쉼 없이 발사했다.

아우로라 연합 측에서도 미리 예상한 공격이라 철제 방패를 두 겹, 세 겹으로 엮어 머리와 몸통을 가리며 달려갔지만, 계속해서 내리꽂히는 마나 진동 화살은 방패를 쪼개고 몸에 틀어박히거나 방패로 미처 가리지 못한 하체에 푹푹 박혔다.

운이 없게 동력 전달 계통을 맞은 멕 나이트들이 쓰러지고 관절이 관통 당한 멕 나이트들이 절룩거렸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마나 진동 화살을 퍼부은 마나포는 아우로라 연합 주력 병력이 동방군 전열에 거의 도착하자 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부대가 움직였다.

“지금이다! 적의 좌우를 공격하라!”

좌우 각각 1천 대의 멕 나이트들이 몸에 마나 진동 화살을 꽂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군 멕 나이트의 좌우를 에워싸기 위해 이동했다.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굴다크 공작이 지시를 내렸다.

[골드 라이노의 돌파력이 남아 있을 때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예비대는 적의 좌익을, 굴다크 군은 적의 우익을 박살낸다! 가라!]

굴다크 공작령에서 모두 긁어모아 온 병력까지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주군! 예비대와 친위대 없이 모두 전장에 내보내면 본진은 어떻게 합니까? 주군을 지킬 병력이 없습니다! 적의 경량 멕 전단이 호시탐탐 우리 배후를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굴다크 공작은 이미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본진이다! 내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군을 지킬 것이요 아군이 나를 지킬 것이다. 또한 적의 경량 멕은 감히 피아가 뒤엉켜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뛰어들지 못할 것이다!]

굴다크 공작은 부하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통신기를 개방하고 외쳤다.

[이 전투는 아우로라 연합과 페르보 제국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나와 함께 모두 죽을 각오로 싸우라!]

- 와아아아아아!

- 와아아아아아!

- 와아아아아아!

가장 먼저 적진에 뛰어든 골드 라이노, 마나 진동 화살을 꽂은 채 적과 맞붙은 헤비 스틸, 본진에 남아 있는 예비대와 굴다크 친위대 멕 나이트, 아우로라 연합의 모든 멕 나이트 파일럿들이 함성을 질렀다.

[가자!]

새로 인수한 블랙 드래곤 한 대를 포함하여 총 세 대의 블랙 드래곤이 수백 대의 멕 나이트를 이끌고 아군의 옆구리를 공격하려는 적의 우익을 요격하기 위해 달려갔다.

적의 좌익에는 라브나에서 후퇴한 멕 나이트 수백 대가 설욕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갔다.

그라데 평원 전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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