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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02화 (302/450)

302. 죽었소

302. 죽었소

드넓은 그라데 평원.

공병대와 수송대 멕 워커들이 수천 대의 멕 나이트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리만 하면 당장 가동할 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야전 정비소로 운반했고, 야전 정비소에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이 큰 것들은 후순위로 미루었다.

이것들은 차차 본국으로 운반해 분해 재조립 과정을 거쳐 재생될 것이다.

이렇듯 전장 정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오스카는 사령관의 호출을 받았다.

“부르셨습니까, 사령관님!”

사령부 천막 안에서 참모들과 지도를 보고 의논하던 라이네 후작이 반갑게 오스카를 맞이했다.

“오! 빈켈 경! 이리 와서 앉아.”

“감사합니다.”

라이네 후작은 빙빙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아군 피해도 상당하다. 그래서 통폐합이 불가피하지.”

“네.”

“레오파드 스피드 특별 전단, 레오파드 슈퍼 기체들, 6군단, 5군단의 잔존 병력을 합쳐서 6군단을 5개 전단으로 재편할 거야.”

5개 전단이면 1개 군단급 이상의 병력이었다.

“자네를 6군단장에 임명한다. 선두에서 페르보 제국까지 가는 길을 뚫도록!”

“네? 제가 군단장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싫은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6군단장, 5군단장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지 않았나? 멕 나이트 손실이 많아 통폐합이 불가피하다고? 통폐합한 군단에 군단장을 여러 명 앉힐 수는 없지.”

5군단장, 6군단장, 그리고 이 두 군단에 속한 여섯 명의 전단장들 가운데 오스카를 통폐합한 6군단장에 앉힌다.

전투 수행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본 것이다.

잘하고 있는 녀석을 계속해서 밀어준다는 그의 지휘 스타일이 반영된 인사였다.

“본국에서 새로운 병력이 오면 다시 편성하면 되지. 그리고 바르나 왕국 치안을 책임질 지휘관도 필요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죄수 부대는 어떻게 됩니까?”

“죄수 부대?”

“네.”

라이네 후작이 손을 뻗자 부관이 재빨리 죄수 부대 서류를 넘겨 주었다.

“남아 있는 멕 나이트가 40대, 파일럿은 52명. 흐음······!”

도우나 강을 넘기 전만 해도 죄수 부대 파일럿은 200명 정도 되었다.

멕 나이트 전투에서 파일럿이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지만, 멕이 부서져도 파일럿은 살아남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엄청난 사망률에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라이네 후작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오스카가 말했다.

“이왕 선두에서 길을 뚫는 군단으로 초과 편성된다면 죄수 부대까지 제게 주십시오.”

“응?”

“그동안 죄수 부대 덕에 많은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전에 편하게 투입할 수 있다는 부대가 있다는 것은 지휘관의 부담을 크게 덜어 준다.

바르나 왕국에서의 대규모 패전으로 인해 페르보 제국의 병력과 사기가 크게 꺾였다 해도 아직 적지 않은 병력이 남아 있을 터, 죄수 부대를 활용할 수 있다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가 훨씬 편하다는 뜻이었다.

‘이놈, 생각보다 지독한 놈이구나!’

라이네 후작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작전 성공을 위해서라면 죄수 부대 정도는 가차 없이 소모한다.

오스카가 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 오스카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만, 페르보 제국 국경을 성공적으로 돌파한다면 죄수 부대를 후방으로 완전히 돌리고 황제 폐하께 사면을 요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음?”

“목숨을 바쳐 이 정도나 공을 세웠다면 지은 죄를 충분히 씻을 만하지 않을까요?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흐음······.”

반역자들의 사면을 요구하다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분주히 맡은 일을 해 나가던 참모들이 얼어붙은 듯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후작이 입을 열었다.

“알았다. 폐하께 말씀을 올리도록 하지. 단,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모른다.”

“당연합니다.”

“서둘러 재편을 끝내고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하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경례를 하고 천막을 나가는 오스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이네 후작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이군!’

라이네 후작은 오스카 다음으로도 새로이 재편한 부대장들을 불러 명령을 내리고 작전 계획과 점령지 치안 유지 계획, 보급 계획을 수립하느라 바빴다.

“아 참! 빈켈 경에게 그걸 묻는 걸 깜박했군!”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6군단 3전단 파일럿 있잖은가? 적의 주력 부대를 쩍쩍 가르고 지나가던 녀석. 그 녀석이 누구인지를 묻는다는 걸 깜박했어.”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참모 하나가 서둘러 천막을 나갔다.

한편, 지휘관들을 불러 재편 작업을 서두르던 오스카에게 기터 남작이 다가왔다.

오스카는 어찌 보면 벼락출세를 한 유형이고 남작 가문의 삼남이라 작위도 없었다. 반면 기터 남작은 동방군에서 오랫동안 복무하며 많은 공을 세웠고 에이스 파일럿으로 명성도 제법 높았으며 비록 이름 없는 남작 가문에 불과할지라도 작위도 있었지만, 계급은 아직 전대장이었다.

전투시에는 가차 없이 명령을 내릴지라도 전투를 치르지 않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오?”

오스카가 물었다.

“혹시 그 파일럿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파일럿이라니, 누굴 말하는 것이오?”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를 타고 선두에서 전장을 누비던······.”

