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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46화 (346/450)

346. 훈련이 무색하구나

346. 훈련이 무색하구나

노바의 서쪽에 인접한 라자 지방에서 열차를 세운 변경 8군단은 대열을 갖추고 노바를 향해 나아갔다.

선두는 탐탐 부대가 맡았다.

경갑을 착용한 병사들이 변경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동물을 타고 긴 삼지창을 든 채 나란히 행진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멕 나이트 부대가 행진하고, 멕 워커 부대가 크고 묵직한 멕 나이트 방패를 들고 맨 뒤에서 따라왔다.

행군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변경 8구역으로 돌아간 열차들이 남은 병력을 태우고 와 모든 병력이 합쳐질 때 노바의 서쪽 관문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고려한 것이었다.

또한 이 군대의 출현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신문의 자유에 관한 포고령 이후 간이 부은 기자들이 쭈뼛쭈뼛 나타나 어디에서 온 군대인지, 무슨 목적인지 물었을 때 루산의 조언을 들은 율리안이 당당히 말했다.

“우리는 원시의 땅에 사는 괴수로부터 제국을 지켜 온 변경의 군대이다. 황제 폐하께서 동방 순시를 떠나 노바에 안 계시는 틈을 타 황궁이 적에 의해 침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도 우리 군대가 황궁을 탈환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아 직접 움직이게 되었다. 계엄 정부가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할 것이니 노바와 필센의 국민들은 걱정하지 말라.”

경갑을 착용하고 탐탐에 올라탄 변경 8구역의 통치자 율리안이 멕 나이트 수백 대 - 뒤에 서 있는 멕 워커도 멕 나이트 방패를 들고 있어 멕 나이트처럼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 - 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기사와 함께 신문 1면에 큼지막하게 실렸다.

노바와 계엄 사령부가 발칵 뒤집혔다.

“변경 통치자가 명령도 없이 병력을 이끌고 상경하다니, 제정신인가! 당장 변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여 중죄로 다스리겠다고 경고하라!”

오베론 공작이 계엄 사령관의 입을 빌려 명령을 내렸다.

그의 심복이자 계엄 사령관을 맡고 있는 슬레벤 백작이 부하에게 명령서를 전달하며 말했다.

“변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한편, 변경 군단의 병력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그러나 율리안은 계엄 사령관의 명령서를 받아 읽고 나서도 돌아가지 않았다.

“재상과 계엄 사령관에게 도무지 황궁 탈환 의지가 보이지 않기에 온 것이다. 황궁을 탈환할 때까지 지켜보고, 필요하다면 도울 것이니 그리 알라!”

명령서를 들고 온 슬레벤 백작의 부하는 변경 군단의 병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탐탐에 둘러싸여 쫓겨나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변경 8군단이 계속해서 수도로 다가오자 계엄 사령관이 수도 군단 사령관을 불러 명령했다.

“변경 군단이 수도로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우리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에요!”

수도 군단 사령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황궁이 적군에 함락된 적은 있었나? 반란도 처음이야!’

그러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번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오베론 공작이 수도 군단을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마나포대가 설치된 관문을 지키고 있으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대군의 침입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관문 방어는 내부에서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취약하다는 것이 반란 사건을 통해 확인된 이후 노바 내부로 잠입한 적에 의해 공격받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마나포대가 증설되었기 때문에 관문이 뚫릴 일은 거의 없었다.

수도 군단 3전단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노바 서쪽 관문을 향해 변경 8군단이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변경에서 다시 출발한 병력이 합류하여 변경 군단 병력 규모가 두 배로 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수도 군단에서도 변경 군단 병력이 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앞으로 계속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번에 움직인 변경 군단은 아직까지 8군단 하나뿐이지만, 변경 구역은 모두 8개.

나머지 구역의 병력도 움직일지 모른다.

