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현명한 투자입니다
334. 현명한 투자입니다
루산은 탐탐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바이크도 자신이 타고 있는 탐탐을 정지시켰다.
탐탐 두 마리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작은 앞발로 가슴을 북처럼 두드렸다.
탐탐-
탐탐-
“시에나는 너보다 경력이 부족하잖아. 아직 캡틴이 되기에는 이르지.”
“아!”
바이크가 안도감과 의구심이 뒤섞인 탄성을 작게 뱉었다.
시에나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나이가 어리고 다른 나라 사람인 데다 결정적으로 여자라서 거칠고 약삭빠른 변경의 요원들을 휘어잡기에는 무리라고 루산이 판단했나 보다 이해하고 넘어갔다.
시에나를 생각하면 안타까웠지만, 시에나보다 뒤처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시에나보다 승진이 늦어진다면 그녀 앞에서 당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어쨌든 캡틴으로 승진하는 능력 있는 남자가 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만 멀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루산이 다시 탐탐을 서서히 몰자 바이크가 그 옆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3전단은 관할이 어떻게 되나요? 레이크 시티를 떠나야 합니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
이번에는 분명히 아쉬움의 탄식이었다.
루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리는 별로 문제가 아니야.”
“뭐가요?”
“그냥 그렇다고.”
“···예.”
풀 죽은 바이크를 내버려 두고 루산은 탐탐의 속도를 높였다.
시에나를 다른 부대로 보내는 것은 아마 현역 파일럿을 그만두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았다.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 가운데에도 실력자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들은 복수를 위해 머물고 있었기에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시에나는 달랐다.
실력 면에서도 남방군 출신 파일럿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면서 변경 파일럿이라는 공감대가 있으며 자신의 비밀도 알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이 발탁한 자신의 사람인 것이다.
언제 다시 전쟁터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파일럿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바이크는 실력적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성장했고, 유쾌하고 빈틈이 많아 사람들이 좋아했다.
리더가 될 수 있는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전단에서 바이크는 이미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상당히 굳어 버렸다.
새로운 조직에서 부딪치고 단련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빨리 와, 바이크!”
“그러게 편한 열차 놔두고 왜 탐탐을 타자고 하신 건지······.”
바이크가 구시렁거렸다.
“뭐라고?”
“아닙니다, 갑니다! 가요!”
***
다행히 회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루산은 1전단장실을 찾아갔다.
8구역 북부에 있던 트리어는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반달 호수를 건너 레이크 시티 역에서 열차를 타고 루산보다 빨리 도착해 있었다.
“똑똑!”
루산이 문을 열고 입으로 노크하고 들어가니 트리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 와.”
루산이 소파에 앉자 트리어는 냉각기에서 음료수 병을 꺼내 뚜껑을 따서 루산에게 건네주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황금 계곡에서 희소식이 있다던데요?”
루산이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말에 트리어가 손사래를 쳤다.
“늘 있던 일이야. 그 정도 금맥은 있는 곳이니까.”
“이번에는 다르다던데요? 꽤 수익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그야 결과가 나와 봐야 아는 거지.”
트리어는 자신이 책임지고 개발하는 8구역 북부 황금 계곡에서 마침내 꽤 큰 금맥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축하해 주는 사람보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변경은 그 정도가 심했다.
물론 트리어 정도의 지위와 능력이면 자기 것을 쉽게 빼앗기지 않겠지만, 변경에서 잔뼈가 굵은 그로서는 매사 조심하는 버릇이 몸에 밴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 7구역에 발생한 웨이브의 한 줄기가 남쪽에 있는 8구역 1전단 개척 도시 방향으로 향하는 바람에 상당한 괴수 부산물 수입도 올렸다.
트리어에게 금년은 운이 좋은 해였다.
그는 이 기세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했다.
“새로 만들어지는 3전단 말이야. 전단장으로 누가 좋을 것 같아?”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요. 통치자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루산도 나름의 생각은 있었지만, 굳이 이런 문제로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에 그렇게 무심하면 안 돼. 관심을 가져야지. 선임 전단장들이 의견을 모아야 통치자님의 부담도 줄어들 거 아니야.”
