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이 땅의 백성도 짐의 백성이다
331. 이 땅의 백성도 짐의 백성이다
부르가스.
아우로라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지방.
1차 대전쟁 기간에 필센 제국군의 교두보 역할을 하다 점차 영역이 확대되고 전쟁이 끝난 뒤 공식적으로 필센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지 어언 40년이 지난 필센 제국의 대표적인 해외 영토.
2차 대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국경에서 영역을 계속 확장하려는 필센 제국의 동방군과 필센 제국의 확장을 저지하려는 아우로라 연합과의 국지전이 끊이지 않던 필센 제국의 최전선.
아우로라 연합으로서는 입 안에 박힌 가시 같은 그 땅에 프리드리히 황제가 근위대 멕 나이트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상륙했다.
열렬히 환호하는 장병들과 부르가스 백성들에게 프리드리히 황제가 확성기로 짧게 연설했다.
- 짐이 젊음을 바친 이 땅에 다시 오니 좋구나!
와아아아아!
- 이제 부르가스는 필센 제국의 최전선이 아니다! 부르가스의 백성들과 필센 제국 장병들이 이 땅을 지켜 내고 적을 물리쳐 더 많은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와아아아아!
- 이제 짐은 그대들과 함께 아우로라 대륙 전역을 지배할 것이다! 그대들로 인해 필센 제국의 영광은 영원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프리드리히 황제 만세!
필센 제국 만세!
와아아아아!
장병들과 백성들의 환호에 대지가 떠나갈 듯했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연설 장면과 연설 내용은 본국 신문은 물론 전선 장병들과 아우로라 연합 국가들에까지 널리 퍼졌다.
이후 황제는 동방군의 진군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점령군과 수송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현지 백성들을 위로했다.
동방군이 아우로라 연합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바르나 왕국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황폐해진 땅과 폐허가 된 수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군용 비상식량 있지?”
“예, 폐하! 레오파드 간편식이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나눠 주어라.”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바르나 왕국에 긴급 구호물자를 보내도록 하라! 굶어 죽는 백성들이 나와서는 아니 될 것이야. 전쟁은 무도한 통치자들이 결정했는데 왜 애꿎은 백성들이 이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프리드리히 황제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이 땅의 백성도 짐의 백성이다! 똑같이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통치에 최선을 다하라. 구호물자뿐 아니라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농경지를 다시 일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야!”
“예, 폐하!”
프리드리히 황제가 폐허가 된 라브나와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무너진 건물 옆에서 헐벗은 아이들에게 간편식 레오파드를 나눠 주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과 바르나 왕국에서 선포한 내용이 신문에 크게 실려 필센 제국 본국과 아우로라 대륙 전역에 퍼졌다.
그 기사를 본 바덴은 당초 월 200만 개 생산이 목표였던 반달 식품의 레오파드 간편식 생산량을 800만 개로 늘리고, 밀을 비롯한 식량과 각종 식품 생산 설비를 네 배로 증설하도록 지시했다.
프리드리히 황제가 아우로라 대륙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아우로라 연합에 속한 나라의 외교관들도 속속 찾아왔다.
프리드리히 황제는 단호했다.
“필센 제국과 오카수스 대륙의 동맹국들을 선제공격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페르보, 루산, 시바스, 이 세 나라는 무조건적인 항복 외에 다른 길이 없소! 백성들을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통치자와 전쟁 책임자들에게 베풀 관용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러나 이 세 나라 외의 다른 나라 사신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했다.
“강대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없는 나라들을 저 세 나라와 똑같이 대할 수는 없지요. 서둘러 아우로라 연합에서 탈퇴하고 전쟁을 벌인 데 대한 일정한 책임을 지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인다면 필센 제국과 평화로운 공존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군의 장군들에게 짐의 명령이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말이오.”
페르보, 루한, 시바스, 이 세 나라의 외교관들은 이곳에서 마주친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절절히 호소했다.
