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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15화 (315/450)

315.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315.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휴가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소식은 들으셨나요?”

“오면서 들었습니다.”

루산이 역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알아본 전투 요원들이 7구역에서 웨이브가 발생해 2전단이 출동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다들 들떠 있더군요.”

“오랜만에 찾아온 웨이브다 보니 그런 모양이에요. 게다가 우리 쪽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7구역 피해가 상당한 모양이니 2전단장님이 가서 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레이크 시티로 갔다가 최대한 빨리 출동하겠습니다.”

율리안의 방을 떠나기 전에 루산은 좀 더 대화를 나누었다.

어차피 준비는 켐니츠가 알아서 다 해 놓았을 테고, 라돔 시에서 레이크 시티로 갈 때 다음 열차편을 타고 가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작년 반달 농업 회사의 눈부신 성과, 트리어가 이끄는 8구역 북부 개발 진행 상황, 변경 8구역 인사 문제, 아라드 변경의 어려움과 현황, 황제의 동방 순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황태자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루산이 문득 궁금하여 율리안에게 물었다.

“워낙 어릴 때 본 것 말고는 만난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열 살 정도 많으셔서 함께 어울릴 나이대도 아니고 6촌이면 살갑게 지낼 만큼 가까운 촌수도 아니어서······.”

“네.”

루산은 황태자의 나이가 40대 초반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어쨌든 그때 본 기억으로는 황태자 전하께서 좀 주눅 들어 있다고 해야 하나? 좀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해가 안 됐죠. 필센 제국의 황태자면 무엇이 두렵겠어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됩니다. 할아버지가 이반 황제,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황제,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에요?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황태자가 받는 기대감, 압박감은 얼마나 컸을까 싶네요. 그런데 왜······?”

“신문에서 황제 폐하께서 동방을 순시하시는 동안 본토는 오베론 공작이 다스린다는 기사를 보고, 왜 황태자 전하가 아닌 재상인지 의아해하다가 황태자 전하께서 네세베르 공략군에서 근무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아! 그러셨군요. 어차피 오베론 공작이 다스린다 해도 마음대로 하지는 못할 겁니다. 황제 폐하의 비서들, 대소신료들이 재상의 전횡을 두고 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율리안이 루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렇겠죠.”

“그리고 황제 폐하와 황태자께서 노바를 떠나신다 해도 둘째 황자께서 계시죠.”

“둘째?”

“네. 황태자 전하께서는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면, 둘째 형님은 화통하고 거칠 게 없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어릴 때부터 친척 아이들을 데리고 황궁 안을 쏘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먹을 것도 훔쳐 먹고, 짓궂은 장난을 도맡아 했죠. 황위 계승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몰라도 우리들이 다 둘째 형님은 좋아하고 따랐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군요.”

“네.”

“어쨌든 그분 성격상 눈에 거슬리는 것을 보고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황제 폐하께서도 둘째 아들을 믿고 황궁을 비우시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디까지나 제 짐작이지만요.”

어릴 때 보고 장성한 뒤로 교류가 없기에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는 말을 율리안은 다시 한번 했다.

그러나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어릴 때 성격이 그대로 간다는 생각을 율리안이나 루산 모두 바닥에 깔고 있었다.

‘첫째는 황태자라는 지위에 대한 압박감으로 짓눌려 있는 모습, 둘째는 그런 압박감 없이 자유분방한 모습이란 거지?’

루산은 황제의 5촌 조카 율리안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마음 한 구석에 던져두고 본부를 떠나 레이크 시티로 갔다.

***

“오랜만에 현장에 한번 나가 보나 싶었는데, 전단장님께서 돌아오셨으니 어렵게 됐군요.”

켐니츠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루산이 늘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그는 항상 레이크 시티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멕 나이트 타고 웨이브 막아 보고 싶어요, 켐니츠?”

“하하,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아니에요.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웨이브가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두세 달이면 큰 흐름은 끝날 테고 그 뒤에는 소탕하는 거니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괜찮다니까요. 내가 구상한 게 있어서 그래요. 현장 지휘관이 필요한데 현재 2전단 전력을 보면 마땅한 사람이 없단 말이에요.”

루산이 지휘하는 병력은 매우 복잡하게 구성돼 있었다.

이스타드 변경에서 포로로 잡아 온 아우로라 연합 괴수 사냥꾼들은 엄밀히 말하면 2전단 소속이 아니고 그냥 아라드 변경에서 일하는 파일럿들이었다.

부르사에서 포로로 잡아 온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 2전단 소속으로 둘 수가 없었다. 그들도 아라드 변경을 개척하는 데 투입하고 필요하면 가프 용병단으로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

2전단 소속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은 현재 부르사, 아라드 변경, 괴수 목장에 가 있었다.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되어 멀리 보낸 것이다.

이스타드 변경 출신의 젊은 파일럿들도 실전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 부르사 왕국으로 보낸 상태였다.

최근에 구출해 온 구귀족파 기사들은 절대로 변경 8구역에 들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남아 있는 2전단 파일럿들은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

대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그나마 실력 있는 파일럿들이 변경에 지원하기도 했는데, 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파일럿이 필요한 군에서 어지간한 죄는 사면해 주고 실력이 좀 처져도 합격시키는 바람에 변경에는 그야말로 돈독이 잔뜩 오른 사람 아니면 실력이 형편없는 파일럿들만 들어왔다.

