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나는 이렇게 되지 않겠다
325. 나는 이렇게 되지 않겠다
콰콰콰콰-
거대한 폭포 소리가 약간 작게 들리기는 했어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뽐낼 정도로 타이폰의 숲에서 약간 떨어진 서쪽.
온몸에 피를 질질 흘리는 타이폰 한 마리가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녀석은 무슨 미련이 남는지 걸어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이내 체념한 듯 다시 다리를 절며 고향 숲에서 멀어져 갔다.
그때 밀림 속에서 나무들 사이를 뚫고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타이폰의 왼쪽 뺨에 박혔다.
퓩!
뼈가 워낙 단단하여 얼굴 반대쪽까지 뚫고 나오지는 못하고 왼쪽 턱뼈에 깊이 꽂혔다.
전투 거미 1호에서 발사한 마나 진동 화살이었다.
크아아아아!
갑작스러운 고통에 타이폰이 괴성을 질렀다.
괴성을 지를 때 입이 벌어지면서 더욱 통증이 느껴져 다시 또 괴성을 질렀다.
타이폰은 자신의 뺨을 더듬어 화살대를 잡고 뽑으려 했으나 너무 아파 당길 수가 없었다.
크아아아아!
괴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젠장! 한 방에 끝냈어야 되는데······.”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전투 거미 1호 마나포 사수가 아쉬움을 토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괴수도 뇌가 부서지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뇌를 부수려고 한 것인데, 나무들이 빽빽하여 목표물을 꾸준히 관찰하기 어려운 데다 사선으로 올려 쏘다 보니 조준이 살짝 어긋나 화살이 타이폰의 관자놀이가 아닌 뺨을 뚫은 것이다.
“장전 서둘러!”
조종수가 재촉하지 않아도 파워 아머를 착용한 부사수가 7미터짜리 강철 화살을 들어 마나포에 장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통신기로 루산이 명령이 들려왔다.
[2호! 녀석의 종아리를 맞힐 수 있겠나?]
전투 거미 2호 조종수가 재빨리 대답했다.
[해 보겠습니다! 사수, 종아리를 쏴라!]
전투 거미 2호가 마나포의 사선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민첩하게 움직였다.
2호의 사수는 파워 아머가 없었다.
그래서 장전되어 있는 마나 진동 화살 한 발을 쏘고 나면 무거운 마나 진동 화살을 스스로 다시 장전할 수가 없었다.
이 한 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수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사선 확보! 사수! 종아리 맞혀!”
“알았다!”
사수가 발사각을 빠르게 조정한 다음 마나포 격발 장치를 당겼다.
슈웅!
강력한 마나포의 진동에 전투 거미가 흔들리고, 날아간 마나 진동 화살이 타이폰의 오른쪽 종아리에 빛살처럼 꽂혔다.
츅!
그러나 마나 진동 화살은 뼈를 부수지 못하고 종아리뼈 살짝 바깥쪽 살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
뺨을 꿰뚫고 들어온 화살의 아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새롭게 전해지는 종아리의 통증에 타이폰이 다시 괴성을 지르고, 입을 벌릴 때의 아픔에 다시 눈물이 질질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타이폰은 두 번째 공격을 받고 깨달았다.
이 숲에 자신을 공격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화가 난 타이폰은 근처에 있는 자신의 키만한 나무를 꺾어 들고 커다란 독침이 날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숲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다리를 절면서도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누비며 가지가 무성한 부분으로 주위를 휘휘 저었다.
덤불숲이 쓸리고 낙엽과 잔가지들이 흩어져 날렸다.
그때 전투 거미 1호의 조종수가 통신기로 보고했다.
[1호 장전 끝!]
[저 녀석이 2호가 숨어 있는 숲을 뒤지고 있다. 최대한 근접하여 왼쪽 종아리를 맞히도록!]
[알겠습니다!]
전투 거미 1호가 여덟 개의 다리를 재게 놀려 타이폰 뒤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그때는 타이폰도 이미 두 번의 공격을 받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
멀리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음에도 전투 거미 1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녀석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전투 거미 1호를 발견했다.
우아아아아!
커다란 거미 모양 괴수가 다가오는 것을 목격한 타이폰은 고향 숲에서 쫓겨난 울분, 자신을 공격한 데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며 달려갔다.
