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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30화 (330/450)

330.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크게

330.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크게

바덴이 다시 정상적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루산은 키스로 바덴을 보낸 뒤 오전에 레오나와 놀다 유모에게 맡기고 점심 때 자동차를 타고 외출했다.

대학로 노천카페 거리에 도착한 그는 어느새 잎이 무성히 자란 가로수 아래에서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신문을 보고 있던 스텐커를 만났다.

“스텐커 씨, 잘 지냈습니까?”

“오셨습니까, 기사님. 저야 잘 지내지요. 기사님은 어떠십니까?”

“아기랑 놀고 있는데 쉬운 일이 아니네요.”

“허허허, 그렇죠. 잠깐 볼 때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데 계속 보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말도 못 하고 일어나 앉지도 못 하니까 할 게 없어요.”

“그래도 금방입니다, 기사님. 그때가 제일 예쁘지요. 더 커서 말 안 듣기 시작하면 아휴, 말도 못 해요.”

자식을 다 키우고 결혼까지 시킨 스텐커의 마음을 루산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육아 이야기를 나누니 왠지 더 친밀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육아 이야기나 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루산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째 황자 막심 전하와 오베론 공작이 충돌한 것 같아요.”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스텐커가 루산을 쳐다보았다.

루산은 바덴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러 관료들이 보는 앞에서 자존심 대결을 하게 되었으니 이대로 물러나기는 어렵겠지만, 사실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둘 다 적당히 물러나면 끝날 문제죠.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고.”

둘째 황자는 이 나라에 현존하는 최고 귀족이자 재상을 다른 관료들 앞에서 모욕한 셈이고, 오베론 공작 또한 국가사업에서 과도한 사리를 챙긴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문제를 일으켰으니 조금씩 물러나 서로 조심하고 사과하면 뒬 문제였다.

“그렇겠지요. 목숨 걸고 싸울 사이가 아니니까요.”

“막심 황자가 신중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예상보다 일이 훨씬 커졌다고 생각하면 적당히 무마하고 물러나면 됩니다. 설마 오베론 공작이 황자에게 기어이 사과를 받아 내겠다고 난리를 치고 다닐 리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공작이 황자를 상대로 싸움을 길게 가져가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그냥저냥 넘어가는 것은 좀 아깝단 말이에요.”

눈치 빠른 스텐커가 귀를 쫑긋 세웠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막심 황자가 오베론 공작을 더욱 날카롭게 찔러 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을 말리고 야단칠 황제가 없잖아요. 이 틈에 더 아프게 공격해 오베론 공작과 막심 황자 사이가 크게 벌어지면 결국 황제도 자기 아들과 드잡이한 오베론 공작을 언제까지 품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결국 황제와도 사이가 벌어지게 될 테죠. 혹시 그럴 만한 사안이 없을까요?”

“막심 황자가 오베론 공작을 공격할 만한 건수 말씀이시지요?”

“그렇죠. 반란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안 됩니다. 그건 황제와 공작이 한 편이라서 아무리 아들이라도 황제는 공작 편을 들 거예요. 그거 말고 다른 걸로, 공작이 아프다고 생각할 만한 거 말이에요. 아파서 참지 못하고 황자를 들이받거나 아니면 들이받지도 못하게 치명적인 것이어서 당하자마자 쓰러질 만한 내용, 그런 거 없을까요?”

“음!”

스텐커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때 카페 점원이 다가와 음식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드세요.”

“네, 기사님.”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오베론 공작에 대한 정보들을 떠올려 보았다.

루트가 작성한 기록을 확보하고 있기에 그들만큼 오베론 공작 가문의 치부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중요한 내용부터 사소한 가십에 불과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이 없다는 것이다.

증거나 증인은 예전에 오베론 공작의 심복 노릇을 하던 울름 남작이 모두 처리해서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다 해도 현재 오베론 공작의 가신이거나 그 일을 처리한 부하라서 공작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증거 없는 공격은 강력한 역풍을 맞게 된다.

