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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39화 (339/450)

339. 레오나가 결혼한 뒤에나 봅시다

339. 레오나가 결혼한 뒤에나 봅시다

보름스 자작 부인은 왠지 모르게 잠자리가 불편하여 잠에서 깨어났다.

사위가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다시 잠을 청하려 누웠으나 무언가가 귀족 부인의 감각을 거슬렀다.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기계의 진동 소리 같기도 한 소음이 어렴풋이 들리고 땅이 미세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물론 이 고급 저택가에서 이 시간에 그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죽을 때가 됐나?’

먼저 죽은 남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루산이 고생해서 가문의 재산도 되찾았고, 능력 있는 며느리를 얻어 손주도 봤다.

요즘은 레오나 보는 낙으로 살았다.

눈치 없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 찾아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휴일이면 바덴이 레오나를 데리고 찾아오거나 자신을 초대했다.

꼬물거리는 레오나가 눈을 맞추고 웃어 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매일 손녀를 보지 못하는 자작 부인은 백화점에 가서 손녀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신발을 사고, 장난감을 구입하는 재미로 살았다.

이런 기쁨을 두고 세상을 뜨고 싶지는 않았다.

‘여보, 레오나가 결혼한 뒤에나 봅시다.’

자작 부인은 그렇게 뒤숭숭한 잠자리를 달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깨에 숄을 걸치고 방에서 나가 저택 현관문을 열었는데, 이웃집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게 아닌가!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 기계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게 아니로구나!’

보름스 자작 부인은 왠지 뿌듯했다.

귀족적인 예민함이 이 나이를 먹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드는 감정은 짜증이었다.

“아니, 이 시간에 무얼 하는 거지? 시끄러운 공사는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에를랑겐 백작 내외가 떠난 집에 새로 들어온 옆집 사람들은 이사 초기에 문제를 일으켰으나 한동안 잠잠했다.

보름스 자작 부인은 담 가까이 다가가 정원사가 가지치기할 때 쓰는 사다리에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누군가가 보이면 조용히 좀 하라고 호통을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분위기가 삼엄해 쉽게 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저도 모르게 담장 아래로 내려가 눈만 살짝 내밀었다.

잠시 후, 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덮개 달린 커다란 자동차 - 붐붐 자동차에서 만든 대형 화물 자동차 - 두 대가 쿠르르 소음을 내면서 저택 대문을 나서는 광경을 목격했다.

옆집에서 들리던 소음도 사라지고 불도 다시 꺼졌다.

‘뭐지? 이 시간에 이사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의아해하던 자작 부인은 서둘러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왠지 지켜보면 안 되는 광경을 목격한 것 같아 두려움이 와락 밀려왔던 것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다.

난리가 터지고 며칠 후 레오나를 보러 갔을 때 보름스 자작 부인은 며느리에게 이 사실을 말해 주었을 뿐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함부로 입을 열면 레오나가 결혼할 때까지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새벽 3시.

황궁 근처에 있는 저택 다섯 곳에서 일제히 나온 붐붐 화물차 열 대는 전조등을 켜고 황궁 방향으로 달렸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는 근위대 위병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을 했는데, 거대한 화물차는 바리케이드를 그대로 밀어 버리고 검문소를 통과했다.

졸린 눈으로 갑자기 나타난 차량을 멈춰 세우려던 근위대 위병들은 졸음이 싹 달아나며 팔에 소름이 돋았다.

“비상! 비상이다! 변고 발생! 서둘러 황궁에 알려야 한다!”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위병들이 매뉴얼에 따라 한 사람은 황궁으로, 또 한 사람은 황궁 옆에 붙어 있는 근위대 주둔 기지로, 마지막 한 사람은 가까운 수도 군단으로 말을 타고 달렸다.

그러나 붐붐 화물차가 훨씬 빨랐다.

“뒤에 말을 탄 위병이 따라오는데요?”

“신경 쓰지 마. 우리 목적지는 근위대 주둔 기지니까.”

“알겠습니다.”

