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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37화 (337/450)

337. 필센의 제철, 세계의 제철, 피닉스 제철

337. 필센의 제철, 세계의 제철, 피닉스 제철

데사우로 형제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건물 내부에 있는 쇠창살 방에 각각 따로 갇혀 있었다.

그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자들은 친절하게도 루트 오베론이 보낸 기사들에게 당한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으나 하수도를 통과할 때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힐 정도로까지 친절하지는 않았다.

씻을 곳도,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그저 하루에 두 번, 목숨을 겨우 연명할 만큼의 식사를 넣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힘이 빠질 뿐이었다.

형과 동생은 서로의 안위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두려움에 잠식되어 갔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사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와락 겁이 났다.

계속 어둠 속에 있었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수염이 거칠게 자라고 볼이 홀쭉해지고 몸에서 악취가 점점 심해져 벌레들이 계속 꼬일 때쯤 누군가가 들어와 마나 등을 켰다.

너무 밝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들어온 사람이 철창 밖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지른 죄가 많으니 죽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데사우로의 형이 없는 힘을 쥐어짜 외쳤다.

“대체 누군데 이러는 거요?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죽인다는 거요?”

“너와 네 동생도 유흥가를 장악하고 빌려 준 돈을 갚지 못해 사업체를 강탈할 때 딱히 원한이 있어서 사람들을 해친 건 아니잖아?”

“그건······!”

“어차피 여기 가둬 놓고 물과 식사를 끊으면 사흘 후에는 대부분 죽어 있더라고. 굳이 힘 빼지 마. 괴롭기만 하니까.”

들어온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돌렸다.

데사우로의 형은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정말로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 같아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제, 제발 살려 주시오! 무슨 짓이든 할 테니 살려 주시오! 제발!”

몸을 돌린 사람이 그대로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루트 오베론을 옭아맬 증거를 내놔. 너희들, 장부도 쓰고 증거도 남겨 두잖아. 안 그래?”

“루트··· 오베론?”

“왜? 그래도 한때 섬기던 사람이라 차마 못 하겠어?”

그럴 리가 있는가!

루트에게 칼을 꽂고 복수할 수만 있다면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괴한에서 개처럼 엎드릴 수도 있었다.

최소한 이자가 루트 오베론을 적대한다는 것은 알았다.

적의 적은 아군!

“그러면 살려 주는 겁니까?”

“내용물이 얼마나 충실한지 보고.”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데사우로의 형이 눈을 빛내며 장담했다.

그 시각, 그의 동생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상대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막심 황자가 상무대신 벤야민 스트라스를 불렀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서둘러 궁으로 달려가니 막심이 씩씩거리며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아! 이것 때문에 화가 나셨구나!’

벤야민도 최근 들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이름 없는 신문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실린 내용에 대해서도.

“오베론 공작이 이딴 식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벤야민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무대응이 상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라? 이런 소리를 듣고도 가만있으라는 말이오?”

“이런 이름 없는 신문, 아니 신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전단지 수준의 글귀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꽝스럽지 않겠습니까? 오베론 가문에 대한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내용이 나오면 그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사 명령을 내리고 형사 재판을 받게 하면 될 일입니다, 전하!”

“하!”

막심 황자가 어이없어 탄성을 질렀다.

“이제 보니 상무대신은 대단한 인격자로구먼!”

“그게 아니라 오베론 가문의 비위와 부정을 고발하는 기사는 유력 신문들에 실리고 있습니다. 반면 얼마 전에 나타나기 시작한 막심 전하를 음해하는 말들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작은 전단지에 실려 있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막심 황자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글을 아주 잘 씁디다. 내 속을 확 뒤집어 놓을 정도로.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하겠던데?”

벤야민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막심 황자가 으르렁거렸다.

“황족을 이렇게 능멸해도 놔두란 말이오?”

“오베론 공작이 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하께서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을 공포하셨지 않습니까?”

“포고령의 내용을 손봐야겠소!”

“제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손을 봅니까? 분명히 공격의 소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당하고 있으라는 말이오? 속셈이 빤하지 않소. 백성들로 하여금 그놈이 그놈이지, 하는 생각을 품게 하여 오베론 공작의 비위와 부정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려는 것이지. 대응하지 않으면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이번 일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진흙탕 싸움으로 비칠 거란 말이오!”

벤야민은 막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막심은 몹시 화가 난 와중에도 ‘신문 맞불 작전’의 의도를 정확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막심 황자가 초래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을 발표했기 때문에 신문이라는 이름을 걸고 배포되는 내용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포고령을 살펴보면 국가를 위태롭게 하거나 거짓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 한해서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과 벌칙으로 규제할 것인지 정해 놓지 않았다.

헌법, 형법, 관습법, 그리고 법관의 상식에 따라 판단할 일이라 기사의 진위를 따지고 신문에 규제와 벌칙을 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일 걸릴 것이다.

애초에 오베론 가문을 기자들이 기사로 자유로이 공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표한 포고령이기에 자유에 초점을 맞추었지 규제와 책임에 대한 내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의 자유에 관한 포고령을 포함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해야겠소.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신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사를 작성해 배포할 수 있게 할 것이오. 그리고 아무 내용이나 마구 실어서는 안 되도록 벌칙 규정도 강화할 것이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이 계속될 것 아니오?”

