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우리가 왜 개입해야 하죠?
326. 우리가 왜 개입해야 하죠?
루산 일행은 타이폰의 숲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뒤 동쪽으로 이동해 레이크 시티로 귀환했다.
루산의 전투 거미 두 대와 가프 마법 연구소의 대형 거미의 비밀 유지를 위해 한밤중에 레이크 시티에 있는 레오파드 생산 기지 격납고로 들어왔다.
전투 거미 1호는 상태가 매우 나빴다.
타이폰이 던진 거대한 나무에 맞아 몇 바퀴 구르면서 외양이 심하게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것뿐 아니라 걸을 때마다 심한 소음이 나고 다리 몇 개는 들떠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대형 거미와 전투 거미 2호에 나눠 타고 있던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마법사들이 전투 거미 1호에 달라붙었다.
비어슨이 타이폰과 세르펜스의 생명 구슬 수십 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기와 윤택이 흔히 볼 수 있는 생명 구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산이 지친 대원들에게 말했다.
“이번 타이폰 사냥과 전투 거미 테스트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모두 돌아가서 쉬도록 해요.”
부상을 입지 않은 대원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대장님은요?”
“나는 이야기할 게 있어서. 먼저 가서 쉬어.”
“네.”
바이크와 시에나도 돌아갔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가라로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기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한 달 넘게 행방불명 상태였다는 걸 아십니까?”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군요.”
루산은 멋쩍게 웃으며 간략하게 자신의 이동 경로를 설명해 주었다.
“웨이브 압력을 줄이려고 육식 괴수들을 잡으면서 이동했는데 이미 7구역 본부로 돌아가기는 늦었다고 보고 서쪽으로 계속 갔습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타이폰이나 잡고 오는 게 낫다 싶었죠. 그러다 보니 늦었습니다.”
“타이폰을 잡았다고요?”
루산이 세르펜스 생명 구슬들 옆에 놓여 있는, 어른 머리보다 큰 생명 구슬을 가리켰다.
“오, 이것이······!”
“네, 타이폰의 생명 구슬입니다.”
어차피 가프 마법 연구소 마법사들이 자세히 보고하겠지만, 루산은 미리 못을 박기 위해 타이폰 사냥에 대해 설명했다.
“전투 거미와 멕 나이트가 부서지고 몇 사람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사냥 못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따로 떨어져 나온 타이폰은 마나포만 있으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제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건 정말로 오랫동안 숨죽여 관찰하다가 무리에서 쫓겨난 타이폰 한 마리를 사냥한 거거든요. 타이폰 무리를 공격했다면 우리가 전멸했을 거예요. 멕 나이트는 신장이 타이폰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해요. 마나포는 효과가 있는데, 밀림이라 나무에 가려 사선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타이폰보다 무서운 게 그곳까지 가는 길에 펼쳐져 있는 대규모 늪지대인데, 세르펜스들이 우글거립니다. 거기를 지나다 멕 나이트 두 대가 세르펜스 뱃속으로 들어갈 뻔했어요. 욕심을 내다가는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그러나 타이폰과 세르펜스의 생명 구슬들을 본 가라로슈의 눈은 이미 욕망으로 일렁거렸다.
물론 루산의 판탄을 믿지만, 필요는 언제나 가능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서 타이폰과 세르펜스를 잡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미 필요를 충족했고, 가프 마법 연구소나 변경 8군단이나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변경 7구역의 웨이브 사태가 끝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기사님 덕분에 네오 우르사 시제기 엔진 제작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가라로슈 님 덕에 전설 속 괴수도 보고 전투 거미도 테스트해 보고, 저야 말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차피 가프 연구소 마법사들이 보고하겠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전투 거미의 아쉬운 점 몇 가지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요. 말씀하십시오.”
루산은 마법사들이 둘러싸 찬찬히 살피고 있는 전투 거미 1호로 다가갔다.
“전투 거미에 장착한 발리스타의 자동 재장전 기능은 정말 훌륭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트리지에 20발밖에 넣지 못하는 거예요. 20발이면 많은 것 같지만, 괴수들이 많은 곳에서 발사하다 보면 금방 떨어지더군요. 자동 재장전 화살 수를 늘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은 계속 연구하겠습니다.”
루산은 마나포 쪽으로 이동했다.
“마나포로 쏘는 마나 진동 화살이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싶어요. 7미터가 넘죠?”
“네, 기사님. 살짝 넘어갑니다.”
