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이제 내 것이다
340. 이제 내 것이다
고급 자동차 세 대가 경찰 검문소를 통과해 황궁 앞 현장 지휘소로 들어왔다.
자동차들이 멈추고 앞과 뒤의 자동차에서 먼저 듬직한 경호원들이 내려 가운데 자동차를 경호하며 뒷좌석 문을 열었다.
현장 지휘소에 모여 있던 수도 군단 사령관과 경찰청장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그 모습을 본 그들의 인상이 구겨졌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오베론 공작이었던 것이다.
‘젠장!’
‘이거 망했는데?’
수도 군단 사령관과 경찰청장이 오베론 공작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이번 일만 터지지 않았으면 막심 황자의 강력한 압박에 의해 조만간 실각하고 심지어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번 일로 인해 권력의 중추로 우뚝 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수도 군단 사령관이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오베론 공작이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냐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황궁이 아우로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 가만있을 수 있다는 말이오?”
“적의 정체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라? 사령관의 눈에는 저 글귀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오베론 공작이 황궁 성벽에 걸려 나부끼는 현수막을 보고 혼을 내듯이 말했다.
그러자 경찰청장이 수도 군단 사령관을 거들었다.
“그건 저들이 내세우는 말일 뿐 진짜 정체는 우리가 밝혀야지요.”
“맞습니다. 재상께서는 물러나 계시지요. 어차피 군과 경찰이 할 일입니다. 각종 범죄 혐의에 연루돼 있는 재상께서 나서실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수도 군단 사령관이 오베론 공작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어이 그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나 오베론 공작은 수도 군단 사령관의 날카로운 공격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과 경찰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예?”
“황궁이 적에 의해 점령되었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이오.”
“적을 물리치고 막심 전하를 비롯한 황족들을 구해야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그건······.”
수도 군단 사령관은 대답이 궁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이제부터 생각해 볼 작정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오베론 공작이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우선순위는 정했소? 막심 전하와 황제 폐하의 가족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오, 아니면 적을 소탕해 필센 제국의 상징인 황궁을 탈환하는 것이 우선이오?”
“······.”
“황제 폐하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필센 제국군을 아우로라 대륙에서 물리는 문제에 대해서까지 고민을 해 볼 생각이오?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겠소? 아니면 아무리 황제 폐하의 가족이라 해도 필센 제국군의 이동 문제는 간섭할 수 없으니 황제 폐하의 가족을 희생시키는 쪽을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소?”
“끄응!”
수도 군단 사령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황제 가족의 목숨과 200만에 달하는 필센 제국군의 진퇴, 둘 중 어느 것도 결정할 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도 질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라고 하면 걸겠지만, 그것으로 책임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오베론 공작이 호통을 쳤다.
“그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하면서 감히 재상에게 물러나라 마라 한다는 말인가! 황제 폐하께서 동방으로 떠나시면서 내게 본토를 통할하라고 하셨다! 그런 내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
“대체 적이 필센 내부로 침투해 황궁을 장악할 때까지 수도 군단과 경찰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미 이 사건의 죄인이 아니더냐!”
두 사람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 뿐 오베론 공작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오베론 공작이 언성을 조금 낮추고 말했다.
“물론 막심 전하께서 그대들에게 엉뚱한 일을 시키는 바람에 경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을 알고 있소. 이 일의 책임이 전적으로 그대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가혹하지.”
그 엉뚱한 일이란 바로 오베론 공작의 세력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소. 전적으로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은 내가 책임질 일이지. 그러니 내 지시에 따라 이 사태를 빠르게 해결해 나가도록 합시다. 그것이 그대들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나라에 충성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
두 사람은 오베론 공작과 더 이상 지휘 권한을 두고 따질 수가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노바에 적이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침투해 무려 황궁을 장악하고 황족을 인질로 삼은 사건이었다.
수도 방위를 맡은 수도 군단과 동부 공업 지구 사태 이후 주동자를 체포하지 못하고 그저 도심 곳곳을 검문해 온 경찰은 이번 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황제가 오베론 공작에게 필센 본토의 통치를 맡기고 떠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오베론 공작은 경계망이 뚫린 사건의 책임을 상당 부분 막심 황자에게로 돌리는 듯이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재상께서는 어떻게 해결하려 하십니까?”
수도 군단 사령관이 여전히 불퉁스럽지만 조금은 수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황족을 구하고 적을 소탕해야지요!”
그 당연한 소리를 누구는 못한다는 말인가?
대체 그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오베론 공작이 경찰청장을 보고 말했다.
“경찰은 저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 적의 병력이 추가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과거 동부 공업 지구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일이 여기까지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자들이 저들과 엮여 저들이 들어오는 데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알겠소?”
오베론 공작이 노동자를 언급했다.
어쨌든 조사해야 할 대상, 책임을 씌울 대상을 알려 준 것이다.
“알겠습니다, 재상 각하!”