뺨에 꽂힌 화살이 나무에 걸리고 종아리가 아팠지만, 분노로 통증도 잊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렸다.
1호 조종수가 당황해 전투 거미를 후진시켰다.
그러나 양자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쏴! 목표, 왼쪽 다리! 명중시켜서 쓰러뜨리란 말이야!”
“젠장, 너무 흔들리잖아! 방향 잡고 멈춰 봐!”
조종수와 사수 간에 고성이 오갔다.
바로 그때 타이폰이 들고 있던 나무를 전투 거미 1호를 향해 던졌다.
20미터가 넘는 나무가 가지 쪽이 앞이 되도록 날아갔다.
잔가지 - 라고 하지만, 하나하나가 건물 기둥보다 굵은 나뭇가지 - 들이 좍 펼쳐진 채 전투 거미를 덮쳤다.
뿌리 쪽이 먼저 날아왔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조종수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옆으로 빼는 바람에 많은 가지에 맞지는 않았지만, 가지 몇 개가 전투 거미를 찔렀다.
전투 거미 1호는 차체가 우그러지고 엄청난 힘에 몇 바퀴 구르며 옆으로 튕겼다.
“으악!”
비명 소리를 들은 타이폰은 확실히 자신을 공격한 녀석들이 있었다고 확인하고 더욱 분노하여 달려갔다.
[1호 위험! 1호 전복!]
근처에서 전투 거미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멕 나이트가 통신기에 대고 소리쳤다.
[전투 거미 보호가 최우선이다! 유인해!]
루산이 우르사를 타고 달려오며 명령했다.
[알았다!]
탐사 부대 소속 아이언 워리어 파일럿은 멕 나이트로도 몇 아름은 되는 거대한 원시의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타이폰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 순간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킨 대검을 힘차게 휘둘러 녀석의 정강이를 찍었다.
쩡!
마니 진동 대검이 타이폰의 정강이를 파고들었다가 강하게 튕겨 나왔다.
끄어어어어!
타이폰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쿵!
그러나 이미 두 차례 공격을 받은 타이폰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을 공격한 적을 곧바로 발견해 발로 차 버렸다.
아이언 워리어는 공처럼 날아가 원시의 나무에 강하게 부딪쳤다가 앞으로 털썩 떨어진 뒤 움직이지 못했다.
타이폰이 일어나 자신의 왼쪽 정강이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뼈가 잘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파일 정도의 공격이라 피가 흘렀다.
타이폰은 고민했다.
꿈틀거리는 거미를 공격할지 쓰러져 있는 신기한 이족 보행 괴수를 공격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 이족 보행 괴수들이 새로이 나타나 뒤집어진 거미를 세우고 달아났다.
거미도 나무들 사이로 함께 달아났다.
타이폰은 움직이지 않는 적을 내버려 두고 새로 나타난 괴수와 거미의 뒤를 쫓았다.
크아아아아!
마나 진동 화살에 꽂힌 종아리가 퉁퉁 붓고 뺨도 점점 부어올랐다.
통증이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가 더욱 심해지는 것도 같았다.
칼에 맞은 왼쪽 정강이도 찌르는 듯 아파 저도 모르게 무릎이 굽혀져 쓰러졌다.
그러나 분노한 타이폰은 계속 적을 쫓아가며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부러진 나뭇가지, 흙덩이, 바위를 던져 기어이 이족 보행 괴수 하나를 다시 또 쓰러뜨렸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짜릿한 희열감에 타이폰은 그 녀석을 밟아 버리기 위해 다가갔다.
아이언 워리언 한 대가 타이폰에 밟히기 직전, 뒤에서 레오파드 라이트닝이 나타나 타이폰의 왼쪽 오금에 마나 진동 투창을 던졌다.
츅!
앞서 겪었던 통증에 비하면 더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다리에 두 번의 부상을 입은 상태이고 쓰러져 있는 멕 나이트를 밟기 위해 오른 다리를 든 상태라 왼쪽 오금에 박히는 마나 진동 투창의 아픔에 타이폰을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크어어어어!
고개를 돌린 타이폰이 흙덩이를 집어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향해 던졌지만, 바이크는 날쌔게 다른 나무 뒤로 숨어 흙덩이 폭풍을 피했다.
왼쪽 뺨이 부풀어 오르던 타이폰은 눈이 점점 흐릿해짐을 느꼈다.
