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곧 무너지게 생겼다
349. 곧 무너지게 생겼다
변경에서 무시무시한 괴수들을 때려잡던 포악한 강철 곰은 깨끗하고 윤이 나는 수도의 신사들을 향해 거칠게 돌진했다.
쿵! 쿵! 쿵! 쿵!
힘차게 달려간 우르사가 왼쪽 어깨로 들이받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근위대 멕 나이트들이 방패를 들어 버텨 보았지만 3배에 달하는 엔진 출력과 2.5배나 되는 중량으로 부딪쳐 오는 우르사의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 순간, 우르사는 허공에 뜬 근위대 멕 나이트를 향해 대형 해머를 휘둘렀다.
후웅-!
철퇴의 거대한 쇠공이 근위대 멕 나이트를 강하게 타격했다.
쩡!
목 아래 가슴 부분이 쇠공 모양으로 움푹 파인 근위대 멕 나이트가 바닥에 거칠게 나뒹굴었다.
변경에서 온 곰은 멈추지 않았다.
튕겨 나간 나머지 멕 나이트들이 일어나기 전에 대형 철퇴를 휘둘러 머리, 어깨, 가슴 할 것 없이 마구 내리찍었다.
쩡!
쩡!
쩡!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근위대 멕 나이트의 깨끗한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함몰되고, 가슴이 찌그러졌다.
[저 무식한 녀석을 처치해!]
동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본 다른 근위대 멕 나이트들이 마나 진동 기능을 활성화시킨 대검으로 우르사를 공격했다.
우르사가 왼손으로는 철퇴 손잡이의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는 쇠공이 달린 윗부분을 잡고 마나 진동 대검을 막았다.
챙!
가프 마법 연구소에서 대형 철퇴에 마나 진동 기능을 장착해 준 덕분에 마나 진동 대검에 잘리지 않은 것이다.
- 그게 전부냐?
마나 진동 대검을 튕겨 낸 우르사는 다시 대형 철퇴의 손잡이 끝부분을 두 손으로 잡고 힘차게 휘둘러 근위대 멕 나이트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근위대 멕 나이트가 서둘러 방패를 들어 막아 보았으나 상대는 방패와 함께 찌그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우르사가 막강한 파워로 선두에서 저지선을 무너뜨릴 때 003은 우르사가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공격받지 않도록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막고 적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그리고 그때 성벽이 무너진 틈으로 아라드 변경의 낡은 멕 나이트들이 밀려 들어와 근위대 멕 나이트들을 덮쳤다.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은 황제와 오베론 공작에 대한 증오를 폭발시켰다.
오베론 공작의 부하들이 타고 있는 근위대 멕 나이트를 몰아붙여 황궁 건물을 무너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아름답게 가꾼 황궁의 정원과 연못이 변경의 지저분한 흙발에 짓밟히고, 깨끗하게 손질된 근위대 멕 나이트 한 대가 낡은 변경의 멕 나이트 여러 대에 둘러싸여 난자당했다.
애초에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은 어릴 때부터 검을 익히고 변경으로 잠입한 뒤에도 멕 나이트 조종을 계속해 온 데다 루산을 따라 전장을 전전하며 전투를 해 온 경험 많은 파일럿들인 데 반해 황궁을 점거하고 있는 루트의 부하들은 오베론 지방의 젊은 귀족들과 오베론 가문에서 세운 파일럿 양성 학교 출신의 평민들이라 경험과 실력 면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우르사가 진형을 무너뜨리고 복수심으로 들끓는 경험 많은 파일럿들이 덮치자 황궁을 점령한 병력은 빠르게 진압되어 갔다.
그러나 성벽에 둘러싸여 있기에 밖에서는 황궁 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
“사령관님! 저들이 황궁을 탈환하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저들이 황궁을 공격하고 있을 때 우리가 뒤를 쳐야 합니다. 황궁을 공격하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기에 우리가 안팎에서 협공한다면 빠르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황궁 안의 파일럿들과 통신을 주고받은 신남방군 지휘관이 계엄 사령관 슬레벤 백작에게 호소했다.
슬레벤 백작 역시 잠자코 있는 것은 결국 패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저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지 않은가! 병력 차이가 너무 크다.”
이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사령관님! 자세히 보니 변경에서 온 병력 대부분은 멕 나이트도 아니고 멕 워커입니다. 그리고 변경 파일럿은 멕 나이트 전투를 할 줄 모릅니다.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라드 왕국군의 수가 제법 위협적이지만, 우리는 아이언 워리어 Ⅱ를 타고 있습니다! 기체 성능과 우리 파일럿들의 실력을 믿고 싸워야 합니다!”
