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322.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멕 나이트와 대형 거미들이 장난감처럼 보일 만큼 거대한 원시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하늘을 가리고 있는 밀림 속.
굵은 나뭇가지에서 쉬고 있던 거대한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사뿐히 몸을 던져 아래로 지나가던 전투 거미를 덮쳤다.
[1호, 물러나!]
루산이 외치며 우르사로 떨어지는 바실리스크를 밀쳤다.
그 덕에 바실리스크에 깔리는 사태를 막은 전투 거미 1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우르사에 떠밀려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바실리스크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우르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바실리스크는 흔한 괴수가 아니지만, 루산이 많이 상대해 본 종류였다.
우르사는 옆으로 살짝 비키며 대형 철퇴를 크게 휘둘러 바실리스크 대가리를 찍어 눌렀다.
콰작!
바실리스크의 단단한 두개골이 깨지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거대한 바실리스크는 몸을 부르르 떨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캬! 깔끔한 솜씨야.]
비어슨이 탄성을 지르고 다가와 부하들에게 바실리스크 몸을 옆으로 돌리게 한 뒤 능숙하게 배를 갈라 거대한 생명 구슬을 꺼냈다.
이 정도 크기의 바실리스크면 혈액이나 기타 부산물도 엄청난 가치가 나가지만, 앞으로의 경로를 생각하면 다 챙길 수는 없었다.
가장 값나가는 것 하나만 챙기는 것이 현명했다.
루산이 우르사에서 내리자 비어슨도 자신의 아이언 워리어에서 내렸다.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가운데 루산이 전투 거미 승무원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우리는 중소형 괴수를 상대하러 가는 게 아니니 발리스타보다 마나포 사수가 필요해요. 파워 아머 세 벌이 있는데 맞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루산은 우르사를 타는 게 나았다.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마나포를 쏘는 것은 전력 낭비였다.
시에나의 파워 아머에 맞는 사람은 없었으나 다행히 루산과 바이크의 파워 아머에 얼추 맞는 사람은 있었다.
루산은 그들에게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마나포를 담당하게 했다.
“마나포는 혼자서 장전하고 격발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니 따로따로 타는 것보다 1호에 파워 아머 사수 두 사람이 타는 게 낫겠어요. 2호에는 장전만 해 놔요. 파워 아머를 착용하지 않아도 한 발은 발사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전단장님!”
“마나포 발사는 자의적으로 하지 말고 내 지시에 따르도록 하세요. 타이폰은 상대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세르펜스는 마나 진동 대검으로도 잘 베이지 않아요. 쓸데없이 아까운 무기를 날릴 수 있다는 거예요.”
“네, 전단장님!”
“바이크와 시에나가 비어슨과 함께 정찰을 하고 길을 열어. 나머지는 주위를 잘 살피며 뒤를 따라간다.”
“알겠습니다!”
시에나가 탑승한 003과 바이크가 올라탄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앞장을 섰다.
기체가 가벼워 험지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문제가 생겨도 비교적 쉽게 몸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어슨이 바로 뒤에서 방향을 안내했다.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은 좌우에서 전투 거미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이동했다.
전투 거미나 대형 거미는 멕 나이트만큼 몸체가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수와 부딪치면 찌그러진다.
루산은 맨 뒤에서 따라갔다.
영리한 사냥꾼은 후미에 처진 먹잇감을 노리게 마련, 뒤에서 공격해 오는 괴수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들은 밀림 깊숙이 들어갔다.
하늘 위에서 보면 그들 앞에 강줄기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는 광활한 늪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원래도 넓은 늪지대가 봄 홍수에 물이 불어나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세르펜스의 대규모 서식지로 추정된다고 비어슨이 말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거대한 폭포가 있었는데, 폭포 옆에 밀림에 어울리지 않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 옆에 원시의 거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 들어차 있는 숲이 있었다.
그 숲이 바로 타이폰이 살고 있는 숲이었다.
“폭포 아래 용소에는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가 사는데, 타이폰들이 아름드리나무를 꺾어 물로 걸어 들어가 수면을 내려쳐 그 물고기를 잡아 공터로 가져와 먹고는 해. 그리고 간간이 늪지대로 들어가 세르펜스를 잡아 공터로 질질 끌고 나와서 아가리를 찢어 몸을 뒤집어 껍질을 벗기고는 우걱우걱 먹더라고. 기가 막히지? 히히!”
비어슨이 목격한 세르펜스 목격담이었다.
무시무시한 세르펜스를 잡아먹는 괴수,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그 괴수를 잡기 위해 루산 일행은 대규모 세르펜스 서식지로 진입했다.
