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시작하죠
316. 시작하죠
반란 사건이 터지기 전에 발간된 변경 백서에 따르면 7구역의 멕 나이트는 375대나 되었다.
변경에서는 전선에서 은퇴할 만큼 낡은 중고 멕 나이트를 도입해 사용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375대는 엄청난 숫자로 필센 제국군 기동 군단 정수인 300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란 사건이 터지고 그에 연루된 파일럿들을 색출하는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7구역에서 무려 멕 나이트 파일럿 200여 명의 결원이 발생했다.
반란 혐의로 통치자까지 체포되었으니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전쟁이 발발하면서 멕 나이트 파일럿 충원에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면적이 넓기 때문에 사냥과 순찰에 많은 멕 나이트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7구역은 그때의 혼란을 4년이 지난 아직까지 수습하지 못했다.
“왜 아직까지 여기 있죠? 작전에 투입되지 않고?”
7구역 본부가 있는 오스나 역에 도착한 루산은 켐니츠가 이끄는 8군단 2전단 병력이 오스나 역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급하다며 도움을 요청할 때는 언제고 정작 원군이 오자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방어에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미리 방벽을 만들지 않으면 웨이브를 막아내기가 어렵다.
“그게 참, 우리 병력을 투입하기에 적당한 곳을 선정한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가장 방어가 어렵고 이익이 안 되는 곳을 고르려고 고심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렇더군요. 7군단 본부 전단들도 서로 더 편하고 더 돈이 되는 지역을 맡으려고 알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켐니츠의 말에 루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지금이 그럴 때인가요? 본부에서 교통정리를 못 해요?”
“몇 년 동안 조사를 세게 받다 보니 간부들은 정부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재작년에 새로 부임한 통치자는 경험이 부족해 간부들 눈치만 보고, 그러다 보니 영악한 파일럿들이 멋대로 날뛰고··· 그런 거죠.”
루산은 7구역이 웨이브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돈이 되지 않는 순찰 근무에 소홀한 것이다.
“기강이 엉망이란 거죠?”
“분위기가 그렇기는 한데, 자기들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루산은 화가 나서 7구역 본부로 갔다.
거기서 2년 전에 새로 부임했다는 통치자를 만났다.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8구역 총책임자라고 하니 만나 주기는 했다.
괴수 떼의 대이동, 웨이브라는 것을 난생 처음 겪어 본 노바 출신의 50대 황족은 두려움과 난처함을 얼굴에 묻히고 루산을 맞이했다.
“8군단 2전단장 루산 보름스입니다.”
“아!”
루산 보름스라는 이름은 신출내기 7구역 통치자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변경에서 발생한 반란 사건을 진압한 공으로 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8구역을 엄청나게 키워 30대 초반의 나이에 시장과 전단장을 동시에 맡은 입지전적인 인물.
워낙 유명해 안 들을 수가 없었다.
7구역 파일럿들은, 모두 8구역의 루산 보름스처럼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7구역을 이렇게 망쳐 놓은 주범이라고 욕하고는 했다.
7구역을 망쳐 놓은 것은 반란을 일으킨 파일럿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잡혀 갔기 때문에 바로 옆 동네에서 7구역 파일럿들을 때려잡은 공으로 떵떵거리고 사는 루산을 욕하는 것이다.
“그래, 무슨 일로 보자고 했소?”
“무슨 일이냐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7구역이 위태롭다고 해서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도우러 왔는데, 열차 역에 묶여 있는 게 말이 됩니까? 어디로 가서 작전을 수행할지 안내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웨이브 대처에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데 이렇게 허비한다면 무너지는 개척촌과 개척 도시들이 속출할 겁니다!”
루산의 기백에 7구역 통치자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잘 모르니 단장, 전단장들과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떻겠소?”
루산은 자신이 상관 운이 좋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8군단 단장이었던 알렌 뮌스터였으면 이미 눈빛만으로 부하들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했을 것이다.
그 밑에서 일을 배운 율리안도, 평소에는 부드러운 성격이기는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경중을 알고 단호한 스타일이었다.
루산은 한숨을 내쉬고는 기어이 한마디 했다.
“통치자님, 변경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웨이브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 막대한 수입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죠. 7구역에서 가장 높은 분이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어느 누가 통치자님의 권위를 존중하겠습니까?”
초면에 무례한 말이었지만, 어차피 상관도 아니니 자신을 징계할 권한도 없고 이때가 지나면 만날 일도 없다고 생각에 마구 쏟아부은 것이다.
