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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05화 (305/450)

305. 죽은 걸 다시 살리는 거예요

305. 죽은 걸 다시 살리는 거예요

12월의 날씨는 무척 차가웠지만, 거리는 승전의 열기로 후끈했다.

그중에서도 에를랑겐 쇼핑 거리와 그 주변은 넘치는 인파로 인해 마차와 자동차가 아예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사장님, 더 가기 어렵겠습니다.”

“쇼핑 거리 외곽에 주차장을 여러 군데에 더 크게 확보하고 휴일에는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방안을 시와 상의해 보라고 하세요.”

소피아가 바덴의 말을 수첩에 메모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우리는 여기서 내려 걸어가기로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사람이 너무 많고, 날씨가 추운데요?”

바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클라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바덴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적당히 걷는 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가요, 우리.”

바덴은 두툼한 외투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배가 상당히 나와 있었다.

바덴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자 클라크가 반대쪽에서 얼른 내려 바덴 옆으로 이동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덴을 밀치고 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비서 소피아가 운전기사에게 기다릴 곳을 일러주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클라크와 소피아는 양옆에서 최대한 바덴을 보호하며 길을 뚫고 에를랑겐 백화점으로 향했다.

“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클라크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홍보가 이렇게나 중요한 거예요. 그다음은 만족감과 입소문인데, 재개장 전에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손님이 계속 늘고 있죠. 전승 기념 할인 기간을 더 늘려야겠어요.”

“그러면 너무 손해 아닌가요?”

클라크도 신문에 실려 있는 홍보 내용을 봤다.

대폭 할인에 수입금 전액 기부!

팔면 팔수록 손해인 것이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사람을 불러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끌어와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잘되는 집에 가려고 하지 안되는 집에는 안 가요. 오랜 기간 안되던 집을 잘되는 집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건데 아끼면 곤란하죠.”

클라크는 바덴을 보호하는 가운데에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들은 강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처럼 사람의 물결에 휩쓸려 백화점까지 갔다.

백화점 안에도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 비싸서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쇼핑 거리에 온 김에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구경이나 하려고 들어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구매하기 위해 옷을 입어보거나 액세서리를 착용해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반달 그룹 제품으로만 고급스럽게 진열해 놓은 식품관에도 사람이 가득했는데, 백화점 내 다른 물건들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고 있었다.

“에를랑겐과 손을 잡음으로써 우리는 이미지를 구입한 것이고, 사람들에게 욕망을 파는 거예요.”

알 듯 말 듯한 말이었지만 클라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에 새겨 놓았다.

용감한 나라 장난감 매장도 무척 컸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구경하고 있었다.

작은 레오파드 마스코트 인형 - 차별화를 위해 간편식 상자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 시리즈부터 정교하고 커다란 레오파드 모형, 변경 괴수 시리즈, 멕 나이트 시리즈, 사냥 시리즈 등등 그동안 많은 시리즈가 출시되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레오파드 트레이너 한 대를 이곳에 가져와 상체만 움직일 수 있게 전시해 볼까도 생각 중이에요.”

“와! 그러면 사람들이 타 보려고 줄을 서겠는데요?”

“그렇겠죠? 브레이브 랜드 홍보도 되고, 어쩌면 레오파드 트레이너를 구입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그들은 잠시 쉬기 위해 백화점 내 카페로 향했다.

첫 번째 카페.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벽에는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고, 한쪽에서 악사들이 고전적이고 은은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카페의 이름은 에를랑겐 노블.

다섯 종류의 차와 쿠키들을 팔고 있었는데 보통 사람들이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그럼에도 세련된 차림의 귀부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회원들에게 따로 연락을 돌렸어요. 에를랑겐 백화점 재개장 소식과 카페 초대장을 함께 보냈죠. 대상에 따라 홍보 방법이 달라야 해요.”

바덴이 에를랑겐 노블 앞을 서둘러 지나면서 말했다.

아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걱정해서였다.

그러나 사람이 워낙 많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두 번째 카페 에를랑겐 유스.

이곳 역시 실내 장식에 크게 신경을 썼지만 에를랑겐 유스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정적인 분위기가 강한 에를랑겐 노블과 달리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도 역동적이고 따뜻했다.

음악도 템포가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가격이, 일반 카페에 비하면 다소 비쌌지만, 에를랑겐 노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밖으로 줄을 길게 설 정도였다.

바덴 일행은 기꺼이 줄을 섰다.

“이건 좀 고민을 해 봐야겠네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소피아가 바덴의 의도를 얼른 알아차리고 메모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리가 나서 앉았다.

옆자리와 거리가 가까워 조금 불편한 감이 있었지만, 북적거리는 느낌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덴이 자리에 앉아 가빴던 숨을 몰아쉬고는 클라크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합격을 축하해요.”

클라크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뭘요. 수석, 차석도 아니고 겨우 붙은걸요.”

“그래도 혼자 공부해서 노바 대학 들어가기가 쉽나요? 수석, 차석 합격보다 훨씬 대단한 거예요.”

