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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24화 (324/450)

324. 이제 좀 가자

324. 이제 좀 가자

콰콰콰콰-

천지를 뒤흔드는 폭포 소리에 루산은 선잠에서 퍼뜩 깨어났다.

변경 7구역 웨이브 방어에 투입된 뒤로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어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타이폰을 잡으려 가는 길에 대규모 세르펜스 서식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신경이 더욱 예민해졌다.

자칫하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전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일행이 잠복하고 있는 덤불숲 속에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물가로 갔다.

완전히 노출된 물가가 아닌 덤불에 잠겨 있는 물가.

그곳에서 세수를 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수염을 깎지 않아 산적이 따로 없었다.

아직 얼굴도 본 적 없지만 태어난 아기가 자신을 본다면 반갑게 “아빠!” 하고 불러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기는 아직 말을 못 하나? 그럼 언제부터 말을 하지? 언제 아빠 하고 불러 주지?’

아빠로서의 경험을 전혀 쌓은 적이 없었기에 루산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콰콰콰콰-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의 굉음에 루산은 상념을 털고 일어났다.

그때 자신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탐사 부대 파일럿 하나가 덤불숲을 헤치며 달려왔다.

“전단장님! 타이폰이 나왔습니다!”

루산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가자!”

두 사람은 덤불숲 속을 달려 일행이 잠복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저것이 타이폰!”

초대형 괴수 세 마리가 손에 아름드리나무를 꺾어 들고 폭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먼 옛날, 멕 나이트가 등장하기 전에 변경에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대형 괴수 퐁고, 오랑우탄을 닮은 생김새에 평소에 두 발로 걷고 손에는 다른 괴수의 넓적다리뼈를 들고 휘두르는 퐁고가 가장 먼저 연상되었다.

그러나 퐁고는 성체가 8미터 정도라면 저 멀리 보이는 것은 거리를 감안할 때 20미터도 넘을 것 같았다.

또한 퐁고는 급할 때 두 팔을 앞발처럼 사용해 땅을 짚으며 뛰는 데 반해 타이폰은 신체 구조가 인간에 더욱 가까워 몸을 쭉 펴고 서서 걷기 때문에 팔을 발처럼 사용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퐁고는 넓은 초원과 숲에서 대규모 무리 생활을 하는 데 반해, 타이폰은 - 아직은 알 수 없지만 - 저 크기로 볼 때 퐁고만큼 큰 무리를 짓고 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것은 추측이면서 바람이기도 했다.

손에 아름드리나무를 꺾어 만든 몽둥이를 쥐고 휘두르는 20미터가 넘는 괴수가 퐁고만큼 무리 생활을 한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이폰은, 인간이 넓은 땅을 차지하여 번성하기 전에 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해 온 신화 속 거인처럼 보였다.

이 초대형 괴수의 모습은 직접 보기 전에 이미 루산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숲에서 나온 타이폰들이 넓은 공터를 지나 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용소 가장자리로 발을 담그고 들어간 타이폰들은 아름드리나무 몽둥이로 물을 내리쳤다.

마치 물의 신과 목숨 걸고 싸우는 것처럼 한참 동안 미친 듯이 내리쳤다.

그러다 거대한 물고기를 한 마리씩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아름드리나무 몽둥이는 버리고 물고기를 질질 끌고 나왔다.

어차피 나무 몽둥이는 근처에서 또 꺾으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큰 물고기는 바다에 살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바이크가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커다란 충격을 드러냈다.

“퐁고 절반만 한 하니까 10미터는 되는 건가?”

루산 대신 비어슨이 나직이 바이크의 말을 받았다.

“그 정도 되겠는데?”

“원시의 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비현실적인 광경.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숲에서 크고 작은 타이폰들이 추가로 나타나 거대 물고기를 잡은 타이폰들 주위에 둘러앉았다.

새끼 타이폰들도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바이크가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가족일가?”

“그런가 봐. 어쩌면 부족인지도 모르지.”

비어슨 역시 망원경으로 살펴보다 대답했다.

“아홉?”

“응!”

“숲에 사는 건 저게 전부일까?”

“모르지.”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모른다.

저 숲에 얼마나 많은 타이폰이 사는지를.

타이폰을 유인해 내려고 숲으로 들어간다는 계획 자체가 너무나 무모한 것이 된다.

루산은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마나포로 과연 타이폰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덩치가 크고 무거울수록 덩치와 무게를 버티기 위해 생명체는 뼈와 근육과 피부가 단단해진다.

저 거대한 괴수의 머리뼈, 피부, 근육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두꺼운 강철로 만든 멕 나이트도 관통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도 같지만, 바실리스크나 세르펜스 같은 녀석들도 마나포를 제한적인 조건에서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이폰에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이 항상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지 여부도 매우 중요했다.

셋만 모여 있어도 마나포 재장전 시간을 고려하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괴성을 듣고 숲에서 더 많은 무리가 나타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이쪽이 전멸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녀석들의 습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디선가 공격을 받으면 놀라서 달아날 것인지 아니면 더 강한 공격성을 나타낼 것인지 알지 못했다.

옆에 있는 동족이 덤불숲에서 날아온 마나 진동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에 놀라 달아나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퐁고처럼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며 동족을 불러내고 주변을 뒤져 공격한다면 이쪽은 전멸할 것이다.

루산은 굳이 타이폰의 생명 구슬을 많이 구할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것은 돌진형 멕 나이트 네오 우르사의 시제기 엔진에 필요한 딱 하나.