루산은 율리안 생각이 절로 나 계속 퍼부었다.
“변경 주민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통치자님이 살릴 수 있는데도 망설이는 바람에 죽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회의실로 가셔서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세요. 거역하는 사람들은 다 자르면 됩니다. 통치자님께는 그럴 권한이 있다니까요?”
통치자의 안색이 변했다.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2년 동안 휘둘려 온 자신과 자신을 허수아비 취급한 7구역 간부들에게 화가 난 것이다.
7구역 통치자가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오!”
루산은 통치자의 뒤를 따라 대책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회의실로 갔다.
넓은 7구역 지도에 웨이브가 닥친 지역이 표시돼 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통치자가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들의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언쟁을 멈추었다.
2년 동안 소극적으로 살아온 터라 막상 부하들 앞에 서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통치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 말했다.
“단장님, 아니 단장! 여기 변경 8군단 2전단장이 와서 배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서둘러 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장은 처음에 어이없어 하다가 이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루산과 통치자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직 우리 병력도 배치가 끝난 것이 아니라서······.”
통치자가 말을 끊었다.
“그럼 서둘러 배치를 마무리하고 이동하세요! 뭐 하는 겁니까? 회의실에서 입으로만 떠들면 괴수가 저절로 물러간답니까?”
“······!”
“······!”
“······!”
간부들이 놀란 표정으로 통치자를 쳐다보았다.
통치자는 자기 스스로도 놀랐지만, 놀라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부하들의 시선에 더욱 흥분했다.
심장이 쿵쿵 뛰고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단장이 놀란 감정을 숨기고 통치자를 달래려 했다.
“통치자님,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 전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충분히 조율하고 논의해야······.”
“나와 생각이 다르군요! 단장직에서 해임합니다.”
“예?”
“1전단장이 단장직을 임시로 수행합니다. 이해관계고 뭐고 웨이브 피해를 막는 쪽으로 빨리 병력 배치를 하세요. 못 하겠으면 당신도 그만두세요.”
“아, 아닙니다!”
1전단장이 영악한 눈빛을 굴리다 빠르게 대답했다.
단장은 고개를 돌려 간부들을 쳐다보며 이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바로잡아 줄 동료를 기다렸지만, 통치자의 돌변한 모습 앞에 모두가 말을 아꼈다.
누가 자신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기 싸움과 정치 놀음으로 길게 이어지던 회의는 1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루산은 웨이브 발생 지역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넓고 가장 괴수 밀도가 낮은 7구역 남서쪽 구역을 맡았다.
그 와중에도 돈이 안 되고 수고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역을 넘긴 것이다.
담당 구역을 확인한 루산은 전혀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통치자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회의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 통치자가 불러 세웠다.
“잠깐!”
“네?”
통치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술을 깨물다 겨우 한마디 했다.
“오늘 일을 잊지 않겠소!”
루산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회의실을 벗어났다.
본부에서 나온 루산은 켐니츠에게 담당 구역을 알려 주었다.
“후유, 이건 뭐 멕 나이트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계속 뛰어다니라는 소리군요.”
켐니츠의 앓는 소리에 루산이 농담으로 대꾸했다.
“부전단장은 오랫동안 내근만 했으니 이번 기회에 땀 좀 흘려 봐요.”
“그래야죠. 그나저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요?”
“전단장님이 가시자마자 우리 담당 구역이 결정된 것 말입니다.”
루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권력자가 자기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거든요.”
“네?”
“얼른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네, 전단장님!”
변경 8군단 2전단 병력이 이동했다.
멕 나이트, 멕 워커, 탐탐들이 속도를 높였다.
***
루산이 담당하게 된 지역은 물기가 많아 축축한 습지로 밀림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발생한 대규모 웨이브의 가장자리이기도 했다.
괴수의 밀도는 평소보다는 높지만 웨이브라고 하기에는 약간 손색이 있었고, 담당 지역이 넓고 바닥이 습지라 멕 나이트가 푹푹 빠져 이동하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
“수리비가 더 나올 지역이네.”
파일럿들이 투덜댔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7구역 구원이지만 그래도 나름 웨이브라는 말에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고생만 하다 갈 것 같았다.
“그동안 통치자님과 전단장님께서 엉망진창인 실력에도 사람대접해 주고 돈 잘 벌게 해 주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불평이야?”
“아닙니다! 멕 나이트 수리비가 많이 나올까 봐 걱정되어 한 말입니다!”
켐니츠의 불호령에 파일럿이 바짝 기합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루산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가 맡은 지역이 고약한 건 사실이지.”