“으음······!”
“황궁 안의 동지들이 모두 쓰러진 뒤에는 늦습니다! 이대로 보고만 있으면 오베론에서 올라온 우리 파일럿들의 사기도 극도로 떨어집니다. 제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슬레벤 백작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눈에 핏발이 섰다.
오베론 공작이 옆에 있었다면 당장 그에게 길을 알려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저들이 워낙 빠르게 움직인 데다 남방군을 포위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온전히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사령관님!”
부하의 재촉에 슬레밴 백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에 있는 병력과 호응하여 먼저 황궁을 치려는 적을 해치우고, 그다음으로 황궁 병력과 합세하여 수도 군단 병력을 칠 것이다! 우리 병력 일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적을 견제하고, 나머지로 황궁을 공격하는 적의 뒤를 쳐라!”
“알겠습니다!”
신남방군 지휘관이 자신의 멕 나이트로 달려가 올라타고 마나 통신기로 명령했다.
[잘 들어라! 오베론 공작님을 해치려는 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각 전대는 병력 3분의 1을 동원하여 우리를 바깥에서 포위하고 있는 적을 막고, 나머지 3분의 2로 황궁을 공격하는 멕 나이트를 친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신남방군 지휘관의 명령에 신남방군 멕 나이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모르지만, 불행히도 오베론 지방에서 올라온 멕 나이트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신남방군 파일럿들 가운데 지휘관급 인물들은 오베론 공작이 거사를 일으켰다는 것, 황궁을 점거한 자들이 동료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나머지 일반 파일럿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비밀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일반 파일럿들은 이 순간에 내려진 명령에 혼란을 일으켰다.
[수도 군단이든 변경 군단이든 아라드 왕국군이든 황궁을 점거한 아우로라 놈들을 물리치려고 온 것이 아닌가? 왜 저들과 싸운다는 거야? 멕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데. 안 그래?]
[그러게 말이야. 전대장님, 대체 무슨 말입니까?]
[잔말 말고 명령에 따라! 3소대는 우리를 둘러싼 적들을 견제하고 1소대와 2소대는 나와 함께 황궁으로 달려간 놈들의 뒤를 친다! 움직여!]
[아니, 그러다 인생 망하는 거 아닙니까? 황궁을 점거하고 있는 적을 소탕하려는 아군을 왜 공격하는데요?]
[이 새끼가! 저놈들이 아군이 아니고 황궁을 점거하고 있는 자들이 아군이라니까!]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황궁을 공격해 황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놈들이 아군이라고요?]
[아, 씨······!]
[대체 뭐예요?]
[야, 이 새끼들아! 너희를 파일럿으로 길러 주신 분이 누구야? 오베론 공작님 아니야? 오베론 공작님께서 임명한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으면 오베론 공작님을 위한 것이라고 알고 명령을 수행할 일이지 배은망덕하게 따지려 들어? 너희가 지휘관이야?]
[그건 아니지만······.]
[은혜도 모르는 개잡놈이 되겠다는 놈은 내가 목을 친다! 잔말 말고 따라!]
[······!]
[······!]
오베론 지방에서 태어나 오베론 가문이 세운 파일럿 양성 학교를 나온 평민 출신 파일럿들은 당연히 오베론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반란을 결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머리가 없다면 모를까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 이상했다.
명령을 따르는 데 익숙해진 군인이라는 사실과 지휘관의 악다구니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커다란 의문과 거부감에 그 움직임은 너무나 굼뜨고 정연하지 못했다.
게다가 황궁을 점거한 루트의 부하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불운이었다.
[남방군 멕 나이트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황궁 쪽으로 움직인다! 이에 대비하라!]
[알았다!]
루산은 통신기로 들어온 내용을 접수하고 명령을 내렸다.
[레보르크, 아라드 변경군 절반을 데리고 황궁 안을 정리해! 파워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적들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멕 나이트에서 내리지 말고 건물을 다 부수더라도 차근차근 진압해!]
[알겠습니다!]
[슐츠 경은 나머지 절반으로 내 뒤를 받쳐요!]
[그러지요.]
[이런 싸움 같지 않은 싸움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싸움은 다른 군대가 하면 충분하니 안전에 유의하세요.]
[알겠습니다, 대장님!]
루산이 뚫린 성벽을 통해 황궁 밖으로 나왔다.
