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잘 오셨어요
309. 잘 오셨어요
레오파드 파워는 단검이 답이다!
루산이 말을 이해한 가라로슈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들을 물었다.
“그렇다면 대회전에서는 어떤 멕 나이트든 모두 단검을 드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그렇죠. 밀착된 상태에서 사용하기에는 대검보다 단검이 더 나을 테니까요.”
“그럼 아이언 워리어나 헤비 스틸이 적의 방진을 구성하고 있고 똑같이 단검을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언 워리어 중량이 1이면 레오파드 파워는 0.8이다.
헤비 스틸은 아이언 워리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살짝 더 나간다.
“무기가 같으면 결국 중량 차이로 밀리지 않겠습니까?”
“중량 차이로 밀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단검을 드는 이유는 밀착된 공간에서 움직일 여유를 확보하기 위함이죠. 민첩성이 발휘될 여지가 커진다는 뜻입니다. 엔진 출력이 같고 똑같이 단검을 들었는데 중량에서 차이가 난다? 중량 차이라는 것은 결국 몸집의 차이입니다. 좁은 공간 활용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파일럿 실력이 동일하다면 아이언 워리어나 헤비 스틸 쪽이 질 것 같군요.”
육중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둔하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엔진 출력이 동일한데 더 무겁다면 가벼운 기체보다 움직임이 느릴 텐데, 서로 밀착된 좁은 공간에서는 더욱 움직일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대검과 큰 방패는 버려야 할까요?”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고르면 되죠. 오카수스 대륙에서는 여전히 대검을 들어도 됩니다. 아우로라 대륙에서도 대회전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전투에서는 대검과 대형 방패를 들어도 됩니다. 실력이 월등한 파일럿은 대회전 방진에서 빠져 대검을 들고 적을 공격하는 부대에 넣어도 되고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무기를 쓰면 된다는 뜻.
“가프 연구소에서 할 일은 단검과 소형 방패를 제작해 멕 나이트 부대 지휘관에게 선택권을 늘려주는 겁니다. 단검과 소형 방패 취지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 충분히 알아들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에도 제식 장비로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단검을 쓰는 게 더 전투력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검이라 해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검보다 짧다는 뜻이지 멕 워커 작업용 단검만큼 짧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 길이와 폭,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게 적합할지 연구할 필요가 있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레오파드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몇 년 동안 테스트를 했던 것처럼 최적의 단검과 최적의 소형 방패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테스트가 필요하다.
다만 기체 성능 테스트와 달리 이때는 회전 상황을 고려한 집단전 테스트에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루산이 덧붙여 말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수리 공장으로 들어오는 멕 나이트가 있습니다. 바르나 왕국에서 파손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 수천 대가 조만간 실려 올 테죠. 회전 상황에서 레오파드 파워에 최적의 단검, 최적의 방패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8구역에서 돕겠습니다.”
변경 8군단 파일럿들을 동원해 집단전 테스트를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아!”
루산은 미처 하지 않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부르사는 전쟁에서 패한 전사와 그 가족들을 다 죽이는 관습이 있는데, 이번에 므라드에게 요청해 그들을 빼왔습니다. 아라드 변경에는 파일럿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아라드 변경에 파일럿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피를 피로 씻는 보복의 악순환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여러 전쟁터에서 많은 적을 해치워 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 수가 제법 많습니다. 이번에 부르사 전사들이 사용하던 작은 원형 방패와 도끼를 가져왔는데, 그걸 연구해서 최적의 도끼와 방패를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도끼를 든 부르사 전사들의 파괴력은 엄청나거든요!”
“연구는 늘 즐거운 일이지요. 얼마나 많이 만들면 되겠습니까?”
“넉넉히 300벌 정도?”
“네?”
가라로슈는 또 한 번 놀랐다.
“부르사 전사들이 그렇게나 많습니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통일에 저항하는 부족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 것 같아서요.”
가라로슈는 루산이 부르사 전사들을 무장시켜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러나 이미 한 배를 탄 사이였다.
루산이 가프 마법 연구소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어긴 적이 없으니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루산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부탁했다.
“바르나 왕국에서 필센 제국군이 획득한 건 멕 나이트만이 아닙니다. 적의 지원 부대 멕 워커도 많이 획득했습니다.”