사실상 새로 가르쳐야 할 판국이었다.

그래서 루산은 실제로 파일럿을 기르고 있었다.

괴수를 잡는 데에는 기사들만큼 검술이 빼어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멕 워커 파일럿을 교육시켜 멕 나이트 파일럿으로 전환시켰고, 체격과 체력이 뛰어난 변경의 소년들을 뽑아 멕 파일럿으로 가르쳤다.

가프 마법 연구소 테스트 파일럿인 모리츠와 파비안이 가끔 출장하여 파일럿 교육을 시키는 중이었다.

어쨌든 실력 있는 파일럿이 부족한 2전단을 별 탈 없이 잘 이끌어 온 사람이 바로 켐니츠였다.

대전쟁 발발 이후 루산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실력이 떨어지는 파일럿들을 휘어잡아 일을 시킨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2전단 파일럿들은 ‘자르는 켐니츠’ 앞에서 설설 기었다.

루산은 잘하고 있는 켐니츠를 놔두고 굳이 자신이 답답해하며 새로 기강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레이크 시티와 2전단을 맡길 사람이 있어요?”

“있습니다.”

“레이크 시티는 행정관 아트민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건 좋네요.”

아트민은 레인보우 시티 개척부터 함께해 온 사람으로 매우 유능한 행정 요원이었다.

“2전단은 반달 호수 지역 순찰만 하면 되니까 케르펜에게 지휘를 맡기면 됩니다.”

“케르펜?”

“바이크보다 델타 기지로 약간 먼저 들어온 파일럿 기억하십니까?”

“아! 웨이브가 발생할 무렵 새로 왔죠?”

“맞습니다. 그 녀석이 성실합니다.”

“델타 기지 소속 아니에요?”

“얼마 전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완전히 신참이었는데 어느새 순찰 근무를 편성하고 지휘하는 캡틴급이 되었다니, 루산은 갑자기 무정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하긴, 그토록 실력이 형편없던 바이크도 많이 노련해졌지.’

루산은 켐니츠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여 아트민과 케르펜에게 각각 레이크 시티와 반달 호수 지역 순찰을 맡기기로 했다.

“순찰을 위해 남겨 두는 멕 나이트는 일곱 대입니다.”

“너무 적지 않아요?”

“만에 하나 반달 호수 지역에 괴수 사태가 발생하면 일단 1전단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북쪽 개척 기지에서 밑으로 내려와 반달 호수만 건너면 되니까요. 그리고 가프 연구소에도 협조를 구해 놓았습니다.”

가프 연구소에는 하루에 레오파드가 몇 대씩 만들어지고 파손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들이 몇 대씩 재조립된다.

파일럿도 있으니 유사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좋아요.”

켐니츠의 철저한 준비성에 루산은 만족했다.

“그럼 부전단장이 먼저 병력을 이끌고 가세요. 나는 곧 뒤따라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단장님!”

켐니츠는 업무를 인계하고 2전단 주력 부대와 델타 기지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멕 나이트 44대.

멕 워커 67대.

정찰병 75명.

파일럿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변경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병력이었다.

그러나 가장 영역이 넓은 7구역을 구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루산은 곧바로 가라로슈를 찾아갔다.

“오! 기사님, 돌아오셨군요.”

“네, 가라로슈 님. 웨이브 소식은 들으셨죠?”

“그럼요. 그래서 어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레이크 시티 부시장께서 협조 요청을 해 와 응하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으로 충분할지······.”

“그래서 말인데요.”

“네!”

“전투 거미를 투입하는 건 어떨까요?”

“음······! 저 역시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비밀리에 실험해 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보다 더 좋은 실험 여건은 없을 것 같아서요.”

적어도 변경에서의 활용도를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라면 최적의 상황이었다.

“전투 거미로 괴수를 유인하거나 몰이해 볼 수도 있고, 멕 나이트와 협력하여 작전을 펴 나갈 수도 있고, 대규모 괴수 떼를 만났을 때 기동이라든가 대처 방법을 익힐 수도 있고······.”

“그렇기는 하지요.”

“비밀이라는 것도 8군단 2전단 투입 지역에서만 활동하면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음······.”

“전투 거미가 외부에 노출되면 그 또한 어쩔 수 없죠. 우리가 죄를 지은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전투 거미 가격이 워낙 비싸서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면서요?”

가라로슈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 활용도를 테스트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황이기는 했다.

“이것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합니다, 기사님.”

“뭔가요?”

“외부 사람이 멀리서 목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가까이 접근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 연구소에서 만든 무기, 우리가 고심한 무기 탑재 방법이 노출되니까요. 무엇보다 파워 아머를 들키면 곤란해집니다. 이것들이 지켜지는 상황에서만 사용한다면 저도 찬성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루산은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열차 편으로 7구역으로 이동했다.

멕 나이트 수송용 화물 열차에 우르사와 003, 그리고 공장에서 갓 제작된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실렸다.

루산 일행이 떠나고 한밤중에 거대한 거미 세 마리가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나와 장막으로 가려진 바지선에 올라탔다.

바지선은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잔잔한 호수를 건넜다.

북쪽 선착장에 닿은 뒤 바지선에서 내린 전투 거미 1호, 2호 그리고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형 거미는 어두운 숲을 지나고 산을 넘어 북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렇게 며칠을 이동해 7구역에 들어선 거미들은 약속 장소에서 루산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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