미켈이 아라드 변경의 멕 나이트를 서둘러 나눠 절반은 레보르크와 함께 황궁을 소탕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을 이끌고 루산을 뒤따랐다.
루산은, 남방군 파일럿들에게는 몸을 사리라고 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적 부대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황궁 내부는 건물도 많고 좁아서 움직임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다면 황궁 바깥의 광장은 거칠 게 없었다.
우르사가 최대 속도로 달려 어깨로 신남방군 멕 나이트 소대를 들이받고 튕겨 나간 적들을 철퇴로 두드려 팼다.
기존의 멕 나이트 전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이 무식한 움직임에 오베론 지방에서 올라온 파일럿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시에나가 탑승한 003과 미켈이 지휘하는 아라드 변경군이 우르사의 뒤를 따르며 대열이 흐트러진 적을 제압하고, 황궁으로 달려갔던 아라드 왕국군의 레오파드들이 신남방군의 아이언 워리어 Ⅱ에 맞서 싸웠다.
“아니, 노바 안에서 시가전은 안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수도 군단 사령관이 율리안에게 항의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보세요, 사령관! 우리가 싸움을 걸었어요? 저들이 먼저 칼을 뽑아든 것 아닙니까? 이렇게 따질 시간에 수도 군단에 명령을 내려 서둘러 저 반도들을 제압하세요!”
율리안의 위엄 서린 말에 사령관이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신남방군을 둘러싸고 있던 수도 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의 멕 나이트들이 동심원을 좁혀 나갔다.
율리안은 변경 8군단에도 명령을 내렸다.
“2전단장이 말한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는 직접 싸우지 않을 겁니다. 방패를 단단히 붙이고 밀어붙이기만 하세요! 그러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겁니다.”
“네, 통치자님!”
1전단장 트리어가 멕 나이트에 올라타 변경 8군단에 명령했다.
[변경 8군단, 전원 방패를 붙이고 동료와 밀착하여 구령에 맞춰 전진한다!]
거대한 방패를 든 변경의 멕 나이트들이 동료와 몸을 밀착시킨 채 황궁 방향으로 나아갔다.
쿵!
쿵!
쿵!
쿵!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신남방군 파일럿들은 자신의 심장이 조여지는 것 같았다.
이미 기체 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데다 지휘관의 명령도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오베론 공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분명 존재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공작을 체포하라!
-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공작을 체포하라!
-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공작을 체포하라!
자신들을 둘러싸고 조여 오는 수많은 멕 나이트들이 외부 확성기로 외쳤다.
안에서는 황궁에서 나온 무식한 강철 곰이 아군 멕 나이트를 들이받고 진형을 부수며 날뛰고 있었고, 그 뒤에 분노를 갈무리한 낡은 멕들이 흩어진 아군 멕 나이트를 차근차근 해치우고 있었다.
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신남방군 파일럿들 가운데 일부는 저항하고 일부는 항복했다.
아이언 워리어 Ⅱ의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해 볼 새도 없었다.
신남방군 멕 나이트를 모조리 진압한 데 걸린 시간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황궁 정문 옆 높은 첨탑에서 여러 날 자르지 못해 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막심 황자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내가 여기 있다! 이 나라의 황자가 여기 있느니라! 어서 나를 구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황궁 내에서는 레보르크가 이끄는 아라드 변경군 멕 나이트들이 파워 아머를 착용한 적을 잡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고, 황궁 밖에서는 전투를 수습하기 위한 멕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백 대의 멕 나이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우르사가 철퇴로 부순 성벽에서 간간이 커다란 바위가 굴러떨어져 바로 옆에 서 있는 첨탑이 위태로워 보였다.
막심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놈들아! 어서 나를 구하지 못할까! 곧 무너지게 생겼다!”
그 모습이 우연히 율리안의 시선에 들어왔다.
“망원경을 좀······.”
“네. 여기 있습니다!”
현장 지휘소 옆에 있던 수도 군단의 지휘관 하나가 공손히 율리안에게 자신의 망원경을 바쳤다.
율리안은 첨탑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식별하지는 못했으나 막심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망원경을 떼고 우르사를 찾아 다시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았다.
저항할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은 적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다가간 우르사가 거대한 철퇴로 강철 거인들을 우수수 쓰러뜨리는 장면이 망원경에 포착되었다.
노바의 황궁 앞. 수백 대의 멕 나이트가 모여 있었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압도적인 모습!
아무리 많은 적이 몰려와도 홀로 모두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루산!’
황궁 앞에서 율리안은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