원론적으로는 옳은 말이었다.
“그래서 전단장님은 누굴 생각하고 있는데요?”
“나? 솔직히 최근 몇 년 사이에 파일럿 수가 갑자기 늘어난 거지 우리 8구역에서 오래 일한 파일럿들은 그리 많지 않아. 그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은 더욱 많지 않지. 굳이 꼽자면 켐니츠나 가우스 정도가 적임 아니겠어?”
루산은 한두 사람이 더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들이 이 두 사람보다 능력이나 경력이 더 탁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트리어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죠.”
“혹시 켐니츠를 3전단장으로 밀 생각이 있어?”
트리어가 루산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솔직히 트리어가 2전단에 없으면 많이 곤란하죠. 켐니츠 덕에 마음 놓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레이크 시티 운영도 여태 그가 해 왔고.”
“그치?”
트리어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켐니츠도 전단장이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르죠.”
“그···럴까?”
“왜요? 가우스를 밀고 싶으세요?”
“꼭 가우스를 민다기보다는 가우스가 켐니츠보다 경력이 더 길고, 능력도 그만하면 출중하지.”
루산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3전단 신설은, 루산은 사실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트리어가 밀어붙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트리어가 8구역 북부의 개발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여 황금 계곡에서 금맥을 캐고 밀림 지대 입구에 개척 도시를 건설하여 상당한 공을 세우고 있기는 해도 루산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레이크 시티와 반달 호수 지역은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하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8구역의 이인자는 루산이었다.
그럼에도 트리어는 더 출세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굳이 꿈을 접을 나이도 아니었다.
루산이 워낙 특출해서 그렇지 그 나이에 전단장을 맡으면서 지역 개척을 총괄하는 사람은 변경 모든 구역을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트리어는 전단장에 이어 단장이 되고 싶어 했다.
변경 군단의 병력을 총지휘하고 개척 임무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통치자를 보좌하는, 황족만이 임명되는 통치자를 제외하면 변경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단장에 오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룩한 개척 성과나 8구역에 기여하는 수입 면에서는 루산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군단 하나를 신설하고 세 개 군단 중 두 개 군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단장이 되고자 하는 것이 트리어의 속마음이라는 것을 루산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루산 외에도 8구역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욕망은 그것을 실현하려는 순간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 본인은 들키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주위 사람들 눈에는 다 보였다.
그러나 루산은 트리어에게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들키는 것은 누구나 불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루산에게 8구역의 단장 자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미 그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트리어에게 이런 생각을 다 말할 수도 없었고, 단장 자리를 양보한다는 식으로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했다고 생각해야 값진 것이지 남이 적선하듯 주는 것은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우스가 적당하겠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켐니츠가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구석이 있어서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레이크 시티 부시장에 만족할 수도 있고······. 2전단 부전단장에 레이크 시티 부시장이 수입 면에서 훨씬 좋을 테니까요.”
“맞아! 맞아! 그럼 우리 둘은 3전단장에 가우스를 앉히는 것으로 합의할까?”
“그러죠. 단!”
루산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도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응?”
“3전단의 임무와 관할은 일방적으로 정하면 안 됩니다. 웨이브와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전단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야 물론이지!”
“그리고 이건 3전단만이 아니라 모든 전단에 해당되는 건데, 앞으로 8군단의 멕 나이트는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주력 기체로 하고 중고 일반형 멕은 일부만 사용하기로 하죠. 기동 부대 운영비 절감 차원에서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레오파드 라이트닝은 경량 멕이라 연료 소모량이 매우 적다.
게다가 새로운 제품을 인수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중고 멕에 비해 수리비가 덜 든다.
“운영비가 크게 줄어드니 좋은 일이지. 그런데 가프 연구소에서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우리에게 공급할 여력이 되나?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중고 일반형 멕은 어떻게 해?”
