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한 번에 잡지 못하면 우리가 당한다
323. 한 번에 잡지 못하면 우리가 당한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들이 손발을 맞출 때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시에나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크도 자신의 역할을 잘 알았다.
바이크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의 빠른 발로 우르사를 앞질러 나가 세르펜스의 눈을 노리고 마나 진동 투창을 던졌다.
슈우-!
어두운 밤, 투창 끝에서 뿜어져 나온 뿌연 빛이 긴 잔상을 남기며 날아갔다. 물론 전조등 불빛에 그 빛이 묻히기도 했지만.
그러나 달리면서 던진 데다 세르펜스 또한 움직이고 있어 목표한 눈에는 꽂히지 않았다.
투창은 세르펜스의 눈언저리를 찌르고는 탄력 넘치는 피부와 비늘 때문에 튕겨 나왔다.
그럼에도 마나 진동 투창의 예리함은 세르펜스에게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통증을 주었기에 그 거대 괴수의 시선이 가장 덩치가 큰 우르사에서 가장 작은 레오파드 라이트닝으로 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르펜스가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물기 위해 잽싸게 대가리를 쭉 뻗었다.
하지만,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순간적으로 기민하게 오른쪽으로 피하는 바람에 세르펜스의 머리가 빈 땅에 강하게 처박혔다.
퍽!
축축한 늪지의 흙과 썩어가는 낙엽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순간 우르사의 대형 철퇴가 세르펜스의 대가리 위로 떨어졌다.
후웅-!
원래도 강했지만, 기가스 엔진을 장착한 뒤로 더욱 강해진 힘!
콰작!
거대한 철퇴가 세르펜스의 머리뼈를 박살내고 대가리를 물기 젖은 땅속으로 깊이 처박아 버렸다.
다음은 시에나의 차례.
입을 찢기로 했으나 땅속에 대가리가 박히는 바람에 찢을 입이 보이지 않았다.
003은 이미 공격 준비를 마치고 달려가고 있었기에 그 힘을 그대로 살려 마나 진동 대검으로 대가리를 땅속에 처박고 있는 세르펜스의 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창!
쇳소리가 났다.
대검은 세르펜스의 피부를 아주 살짝 베었을 뿐 강한 탄력에 튕겨 나오고 말았다.
[역시 안 되나?]
시에나가 멋쩍게 중얼거렸다.
그때 머리뼈가 박살 났음에도 신경은 아직 살아 있는 세르펜스가 몸통과 꼬리를 세차게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바람에 우르사와 003이 휩쓸려 날아갔다.
레오파드 라이트닝만이 잽싸게 거리를 벌려 몸통 채찍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냉큼 일어선 우르사와 003은 꿈틀거리는 세르펜스를 내버려두고 입을 쩍 벌리며 달려오는 다른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루산이 소리쳤다.
[전투 거미 1호, 세르펜스의 입 안을 명중시킬 수 있으면 마나포 발사하라!]
[알겠습니다!]
전투 거미 1호에 탑재된 마나포는 좌우 회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회전하려면 전투 거미 몸체가 방향을 트는 수밖에 없었다.
우르사와 003 그리고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능숙한 협공으로 세르펜스를 한 마리씩 상대하는 가운데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이 방패를 세르펜스 입에 끼우려 했다.
텁!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패를 수직으로 제대로 세우지 못해 세르펜스가 물 때 버티지 못하고 방패와 함께 어깨가 물린 중고 아이언 워리어가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몸통 채찍에 맞아 멀리 날아가 떨어지는 기체도 있었다.
탐사 부대의 아이언 워리어들은 등에 메고 있는 철제 바구니가 찌그러지고 커다란 그물망 주머니에 담고 있던 대형 괴수의 생명 구슬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혼자서 맞서지 마! 세 대 이상 함께 붙으라고!]
루산이 어깨를 물린 채 세르펜스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아이언 워리어 쪽으로 달리며 소리쳤다.
우르사의 대형 철퇴가 그 세르펜스의 목을 후려쳤다.
퍽!
세르펜스의 목이 철퇴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푸에엑!
세르펜스가 입 안으로 들어가고 있던 아이언 워리어를 게워 냈다.
녀석은 성이 나서 밑에서 자신을 공격한 우르사를 깨물기 위해 대가리를 쭉 뻗었다.
우르사는 냉큼 뒤로 물러났고, 비어슨이 방패를 수직으로 세워 막았다.
마침내 세르펜스 한 마리가 대형 철제 방패를 세로로 깨물었다.
전방 상황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1호 조종수가 그 모습을 목격하고 여덟 개 다리를 재게 놀려 마나포와 그 세르펜스의 입이 일직선이 되도록 했다.