“이건 어떻습니까, 기사님?”

“어떤 거 말입니까?”

“전에 공업 은행장, 상업 은행장, 재무대신을 낙마시킬 때 사용한 장부가 있지 않습니까?”

반란 사건이 일어난 뒤에 루산은 오베론 공작을 만나 사기를 당한 가문들이 입은 피해 금액을 돌려받았다.

반란 사건의 배경이 부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베론 공작이 돈을 주고 무마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베론 가문이라 해도 당장 12가문에게 막대한 금액을 돌려주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공업 은행, 상업 은행을 끼고 다시 그 자금을 불법적으로 회수하려 했다.

그때 스텐커가 그리마를 동원해 공업 은행장과 상업 은행장의 비리 장부를 압수하는 등 증거를 수집해 바덴을 통해 상무대신에게 제공하여 두 은행장을 감옥으로 보내고 재무대신을 낙마시킴으로써 피해 가문이 다시 사기를 당하는 일을 막고 오베론 공작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그건 한 번 써먹어서 안 될 것 같아요. 황제가 은행 감독 권한을 상무대신에게 넘기는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오베론 공작의 여자 문제는 어떻습니까? 최근에도 드나드는 살롱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훈장처럼 생각할걸요.”

두 사람은 다시 식사를 했다.

달그락달그락 식기 소리와 바람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는 나뭇잎을 비비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로는 계속 적당한 사건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오베론 공작 같은 강력한 귀족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반란 사건과 관련된 내용으로는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는 제약이 가정 큰 걸림돌이었다.

증인 - 남방군 출신 파일럿과 구귀족파 기사들 - 은 너무나 많은데 이들은 드러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문제는 공작과 황제가 한패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스텐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오베론 공작은 재상이 되기 전에는 오베론 지방을 다스리고 남방군 사령관으로 지내고 있었기에 딱히 비위나 부정 같은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란 유도가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나머지는 자잘한 것들입니다.”

“그렇죠.”

“재상이 되고 나서는 수도에 머물며 나랏일을 한 게 전부라서 반란 유도 건만큼 파급력을 가질 만한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정부 청사로 출근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벌이겠습니까?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 같은 굵직굵직한 국가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겠지요.”

다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루산이 이런 생각을 하며 스텐커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결국은 오베론 공작 당사자를 털어 봐야 나올 게 없다는 겁니다. 가까운 사람을 털어야죠.”

“가까운 사람?”

“자식!”

“자식?”

아들은 둘이다.

첫째 아들 바트는 남방군을 지휘해 아우로라 대륙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 루트는 아버지를 보필해 오베론 지방을 챙기고 수도에서 공작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고 있었다.

“우리는 루트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문의 재산을 몰래 빼돌려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루트가 활약하면 할수록 결국 오베론 가문을 분열시킨다는 생각으로 내버려 두고 있지요. 이 사실을 공작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모릅니다.”

“계속해 보세요.”

“네.”

스텐커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차 밀수는 불법 아닙니까? 그 배후에 루트가 있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배후가 루트인지 오베론 공작인지 알게 뭡니까? 당연히 오베론 공작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루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 밀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우로라 연합으로 필센 제국의 자금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푸라 왕국에서 나는 차를 금수품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필센 제국의 대표 귀족이자 관료들의 정점에 있는 재상 오베론 공작이 차 밀수로 돈을 벌고 있다?

이것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자 나라의 명운을 거는 전쟁에서 홀로 사익을 취하려는 행위이므로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은 몰랐다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상당히 치명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그렇겠어요.”

“사채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를랑겐 쇼핑 거리 인수에 실패한 뒤 다른 백화점과 쇼핑 거리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해 왔는데, 그 과정이 매우 질이 안 좋습니다. 대전쟁 기간에 장사가 안 돼 빚을 많이 진 상점과 사업체들에 사채를 주고 사업체나 상점을 헐값에 인수해서 노바 알짜 상가를 다 주워 담고 있어요. 돈독이 오른 사업가가 이런 짓을 했다면 욕을 시원하게 먹고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을 민생을 살펴야 하는 재상이 한다? 욕먹는 걸로 그칠 수가 없죠.”

