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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11화 (311/450)

311. 제가 만나 볼게요

311. 제가 만나 볼게요

루산과 바덴은 대학로 노천카페 거리로 갔다.

날이 춥고 방학 기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그래도 카페 안은 제법 사람이 많았다.

두 사람은 가끔 가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클라크가 일어나 임산부인 바덴을 위해 의자를 빼 주었다.

“축하한다, 클라크.”

루산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클라크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렵사리 루산의 손을 마주 잡았다.

“기사님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무슨 내 덕분이야? 네가 잘한 거지. 앉자.”

“네.”

바덴은 여기 올 때마다 거의 항상 주문하던 콩 수프와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를 시키고 과일 통조림과 남부산 채소를 섞은 샐러드 - 반달 식품에서 유통하는 것들이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 와 생선 구이를 부탁했다.

루산과 클라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클라크가 물었다.

“이걸 다 드시려고요?”

바덴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기가 먹고 싶다고 하네요. 이렇게 식구가 다 모여서 기분이 좋은가 봐요.”

“아기가 이렇게 많이 먹으면 기사님이 많이 버셔야겠어요.”

“하하하, 그러게. 이제 좀 놀면서 지낼까 했는데, 가서 열심히 일해야겠네.”

클라크의 농담에 루산도 기분 좋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었다.

그들은 가게 안을 빠르게 훑어본 뒤 루산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발견하고는 루산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 앉았다.

그런 뒤 서로 상의를 하더니 종업원을 불러 간단한 식사와 차를 주문했다.

그들이 들어올 때 잠깐 힐끗 쳐다본 루산은 이내 신경을 끄고 바덴, 클라크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자꾸 자신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루산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두 명의 신사는 얼른 시선을 돌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척하고, 루산이 바덴과 클라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다시 관찰했다.

오랜 수련과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감각과 눈썰미로 루산은 저들이 평범한 손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를 따라붙었을 리는 없다.’

자신이 노바에 온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휴가를 다녀온다고 보고한 율리안과 가프 연구소의 가라로슈 그리고 레이크 시티와 2전단을 책임지는 켐니츠 정도였다.

그 외에도 바이크와 시에나를 비롯한 몇몇 파일럿들이 알고 있었지만, 미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바덴을······?’‘

자신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워낙 큰 사업체를 여럿 경영하는 사람이니 알게 모르게 원한을 살 수도 있고, 경쟁 업체에서 약점을 잡기 위해 감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산은 두려움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그러나 자신이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는 바덴과 클라크가 놀라지 않도록 감정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를 했다.

많이 시킨 것과 다르게 바덴은 많이 먹지 못했다.

바덴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기가 커가면서 위가 눌려서 많이 못 먹어요.”

“괜찮아요. 조금씩 천천히 먹어요.”

그들은 오붓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까지 마신 뒤 밖으로 나왔다.

“우리 식물원에 가 볼까요?”

“계속 돌아다녔는데 피곤하지 않겠어요?”

“괜찮아요. 아기가 이 정도 컸을 때는 적당히 돌아다니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루산은 어렸을 때 식물원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변경 출신 클라크는 식물원이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 봤다.

그들은 황궁 근처에 있는 식물원에 갔다.

냉난방 설비를 갖춘 거대한 유리 온실이 여러 동 지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북쪽 한대 지방 식물부터 남쪽 열대 지방 식물까지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필센 제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그들은 따뜻하고 시원한 온실들을 지나다니며 다채로운 식물들을 감상했다.

그러나 루산은 그 와중에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식물을 관찰하는 척하며 사람들을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했다.

그러다 마침내 발견했다.

대학로 노천카페 거리에 있는 가게로 들어와 자신을 힐끗거리던 신사 두 사람이 멀찍이서 따라오며 나무와 꽃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이건 우연일 수가 없었다.

루산은 분노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식물원 구경을 끝까지 마쳤다.

그런 뒤 자동차로 가서 바덴을 위해 문을 열어 주고 바덴이 타자 다시 문을 닫은 뒤 클라크에게 나직이 말했다.

“두리번거리지 말고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들어.”

갑작스러운 루산의 태도에 놀랐지만, 클라크는 일단 잠자코 들었다.

“스텐커 씨를 찾아가서 내가 부르더라고 전해. 밤 10시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네 끄트머리를 차로 막고 찾아오라고 해. 감시가 붙었다고 하면 알아들을 거야.”