“그렇겠지요.”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전후 복구 사업에 투입되겠지만,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니 기약 없이 방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무부에 접촉해서 그것들을 들여올 수 있을까요? 당연히 무상은 아니고 레오파드로 대금을 치른다고 하면 군무부에서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전시에 획득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워커.
당장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 물건이었다.
저렴하게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을 레오파드와 교환해 준다면 관리 비용이 줄어 군무부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가프 마법 연구소에는 멕 워커 도입 사업을 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그것들이 아우로라 대륙에 남아 있게 되면 향후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제작한 멕 워커 판매량이 줄어들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기사님. 당장 추진하겠습니다.”
멕 워커.
아라드 변경 개발, 아라드 왕국 재건 프로젝트, 고슬라 그룹의 농업 기지 사업, 부르사 왕국 개발···, 필요한 곳이 끝도 없었다.
동방군이 전리품으로 확보한 아우로라 연합군 멕 워커를 가프 마법 연구소가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루산은 가라로슈의 멕 워커 도입 사업에 드는 비용을 자신이 대기로 했다.
어차피 아라드 변경을 제외하고는 고슬라 그룹과 피닉스 제철에서 부담하게 될 비용이었다.
전리품 멕 워커 도입 사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끝나자 가라로슈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루산에게 말했다.
“전투 거미를 보셔야죠, 기사님.”
전투 거미 프로젝트.
대형 거미에 각종 무기를 탑재하여 전투용 대형 거미를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봐야죠!”
“가시죠!”
루산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만만한 가라로슈의 뒤를 따라갔다.
***
루산은 대형 거미 구입을 가프 마법 연구소에 부탁했다. 구귀족파 기사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그에 따라 가라로슈는 변경의 마법 연구소들에 연락해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잠들어 있는 대형 거미를 구매하겠다고 타진했는데, 어쩌다 보니 총 12대나 구입하게 되었다.
그중 상태가 몹시 나쁜 5대는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분해 연구용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7대는 루산이 소유하기로 했다.
그 7대 가운데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은 수리 점검을 마친 뒤 루산이 구귀족파 기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져갔고, 상태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상당한 수리 작업이 필요한 4대는 가프 연구소에서 대형 거미에 대한 노하우를 쌓으면서 천천히 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2대는 전투 거미로 개조하기로 했던 것이다.
거대한 격납고.
짙은 녹색과 갈색이 뒤섞인 보호색으로 도색을 마친 대형 거미 두 대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반구형 덮개로 덮여 있던 기존 대형 거미와 다르게 전투 거미는 덮개가 없었다.
운전석이 있는 앞쪽에 유리창이 있었지만, 몸체 전부를 덮는 뚜껑은 없었다.
거대한 마나포를 탑재하고 있었기에 기존 대형 거미의 덮개를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반구형 덮개 대신 비를 막을 수 있도록 포장을 칠 수 있게 돼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운전석 위로 전방을 향해 뻗어 있는 마나포.
길이 7미터에 달하는 마나 진동 화살을 발사하는 무기라 포신이 무척 길었다.
“전투 거미 1호와 2호는 탑재한 마나포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가요? 겉으로 보기에는 모르겠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1호는 포신을 좌우로 틀 수 없습니다. 고각만 조절이 가능하지요. 반면 2호는 고각뿐 아니라 회전각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죠?”
“기존 대형 거미에 마나포를 탑재할 경우 반동을 제어하기가 무척 어렵더군요. 몸체가 흔들립니다. 거리가 멀수록 명중률이 떨어지죠.”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동 제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마나포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대전쟁에서 마나포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알고 보면 사실 수백 대의 마나포로 수백 대의 멕 나이트를 향해 고가의 마나 진동 화살을 마구 퍼부었기 때문이다.
결국 돈으로 빛을 봤다는 뜻.
사회 개혁 이후 필센 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이번 대전쟁에서도 마나포가 활약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대형 거미는 앞뒤로 길기 때문에 좌우로 더 잘 흔들립니다. 그래서 흔들림을 막고자 포신을 정면을 향하게 하고 회전할 수 없게 했죠. 고정 표적은 300미터까지 명중이 가능합니다.”