“역시 재상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강변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노바의 유흥가도 데사우로 형제가 거의 장악한 상황입니다. 압도적인 자금력과 든든한 뒷배가 있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던 유흥가도 페르보 제국에 대승을 거둔 뒤로 다시 흥청거리고 있죠. 돈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재상이 한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 겁니다.”

루산은 강하게 느낌이 왔다.

‘이건 통한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복수심에 불타 있던 루트 오베론을 풀어 주었다.

그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오베론 가문이라는 단단한 지반에 구멍을 내고 기둥을 흔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의 손을 빌려 복수를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풀어 나갈 줄은 몰랐다.

루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동원하여 루트 오베론의 사업 현황을 파악하고 그중 폭력, 협박, 사기, 살인 등의 불법이 개입한 부분이 있으면 증거까지 수집해 놓으세요. 그리고 루트가 대놓고 자기 이름으로 사업체를 꾸려 놓지는 않았을 테니 인수한 사업체나 부동산의 명의자와 루트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파악해 놓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기사님!”

“그리마 씨는 아직도 경찰에 몸담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루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스텐커가 알아서 그리마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두 사람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루산은 퇴근한 바덴에게 스텐커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덴이 한참 동안 생각하다 침착하게 말했다.

“이 일은 처음부터 큰 것을 터뜨리지 말고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크게 쌓아 나가는 게 낫겠어요.”

“무슨 말이죠?”

“처음부터 큰 것을 터뜨렸는데 강력한 권력으로 막아 버리면 작은 것은 효과가 사라지니까요. 처음에는 작은 일이지만, 캐면 캘수록 일이 점점 커지게 하는 거죠. 그러면 제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감당을 못 할 거예요.”

바덴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처음에는 오베론 공작을 등장시키지 말고, 루트도 언급하지 말아야 해요. 그저 어느 술집을 둘러싼 폭력배들 간의 이권 다툼에 대한 기사를 내는 거죠. 그다음에, 어느 폭력 조직이 노바의 유흥가를 점점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거예요. 반박할 수 없는 범죄의 증거들과 함께. 그러다 그 배후에 모종의 세력이 개입해 있고, 붙잡힌 폭력배의 진술 중에 루트가 언급되는 거예요.”

“아!”

“그런데 루트의 사업은 유흥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던 거죠. 사채로 빚을 지워 노바의 상가와 사업체들을 다 가로챈 거예요. 그들의 사업 방식, 불법의 증거들, 그동안 획득한 사업체의 수와 규모, 이런 것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죠.”

“반박과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렇죠. 그러다 마지막에 차 밀수 사건을 터뜨리면, 그 사안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동안 쌓인 게 워낙 많으니 막거나 무마시키는 게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거죠.”

작은 것부터 큰 것으로, 배후가 누군지 궁금해지도록 해야 한다.

“처음부터 오베론 공작이나 루트를 등장시키면 신문사에서 아예 취급을 안 할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사소한 기사가 눈덩이처럼 점점 크게 굴러간다면 신문사도 함께 굴러가며 더욱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낼 거예요.”

“신문이라······.”

“오베론 공작을 이기려면 여론을 등에 업어야죠.”

바덴은 신문을 이용하여 변경 이미지 개선, 개척민 모집, 비리 고발, 사기 피해 귀족 가문들의 사연 노출, 제품 광고 등을 해 왔고 늘 성과를 거두었다.

신문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될 것 같아요! 스텐커 씨가 구체적인 사건을 가져오면 곧바로 상무대신을 만나고 기자들을 접촉해 볼게요.”

확신에 찬 바덴의 말을 들으니 루산은 더욱 용기가 났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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