“······!”

“녀석들은 어차피 차를 따라올 테니까 너는 이대로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가 가면 돼.”

루산은 스텐커의 사무실 주소를 빠르게 알려 주었다.

“알았지?”

“알았어요, 기사님!”

“걱정은 하지 말고. 가 봐.”

“네!”

바덴이 차 안에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클라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그대로 떠났다.

바덴이 얼른 차창을 내렸다.

“어딜 가는 거예요?”

그러나 클라크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일을 좀 시켰어요. 나중에 볼 거예요.”

바덴은 궁금했지만,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그들은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신사들이 재빨리 차를 타고 멀찍이서 뒤따라왔다.

***

추운 겨울밤의 중산층 주택가.

작년 말에 들려온 대승 소식에 분위기가 많이 풀리기는 했으나 조용한 법원 근처 주택가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간간이 퇴근이 늦은 사업가들과 변호사들을 태운 마차와 자동차들이 바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밤 9시 50분.

네 대의 자동차가 다른 방향에서 진입해 십자 모양의 골목 끄트머리에 자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그중 한 차에서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의 신사가 나와 지팡이를 짚으며 골목을 뚜벅뚜벅 걸어와 바덴의 신혼집 문을 두드렸다.

별채에 사는 정원사가 루산으로부터 언질을 받고 문을 열어 주고는 안채에 기별을 넣었다.

“이 시간에 누구죠?”

잠옷 차림의 바덴이 묻자 루산이 대답했다.

“내가 스텐커 씨를 불렀어요.”

바덴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텐커는 두 사람이 결혼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왜요?”

“놀라지 말아요.”

“네.”

“당신한테 감시가 붙은 것 같아서.”

“······!”

“걱정하지 말아요. 알아서 처리할 테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알겠어요.”

현명한 바덴은 호들갑 떨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루산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스텐커를 맞았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기사님?”

복합적 의미의 질문이었다.

루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슬라 사장과 결혼했어요. 가족들만 모시고.”

“아!”

“말해 주지 못해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그러실 수 있죠. 아, 어쩐지······.”

바덴은 원래 오베론 공작과 루산의 복수와 관련하여 개입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상의할 일이 있으면 모두 바덴과 이야기하라는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 까닭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어떤 놈들입니까?”

“이제 알아보러 갑시다.”

“그러죠!”

스텐커가 굳은 표정으로 루산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십자 골목 교차로에서 스텐커가 손짓을 하자 골목 끝에 멈춰 있던 자동차들이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천천히 교차로를 향해 이동했다.

그 사이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들 가운데 두 대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한 대는 과감하게 주택가에서 밀회를 나누던 남자와 여자.

그들은 깜짝 놀라 옷차림을 수습하며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 방향에서 다가오던 차량이 빠져나가려던 차 앞을 막았다.

막아선 차에서 내린 한 사람이 약간 다리를 절며 밀회를 나누던 차로 다가가 경찰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창문 내려 봐요.”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긴장과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차창을 살짝 내렸다.

“무, 무슨 일이죠?”

“죄수가 달아났다는 첩보를 듣고 수사 중입니다. 협조해 주세요.”

우리는 아니다, 한 번만 봐 달라, 집에서 알면 가정이 파탄 난다··· 사정하고 애원하는 남녀와 가짜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다리를 저는 남방군 출신 기사는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감시와 미행은 의심을 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을 요 몇 년 동안 스텐커를 도와 일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차에 탄 남녀들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남자 둘이 타고 있던 다른 차 앞을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에워쌌다.

“경찰입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협조해 주세요.”

어느새 골목 반대쪽에서 다가온 차가 뒤를 막았다.

앞뒤를 막힌 두 사람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창문을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는 당신들이야말로 이 시간에 여기는 무슨 일이죠? 차에서 내려요.”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두 사람.

에워싼 사람은 뒤를 막은 차에서 내린 사람들까지 여덟 명.

차에 탄 두 명의 신사는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달아날 방법도 없었고 경찰이라 하니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그때 루산이 다가와 스텐커가 비춘 휴대용 마법 등에 드러난 그들의 옷차림과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텐커가 말했다.

“데려가세요.”

그러자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신사 두 사람을 에워싸고 양쪽 팔을 붙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왜 우리를 잡아가는 겁니까?”