***
“자는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보름스 자작 부인이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바덴에게 물었다.
“이름은 뭐로 지을 거니?”
“그이가 오면 상의해서 지으려고요.”
바덴이 침대에 누운 채로 대답했다.
“걔는 뭐가 그리 바빠서 못 온다니? 아무리 바빠도 왔어야지, 쯧쯧쯧!”
자작 부인이 민망하여 일부러 자리에 없는 루산을 타박했다.
그러자 바덴이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만큼 바쁜 모양이죠. 원체 하는 일이 많아요.”
“걔가 없으면 뭐 사람이 없다니?”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럼요, 어머니. 변경 8구역을 혼자서 다 키운 사람이에요.”
자작 부인은 서운할 텐데도 자신의 아들 편을 들어 주는 바덴이 고마웠다.
“나는 딸이어도 상관없다. 수고 많았어. 보모가 필요하면 말하렴. 성품 좋고 경험 많은 사람으로 찾아 놓을 테니.”
“엄마, 그만 가요. 이 사람도 쉬어야죠.”
루산의 누나가 어머니를 끌었다.
“전 괜찮아요, 형님.”
“괜찮긴. 편히 쉬는 게 좋지. 엄마, 오늘은 가고 다음에 또 오면 되잖아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우리 예쁜 공주님 좀 더 보려고 했더니, 네 성화 때문에 못 살겠다.”
자작 부인이 바덴 옆에 아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또 와도 되지?”
“그럼요!”
“아니야. 나중에 퇴원하고 보자꾸나. 그럼 몸조리 잘하고 푹 쉬어라.”
“네, 어머니. 조심히 가세요.”
자작 부인과 루산의 누나는 아기를 다시 한번 눈에 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동안 밖에 있던 바덴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자작 부인이 괜찮다고 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자리를 비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덴은 그 모습이 답답했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바덴이 말했다.
“엄마도 집에 가서 쉬어.”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 먹고 얼른 몸조리해. 그래야 애를 키우지.”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먹고 싶은 거 얘기해.”
“아무거나.”
바덴은 몸을 돌려 턱을 괴고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이 귀여운 생명을 자신이 낳았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바덴이 손가락으로 살며시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고 코와 입술을 만지다 배를 쓰다듬었다.
아기가 입을 쫙 벌리고 하품을 했다.
“와! 이것 봐, 엄마!”
“치! 예쁘냐?”
“그럼!”
“네가 더 예뻤다.”
“에이, 그건 아니지! 물론 나도 예뻤지만, 얘가 훨씬 예쁜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너는 얼마나 예뻤냐면, 동네 사람들이 걸어가다가도 눈을 떼지 못해 가로등에 부딪치고 튀어나온 포석에 걸려 넘어지고 그랬다니까! 필센 제일의 미인이라고 그랬다고!”
“아이고, 알았어요. 우리 아가, 엄마가 필센 제일의 미인이니까 너는 세계 제일의 미인이겠구나! 킥킥!”
그 모습을 보던 바덴의 어머니도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고물고물한 것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아들 아니라고 서운해 안 하시던?”
“누구? 시어머니?”
“응.”
“그런 말씀 안 하시던데? 딸이어도 상관없다고 하시던데?”
“그 말이 서운하다는 뜻이지. 그래도 대놓고 타박하지 않은 건 고맙구나.”
“그런 분 아니라니까.”
“어쨌든 손이 귀한 집안이니까 아들도 낳아야지.”
“그런 말은 나중에 하세요. 우리 아가 서운해하니까. 아가, 듣지 마. 외할머니가 괜한 소리를 하네. 쭈쭈쭈!”
“미안, 미안. 할미가 미안! 세상에 내가 할머니가 되다니!”
“엄마는 할머니 안 될 줄 알았어?”
“그럼! 그게 미리 각오하고 되는 거니? 그래도 우리 예쁜 공주님의 할머니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아이고, 예뻐라! 외할머니가 안아 볼까?”
바덴의 어머니가 아기 포대기를 조심스럽게 들어 품에 안았다.
바덴은 그 모습을 보고 빙긋 웃다가 다시 몸을 돌려 하늘을 보고 누웠다.
루산이 이 예쁜 아기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싶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애써 꾹 참았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여쁜 딸은 할머니, 외할머니 품에서 잠을 자다 다시 엄마 옆에서 계속 잠을 잤다.
고물고물 잠자는 아기 옆에서 바덴도 잠을 잤다.
***
“일어나!”
불침번을 서던 파일럿이 다급히 사람들을 깨웠다.