“지금이야!”
사수가 격발 장치를 당겼다.
슉-!
뿌연 빛을 뿜어내는 마나 진동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가 세로로 세워진 방패 옆을 지나 세르펜스 입천장에 박혔다.
7미터에 달하는 철제 화살이 비스듬하게 입천장을 뚫고 목뒤까지 삐죽 튀어나왔다.
“잡았다!”
세르펜스가 대가리를 흔들며 요동을 치고,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이 부리나케 자리를 피했다.
마나 진동 화살에 꿰뚫린 세르펜스는 한참 동안 똬리를 틀고 몸을 꼬다 결국 머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쿵!
무시무시한 세르펜스 무리와 멕 나이트, 전투 거미를 이용한 인간들 간의 싸움은 밤새 계속되었다.
탐사 부대 대원들이 타고 있던 멕 나이트 세 대가 팔이 고장 나고 두 대는 가슴 부분을 강하게 물려 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멕 나이트를 잃은 파일럿은 전투 거미에 타고, 나머지는 현장을 정리해.]
루산이 명령을 내렸다.
[생명 구슬은 꺼내도 되겠지?]
비어슨이 물었다.
이왕 피해를 입은 것, 손해를 조금이라도 벌충하기 위해서는 값나가는 부산물을 채취해야 했다.
[적당히 챙겨.]
[알았어!]
마나 농도가 매우 짙은 세르펜스의 혈액은 한 마리당 열 드럼 이상 나올 것 같았지만, 가져갈 수가 없었다.
비어슨은 탐사 부대 파일럿들을 이끌고 세르펜스의 껍질을 벗겨 둘둘 말아 챙기고 생명 구슬을 채취했다.
그러는 동안 루산은 대형 괴수 수스마르를 꿀꺽 삼키고 소화시키느라 반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세르펜스들을 잡으러 갔다.
이 세르펜스들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우르사가 대형 철퇴를 내리칠 때마다 세르펜스들은 대가리가 깨지며 몸을 부르르 떨다가 한참 후 움직임을 멈추었다.
뒤쪽에서 세르펜스의 가장 값비싼 부산물 수거를 마친 탐사 부대 멕 나이트들이 다가와 이쪽 세르펜스의 부산물을 채취했다.
이번에 얻은 세르펜스 생명 구슬은 총 19개.
레오파드 슈퍼 기체 19대를 생산할 수 있으니 상당한 이득을 올린 셈이지만, 루산은 세르펜스를 그만 만나고 싶었다.
이러다가는 타이폰을 만나기도 전에 전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나 진동 화살 회수는 끝났나?]
[회수 마쳤습니다. 그러나 두 발은 세르펜스가 요동칠 때 부러지는 바람에 재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지.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다.]
전장보다 무서운 환경이라 그들은 식사 중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레오파드 간편식으로 빠르게 배를 채웠다.
[시에나와 바이크가 길을 열어. 조금 돌아가더라도 최대한 늪지를 벗어나 마른 땅으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네, 대장님!]
[그리고 이동 중에 전투 거미 승무원들은 교대로 잠을 자고 멕을 잃은 파일럿들도 다른 파일럿과 교대해 줘.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손상이 큰 중고 아이언 워리어 두 대를 물에 잠기지 않은 땅에 기대어 두고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늪지는 넓었고 가는 길은 고단했다.
***
자동차가 대문을 통과해 집으로 들어갔다.
소피아가 얼른 조수석에서 내려 뒷자리의 문을 열었다.
“봄바람이 차갑네.”
아기를 안고 있던 바덴이 중얼거렸다.
“제가 받을까요?”
“아니, 괜찮아요.”
바덴은 아기를 감싼 포대기를 더욱 꽁꽁 싼 뒤 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계단을 올라갈 때 통증이 일었으나 이제 견딜 만했다.
집에는 시어머니가 보내 준, 성품 좋고 경험 많은 유모와 보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자고 있으니까 내가 옆에서 볼게요. 깨면 그때부터 부탁해요.”
“네, 부인.”
소피아와 운전기사가 짐을 들고 들어왔다.
유모와 보모가 그 짐을 아기방에 능숙하게 풀었다.
바덴은 아기를 아기 침대에 눕히고 잠시 들여다 본 뒤 옆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누웠다.
“하아!”
집에 오니 좋았다.
루산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아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쉬움과 허전함은 금방 옅어졌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병원에 있는 며칠 동안 처리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었던 것이다.
바덴은 편한 자세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모두 바덴의 결재가 필요한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지만, 그중에서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슈텐달 지방에 제2공장에 이어 제3공장까지 완공되었습니다.>
피닉스 제철의 슈텐달 남작이 보낸 편지였다.
