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뜻대로 되지 않네요
341. 뜻대로 되지 않네요
변경 7구역을 새롭게 건설하는 문제로 바덴이 보내온 도시 건설, 토목 전문가들이 7구역을 돌며 설계 작업을 시작했다.
루산은 그들의 안전과 신속한 이동을 위해 7구역 통치자의 허락을 얻어 멕 나이트 두 대와 탐탐 정찰병들을 붙여 주고 7구역 개발 방침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변경의 개발과 운영 방식, 괴수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루산은 오랫동안 변경 개발을 담당해 온 7구역과 8구역의 개척 요원들을 프로젝트 팀에 합류시켰다.
루산은 종종 설계 팀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한편 7구역 통치자를 만나 새로운 7구역 건설과 관련된 8구역과 7구역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해 나갔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기에 단순한 호의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역할, 책임, 수익 분배 문제를 명확히 해야 했다.
사업이 워낙 거대하여 투입하는 인력, 장비, 재료 등의 조달 문제를 계획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인력이야 7구역 주민들을 채용해 쓴다 해도 재료 조달은 어떻게 합니까?”
“철제는 8구역에 있는 피닉스 제철 공장에서 설비를 증설해 생산하기로 했고 목재와 석재, 석회는 7구역 기존 채석장과 광산에서 증산하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부족할 것에 대비해 8구역의 재제소와 석회석, 벽돌 공장 가동률을 높여 이미 생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재료 조달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루산은 7구역 통치자가 주재한 회의에서 7구역 간부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가격과 비용 문제에 대해 협의해 나갔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7구역 재건 방향에 대해 변경부 승인이 수월하게 났다는 겁니다.”
반란 사건 이후 변경부에서 7구역을 과도하게 감찰하여 업무의 정상 수행을 방해하는 바람에 웨이브 대처가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변경부는 이 점이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또한 7구역 전체가 괴수 떼에 의해 짓밟혔지만 7구역과 8구역의 적절한 대처로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고, 괴수가 변경을 넘어 제국 일반 영토로 들어가는 일도 막았다.
새로운 7구역 건설에 드는 비용도 모두 7구역과 8구역이 스스로 조달한다고 하니 이번 7구역 웨이브 사태를 외부에 크게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둘러 허락해 준 것이다.
황제가 동방 순시를 떠난 뒤로 정부가 막심 황자와 오베론 공작의 힘겨루기로 인해 긴장이 감돌고 있었기에 어떠한 꼬투리도 잡히지 않으려고 빨리 넘어간 측면도 있었다.
“7구역 본부에서 큰 방향만 잡고 구체적인 설계와 공사는 회사에 맡기는 것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변경의 요원들도 분명 전문가이지만, 효과적으로 사람을 쓰고 재료를 조달하여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회사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지요. 게다가 민간 회사는 변경에 대해 잘 모르지 않습니까?”
“이번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은 회사는 매우 유능하고 거대 개발 프로젝트 경험이 많습니다. 단지 건물 몇 개 지어 본 건축 회사가 아니라 노바 옆 보헨 지역 공업 기지 개발, 라벤스 지역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아라드 왕국 재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경 8구역과 다른 변경 구역에서도 농업 개발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변경에 대한 이해가 다른 어떤 민간 회사보다 높습니다. 8구역 통치자께서도 믿음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루산이 덧붙였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8구역은 자료 조달이나 인력 공급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제외하고는 이번 건설 프로젝트에서 이 회사로부터 따로 받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일했을 때 보여 준 능력과 믿음에 기대어 추천하는 것이죠. 여러분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믿음의 영역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될 것이다.
7구역 통치자가 입을 열었다.