“왜?”
“무슨 일이야?”
“알람이 울렸다고! 일어나!”
불침번이 전투 거미 1호, 2호, 대형 거미, 멕 나이트들을 돌며 몸체를 두드리고 사람들을 깨웠다.
전투 거미 안에서 누워 자던 조종수가 조종간을 잡고, 사수들이 자신의 무기에 붙었다.
멕 나이트 조종실 안에서 쪼그려 잠을 자던 파일럿들 또한 서둘러 동화기에 몸을 끼워 넣었다.
딸랑딸랑!
알람이 울렸다.
괴수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야영지 외곽으로 줄을 두르고 거기에 달아 놓은 방울이 흔들린 것이다.
바람 때문인지 아닌지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줄이 툭툭 끊어지며 방울이 한 번 울리고는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스으으으으-
무언가가 땅을 기어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루산이 정신을 집중하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우르사의 전조등을 밝혔다.
멕 나이트 몸체보다 큰 머리를 가진 거대 괴수가 물에 흠뻑 젖은 몸으로 바닥을 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세르펜스다! 전투 준비!]
후웅-!
후웅-!
후웅-!
멕 나이트들이 일제히 시동을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전투 거미와 대형 거미가 뒤로 물러났다.
멕 나이트 전조등 불빛이 일제히 세르펜스를 비추었다.
갑자기 많은 불빛이 자신에게 쏠리자 세르펜스가 놀라 고개를 저으며 움찔 물러났다.
파일럿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성급했다.
쏴아아-
쏴아아-
배가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소리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실수로 세르펜스를 깨운 모양인데?]
[그런가 봐.]
비어슨의 말에 루산이 동의했다.
최대한 조심하고 야영지를 고를 때에도 신중을 기했으나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주변이 모두 늪지라 세르펜스가 어디에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비어슨은 원시의 땅 전문가이지만, 세르펜스에 한정한다면 루산이 훨씬 경험이 더 많았다.
[뒤로 물러나면서 늪 주변의 수스마르를 깨워!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안 된다!]
세르펜스 사냥에 참여한 적이 있는 바이크와 시에나가 서둘러 늪지 가장자리로 달렸다.
잠을 자고 있던 수스마르들이 깜짝 놀라 달아나다 이내 화를 내며 몰려들었다.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이 시에나와 바이크를 흉내 내어 늪지 가장자리로 달렸다.
그때 거대한 수스마르 한 마리가 아이언 워리어의 다리를 콱 물었다.
아이언 워리어가 늪으로 철퍽 쓰러졌다.
수스마르들이 넘어진 아이언 워리어에 몰려들었다.
그때 우르사가 달려와 수스마르의 대가리를 대형 철퇴로 후려쳤다.
콰작!
콱!
[일어나 달려! 수스마르에게 물리면 안 돼! 그저 관심만 끄는 거야!]
우르사는 수스마르를 해치우는 데 그치지 않고 최대한 많이 후려쳐 피가 질질 흐르게 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달아났다.
뒤에서 쫓아오던 세르펜스들이 피 냄새를 맡고 방향을 틀어 거대한 수스마르를 입에 물고 목을 치켜들었다.
중력으로 먹이를 목 아래쪽으로 점점 내리기 위한 몸짓이었다.
세르펜스 무리의 출현에 수스마르들이 물로 들어가 빠르게 헤엄쳐 달아났다.
세르펜스들은 더 빠른 속도로 추격해 집채만 한 수스마르를 한 마리씩 꿀꺽 삼키고 목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나 세르펜스 몇 마리는 전조등을 비추며 달아나는 괴이한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따라왔다.
멕 나이트들은 늪지에 발이 빠지고 미끄러져 단단한 평지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003과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제외하고는 세르펜스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루산이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전투 준비! 녀석의 입에 물리지 않게 주의하며 싸운다! 방패를 들고 있는 기체는 세르펜스 입에 방패를 끼우고 대검으로 입을 찢어 버려! 일대일로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 전투 거미는 뒤에서 대기!]
멕 나이트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대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무기를 든 멕 나이트 열 대가 전조등으로 앞을 비추자 늪지를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거대한 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경험이 부족한 파일럿들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세르펜스는 경험 많은 파일럿도 상대하기 힘든 괴수, 루산은 무의미한 희생자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정면을 치고 시에나가 입을 찢는다! 바이크는 관심을 끌어!]
[네, 대장님!]
[알겠습니다!]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높이 들고 세르펜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 왼쪽에는 시에나의 003이, 오른쪽에는 바이크의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힘차게 달렸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세르펜스가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