“전선에서 사용하던 레오파드들이 파손되고 고장이 나서 수리를 위해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이것들 처리가 우선이라 신규 생산 물량은 여력이 좀 있다더라고요.”
“그렇군.”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형 멕은 연료 효율을 따져 폐기하거나 아라드 변경으로 보낼 거예요. 물론 모두 폐기된 것으로 처리하겠지만요.”
비밀이라는 뜻이었다.
“알았어.”
트리어는 루산이 켐니츠를 3전단장으로 고집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동의했다.
이로써 루산은 전부터 생각해 온 변경 멕 나이트 경량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운영비의 대폭 절감과 수색·정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레오파드 라이트닝을 도입하고, 대형 괴수를 처리할 때만 일반형 멕을 투입하는 것이다.
변경 멕 나이트 경량화 작업은 8구역을 시작으로 다른 변경 구역까지 확대될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는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고, 루산은 변경에서 사용하던 일반형 멕을 아라드 변경으로 보내 유사시에 투입할 전투 전력으로 삼는다.
물론 트리어가 이 부분까지 알고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3전단장으로 트리어가 2전대장 시절부터 휘하에 거느리고 있던 가우스를 앉히기로 합의한 두 사람은 회의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난 8구역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 직전에 입장한 통치자 율리안에게 예를 표한 뒤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정수에 크게 못 미치는 멕 나이트 기동 전단 하나를 운영하던 우리 8구역이 어느새 세 번째 기동 전단을 만들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3전단은 금년 웨이브 사태와 같이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응하고, 확대된 8구역의 안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율리안이 3전단 신설의 감회와 취지를 밝혔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트리어가 제청하고 루산이 동의하여 3전단장에 1전단 부전단장 가우스가 임명되었고, 그 규모는 멕 나이트 15대, 멕 워커 5대, 정찰대원 10명으로 시작하되 차차 늘려 나가기로 했다.
루산이 제안한 멕 나이트 경량화 작업도 트리어의 동의로 수월하게 통과되었다.
이것은 가프 마법 연구소의 공급이 문제일 뿐 누가 봐도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리안이 직접 발의한 변경 7구역 재건 지원 문제는 본부 간부들이 적잖이 반대했다.
사업 규모가 너무 컸던 것이다.
“다른 변경 구역을 지원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7구역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변경부에 요청해야지 왜 우리가 돕는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7구역은 우리 8구역이 분리될 때 눈곱만큼도 돕지 않았습니다!”
루산이 나서서 간부들을 설득했다.
“이건 현명한 투자입니다.”
“투자라고요?”
“네. 8구역은 재정이 넉넉한데 투자할 곳이 없어요. 당분간 더 확장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매년 웨이브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7구역에 투자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7구역과의 관계를 개선할 뿐 아니라 8구역을 벗어난 지역에서 투자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부분에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8구역 신사업부 부장으로서 많은 사업을 벌여 성공시킨 루산의 말이라 간부들이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리는 7구역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7구역보다 더 강하고 풍족하게 성장하여 마침내 7구역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차 버리는 것은 그리 현명한 것 같지 않군요.”
노바는 오베론 가문 스캔들로 난리가 난 상태이지만, 변경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8구역이 7구역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얼마나 많은 자금을 쏟아부을 것인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루산은 한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나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다르다는 데 새삼 놀라면서도 최선을 다해 설득했다.
율리안도 덧붙였다.
“우리의 재산을 7구역에 처박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투자로 7구역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고, 7구역의 풍요는 우리 8구역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 것입니다. 단순히 8구역이 부유하게 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부가 여러분에게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따라 주세요.”
율리안과 루산이 추진하는 일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트리어가 얼른 가세했다.
“통치자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자 반대하던 나머지 간부들도 7구역 재건 지원에 찬성했다.
의사를 결정하고 여론을 좌우하는 것은 다수가 아니라 강력한 입김을 가진 여론 주도자였다.
그 일을 노바에서는 신문들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