시제기를 만든 뒤에는 일반형 네오 우르사 엔진을 연구하면 된다.

물론 많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에 만약 타이폰의 생명 구슬을 많이 구해 가게 된다면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는 타이폰의 생명 구슬을 구하는 일이 쉽다고 생각하고 또 구해 달라고 부탁할 것이고, 이 무시무시한 장소 - 타이폰도 타이폰이지만 대규모 세르펜스 서식지를 지나는 일도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 를 다시 와야 하는 것이다.

타이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배회할 때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재빨리 사냥하고 재빨리 생명 구슬만 채취해 달아나는 것이다.

루산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바이크가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장님, 공격합니까?”

루산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바이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

바이크가 루산의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오.”

루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현명한 판단이야.”

“네?”

“기다리자. 좀 더 관찰하고 최적의 기회를 잡자.”

“알겠습니다, 대장님!”

바이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타이폰 사냥대는 덤불숲에서 기다렸다.

다행인 점은 그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덴의 가장 큰 업적은 레오파드 간편식일 거야!’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들은 원시의 땅 깊숙한 곳에서 식사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물론 식사가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지만, 먹을 것을 사냥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사냥 당해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배가 고플 때는 레오파드 간편식을 먹고 졸릴 때는 교대로 자면서 그들은 덤불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타이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충분하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섣불리 숲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타이폰에 대해 몇 가지를 추가로 알아냈다.

주식은 폭포 아래 거대한 용소에 다는 괴어가 맞았다.

타이폰들은 괴어를 잡아 공터에서 함께 먹은 뒤 숲으로 들어갔다.

아주 가끔 세르펜스를 질질 끌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주식으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타이폰 성체의 키가 20미터가 넘는다지만, 세르펜스 또한 체고가 멕 나이트만 하고 길이는 수십 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크기로만 보면 타이폰이 장난감처럼 다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덜 자란 타이폰은 세르펜스가 둘둘 감아 조여서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 자란 타이폰들이 세르펜스를 살아 있는 채로 끌고 오면 덜 자란 타이폰들이 거대한 나무 몽둥이로 세르펜스를 후려쳤다.

세르펜스가 입을 쩍 벌리고 독을 뿜으며 덤벼도 타이폰들은 그에 맞서 아름드리나무로 세르펜스를 계속 두드려 죽였다.

훈련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생존 훈련, 전투 훈련, 사냥 훈련.

“세르펜스의 독에 적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이 주변은 세르펜스들이 가득하니까.”

비어슨의 말에 루산도 동의했다.

세르펜스를 상대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이곳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루산 일행은 덤불숲에서 숨죽인 채 타이폰을 관찰하며 꽤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이 숲에 사는 타이폰은 열 무리가 넘었다. 계속 관찰하다 보니 무리마다 구성이 조금씩 다른 것을 알아챈 것이다.

한 무리의 수는 10마리 안팎이 보통이지만, 많으면 20마리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무리의 수장은 수컷이고, 여러 마리 암컷과 새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수컷 우두머리는 다른 무리의 암컷을 욕심내다 그 무리의 수컷과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패하면 자신의 무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치기도 하지만, 상대 우두머리가 자신의 무리를 가로채 쫓겨나기도 한다.

또한 수컷 새끼가 자라 성체가 되면서 암컷을 욕심내거나 우두머리에게 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기면 그 무리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고 기존의 우두머리는 쫓겨난다.

지면 자신이 쫓겨난다.

무리에서 쫓겨난 우두머리는 숲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광활한 원시의 땅을 혼자 헤매며 살다 쓸쓸히 죽거나 다른 타이폰 무리를 만나 싸움을 걸어 새로운 우두머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추방당한 녀석을 잡아야겠군.”

상처투성이로 공터를 떠나 서식지 숲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타이폰의 외로운 뒷모습을 보며 루산은 그렇게 판단했다.

외톨이가 아닌 무리를 노리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떠나간 녀석을 뒤쫓는 것은 무리였다.

그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고, 무엇보다 공터를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타이폰 무리가 움직이지 않는 한밤중에 루산 일행은 전조등도 켜지 않고 공터를 통과했다.

그리고 그쪽에서 숨어 있을 만한 새로운 덤불숲을 찾아 다시 타이폰 무리를 관찰했다.

“모두 수염이 덥수룩한 걸 보니 나도 수염이 날 것 같아!”

시에나의 투덜거림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그들은 이내 묵묵히 타이폰 감시에 들어갔다.

***

콰콰콰콰-

엄청난 폭포 소리에도 이제 잠을 잘 잘 만큼 내성이 생겼을 무렵 공터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거대한 성체 타이폰들 간의 거친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서로 아름드리나무를 뽑아 휘두르고 집채만 한 바위를 집어던졌다.

신화시대의 싸움 같이 무시무시했다.

그러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서로 붙들고 팔로 후려치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새끼를 안은 어미들은 휩쓸리지 않기 위해 멀찍이 물러났지만, 자신들이 처할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 그 자리를 아예 떠나지는 않았다.

험악한 싸움이 계속되고 마침내 타이폰 한 마리가 피를 질질 흘리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패한 것이다.

승리한 타이폰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패한 타이폰이 구슬피 울며 달아났다.

“온다!”

루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사냥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모두 짜릿한 긴장감을 느끼며 자신이 맡은 일을 해 나갔다.

수염이 덥수룩한 대원들의 눈이 오랜만에 빛났다.

수염이 나지 않은 시에나는 기름이 잔뜩 낀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003에 올라타며 중얼거렸다.

“이제 좀 가자,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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