루산은 지도를 펼치고 담당 구역의 위치와 실제 보이는 현장을 살피며 계획을 세웠다.
이왕 온 것, 맡은 일을 해야겠지만, 이 습지대에서 진흙만 잔뜩 묻히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괴수를 빠르게 소탕하면서 이왕이면 많은 수입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켐니츠, 기억나요?”
“뭘 말씀입니까?”
“반달 호수 지역으로 들어온 웨이브 막던 때 말이에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루산은 갓 캡틴이 되었고, 자신이 캡틴이 될 줄 알았던 켐니츠는 그에 반발했다가 루산이 웨이브 저지 임무에서 빼 버리는 바람에 많은 수입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루산이 더 높은 곳으로 가자고 손을 내밀어 지금까지 함께해 온 것이다.
“괴수 떼가 아무리 넓은 지역으로 몰려와도 깔때기 모양으로 방벽을 쌓으면 좁은 곳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어요.”
“아! 그 말씀이시군요?”
반달 호수 지역 웨이브 때 루산은 깔때기 모양의 저지선을 겹겹이 만들어 괴수들이 밀려오는 길목을 좁혔었다.
“그럼 무슨 말인 줄 알았어요?”
“아, 아닙니다. 하하!”
켐니츠가 멋쩍게 웃었다.
루산이 잠시 그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담당 구역이 넓고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그때보다 병력이 훨씬 많잖아요. 충분히 해 볼만 해요.”
“그런데 이쪽으로는 괴수가 별로 오지를 않고, 이곳에는 깔때기를 만들 만한 재료가 없지 않습니까?”
“저 숲으로 들어가야죠.”
루산이 습지 너머에 있는 밀림을 가리켰다.
숲에 있는 나무들로 길목을 좁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과거 반달 호수 지역 웨이브 때에 사용했던 방법이라 켐니츠도 그것까지는 알아들었다.
깔때기의 규모가 훨씬 커지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깔때기로 들어올 괴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괴수는 이쪽으로 잔뜩 올 겁니다.”
“어떻게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예요.”
“···네.”
“멕 나이트 여섯 대와 탐탐 정찰병 20명은 현재 지역을 순찰하도록 합니다. 혹시나 중소형 괴수가 개척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굳이 늪지로 들어가 힘을 뺄 필요 없이 늪지 바깥 마른 땅에서 순찰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병력은 모두 늪지를 지나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밀림 안에서 나무를 쓰러뜨려 괴수들이 이동하는 길을 만드는 거예요. 안전에 유의하면서 작업을 하세요. 그동안 나는 괴수들을 이쪽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설마 직접 멕 나이트를 타고 괴수들을 유인해 오시겠다는 겁니까? 이번 웨이브는 엄청나답니다. 위험합니다.”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아요.”
루산은 켐니츠를 안심시키고 바이크, 시에나와 함께 먼저 습지를 통과해 밀림으로 들어갔다.
“후유!”
그 모습을 본 켐니츠는 한숨을 내쉬고는, 남은 병력에 명령을 내렸다.
2전단 일부 병력이 현 위치에서 순찰을 하는 가운데 나머지 병력이 루산의 뒤를 따라 밀림으로 들어갔다.
멕 나이트와 멕 워커가 거대한 나무를 베어 일정한 방향으로 눕혀 괴수들이 점점 좁아지는 길로 들어오도록 벽을 만들었다.
[우리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2전단 파일럿들은 웨이브 가장자리, 괴수 얼굴 보기도 어려운 숲속에서 무슨 헛수고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격한 켐니츠의 불호령에 일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루산은 전투 거미 두 대, 대형 거미 한 대로 이루어진 전투 거미 실험 팀을 만났다.
부르사에서 전투 거미 조종을 배운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운전을 맡고, 비밀 유지를 서약한 레이크 시티 개척병들이 발리스타 사수가 되었다.
아직 마나포 사수는 없었다.
파워 아머는 착용자 규격에 맞춰 제작해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미 자신의 신체 규격에 맞는 파워 아머를 가지고 있는 루산, 바이크, 시에나가 임시로 마나포 사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전투 거미 프로젝트의 첫 실험 참관을 위해 바쁜 와중에도 대형 거미를 타고 직접 찾아온 가라로슈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는 겁니까, 기사님?”
“시작하죠!”
전투 거미 두 대, 대형 거미 한 대가 우르사, 003, 레오파트 라이트닝과 함께 깊은 밀림을 통과했다.
거대한 웨이브의 본류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