<제4공장부터 제6공장까지 완공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변경 8구역에 제철소가 있고, 최근에 인수한 브레머 지방의 제철소가 두 개 있으니 그곳 생산 설비 교체 공사가 끝나는 대로 가격 인하를 단행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벌써?”
바덴은 성급하지 않나 싶었다.
아라드 왕국의 철광석은 아직 본격적으로 생산되지 않았고, 부르사 왕국 또한 통일 전쟁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부르사 왕국의 중부 철광석은 아직 철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통일 전쟁 전부터 들여오던 국왕 세력권 철광석 물량이 꾸준히 늘어나 제2공장, 제3공장까지 충분히 가동할 만합니다.>
“아!”
바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더 끌면 다른 제철소들이나 오베론 공단의 제철소에서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우리에게 압박을 가해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결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바덴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도 피닉스 제철에서 생산하는 철강 제품은 다른 제철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다.
제철 공정 효율화 설비를 적용했고, 철광석도 부르사 왕국의 물량이 필센 제국 광산에서 나는 것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인만으로 20퍼센트가량 저렴하게 판매했다.
그럼에도 다른 제철 회사들보다 이익률은 더 높았다.
그런데 운송 요금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 제철소와 가격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오베론 지방까지 열차로 운반하게 되면 오베론 공단에 있는 제철소와 판매 가격이 비슷해진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현재 가격으로도 다른 제철소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인 브레머 지방의 제철소들은 견디지 못해 도산했고, 피닉스 제철이 그것들을 인수했다. 그리고 브레머 지방과 가까운 노바까지는 현재 가격으로도 확실히 경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필센 제국 내 모든 제철소를 압도할 수 있게 가격을 확 낮추기로 한 것이다.
50퍼센트까지 낮추어도 피닉스 제철은 견딜 수 있었다.
그 가격이면 다른 제철소들은 피닉스 제철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다른 제철소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피닉스 제철이 필센 제국의 철강 제품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기가 아니었다.
바덴이 펜을 들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만, 완공된 공장들과 최근 인수한 제철소 두 곳만으로는 필센 제국의 철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가격을 낮추면 괜히 이익률만 떨어지지 않을까요? 차라리 지금 가격으로 유지하는 것이 자금 축적 면에서 더 이로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피닉스 제철의 성장 속도는 놀랍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가면 오히려 다른 제철소나 그 제철소 지분을 가지고 있는 귀족, 그 제철소에 철광석과 석탄을 공급하는 귀족들을 자극하게 됩니다. 피닉스 제철의 생산량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그들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피닉스 제철을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겁니다. 그들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 역습을 준비할 기회를 주는 셈이 되지 않을까요? 결행을 한다면 필센 제국 철강 수요를 대부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시점 즉, 제6공장까지 완공되었을 때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프 마법 연구소의 멕 워커 개발이 완료되고 붐붐 자동차 생산 설비 증설 공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고려하여 피닉스 제철 제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한다면 충격은 배가되겠죠. 지금은 가격을 그대로 하고 그 이익을 쌓아 두시어 그때를 대비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의 적은 강합니다.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말고 한 번에 무찔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강한 역습을 받게 될 겁니다.>
바덴은 편지를 봉인하고 소피아를 불렀다.
“이걸 지금 바로 슈텐달 남작님께 전하고 오세요.”
“네, 사장님.”
“아 참!”
“네?”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 소피아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니까 당장 휴가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몸을 추스르면 길게 휴가를 갔다 와요. 그리고 앞으로도 내 옆에서 더 중요한 일을 맡도록 해요.”
더 중요한 일을 맡으라는 말에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내가 늘 고맙죠.”
소피아가 흥분을 감추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중요한 일을 처리한 바덴은 잠시 아기를 보며 쉬었다.
***
“타이폰은 세르펜스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야. 한 번에 잡지 못하면 우리가 당한다.”
루산의 말에 사냥 팀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히 준비한다! 전투 거미 1호와 2호는 여기서 마나포 발사 준비를 마치고 대기! 비어슨은 마나포 공격이 먹히지 않을 때를 대비해 어떤 함정을 팔 수 있는지 생각해 봐. 탐사 부대 멕 나이트를 데리고 함정을 준비해. 퇴로도 생각하고.”
“알았어.”
“나와 시에나가 숲으로 들어가서 타이폰을 불러낼 거야. 만약 따라잡힐 것 같으면 바이크와 대형 거미가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켜 줘.”
“네!”
“알겠습니다!”
가프 연구소 마법사들까지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대한 폭포 소리에 귀가 먹먹한 가운데에도 그들은 공터 옆 덤불숲에서 결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