“무게도 무게인데 너무 기니까 파워 아머를 착용한 부사수도 재장전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어차피 포신이 길어서 화살의 진로를 일정하게 잡아 주고 있는데 굳이 화살까지 길 필요가 있을까요? 짧게 제작한다면 더 많은 화살을 싣고 다닐 수 있고, 재장전 시간도 크게 단축되리라 봅니다.”
“······?”
“······!”
듣고 있던 마법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놀라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이건 발리스타에도 적용될 수 있죠. 어차피 화살이 곧게 뻗어 나갈 길이 길게 파여 있으니 굳이 화살까지 길 필요는 없죠. 길이가 줄어들면 무게가 줄고 파괴력이 감소하겠지만, 대신 속도가 올라가지 않나요? 무게를 줄이기 싫으면 재질을 바꾸면 되고 말입니다. 길이를 줄이면 더 많은 화살을 싣고 다닐 수 있습니다.”
가라로슈는 루산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는 사람에 속했다.
필요는 가능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 필요하다면 연구하고 개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루산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직 꺼내지 않았다.
루산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나 진동 화살의 길이를 줄였을 때의 가장 큰 이점은 멕 나이트로 마나포를 가지고 다니면서 화살을 여러 발 쏠 수 있다는 겁니다.”
“멕 나이트로요?”
“네. 남방군이 사용한 이동식 마나포를 생각해 보세요. 멕 워커 한 대가 마나포를 포대와 함께 짊어지고 다니고, 다른 멕 워커가 마나 진동 화살을 장전합니다. 화살이 길어서 장전이 어렵고 혼자서 많은 화살을 운반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화살의 길이가 짧아진다면 멕 워커보다 키가 큰 멕 워커는 혼자서 마나포와 화살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전이 가능하고 발사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멕 나이트로 마나포를 쏜다? 음!”
“이번에 타이폰을 잡을 때 전투 거미 1호에 탑재한 마나포는 고장이 났고, 전투 거미 2호에는 재장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르사로 2호에 탑재한 마나포에 화살을 장전한 뒤에 전투 거미 차체를 우르사 옆구리에 끼우다시피 하고 마나포를 쏴서 잡았거든요. 굳이 마나포를 전투 거미에 탑재하지 않고 멕 나이트로 들 수 있었다면, 그리고 화살이 짧아 재장전이 쉬웠다면 훨씬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
“멕 나이트끼리 교전이 벌어진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죠. 이쪽은 멕 나이트들이 마나포를 들고 있고 저쪽은 안 들고 있다고 하면 어느 쪽이 유리하겠어요? 가까이 붙기 전에 몇 발씩 쏘고 나서 마나포 던지고 대검을 들고 싸우면 승패는 이미 난 거죠. 워낙 가까이서 쏘니까 명중률도 높겠죠.”
멕 나이트로 발사하는 마나포!
전투 거미는 멕 나이트로 도달할 수 없는 산에 올라 정밀하게 방위와 거리를 계산해서 원거리 포격을 하는 용도라면 멕 나이트는 전장에서 바로 눈앞에 있는 적 멕 나이트를 부수고 전투를 시작하는 용도라는 것.
거리가 가까우니 위력도 강력하고 명중률도 높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겠군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기사님! 마나포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라로슈 님.”
얼마 뒤 가프 마법 연구소는 8족 반구형 산악 운반차 - 대형 거미 - 를 제작하는 마법 연구소와 마나포를 생산하는 마법 연구소를 하나씩 인수했다.
대형 거미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어서 이것을 제작하는 마법 연구소를 인수하기가 쉬웠으나 마나포는 이번 전쟁에서 급부상하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프 연구소는 전쟁이 곧 끝나가고 있다는 점과 해당 연구소의 마법사들에게도 가프 연구소의 기술을 동등하게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해 합병을 이끌어 냈다.
어차피 가프 마법 연구소는 규모가 계속 커지는 바람에 마법사들이 많이 필요했기에 인력을 충당한다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가프 마법 연구소는 루산이 제안한 전투 거미와 멕 나이트 용 마나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네오 우르사 엔진 개발도 곧바로 착수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우르사, 아트라스, 기가스, 블랙 드래곤을 비롯하여 오카수스 대륙과 아우로라 대륙에서 제작된 거의 모든 멕 나이트를 분해하고 연구하여 자료는 충분히 축적해 놓은 상태였다.
바르나 왕국 대첩으로 필센 제국이 승기를 잡았다지만,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점령지는 더욱 확대되었기에 가프 마법 연구소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레오파드 생산 물량을 꾸준히 늘려 나갔고, 마나 연료와 윤활유 그리고 멕 나이트 소모품도 만들자마자 팔려 나갔다.