종아리에 꽂힌 마나 진동 화살은 몇 번 쓰러지면서 살을 더 크게 찢어 피가 철철 흘렀다.
왼쪽 정강이는 타이폰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겨울바람처럼 시렸다.
거기에 오금에 박힌 마나 진동 투창은 주저앉을 때 더 깊이 박혔다.
크어어어어!
타이폰은 밀림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때 그 거대한 괴수를 둘러싸고 멕 나이트와 전투 거미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투 거미 1호의 마나포는 타이폰의 공격을 받고 구를 때 포신이 휘는 바람에 작동 불가.
전투 거미 2호에 우르사가 달라붙어 7미터짜리 마나 진동 화살을 장전했다.
크어어어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타이폰이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이번 화살로 끝낸다!’
우르사는 전투 거미 2호를 잡고 들어 올려 직접 마나포 격발 장치를 당겼다.
슈웅!
발사된 마나 진동 화살이 사선으로 날아가 타이폰의 뒷머리에 강하게 박혔다.
주저앉아 고개를 젖히고 울부짖던 거대 괴수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그치더니 그 커다란 몸뚱어리가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쿵!
바닥에 머리를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마나 진동 화살이 타이폰의 앞머리를 뚫고 나왔다.
믿어지지 않는 이 거대 괴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모두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밀림의 동물과 곤충들도 숨을 죽였다.
콰콰콰콰-
멀리서 폭포 소리가 은은히 들려올 뿐이었다.
루산은 신화적인 괴수의 죽음 앞에 저도 모르게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 엄청난 괴수도 죽는구나!’
누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문제였다.
힘이 약한 상태로 도전하거나 힘이 약해져 도전을 받으면 패배하고 무리에서 쫓겨난다.
그렇게 쫓겨나면 이렇게 작은 존재들에게도 집요한 공격을 받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황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베론 공작 또한 누가 뭐라 해도 거인이었다.
이런 상대를 공격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 온 일이 무엇인가?
힘을 기른다고 바덴이 기업을 확장하는 일을 도운 것, 반란을 일으킨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과 구귀족파 기사들을 규합한 것, 변경에서 세력을 키운 것.
물론 엄청난 일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뿐이었다.
거인에게 대항할 만큼 충분한 힘을 길렀느냐고 하면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확실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오베론 공작에 대한 공격을 가해 본 적이 없었다.
황제는 직접적인 원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복수 대상에 포함시킬지 말지 늘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애매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가문의 원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것은 결국 거인에 대한 공격이다.
내가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남아 있는 한, 적을 쓰러뜨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거인들에게 결국 쓰러질 것이다.
죽을 각오로 하늘과 땅을 흔들 정도로 덤비지 않으면 결코 거인을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쫓겨나 비루한 존재들에게 뜯겨 죽을 것이다.
‘오베론 공작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아. 황제나 다른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어찌어찌 거인을 쓰러뜨렸다 해도 자신이 더 강한 거인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거인들이 끊임없이 공격해 와 결국 무리에서 쫓겨나고 비루한 존재들의 집요한 공격에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거인이 되어야 한다!
무리를 강하게 만들고 강력한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
[···대장님!]
[······.]
[대장님!]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제 보고 못 들으셨어요?]
바이크의 목소리가 통신기로 전해졌다.
[생각할 게 있어서······. 말해 봐.]
[네. 부상 7명. 그중 중상이 3명입니다. 전투 거미 1호는 고장이 크게 났는지 움직일 때마다 무척 시끄럽습니다. 아이언 워리어 한 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장 부품이 이탈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무사합니다.]
[사망자가 없는 것이 다행이지. 모두 수고했다. 생명 구슬만 꺼내고 간다.]
[알겠습니다!]
비어슨과 탐사 부대 파일럿들이 타이폰에 달라붙어 생명 구슬 채취 작업을 시작했다.
대형 거미에 타고 있던 마법사들이 다가와 혈액과 모발 샘플을 챙기고 타이폰의 특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타이폰이 인간의 손에 분해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루산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자신은 결코 이 타이폰처럼 되지 않겠다고.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강인한 의지로 강력한 무리를 만들고 강한 우두머리가 되겠노라고!
작업을 마친 루산 일행은 남쪽으로 떠났다.
밀림 속에서 가슴이 절개된 채 죽어 있는 타이폰에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달라붙어 거대한 순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