5년 전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규모가 많이 줄었다지만, 모두 합할 경우 현재 노바에 있는 수도 군단, 오베론 지방에서 새로 편성되어 올라온 신남방군, 경찰 특수 타격대에서 보유하고 있는 멕 나이트보다 훨씬 기체 수가 많았다.

“이놈들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오베론 공작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술술 풀리고 있던 상황이 변경 군단의 출현으로 꼬여 가자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머지 변경 구역에 명령을 내려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변경과 인접한 지방에 주둔하고 있는 지방군에 함부로 변경 병력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시를 이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서부선 철로는 변경 8군단이 막고 있었기에 변경으로 가려면 북부선이나 남부선을 타고 멀리 우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경 다른 구역에 경고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수도 군단 3전단으로부터 급보가 날아든 것이다.

<변경 8군단, 서쪽 관문 돌파 시도! 3중 방패를 들고 그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증원 요청!>

계엄 사령관 슬레벤 백작이 명령을 내렸다.

“수도 군단 1전단과 2전단이 가서 도우시오!”

“그렇게 되면 황궁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는데 괜찮겠습니까?”

“나머지 병력이 빈틈을 메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머지 병력이란 곧 오베론 지방에서 올라온 신남방군 병력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황궁을 차지하고 있는 병력이 같은 편이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황궁 포위를 담당하고 있던 수도 군단 1전단과 2전단 병력이 노바 서쪽 관문으로 긴급히 이동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

“신문은 사실을 보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말씀 좀 해 주세요!”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꺼져라, 좀!”

현장 지휘소 근처에 머물고 있던 신문 기자들이 자동차와 마차를 타고 따라가며 취재 경쟁을 하고, 경찰이 그들을 막아서며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욕설과 물리적인 제지를 뚫고 서쪽 관문까지 따라간 기자들이 수도 군단과 변경 8군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결을 생생하게 보도했고, 노바는 더욱 혼란에 휩싸였다.

오베론 공작과 계엄 사령부의 관심도 서쪽 관문에 쏠려 있었다.

병력을 추가로 투입해서 변경 군단을 완전히 제압해야 하는지 아니면 황궁 탈환 작전에 포함시켜 준다며 달래야 하는지 고심했다.

노바의 서쪽 관문에서 변경 8군단과 수도 군단의 대치가 화제가 되고 모두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가운데 3일이 지났다.

노바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남쪽에서 멕 나이트와 파일럿을 실은 화물 열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필센 제국의 병력 대다수는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가 있었고, 노바 내에서의 관심은 변경 군단과 서쪽 관문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노바 남쪽 관문을 지키고 있는 수도 군단 4전단이 멕 나이트를 싣고 오는 화물 열차를 그대로 통과시키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화물 열차들은 남부선을 타고 노바 역까지 그대로 달렸다.

워낙 많은 열차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어서 플랫폼에 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정차했다.

“하차한다! 파일럿들은 멕 나이트에 탑승하고 정렬하라!”

오랜만에 전투복을 차려 입은 아라드 왕국의 재상 니트라 공작이 열차에서 내려 우렁차게 명령했다.

부하들이 재빨리 달려 각 열차에 명령을 전했다.

어느새 아라드 왕국의 주력 멕 나이트가 된 레오파드가 아라드 왕국의 문장을 방패와 가슴에 새긴 채 화물 열차 위에서 몸을 일으켜 정렬했다.

그 모습을 본 니트라 공작은 가슴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내가 필센 제국의 수도에 아라드 왕국의 멕 나이트를 이끌고 입성하다니!’

약소국의 총사령관으로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지 못하는 서러움을 톡톡히 겪었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감상에 젖을 수는 없었다.

‘이것으로 필센 제국 황제에게 우리나라를 구해 준 빚을 갚는다!’

그동안 변경 8구역에서 원시의 땅을 통과해 밀수해 온 레오파드가 무려 220여 대나 되었는데 이번에 모두 동원했다.