“필센 황제의 책략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 세 나라가 없으면 다른 나라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필센 제국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더욱 힘을 합쳐야 해요!”
“맞는 말이오! 각 나라에 남아 있는 병력을 모두 끌어모으면 우리는 충분히 적을 물리칠 수 있소!”
그러나 이미 오카수스 대륙에서 패해 물러나고, 아우로라 대륙에서도 모든 전선에서 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르나 왕국에서 대패한 터라 작은 나라들은 세 나라의 호소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르보 제국은 이미 국토의 3분의 1이 필센 제국군에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무슨 힘으로 더 저항한단 말입니까?”
“우리한테 남은 전력이 있다고 보시오? 이미 우리도 보낼 수 있는 병력은 모두 연합군에 보냈어요. 그 결과가 이것이란 말이오!”
그들이라고 필센 제국 황제의 약속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지만, 바르나 왕국의 참상과 페르보 제국의 침몰을 지켜보면서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나라의 외교관들은 네 개 방면군으로 나누어진 필센 제국군이 자국을 덮치기 전에 정전 협정을 맺고 살아남기 위해 프리드리히 황제를 따라온 외교부 관리들과 구체적인 협정 내용을 조율해 나갔다.
그 와중에도 프리드리히 황제는 동쪽으로 이동을 계속해서 마침내 페르보 제국 국경을 통과해 동방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라이네 후작과 사령부 장병들이 도열하여 황제를 맞이했다.
동방군의 멕 나이트는 수많은 전투로 손상을 입고 임시 정비소에서 수리를 거쳐 여기저기 우그러진 곳이 많았다.
반면 황제를 호위하고 온 근위대의 멕 나이트는 황제의 존엄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닦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모습을 보고 황제가 자신의 옆에 붙어서 수행하는 라이네 후작에게 말했다.
“깨끗하고 윤기 나는 근위대 멕 나이트보다 긁히고 찌그러진 동방군의 멕 나이트가 더 멋지구먼!”
“감사합니다, 폐하!”
두 사람 다 부대별 특성을 모를 리 없지만, 그만큼 최전선에서 활약한 동방군을 칭찬하는 말이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위대도 실전 맛도 좀 볼 겸 여기서 굴려 보는 게 어떻소?”
“어차피 순환 근무를 하지 않습니까?”
“전쟁이 발발한 이후 순환 근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합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급한 전장에서 파일럿들 순환 근무 편성이나 짜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근위대에서 신입 파일럿을 뽑으면서 기존의 파일럿들 가운데 일부를 전장으로 내보내는 것이 요즘 순환 근무의 전부였다.
“더불어 장병들 휴가도 주고 말이오. 가능하겠소?”
황제는 순환 근무를 빌미로 근위대에도 실전 경험을 충분히 시켜 강한 부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 군 전체를 순환시켜 장병들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휴가라니, 자칫 무모해 보이지만,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적과 아군 모두에 알림으로써 적을 절망에 빠뜨리고 아군에게는 여유와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4년 넘게 집에 가 보지 못한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효과도 물론 감안한 조치였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휴가 장병이 여기서 부르가스 항까지 육로로 이동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필센 제국에 도착하고, 다시 육로로 고향 집에 가는 데는 최소 한 달이 소요될 겁니다. 이동에만 왕복 두 달이 걸리는 셈이지요. 게다가 이왕 휴가를 주었으니 하루 이틀만 머물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최소 열흘 이상은 주겠지요. 게다가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휴가비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가로빠지는 병력을 대체하고 그에 드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폐하.”
“맞는 말이오. 그런데 우리 병력은 점점 늘어 2백만이 될 것이오. 이 넓은 대륙을 다스리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문제는,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해도 전쟁이 언제 끝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병들을 계속 붙들어 두는 것은 사기 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겠소? 전쟁 시작부터 싸워 온 장병들부터 휴가를 보내도록 합시다. 군무부에서도 일선에서 전력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할 것이오.”