소피아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들이 여기에 온 것은 클라크가 노바 대학 역사학과에 합격한 기념으로 바덴이 선물을 해 주고 싶다고 해서였다.

겸사겸사 에를랑겐 쇼핑 거리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고요?”

“네.”

차가 나오자 바덴은 한 모금 살짝 마신 뒤 내려놓았다.

향긋한 기운이 입 안에 감돌자 기분이 좋아지고 말투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집사님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아빠, 엄마, 동생들이 서운해할 거예요.”

“······.”

“물론 집사님 마음도 알아요. 폐를 끼치는 것 같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려 보고 싶고 그럴 거예요. 근데 우리 가족은 폐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

“집사님은 크게 걱정을 끼친 적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돼서 못 보내겠어요.”

바덴이 엄한 누나처럼 말했다.

“그건 이미 기사님과 약속을 했어요. 걱정 안 끼칠 거예요.”

“사람은 의지만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에요. 환경이 중요해요. 기숙사 환경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생활이 흐트러지기 쉽다는 거예요.”

“······.”

“지금 새로 집을 짓고 있는 건 알죠?”

“네.”

바덴은 부모님 빵집 근처에 부지를 마련해 집을 더 크게 짓고 있었다.

“방도 혼자 쓸 수 있어요.”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도 중요해요.”

“······.”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공부에 열중하거나 뜨겁게 토론하다 밖에서 날을 새울 수도 있어요. 대학생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집에서 함께 살면서 하세요. 대학 졸업하고 나면 원하는 대로 해도 좋아요. 그때에도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싶으면 살아도 되고 독립해 혼자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요. 그건 약속할게요.”

“······.”

“그리고 방학 때나 시간이 날 때는 일을 하는 게 좋겠어요.”

“무슨 일을······?”

“대학생이 되면 돈 쓸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집사님이 모아 놓은 돈이 있다고 해도 그걸 써 버리는 건 아깝잖아요. 직접 벌어서 쓰도록 해요.”

“그건 그렇게 할게요.”

“방학 때는 비서실에서 일하는 게 좋겠어요. 무슨 사업을 하는지, 어떤 업무가 진행되는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소피아가 맡아요. 상전이 아니라 말단 직원으로 들어오는 거니까 일을 제대로 가르쳐요.”

“네, 사장님.”

“학기 중에 시간이 날 때는 저의 개인 비서로 일하며 운전도 하고 아이디어를 내 보는 거예요. 어렵지 않죠?”

“···네.”

소피아는 물론 클라크도 바덴의 뜻을 이해했다.

네가 먹고 쓰는 것은 네가 벌어서 알아서 하라는 말이 아니라 회사 업무 전반을 파악하라는 뜻이었다.

루산이 클라크에게 맡기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변경에서 하고 있는 일도 워낙 규모가 커서 바덴의 사업을 모두 신경 쓰기 어려웠다.

바덴이 정기 보고도 하고 중요한 사안은 그때그때 보고하기는 하지만, 옆에서 궁금한 것을 물을 때 바로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는 집사님이 반드시 집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절 보세요. 변호사가 되고 싶어 법대에 갔고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전혀 후회하지 않고 만족스러워요. 집사님도 역사가 좋아 역사학과에 갔지만, 나중에는 다른 일이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기사님은 집사님에게 가문의 방대한 재산과 업무 관리를 맡기려 하시지만, 역사가 좋으면 역사학자가 될 수도 있고, 사업에 소질이 있으면 회사를 경영할 수도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을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 배울 기회라고 생각하고 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모든 일이 재밌지 않겠어요?”

클라크는 자신의 장래를 자기 스스로보다 더 생각해 주는 바덴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클라크의 대답에 바덴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피아, 이번 겨울에 운전 비서에게 집사님 운전 교육 시키라고 하세요. 운전을 할 줄 알면 운신의 폭이 넓어져요.”

“네, 사장님.”

“그리고 에를랑겐 측에 대할인 판매를 다음 휴일까지 연장한다고 전하세요. 재생 프로젝트 팀에도 알려서 홍보 진행하고.”

“다음 휴일까지면 너무 길지 않을까요, 사장님? 관련 부서 사람들이 3일에 맞춰 준비했을 텐데요.”

“재생이 뭔가요? 죽은 걸 다시 살리는 거예요. 이 어려운 걸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군이 대승을 거둬 모두가 환호하는 이 기간에 완전히, 이전보다 더 찬란하게 살릴 거예요. 다들 목숨 걸고 하라고 하세요.”

클라크는 단호하게 결정하는 바덴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자, 그럼 쉬었으니 가 볼까요?”

바덴이 일어나자 소피아와 클라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앉았던 테이블 옆에서도 두 사람이 일어나 바덴 일행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바덴은 합격 선물로 옷과 신발, 가방에 이르기까지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을 클라크에게 사 주었다.

중절모를 쓴 신사 두 사람은 그 모습까지 철저히 눈에 담았다.

워낙 사람이 많아 바덴 일행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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