형식은 밀수이지만, 그는 필센 제국의 황제가 정부에 알리지 않고 동맹국을 위해 베푼 지원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변경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신형 멕 나이트를 받는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아라드 왕국에서 루산을 통해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황제의 특별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루산의 편지를 받았을 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동맹국이지만, 실제로는 힘의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있었다.

이번 기회에 빚을 갚고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으리라!

“적도에 의해 침탈된 필센 제국 황궁을 탈환한다! 어려움에 처한 동맹국을 돕고 아라드 왕국의 기상을 드높일 것이다!”

아라드 왕국의 레오파드 220여 대가 황궁으로 가는 대로를 질서 정연하게 행진했다.

아라드 왕국의 레오파드 뒤로 소속 표시가 없는 낡은 멕 나이트 30여 대가 뒤따랐다.

남방군 출신, 구귀족파 죄수 부대 출신들 가운데 가장 실력이 뛰어난 파일럿들만 추려 데려온 아라드 변경의 병력이었다.

미켈과 레보르크가 주축이 된 반란 파일럿들은 중고 멕 나이트를 타고 노바 역을 지나 황궁으로 가는 길을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으로 걸어갔다.

‘이 얼마나 오래 걸린 길인가!’

‘복수다! 기다려라!’

멕 나이트 안에 들어 있는 파일럿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

아라드 왕국에서 들어오는 열차들을 모두 통과시킨 4전단은 곧바로 3전단이 지키고 있는 서쪽 관문과 나머지 수도 군단 부대들에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전단장이 파일럿들을 소집했다.

“우리의 적은 오베론 공작이다!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공작을 잡고 남방군을 모두 제압한다!”

혼란이 일어났지만, 전단장이 수도 군단 사령관의 직인이 찍힌 비밀 명령서를 파일럿들에게 회람시켜 설득했다.

남쪽 관문에 최소 병력만 남긴 4전단은 멕 나이트를 앞세워 황궁을 향해 북상했다.

한편 소식을 들은 서쪽 관문의 3전단도 1, 2전단과 함께 황궁이 있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아라드 왕국에서 병력이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멕 나이트가 무려 250여 대나 된다고 합니다!”

3전단장은 직접 율리안을 찾아가 이야기를 전했다.

율리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루산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부장님!”

“네, 통치자님!”

루산 역시 감격했다.

아라드 왕국에서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했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도와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변경 8군단이 노바 서쪽 관문을 아무 피해 없이 통과했다.

율리안을 위시한 탐탐 정찰병 50기가 선두에 섰다.

그 뒤에 우르사가 멕 나이트와 멕 워커를 포함한 300여 대의 멕들을 이끌었다.

서쪽 관문을 통과하던 루산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도 방어 훈련이라는 게 참 무색하구나!’

제국 기사 아카데미 시절에 수차례 참가했던 수도 방어 훈련.

혹시나 모를 아우로라 연합군의 노바 침공에 대비해 수도 군단, 근위대, 노바에 인접한 지방군, 그리고 제국 기사 아카데미 학생들까지 포함되어 행해지는 대규모 훈련.

그 많은 노력들이 무색하게 변경 8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노바에 입성했다.

물론 변경 8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이 적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학생 시절에 훈련에 참가했을 때는 도무지 뚫릴 것 같지 않던 노바가 이렇게 허망하게 외부 군대를 들인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황제의 부재가 이렇게나 큰 것이구나!’

막심의 과도한 개입, 오베론 공작의 거사, 변경 8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의 무혈입성, 이 모두가 황제의 부재 덕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서둘러 오베론 공작을 처리하고 황제가 돌아오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 루산은 이미 오베론 공작 너머에 있는 황제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남방군과 오베론 공작을 처리해야 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려면 강해 보여야 한다! 걸음걸이를 맞추고 대열을 정돈하라!]

루산은 변경 파일럿들에게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질서 정연한 행진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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