황제가 열심히 설득했으나 평생을 동방에서 적과 싸워 온 라이네 후작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제는 화를 내지 않고 군부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이 고집 센 사령관을 더욱 설득했다.
“이 전쟁이 벌써 4년이 넘어 5년 차요. 페르보, 루산, 시바스를 굴복시킨다 해도 점령군이 계속 주둔해야 할 것이고, 이 세 나라 외에도 다른 나라와 계속 싸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속된 전쟁은 백성들에게 피로감을 줄 것이오. 장병들이 휴가를 가 줘야 백성들이 생생한 승리 소식을 듣게 되고 안심을 하게 된단 말이오.”
군사적으로는 위험한 일이지만 통치를 생각하는 황제로서는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노장은 그제야 황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런데 듣자 하니 아우로라 대륙 점령지의 백성들을 보살피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라 하셨다던데 장병들 휴가까지 보낼 여력이 있으신지요? 저야 전쟁만 수행하면 되는 처지입니다만, 과연 국고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황제가 웃으며 노장의 염려를 덜어 주었다.
“점령지의 재물이 다 우리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오?”
워낙 짧은 대답이라 라이네 후작은 그 뜻을 온전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걱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필센 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는 선황인 이반 황제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짧은 대화로 충분히 느낀 것이다.
“더욱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폐하!”
“고마운 말씀이오.”
그 순간 라이네 후작은 죄수 부대 파일럿이 떠올랐다.
이토록 현명하고 사려 깊은 황제라면 얼마 남지 않은 구귀족파 기사들을 충분히 용서해 줄 것 같았다.
“폐하, 죄수 부대 파일럿들이 비록 죽을죄를 짓기는 했으나 그동안 여러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대다수가 죽음으로 죄를 씻고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사면을 해 주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 순간 황제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라이네 후작은 고개를 조아리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황제가 말했다.
“사면하겠소.”
라이네 후작이 황제의 너그러움에 감동하여 말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러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복무를 해제시킬 수는 없소. 이제 죄수 부대가 아닌 동방군 파일럿으로 동등하게 대하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황제는 불쾌감을 감추고 라이네 후작을 치하한 뒤 동방군 사령부 장병들 앞에서 교대로 휴가를 주겠다고 공표했다.
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함성이 페르보 제국 땅 동방군 사령부 주둔지를 뒤흔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황제가 장병들에게 휴가를 약속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자식과 가족을 군대에 보낸 필센 제국의 백성들이 특히 이 소식에 기뻐하며 황제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바덴은 보헨 지역에 건설하고 있는 놀이공원 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지시하고, 휴가 장병에게 무료 이용권을 주는 문제를 군무부와 협의해 이용권 절반은 놀이공원 측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을 군무부에서 부담하는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놀이공원 광고 문제로 신문사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바덴은 은근히 기사 하나를 부탁했다.
“술집에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폭력배들이 다시 극성이라고 하더군요. 이권 문제로 폭력배들의 칼부림이 종종 일어나서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해요.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요.”
신문사들에 있어 바덴은 큰손 중의 큰손이었다.
사업가들 중에 신문 광고를 바덴만큼 효율적이고 예술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바덴과 일을 해 왔기에 신문사 고위 관계자들은 그 의도를 충분이 이해했다.
게다가 부정한 부탁도 아니었다.
이런 범죄를 근절하는 것은 사회의 안전에도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담당 취재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바 경찰청 형사국에서 다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유념하겠습니다.”
그들은 바덴과 체결한 계약서를 만족스럽게 가지고 돌아가서 곧바로 담당 기자를 불러 지시를 했다.
기자들은 노바 경찰청 형사국으로 갔다.
경찰청장이 교체되면서 대대적으로 인사이동이 있을 때 스텐커의 조언에 따라 암흑가 조직원들을 잔뜩 잡아넣은 공로로 작년에 수사과장에서 형사국장으로 승진한 그리마가 기자들에게 유흥가 폭력 사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