황궁 공격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무던히 애써 왔다.

핵심은 황궁 장악이 아니다.

파워 아머를 착용한 기사 100명으로 황궁을 장악하고 황족을 체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근위대 멕 나이트를 차지해야 황궁을 장악한 뒤에 소식을 듣고 몰려온 수도 군단 멕 나이트 부대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근위대 근무 편성 규칙이나 근무 표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인 근무 시간과 교대 시간은 끈질긴 관찰로 알아냈다.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떠난 근위대 병력을 제외하면 남은 근위대 멕 나이트는 50여 대.

이것을 재빨리 차지하고 황궁에 머물러 있는 황족들을 체포하고 버티면 이번 작전은 성공하는 것이다.

“시간 싸움이다! 서둘러라!”

“예!”

네 방향에서 나타난 붐붐 화물차 열 대는 일제히 황궁 남쪽에 인접해 있는 근위대 주둔 기지로 달려갔다.

근위대 멕 나이트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9미터 높이의 성벽을 높게 쌓은 근위대 주둔 기지.

거대 화물차가 밝은 전조등을 켜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근위대 주둔 기지 위병이 이상하게 여기고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막 움직일 때, 먼저 도착한 화물차가 기지 출입문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쿠르르!

멕 나이트가 출입하는 동쪽과 서쪽의 출입문은 쇠기둥처럼 굵은 철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붐붐 화물차는 어지간한 자동차가 아니었다.

변경의 괴수 붐붐처럼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화물차가 코뿔소 같이 돌진해 성문을 들이받았다.

쾅!

성벽이 흔들리고 돌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붐붐 화물차도 전면이 찌그러지고 전조등이 나가는 등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이 멈출 정도의 고장은 아니었다.

화물차가 크릉크릉 후진하더니 다시 힘차게 달려 성문을 들이받았다.

쿠웅!

두 번의 돌진으로 거대한 성문이 단단한 문틀에서 떨어져 나가 뒤로 넘어갔다.

“열렸다! 돌입하라!”

크르르르-!

전조등을 밝힌 붐붐 화물차들이 동쪽 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서쪽 문이 뚫리고 그곳으로도 붐붐 화물차가 들어갔다.

이렇게 문이 빨리 뚫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직을 서고 있던 파일럿이 멕 나이트 시동을 켜고 달려왔을 때는 파워 아머를 착용한 기사들이 이미 기지 내부로 흩어지고 있었다.

[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기지 내부로 침입했다!]

당직 파일럿이 근처에 있는 파워 아머들을 발로 차고 짓밟으며 통신을 보냈다.

그러다 이 시간에 멕 나이트를 타고 있는 파일럿이 많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얼른 외부 확성기로 다시 소리쳤다.

- 적은 파워 아머를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수가 상당히 많다! 맨몸으로 대응할 생각 말고, 서둘러 멕 나이트에 올라라!

그러나 근위대 주둔 기지 내에서 멕 나이트에 타고 있는 파일럿들은 4명뿐이었고,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남방군 기사들은 애초에 근위대 멕 나이트를 탈취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멕 나이트를 상대하지 않고 근위대 파일럿들이 자고 있는 숙소와 멕 나이트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주둔군 사령부 건물부터 습격했다.

숙소에서 달려 나온 근위대 파일럿들이 파워 아머 기사들에게 당해 곳곳에서 피를 흘렸다.

사령부로 쳐들어간 남방군 기사들은 어느 틈에 열쇠 보관함을 파워 아머의 힘으로 열고 주기장으로 달려갔다.

어느 열쇠가 어느 멕 나이트의 것인지 식별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으나 그동안 수없이 모의 훈련을 해 왔기에 남방군 기사 10여 명이 어느 틈에 파워 아머를 벗고 멕 나이트에 올라 시동을 켰다.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매일 윤기 나게 닦아 기지 내부에 켜진 마나 등에 번쩍번쩍 빛이 나는 근위대의 아이언 워리어들이 속속 자리에서 일어나 전조등을 켜고 나아갔다.