루산은 생각보다 위력적이지는 않았고 생각했다.
가격을 고려할 때 그렇다는 말이었다.
“2호는요?”
“2호는 마나포 폭발력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좌우 진동이 1호 전투 거미의 전후 진동 정도로 줄더군요. 그래서 포신을 옆으로 돌리며 사용할 수 있는데, 빠른 사격을 위해서는 포수의 숙련도가 필요하지요.”
“그렇겠군요. 그런데 기존 마나포는 멕 워커가 조작하지 않습니까? 포신을 돌리고 각을 조절하고 마나 진동 화살을 끼우고 하는 일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합니까?”
전투 거미에 탑재된 마나포를 발사하기 위해 멕 워커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쓸모없는 일을 한 셈이다.
대형 거미의 장점은 산악 지대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인데 멕 워커를 따라다니게 해서는 오히려 짐만 느는 것이다.
“파워 아머를 착용한 사수 두 명이 마나포 한 문을 조작하게 됩니다.”
“아! 그건 좋은 생각이군요!”
어쩐지 포신의 높이가 멕 워커로 조작하기에는 낮았다.
사람의 키에 맞춘 것이었다.
대형 거미의 무게 중심이 높아지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몸체 좌우에 발리스타 두 대씩, 총 네 대를 설치했습니다. 이 발리스타는 이번에 우리 연구소에서 자체 제작한 것인데요, 파워 아머를 착용하지 않고도 회전각과 고각 조절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카트리지에 화살을 충전해 놓으면 그때그때 화살을 시위에 걸지 않아도 자동으로 밀어 올려 격발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20발까지 발사가 가능하죠.”
“오!”
“멕 나이트에는 전혀 효과가 없지만, 중형 괴수까지는 사냥할 수 있을 겁니다.”
루산은 이 전투 거미를 괴수 사냥에 투입했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생각보다 몰이사냥에 유용할 것 같았다.
물론 전투 거미 가격과 무장에 드는 비용, 운용비를 고려할 때의 효율을 따져 봐야겠지만.
“멕 나이트를 상대한다고 할 때, 원거리 사격은 반동 제어 문제로 아직 어려움이 있으나 가까이 접근해 기습하고, 물러나면서 달려드는 적 멕 나이트를 계속 공격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라로슈의 말에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치고 빠지기를 하면 멕 나이트 전투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을 넘어 적 멕 나이트 진지에 도착해 기습 공격을 가하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전멸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상 속 장면일 뿐 실제로 테스트를 해 봐야 알 수 있었다.
이 전투 거미의 가장 큰 장점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산은 최대한 비밀을 유지한 채로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반달 호수 지역 인근에서는 대형 괴수는 물론이고 중소형 괴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멀리 가야 했다.
“이번에 노바에 다녀온 뒤에 본격적인 테스트를 해 보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우리 쪽 마법사들이 참관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직접 보시는 게 전투 거미 프로젝트를 위해서 더 좋을 것 같네요.”
루산은 가라로슈와 헤어진 뒤에도 대형 거미 활용 방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적합한 테스트 방식을 고민해 보았다.
노바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소규모 전투 거미 투입 작전, 대규모 전투 거미 투입 작전, 전투 거미 단독 작전, 멕 나이트 부대와의 협동 작전··· 온갖 상황을 고려해 머릿속 전투를 벌여 보았다.
무척 재미있었다.
상상은 자유, 그러다 노바 공략에까지 이어졌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 시절 수도 방위 훈련에 투입된 경험으로 노바의 지형과 방어 관문을 어떻게 돌파하고 황궁을 공격할지, 노바 함락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멕 나이트와 전투 거미가 필요할지 끊임없이 계산하며 머릿속 모의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열차가 노바 서쪽 관문을 지나자 그동안 떠올린 생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제 전투의 영역이 아니라 가정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미리 편지를 받은 바덴이 역에서 루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산이 바덴이 타고 있을 차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바덴이 차 문을 열고 나와 손을 흔들었다.
바덴은 배가 산처럼 나왔지만,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루산은 바덴에게 달려가 키스했다.
“왔어요!”
“잘 오셨어요!”
두 사람이 뒷자리에 타자 운전기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