그들은 몸부림을 쳤지만, 평생을 수련해 온 기사들의 팔짱을 풀 수는 없었다.

남방군 출신 기사들은 차 뒷자리에 한 사람씩 구겨 넣고 달아나지 못하게 양쪽에 앉은 뒤 머리에 주머니를 뒤집어 씌웠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고, 알아낸 즉시 알리도록 하세요. 안 자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기사님.”

자동차 네 대를 타고 온 스텐커와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은 감시자들이 타고 있던 차까지 다섯 대를 타고 떠났다.

루산은 걱정하고 있을 바덴이 걱정되어 집으로 들어갔다.

***

새벽 두 시.

스텐커가 다시 찾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루산이 그를 거실로 불러들였다.

“마젠스 자작이 지시했답니다.”

“마젠스 자작?”

“네. 루트 오베론 쪽에 붙은······.”

루산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기억이 납니다.”

“기사님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순수하게 사업적으로 궁금하고 의문이 생겨 고슬라 사장님을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루트 쪽에서 차 사업과 사채업에 진출했다는 말씀은 드린 적이 있었죠.”

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스텐커를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사채로 에를랑겐 유통을 집어삼키려고 공작 중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가 고슬라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사장님이 에를랑겐과 협력하는 바람에 집어삼키려던 계획이 무산됐고, 에를랑겐은 훨훨 날아다니게 됐죠. 게다가 차 사업까지 진출한 것으로 보이니 궁금했나 봅니다. 고슬라 사장님이 그동안 무슨 사업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고 어디를 다니는지 모두 알아내려 한 모양입니다.”

참으로 공교로웠다.

자신이 배후에 있음을 들킨 것은 아니지만, 마젠스 자작이 바덴을 주시하게 된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바덴이 임부복 위에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스텐커는 깜짝 놀랐지만,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장님.”

“잘 지내시죠?”

“그럼요. 덕분에 잘 지냅니다.”

“앉으세요.”

“네.”

바덴이 루산의 옆자리에 스텐커를 마주보고 앉았다.

“제가 만나 볼게요.”

바덴의 말에 루산과 스텐커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사님이 드러난 건 아니라면서요? 물론 오늘 우리를 감시하던 사람들이 기사님을 봤겠지만, 누군지는 몰라요. 그렇지 않아요?”

스텐커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젠스 자작이 사업 때문에 저에 대해 궁금해한 것이라면 직접 만나 사업적으로 풀어야죠. 이쪽에서 당당하게 나가면 뒷조사를 하다 들킨 저들은 앞으로 함부로 뒤를 캐지는 못할 거예요. 그리고 직접 만나 사업적 교류의 물꼬를 터놓으면 앞으로 저들의 능력과 계획을 알아내기가 훨씬 수월해지지 않겠어요?”

용기 있고 현명한 말이었다.

그러나 루산은 바덴이 위험한 일의 전면에 나서는 것 같아 꺼려졌다.

“당신 몸이 이런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겠어요?”

“내가 임신한 건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아빠가 누군지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이제 차마 나한테 그걸 묻지는 못하겠죠. 묻지 못하게 경고하는 것이기도 해요.”

“음······.”

“걱정 마세요, 기사님. 나에 대해 알아봤다면 함부로 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고슬라 그룹의 규모와 사업 내역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아무도 바덴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렇긴 하지만······.”

“기사님을 드러내지 않고 저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제압하려면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

스텐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던 루산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바덴이 스텐커에게 말했다.

“감시하던 자들을 풀어 주세요.”

“네?”

“그들에게 조만간 내가 직접 간다고 마젠스 자작에게 전하라고 하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통보도 없을 것 같아서요.”

스텐커가 루산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루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덴과 스텐커도 따라 일어났다.

“고생 많았습니다, 스텐커 씨.”

“별말씀을요, 기사님.”

스텐커는 루산과 바덴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는 작은 정원을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너무 많이 깨 버렸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잡으라고 할걸.”

말이 그렇지 경고 효과로는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얼른 가서 마젠스 자작의 부하들에게 연고라도 발라 줘야 할 것 같았다. 붓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테니까.

‘그나저나 기사님과 사장님이 결혼을 했다니, 잘됐구나!’

스텐커는 두 남녀와 배 속 아기의 축복을 빌며 차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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