그들은 약속한 통신 신호에 맞춰 마나 통신을 하면서 이동했다.

[두 대는 주기장을 지켜서 근위대 파일럿들이 멕 나이트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는 당직 멕 나이트를 무찌른다. 서둘러!]

[알겠습니다!]

여덟 대의 아이언 워리어가 네 대의 근위대 멕을 상대하기 위해 달려갔다.

근위대 파일럿의 실력은 놀라워 남방군 파일럿이 타고 있는 근위대 멕 한 대를 순식간에 파괴했으나 주기장을 남방군이 장악하고 있어 근위대 멕 나이트를 타고 달려오는 적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네 대의 근위대 당직 멕 나이트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없다! 황궁을 지키고 있는 멕 나이트들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모든 근위대 파일럿을 처리하고 황궁을 지키는 멕 나이트를 친다!]

파워 아머를 착용한 침입자들은 주둔 기지를 샅샅이 뒤져 근위대 기사들이 모조리 찾아내 죽였다.

개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다수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멕 나이트를 탈취한 남방군들은 황궁으로 달려가 문을 지키고 있는 멕 나이트를 공격했다.

안에서 비상 대기 근무를 서고 있던 당직 파일럿들도 달려 나왔으나 황제가 떠난 이후 멕 나이트 수가 크게 줄어 습격자들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주둔 기지에서 근위대 기사들을 모두 처리한 파워 아머 기사들이 황궁으로 들어와 황족 경호 기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황족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떠난 뒤 다시 궁에 들어와 지내고 있던 막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막심이 호통을 쳤지만, 눈앞에서 두 동강이 난 호위 기사의 모습에 두려움이 일어 호통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우로라 연합 특작 부대다! 순순히 항복하면 최대한 황족으로 대우할 것이다. 신체를 구속하지 않고 구금만 할 것이다. 하지만, 저항한다면 개만도 못한 대우를 할 것이다. 남은 황족들도 마찬가지다.”

“······!”

아우로라 연합 특작 부대라는 말에 막심은 뇌가 정지한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파워 아머를 착용한 자들에게 우악스럽게 끌려가 황궁 정문 옆 첨탑에 감금되었다.

황궁 근처 저택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한 작전 부대가 근위대 주둔 기지를 점령하고 황궁을 공격해 막심을 체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5분.

근위대 검문소 위병의 연락을 받은 수도 군단의 병력이 황궁으로 출동한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인 4시 30분이었다.

멕 나이트가 이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황궁이 적에 의해 점령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정찰 병력을 황궁으로 보냈다가 변고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출동했기에 늦어졌다.

어쨌든 예하 전단에서 동원된 수도 군단의 멕 나이트 100대가 황궁을 둘러쌌고, 날이 밝을 무렵에는 경찰의 기동 타격대 멕 나이트 30여 대가 황궁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차단했다.

그 외에도 군대와 경찰의 병력이 총동원되어 도시 전체의 길목을 통제하고 노바로 드나들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지켰다.

하룻밤 사이에 노바가 폐쇄돼 버린 것이다.

“대체 누구야!”

황궁 앞에 설치된 현장 지휘소에 나온 수도 군단 사령관이 분통을 터뜨렸다.

옆에서 경찰청장도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속으로 가장 먼저 의심하고 있는 자는 오베론 공작이었지만, 여러 부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때 수도 군단의 장교 하나가 달려와 긴급하게 보고했다.

“사령관님! 적들이 황자 전하를 성벽 위에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요구 사항을 적은 천을 성벽에 크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뭐? 가자!”

수도 군단 사령관과 경찰청장 그리고 고위 관리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와 황궁 성벽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흰색 천에 붉은 글씨로 선명히 적혀 있는 글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는 아우로라 연합군 특작 부대다! 아우로라 대륙을 침공하고 있는 필센 제국군을 당장 철군시키지 않으면 황궁 안에 있는 황족을 모조리 죽이겠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내용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해가 솟아 그들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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