이 어마어마한 수입으로 계속해서 덩치를 불리며 새로운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는 가프 마법 연구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가라로슈와 소속 마법사들도 알지 못했다.
***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물론 우리 부장님이 괴수에 당할 분은 아니란 걸 알지만, 워낙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니······.”
율리안의 말에서 진심이 전해져 루산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루산은 서쪽으로 갔다가 죽 돌아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는 율리안에게 사과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랬군요!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회포를 풀고 나서 루산은 7구역 웨이브 사태 이후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오는 길에 가프 연구소에서 들으니 그동안 엄청난 수의 괴수를 잡았다고요?”
“맞습니다. 우리 2전단도 엄청난 양의 괴수 부산물을 매일 열차로 보내오고 있어요.”
“그리고 이제 괴수들이 서서히 서쪽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스런 일이죠.”
“그와 관련해서 7구역 통치자에게 제안할 일이 있는데, 율리안 님이 같이 가서 설득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요?”
“7구역 재건에 대해서입니다. 향후 웨이브 대처 문제를 포함하여 개척촌과 개척 도시 건설, 운영 방법을 총체적으로 다시 설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7구역 재건 계획을 설득한다?
율리안은 8구역도 아닌 7구역 재건 계획을 왜 설득하자고 하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름 아닌 루산의 이야기라 귀 기울여 들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번 웨이브는 해마다 그 규모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봄 홍수에 맞춰 매년 발생하는 웨이브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7구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기존에 해 오던 대로 대규모로 이동해 오는 괴수들을 무조건 때려잡아 왔으나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괴수를 많이 잡을 경우 당장은 수입은 올라가지만, 괴수 부산물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다음 해에 웨이브가 발생하지 않거나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봄 홍수에 맞춰 찾아오는 괴수들이 수위가 낮아지면 돌아가는 습성을 이용해 7구역으로 몰려와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고 적절한 수를 사냥하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는 괴수들을 쫓아 보낸다.
두어 달 정도 엄청난 수의 괴수들이 땅을 헤집고 똥을 싸 7구역 전체가 비옥해질 것이다.
“기존 개척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주민들은 높고 튼튼한 성벽 안에 거주하도록 하고, 공장과 각종 생활 시설도 성 안에 두어야죠. 목장도 별도의 성 안에 따로 관리해야 합니다. 웨이브 철에는 모든 가축을 거기로 옮겼다가 웨이브가 끝나면 방목하는 방식이 되겠죠.”
루산이 아이디어를 계속 쏟아 냈다.
“7구역은 넓고 주민이 많으니 인간이 거주하는 성이 곳곳에 들어설 겁니다. 웨이브 철이 되면 7구역 안쪽 성은 고립되겠죠. 그러면 사람은 불안해하고 이 정책은 실패합니다. 고립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없애야 합니다. 바로 고가 도로로 성과 성을 잇는 겁니다.”
“고가 도로요?”
“네. 괴수가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다리를 허공에 놓는 거죠. 이것의 장점은 성과 성을 이어 주민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 외에도 많습니다. 바로 관광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변경 투어 생각나십니까?”
“그럼요! 전쟁 전까지만 해도 톡톡히 수입을 올렸지요.”
“맞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되다시피 했지요. 그리고 8구역에서는 이제 괴수를 발견하려면 원시의 땅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7구역에서는 매년 안전하게 높은 성벽 위에서, 고가 도로 위에서 괴수들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관광 자원.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겠지만, 괴수를 구경할 수 있는 여행은 엄청난 수입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율리안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괴수들이 두어 달 뛰어놀아 엉망이 된 농지는 고슬라 그룹의 농업 회사에서 수백 대의 기계를 투입해 빠르게 정리해 줄 것입니다. 가축을 방목할 목장의 울타리도 멕 워커 수백 대를 투입해 신속하게 만들 수 있죠. 7구역은 전보다 훨씬 안전해 지고, 괴수 부산물 수입도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농업 생산량도 더욱 늘어나고, 변경 투어로 높은 관광 수입을 올리게 되는 겁니다.”
개척 정책을 바꾸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미 7구역은 넓습니다. 굳이 더 확장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멕 나이트도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찰과 괴수 퇴치에 필요한 수준만 확보하면 됩니다. 웨이브에 저지선이 뚫릴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민들은 안전한 성 안에 거주하니까요.”
“정말 획기적인 변경 정책이군요!”
율리안이 감탄했다.
역시 루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왜 7구역 변경 정책에 개입해야 하죠? 7구역과 제국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8구역 통치자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