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돌이킬 수 없습니다
332. 돌이킬 수 없습니다
노바 유흥가에서 벌어진 암흑가 조직원들 사이의 폭력 사태에 대한 기사는 여러 신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실렸지만, 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면에 실린 것도 아니고, 기사 내용이 긴 것도 아니었다.
인구가 많은 필센 제국의 수도 노바에서 벌이질 수 있는 많은 사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평범한 사람은 엮일 일이 거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발성 기사인 줄 알았던 그 기사가 단발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유흥가 이권을 둘러싼 폭력 사태의 건수, 피해 상황, 세력 판도의 변화 등 더욱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이 새로이 등장하고, 그 이권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자 사람들이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데사우로 형제라는 이름을 내건 특집 기사가 나왔다.
그들이 벌인 끔찍한 범죄, 무너뜨리고 흡수한 조직들, 현재 장악하고 있는 구역, 그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대한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실렸다.
암흑가 폭력 조직에 대한 노바 시민들의 호기심과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어 갔다.
바덴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상무대신에게 만남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자주 만나던 노천카페 거리에서 만났다.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였지만, 나무 그늘 아래는 제법 선선했다.
상무대신은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둘째 황자와 재상 간의 갈등에 대한 해법 - 자신에게 유리한 해법 - 을 모색하느라 그 사이 더 늙어 보였다.
두 사람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에 주문한 차가 나오고 점원이 돌아가자 바덴이 신문을 접어 상무대신에게 보여 주었다.
“노바의 밤을 지배하는 데사우로 형제?”
상무대신이 제목을 읽고는 바덴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 기사를 왜 보여 주느냐는 눈빛이었다.
“이 기사를 보셨습니까?”
“요새 종종 신문에 오르내리는 폭력배들 아니오?”
“그렇습니다.”
“들어는 봤지요. 노바 암흑가를 거의 장악했다고 하더군요. 이권도 어마어마하고······. 내무대신이 요새 이 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요. 나도 무관한 건 아니지만, 전적으로 내무부와 경찰의 일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이 기사를 왜 보여 주는 겁니까?”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막심 황자께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데사우로 형제에 대한 기사와 막심 황자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상무대신은 얼른 떠오르지 않아 바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바덴이 자세히 설명했다.
“막심 황자께서 오베론 공작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둘 다 살짝 물러나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둘 다 승자도 아니고 패자도 아닌 상태로 봉합하는 것이죠.”
“아, 기억이 납니다.”
“자존심은 약간 상하겠지만, 누구도 치명상을 입지는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맞아요. 그 말씀을 올리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많은 관리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막심 전하께서는 차마 그렇게 넘길 수는 없으신 모양입니다.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검증을 지시하셨고, 검증단 구성 문제가 정부 관리들의 기피로 잘 이루어지지 않자 황궁 관리들을 투입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황궁 관리들이라고 이 민감한 문제에서 마냥 막심 전하 편을 들 수 있겠어요?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두 번째 방법으로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보다 더 치명적인 사안으로 오베론 공작을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재개발 사업에서 이권을 챙기는 정도로는 오베론 공작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그랬지요! 그게 이 기사와 관련 있다는 것이오?”
“네!”
상무대신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바덴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을 택했다면 물러설 여지가 있지만,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순간, 막심 전하는 물러서면 안 됩니다. 오베론 공작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공격이거든요. 오베론 공작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죽기 살기로 싸울 거고 어떻게든 역습을 가하려 하겠죠.”
상무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이후 공작에 대한 공세를 늦추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더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끝장을 봐야 해요.”
“알았으니 말해 보세요.”
상무대신이 바덴을 재촉했다.
바덴이 찻잔을 들어 살짝 한 모금을 마신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암흑가 폭력배들 생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사가 주먹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돈과 권력이죠.”
“돈과 권력?”
“네. 단기간에 이렇게 세력을 확장하고 유흥가 상권을 다 차지한 일이 주먹만으로 가능했겠어요? 다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 텐데 말이에요. 데사우로 형제의 세력과 맞서 싸우다 쓰러진 세력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돈에 굴복했겠죠.”
“돈으로 확장한 것이다?”
“네, 그래서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알아봤더니 놀라운 이름이 등장하는 거예요.”
상무대신이 목소리를 낮추고 몸을 바덴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누굽니까?”
“루트 오베론과 마젠스 자작입니다.”
“루트 오베론이라면 오베론 공작의 둘째?”
“네. 마젠스 자작 역시 오베론 공작의 가신이죠.”
마젠스 자작이 오베론 공작이 아닌 루트에게 충성한다는 이야기는 굳이 해 줄 필요가 없었다.
상무대신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정말이오?”
“네. 데사우로 형제가 루트 오베론을 종종 만나 왔는데, 주인처럼 모신다고 하더군요.”
“흠!”
“루트 오베론이 공작가에 복귀한 뒤로 데사우로 형제의 사업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오베론 공작가의 돈줄을 관리하는 마젠스 자작이 노바에 자주 출입하는 시점도 공교롭지요. 오베론 공작가가 뒷배를 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 최고의 귀족 가문이 암흑가 조직의 뒷배를 봐주고 유흥가를 삼킨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무대신은 이런 가십 같은 이야기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오베론 공작이 뭐가 아쉬워서 폭력배들 뒤나 봐준단 말이오? 유흥가 수입이 욕심나서 그랬을 리는 없고.”