“이번 웨이브 사태에서 8구역이 우리에게 보낸 도움과 후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8구역이 딴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럴 이유도 없지요. 8구역 본부는 우리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8구역에 투자하는 것이 말도 안 나고 더 낫지 않겠어요? 다만 워낙 큰일을 겪었고 앞으로 해 나갈 공사의 규모가 엄청나다 보니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일단 보름스 전단장 말씀대로 할 것입니다. 큰 방향은 우리가 잡고 구체적인 실행은 프로젝트 팀에 전적으로 맡기고, 중간에 충돌이 생기면 조율해 나가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루산은 7구역에 설립할 변경 투어 회사 지분에 대해서도 협의를 마쳤다.
7구역 본부와 렌커가 대표로 있는 변경 투어 회사가 지분을 절반씩 가지고, 경영권은 회사에서 감사권은 7구역 본부에서 갖기로 한 것이다.
물론 렌커는 이 수익을 자기가 모두 갖는 것이 아니라 8구역 변경 투어 수익 배분 비율로 나누게 된다.
어쨌든 변경 투어 노하우와 관광객 모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변경 투어 회사인데 수익의 절반을 변경 본부에 떼 주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변경 본부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이러한 투어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협조를 조건으로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루산은 전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집을 잃은 7구역의 주민들을 계속 천막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8구역에 수용 가능한 인원은 수용하여 제재소, 벽돌 공장, 석회석 공장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번 프로젝트에는 막대한 건축 자재가 필요하니까요.”
“그러다 주민들이 8구역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면 어떡하겠소?”
“7구역에 도시 건설이 끝나 주거 문제와 생계 문제가 해결되면 7구역 주민들은 7구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됩니다. 강제하는 거죠. 다만, 그걸 지나치게 강제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겠죠.”
“그렇지요.”
“그때는 8구역으로 새로 들어오는 개척민을 7구역으로 보내는 방식을 고려해 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7구역 주민 3명이 8구역으로 들어와 살다가 다시 7구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이미 8구역에서 얻은 이웃과 직장에 익숙해져 돌아가기 싫어한다면 그때 8구역으로 새로 들어오는 개척민 3명을 7구역으로 대신 보내는 거죠.”
“으음······.”
“마침 그때 새로 들어오는 개척민이 없다면 무조건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알았소! 그렇게 진행하도록 합시다.”
7구역 통치자가 간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못을 박았다.
현재 7구역 주민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7구역 본부가 있는 오스나 시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배급을 받아 살았다.
이들이 8구역으로 가서 그곳의 삶에 익숙해져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 삶을 방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되면 8구역과 7구역 간 자재와 인력의 이동이 무척 활발해질 겁니다. 열차 선로를 늘리고 도로를 튼튼하게 포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도 건설 프로젝트에 포함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맞는 말이오.”
그렇게 7구역 건설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어 갔다.
막심 황자와 오베론 공작이 갈등을 일으키든 말든 머나먼 변경은 수도의 정치 다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이 거대 사업은 첫 삽을 뜰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노바에서 날아든 놀라운 소식으로 인해 모든 작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아우로라 연합군 특작 부대, 황궁 점령!>
<막심 황자를 비롯한 황족들 구금 상태!>
<아우로라 대륙에 있는 필센 제국군을 철수하라는 요구를 과연 수용할 것인가?>
<이 사태를 진두지휘하는 오베론 공작, 과거 동방에서 아우로라 연합과 싸웠던 자신의 경험과 강단을 믿어 달라고.>
바덴의 편지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네요.>
루산은 그녀답지 않게 한숨을 짓고 있는 바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편지를 다 읽은 루산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
오베론 공작은 좀처럼 황궁 공략을 시도하지 않았다.
새로운 남방군을 수도에 불러올린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수도 군단 사령관이 찾아가 언성을 높였다.
“재상 각하, 왜 이리 주저하십니까?”
“황족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일이오. 섣불리 병력을 밀고 갔다가 막심 전하와 황후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겠소?”
“그렇다고 언제까지 저 상태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재 협상을 위해 사람을 보내고 있고, 비밀리에 침투해서 황족을 구출할 방법이 없는지 모색하고 있으니 사령관은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책임은 내가 질 것이오.”