“그렇기는 합니다만, 막심 전하께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말을 막기 위해 법을 바꾼다고 비난을 받게 될 겁니다.”

“그건 감수해야지.”

“문제는 또 있습니다. 법을 제정하려면 상원을 통과해야 하는데, 상원에는 농지법과 은행법을 지금의 내용으로 개정한 오베론 공작의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막심 전하께서는 상원에 법안 처리를 요청하실 수 있는 황제가 아니십니다.”

“거참, 뭐가 이리 복잡하단 말이오?”

“이반 황제께서 개혁 헌법을 만드신 이후 의사 결정 절차가 강화되었지요.”

이반 황제는 황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황제도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강조함으로써 귀족들의 권리를 부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귀족들의 자의적 권리 행사를 막기 위해 형식적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물론 절차는 강화되었으나 현실은 막강한 권한과 권위를 지니고 있는 황제의 명령은 매우 빠르게 처리되었다.

문제는 막심이 황제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상원은 고위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오베론 공작이 탐탁지 않더라도 황제도 아닌 막심 황자의 편을 들어 법률을 통과시켜 줄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막심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치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 깨닫게 되었다.

황제의 아들이라고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평생을 제약 없이, 황태자가 아니기에 더욱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이런 모욕을 견딜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노바의 정치 문법대로 관리들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무리를 지배하는 우두머리가 아니라 무리에서 벗어나 황야를 마음대로 떠돌던 맹수는 자신을 공격하는 짐승에게 굳이 온건한 방식으로 대해 줄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이건 확실하지 않소?”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요?”

“신하라면 억울함이 있을 때 응당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일이지 황족을 공격하며 맞싸우려 하지는 않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

벤야민은 막심 황자가 이 갈등 상황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했다.

막심 황자와 오베론 공작은 대등하지 않다.

아무리 황제가 정부 일을 처리할 권한을 오베론 공작에게 주고 떠났다 해도 이 나라는 마이센 황가의 나라인데 황족과 대등하게 맞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순간 벤야민은 한기를 느꼈다.

막심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벤야민을 불렀다.

“상무대신!”

“예, 전하!”

벤야민이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대답했다.

“주무 부서가 어딘지 모르겠으니 대신이 적임자를 찾아 최대한 빨리 신문 관련 법률을 만들어 봐요. 그리고 상원을 통과시키세요. 능력을 보이란 말입니다.”

벤야민은 막심에게서 개혁 헌법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존재했을 것 같은 무서운 군주의 기운을 느꼈다.

거역한다면 그 자리에서 도끼로 부하의 이마를 쪼개 버릴 것 같은 폭군!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막심은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황궁 비서를 불렀다.

“내무대신과 경찰청장을 들라 하라!”

“예, 전하!”

비서도 벤야민과 비슷한 것을 느꼈는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막심이 벤야민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일단 경찰을 동원해 이걸 뿌리는 놈들, 만드는 놈들을 모두 잡으라고 할 생각이오. 잡아서 조사하다 보면 배후가 나오겠지.”

벤야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막심 역시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에 관한 검증 작업을 상무대신이 맡으시오.”

이 역시 거역할 수가 없었다.

“예, 전하!”

“맞먹으려는 신하에게 관대한 왕은 없는 법이오.”

“······!”

“가 보시오.”

“예!”

벤야민은 막심에게 예를 올리고 나왔다.

이번에 오베론 공작이 상대를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이반 황제와 프리드리히 황제는 최소한 겉으로는 폭력적이지 않았다.

개혁에 저항하는 구귀족파를 엄청나게 숙청했음에도, 그것을 제외하고는 - 사실, 숙청하는 방식조차 대전쟁에 참전하여 적과 싸움으로써 죄를 씻을 기회를 주는 것이었지 직접 목을 치지는 않았다 - 정사를 펼칠 때 폭력적이지 않았다.

백성들과 경찰, 군대의 지지를 받고 있어 워낙 황권이 강했기 때문에 굳이 폭력적으로 신하들을 다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주된 이유였겠지만, 매사 우아한 정치를 해 왔다.

‘오베론 공작이 막심을 들이받은 것도 아마 이반 황제와 프리드리히 황제의 우아한 정치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풀고 평화로운 절차로 주고받을 것을 논의하는 정치.

그러나 황제로서의 지위와 권한이 없는 막심은 우아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가 없었고, 신하에게 굴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오랜만에 필센 제국의 수도에서 군주의 폭력성이 드러날 것만 같아 벤야민은 두려웠다.

이 일이 필센 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신속히 오베론 공작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 헌법 이후 평화롭게 이어지던 필센 제국의 정치 질서가 요동치기 전에.

***

주요 신문 1면 하단에 피닉스 제철의 광고가 실렸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피닉스 제철 전 제품 50퍼센트 전격 인하!>

필센 제국의 승리와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해

물가 상승으로 고통 받는 사업주와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 피닉스 제철에서 생산하는 모든 철강 제품의 가격을 절반으로 내립니다!

필센의 제철, 세계의 제철, 피닉스 제철.

신문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업가들과 정부의 경제 부처 관료들에게는 막심 황자와 오베론 공작 사이의 갈등을 다룬 기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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