경찰청장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오베론 공작은 이번에는 수도 군단 사령관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노바뿐 아니라 필센 제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오.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나지 않고 필센 제국에 남아 있는 모든 군대와 경찰은 계엄 사령부의 명령을 듣게 될 것이오. 노바로 들어와 황궁을 장악한 적이 다른 지역은 점령 못 하겠소? 군대와 경찰은 계엄 사령부의 명령을 받들어 교통을 통제하고 검문을 강화하며 행정과 사법의 전반을 관리하게 될 것이오.”
“······!”
“비상계엄은 이 일이 해결되고 아우로라 연합군이 필센 본토에 다시는 침투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대비 태세가 확고히 다져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오.”
수도 군단 사령관은 오베론 공작이 군과 경찰을 손에 넣고 비상 대권을 휘두르겠다는 의도를 깨닫고 깜짝 놀랐으나 황궁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황족이 붙잡혀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조치가 부적절하다고 반대할 수가 없었다.
“계엄 사령관에는 슬레벤 백작을 앉힐 것이니 그리 아시오.”
수도 군단 사령관이 눈이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슬레벤 백작은 오베론 공작 휘하에서 남방군 부사령관을 지냈다가 남방군이 1군단을 제외하고는 필센 제국군 편제로 들어가는 바람에 전쟁 이후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군을 떠난 인물로 오베론 공작의 심복이라 할 수 있었다.
“적이 모두 황궁으로 들어갔는지 황궁 밖에 남아 호응을 준비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오. 현재 수도 군단에 남아 있는 병력만으로 노바를 방어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오. 그러니 남방군 사령부에 남아 있는 병력을 노바로 올릴 것이니 그리 아시오.”
“······!”
오베론 공작의 조치는 모두 이치에 합당해 보였지만, 수도 군단 사령관은 맑은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
이번 황궁 습격 사태는 순식간에 퍼졌다.
갑자기 군과 경찰이 멕 나이트까지 동원해 검문을 강화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것만으로 널리 퍼진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신문에 실린 것이다.
경찰청장은 보도 통제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오베론 공작이 허락하지 않았다.
“막심 전하께서 신문 자유에 관한 포고령을 공포하셨소.”
상무대신 벤야민이 막심의 명을 받고 만든 신문법이 상원을 통과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 포고령에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널리 알려지는 것은 백성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질서를 위태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오. 불안감은 사실을 제대로 모를 때 더욱 가중되는 법이오. 그때그때 제대로 알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게 되면 오히려 백성들은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오. 또한 백성들이 현 사태를 알아야 갑자기 검문과 일상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하더라도 수긍하지 않겠소?”
이 또한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군과 경찰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아요. 수상한 자들을 백성들이 제보해 줘야 우리의 경계망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신문에 황궁이 적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황족이 인질로 잡혔다는 기사가 실리게 되었다.
황족의 무능함을 은근히 내비치는 기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막심 황자가 군과 경찰을 오베론 공작을 견제하는 데 돌리는 바람에 경계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내용도 실렸다.
1차 대전쟁에 참전하여 아우로라 연합군과 싸웠던 오베론 공작이 직접 나서서 황궁을 포위하고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 기사에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필센 제국 전역이 비상계엄 체제로 전환되어 검문이 강화되고 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법이 집행된다는 점 또한 널리 알려졌다.
오베론 공작 가문이 밀수를 하고, 사채업을 하고, 유흥가를 접수한다는 내용 따위는 신문 지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우로라 연합군 특작 부대가 노바로 침투해 근위대를 무찌르고 황궁을 장악해 황족을 인질로 잡았다는 소식에 비하면 이런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본 노바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계절은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노바의 분위기는 싸늘히 얼어붙었다.
두려움에 떠는 노바의 백성들이 상점으로 몰려 생필품이 동이 나고 경찰이 질서 유지를 위해 투입되었다.
피난을 떠나려는 사람도 많았다.
경찰이 노동자와 대학생들을 다시 체포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와 대학생들에게로 은근히 돌리려는 경찰 고위 관계자의 견해도 자주 신문에 실렸다.
노동자와 대학생들에 대한 민심이 급격이 나빠졌다.
오랜만에 대학 내에 경찰이 다시 들어왔고, 대학생들과 경찰 사이의 긴장이 점점 고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베론 지방에서 새로운 병력이 멕 나이트와 함께 노바로 들어왔다.
남방군은 오베론 공작이 황제에게 굴복하고 재상의 직을 받아들이면서 해체되었지만, 오베론 가문이 그동안 평민 출신 파일럿을 키우던 학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베론 지방에서 출발한 마나 열차가 파일럿과 멕 나이트를 싣고 노바 남쪽 관문을 통과해 노바 역에 도착했다.
오베론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젊은 평민 파일럿들이 새로 제작된 아이언 워리어 Ⅱ를 타고 노바 역에서 황궁까지 행진했다.
자동차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필센 제국은 내 것이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마젠스 자작이 말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일단 슬레벤 백작과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가시죠.”
“알았소.”
노바 역 근처의 모든 차량들이 멕 나이트의 행진에 따라 멈춰 있는 가운데 루트를 태운, 오베론 가문의 깃발을 달고 있는 자동차만 행진하는 아이언 워리어 Ⅱ를 배경으로 의기양양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