“인구 300만이 밀집한 노바에서 유흥가 수입은 엄청납니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그래도······.”
“물론 이것 때문은 아니죠. 이건 약과에 불과합니다.”
“······?”
“마젠스 자작이 오베론 공작가의 자금으로 사채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영업이 안 되는 상가와 사업체들에 사채를 빌려 주고 상환을 못할 때 가로채는 방식으로 노바 알짜 사업체와 부동산을 엄청나게 늘리고 있죠. 승전 소식으로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그것들의 가치는 몇십 배나 뛰었고 말입니다. 데사우로 형제 같은 주먹들이 왜 필요한지 아시겠지요?”
“그게 정말이오!”
“이것만이 아닙니다. 나푸라에서 차를 밀수해 팔고 있지요. 제가 아라드 왕국에서 차를 들여오는 사업을 하기 전부터 밀수를 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차 밀수까지!”
“데사우로 형제는 그야말로 수족일 뿐입니다. 몸통은 따로 있었던 거죠.”
“으음······!”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엄청난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필센 제국 최고위 귀족이자 재상인 오베론 공작이 전쟁을 이용하여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사채업에 밀수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증거는 있겠지요?”
상무대신이 날카롭게 물었다.
“기자들이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덴은 자신을 앞세우고 싶지 않아서 기자들을 방패로 내세웠다.
“어느 신문이오?”
“어느 신문이 문제가 아니라 경찰에서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고 기자들 역시 경찰 못지않은 내용을 취재했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 내용을 세상에 공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오베론 공작가에서 가만있겠어요?”
“가만있을 수가 없지!”
“맞습니다. 기사를 올렸다가 허위 기사를 올렸다며 신문사를 폐쇄하고 기자를 체포하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되면 기사 한 번 나가고 끝이지요. 다시는 오베론 공작 가문에 대한 기사는 나오지 못할 겁니다. 경찰도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기자들 등쌀에 못 이겨 유흥가 폭력 사태에 대해 조금 풀어 놓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럼에도 진실을 숨길 수 없어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이고요.”
“그렇구려!”
“그래서 드린 말씀입니다. 어느 신문사든 루트 오베론, 마젠스 자작이 등장하는 기사가 나오면 오베론 가문에서 크게 반발할 것이고 기사를 막기 위해 경찰이든 신문사든 탄압할 것입니다. 막심 전하께서 그걸 막아 주셔야 해요. 그걸 막아 주시면 오베론 공작 가문은 여론이 먼저 등을 돌려 무너질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건 오베론 가문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오베론 공작도 총력을 다해 가문을 지키려 할 거예요. 무슨 일을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처음에 막심 전하께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시게 되면 물러설 수 없다고 한 거예요.”
상무대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덴은 상무대신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며 어느새 식어 버린 차를 살짝 입에 댔다.
만약 막심 황자가 신문 기사를 무마하려는 오베론 공작의 시도를 막고 강력한 조사를 지시한다거나 하면 그 과정에서 고슬라 그룹의 차 사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차 사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되면 한참 부상하고 있는 고슬라 그룹의 차 사업, 에를랑겐 노블과 에를랑겐 유스도 함께 언급되면서 그 수입 경로에 대한 논의가 새삼 진행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금수 조치를 편법적으로 우회한 경로가 부각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아라드 왕국을 중간에 끼어 넣음으로써 어쨌든 사업 과정이 형식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설계했고, 만에 하나 자신의 차 사업이 타격을 받더라도 오베론 공작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만, 오베론 공작에 대한 이 강력한 공격을 막심 황자가 감당할 담력이 있는지, 섬세하게 조율해 나갈 능력이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일 끈기가 있는지가 문제였다.
바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무대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고슬라 사장이 생각해 낸 것이오? 유흥가 폭력 사태에 대한 기사나 나온 시점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만난 다음인 것 같아서 말이오.”
바덴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조사하다 들은 이야기입니다.”
상무대신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여하튼 고슬라 사장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증거가 있고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증거가 있고 증명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싸우는 것은 끝까지 간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막심 전하께서 만약 중간에 빠진다고 하시면 신문 기자들과 경찰들은 다 목이 날아갈 겁니다. 다시는 오베론 공작을 공격하는 기사나 여론은 만들어지지 않겠죠. 그리고 막심 전하도 다시는 오베론 공작 앞에 똑바로 서지 못할 겁니다. 대신께서 그 점을 확실히 말씀드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지라···, 알겠소. 만약 전하께서 고슬라 사장을 만나고자 하시면 만날 의향이 있으시오?”
바덴이 손사래를 쳤다.
“저는 아무 역할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일개 사업가일 뿐이죠.”
“하하, 알겠소.”
상무대신은 바덴이 오베론 공작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게 될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상무대신이 다시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오베론 가문이 신문 기사에 언제 등장하는지 알 수 있겠소?”
바덴 역시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신께서 전하를 만나시고, 그럴 의지가 있다는 확답을 듣고 제게 전해 주신 이후가 될 것입니다.”
“알겠소! 다음에 또 봅시다.”
상무대신이 남은 차를 다 들이키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베론 공작의 실각은 늘 바라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무대신은 곧바로 막심 황자를 찾아가 독대를 신청하고, 바덴이 했다는 말을 뺀 채 그녀가 말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그런 뒤 목소리에 힘을 주어 물었다.
“막심 전하, 이 방법을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