“왜 찾는 겁니까?”

“전투가 끝나면 인사를 나누기로 해서······.”

“죽었소.”

“네?”

“죽었다고 했소.”

“그럴 리가······!”

“전투 막바지에 아군이 던진 투창이 안타깝게 조종석을 관통했소.”

기터 남작은 그 순간이 떠올랐다.

비겁한 로쿠스타 부대가 다 이긴 싸움에서 공을 가로채느라 블랙 드래곤을 향해 투창을 마구 던져 그 옆에 있던 자신 또한 타고 있던 레오파드의 장갑이 뚫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대단한 실력의 파일럿이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

“나도 안타깝소. 동방군으로 전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실력 좋은 파일럿을 그렇게 잃어서 말입니다.”

“아!”

“우리는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할 것이오. 가서 준비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기터 남작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갔다.

오스카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북서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라데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처리된 레오파드 슈퍼 스피드 파일럿을 위해 빌었다.

‘보름스 자작님, 남은 일은 잘 처리할 테니 그곳에서 건승하시길.’

***

루산은 대형 거미를 타고 부르사 왕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대형 거미로 실어 나른 구귀족파 파일럿은 모두 90명이 넘었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의 선봉을 담당한 탓에 사망한 파일럿이 무려 50여 명이나 되었다.

남은 50여 명은 오스카에게 부탁했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남방군 출신 파일럿이나 구출된 구귀족파 기사들은 이 숫자도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루산을 위로했지만,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단지 구출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만이 아니라 전쟁에 대한 피로와 허무가 갑자기 산사태처럼 그를 덮쳐 부르사 왕국의 통일 전쟁에 대해서도 전혀 의욕이 없었다.

루산이 동방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왕의 조카 므라드의 군대는 주변 지역을 착착 점령해 나갔고 그 속도가 더욱 빨라져 무려 부르사 왕국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므라드 군은 하나로 뭉쳐 있는 반면 나머지 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므라드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나머지 세력들도 마침내 국왕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많은 멕 나이트를 앞세워 주변 부족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기존의 풍습과 다르게 족장과 장로들만 죽이는 최소한의 보복으로 통합 절차를 마무리하며 단기간에 크게 세력을 불린 므라드의 군대가 처음으로 강력한 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므라드와 통일군 수뇌부들이 가프 용병단을 찾고 루산을 찾았지만, 그는 시큰둥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굴다크 공작이 등 뒤에서 날아온 마나 진동 투창에 맞고 쓰러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 투창 하나로 대등하게 맞서고 있던 양군의 균형이 허물어지고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고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투창이 아니더라도, 굳이 수많은 목숨이 허무하게 지는 전쟁을 대체 왜 해야 하는가?

내 원수도 아닌데.

굳이 답변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했다.

그래서 므라드가 불러도 부상을 핑계로 용병단을 지휘하고 있는 미켈을 대신 보냈다.

므라드의 통일군과 국왕 측 연합 군대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마치 꿈결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시에나가 찾아왔다.

바덴을 만난 뒤 배를 타고 부르사 왕국으로 들어와 가프 용병단을 찾아온 시에나는, 여자의 몸으로 치안이 엉망인 이 나라를 헤매다 온갖 험한 일을 겪었음에도 동료들을 만난 기쁨에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루산에게 조용히 놀랄 만한 소식을 알려 주었다.

“바덴 사장님이, 임신했어요.”

“뭐?”

“대장님의 아이를 가졌다고요!”

“······!”

시에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해 한이 된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그 일을 알게 된 과정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루산은 정신이 확 들었다.

전쟁의 의미 같은 답 없는 물음에 골몰하던 정신에 누군가가 얼음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피로감, 무력감, 허무감이 썰물처럼 멀어져 갔다.

서둘러 이 전쟁을 끝내고, 서둘러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고, 서둘러 원수를 갚고, 서둘러 바덴과 아이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맙다, 시에나!”

“잉? 뭐가요?”

“그냥 다.”

“치!”

시에나는 괜히 토라진 척하며 마음속 첫사랑에 대한 서운함을 대신했다.

루산은 곧바로 므라드를 찾아갔다.

므라드와 통일군 지휘부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부상을 당해 거동하기 어렵다 하지 않았는가?”

“제 몸이 대수겠습니까? 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지요.”

“호! 마치 빨리 끝낼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

“있습니다.”

므라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뭔가?”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부르사 국왕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군요. 통일 전쟁이 끝난 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므라드가 루산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쳐다보자 루산이 더욱 구체적으로 말했다.

“곧바로 국왕을 제거할 것인지, 아니면 곁에서 모시고 실권을 장악하다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는 모양새를 취할 것인지를 여쭙는 겁니다.”

그 무례하고 직설적인 표현에 지휘관들이 깜짝 놀랐다.

“감히 그런 무엄한 언사를······!”

그러나 므라드가 손을 들어 부하들을 제지하고 루산에게 물었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전자가 쉽지만, 부르사 왕국과 전하를 위해서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언제든 국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기 때문이다.

“후자로 가시지요. 부르사 통합을 위해서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다!”

므라드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부하들 앞에서 루산의 말을 곧바로 수용함으로써 국왕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실권을 장악한 뒤 왕위를 물려받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제 방법을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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