오베론 공작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수도 군단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오베론 공작의 말은 핑계에 불과했다.
황궁을 점거하고 있는 적군과 협상하라고 보낸 사람은 사실 오베론 공작의 심복으로 황궁 안의 상황을 파악하고 황궁을 점령하고 있는 남방군 기사들과 향후 펼쳐질 작전을 모의하고 나왔다.
오베론 공작은 굳이 서둘러 작전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긴장 상황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 나가면 됐기 때문이다.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이 늦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원안대로 추진하시오.”
“하지만, 재상 각하! 황궁이 저 지경인데 이 사업을 추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황궁은 우리 군이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소. 구출 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전쟁이 일어나도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법이오. 수도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상황이라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어요.”
“······.”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국가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오.”
비상 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오베론 공작의 말이었다.
대신들은 상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에 선정된 업체들이 원안대로 발표되고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최근 한 제철 회사가 파격적인 가격 공세에 나서는 바람에 많은 제철소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오. 가격 할인을 내세운 그 회사가 과연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지, 철강 공급망을 교란하여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술수는 아닌지 조사하시오. 그리고 그 회사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사들은 국고로 지원하시오.”
“국고로 다른 철강 회사들을 살리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민간 시장에 정부가 함부로 개입하면 경제 질서가 무너집니다! 국고로 지원했음에도 결국 망해 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습니까?”
“기간산업이 갑자기 무너지고 그로 인해 산업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옳지 않아요. 더구나 전시 아니오? 전선에 무기와 물자를 적시에 공급해야 하는데 원료 공급 질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소? 필센 제국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피닉스 제철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로 인해 크게 출렁이던 오베론 제철이 국가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더구나 피닉스 제철은 경찰과 조세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애초에 피닉스 제철은 오베론 가문의 사기 공작이 처음으로 실패하여 탄생한 회사이기 때문에 오베론 공작은 이 회사가 승승장구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황제가 있을 때는 함부로 권한을 남용할 수가 없어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다.
이제 비상 대권을 거머쥐고 있었고 마침 피닉스 제철의 강력한 가격 공세로 오베론 제철이 해를 입고 있었기에 철퇴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국가 권력을 이용한 공격 앞에서 일개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상 대권을 손에 넣은 오베론 공작 앞에서 머리가 좋은 바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군대와 경찰뿐 아니라 정부와 법원, 신문까지도 오베론 공작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신문을 이용해 루트를 공격하고 오베론 공작을 실각시키려 했는데, 이제 모두 소용없게 돼 버렸다.
“계엄이 해제되고 오베론 공작이 비상 대권을 상실해야 피닉스 제철이 살 수 있어!”
그렇게 되려면 황궁에 갇혀 있는 황족을 무사히 구출하고 황궁을 점거한 적들이 바로 오베론 가문의 병력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아가, 변고가 있던 날 우리 옆집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지 뭐니.”
레오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보름스 자작 부인이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며 바덴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새벽에 집채만 차가 눈빛이 흉흉한 사람들의 감시 속에 저택을 벗어났단 말이야.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황궁에서 변이 발생했단 말이지.”
“······!”
바덴이 물었다.
“그 차가 얼마나 큰데요? 모양은 어땠어요?”
“글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짐을 싣는 차 같았는데 엄청 크더구나. 저택 대문을 활짝 열었지만 부딪칠 뻔했지.”
그렇게 큰 화물차는 붐붐 화물차밖에 없었다.
‘누가 붐붐 화물차를 구입해 갔는지 확인하면 된다!’
오베론 공작과의 연결 고리를 증명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문제는 어쨌든 그 화물차 역시 황궁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오베론 공작이 증거를 인멸하기로 마음먹으면 언제든 부수거나 빼돌릴 수 있었다.
시간이 더 길어지면 안 된다.
‘서둘러 황궁을 탈환하고 막심 전하를 구출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머릿속에 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