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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52화 (352/450)

352. 잡을까 말까

352. 잡을까 말까

루산은 바덴에게 황궁 상황에 대해 짧게 말해 주고 나서 변경을 출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갈아입지 못해 냄새나는 옷을 벗고 면도와 목욕을 했다.

그런 뒤 바덴이 욕실 바깥에 놓아 둔 뽀송뽀송한 옷을 입었다.

온몸이 상쾌했다. 결혼했다는 실감을 이런 데서 느낄 줄은 몰랐다.

루산은 곤히 자고 있는 레오나가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어린 딸의 볼에 뽀뽀했다.

바덴이 장난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가리키자 루산은 그녀를 꼭 안고 숨이 가쁘도록 입맞춤을 했다.

행복감에 가슴이 뿌듯했다.

바덴이 루산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루산이 씻는 동안 식탁에는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급하게 차린 거라······.”

“괜찮아요. 평소 먹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 뭘.”

루산이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바덴은 그 옆에 앉아 고기를 자르고 음료를 따라 주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텐커 씨가 왔었어요. 급하게 보고할 게 있는데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나도 만날 방법은 없다고 했더니 만나면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변경 8군단이 노바로 들어오려다 수도 군단에 저지당해 서쪽 관문 밖에 머물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봤기 때문에 바덴이나 스텐커 모두 루산이 왔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데요?”

“루트 오베론이 차를 밀수하던 배로 노바를 벗어나려 한다고요. 오베론 공작 일가와 중요 인물이 모두 그 배를 타고 달아날 것 같아요.”

“밀수 배? 엘버 강을 타고 내려가 바다로 가서 오베론 지방으로 들어가려는 건가?”

“그게 아니라 남방군과 합류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남방군? 큰아들이 지휘하는 그 남방군?”

“네. 어차피 오베론 지방으로 가 봐야 지금은 병력이 없으니까 저항할 방법이 없다고 본 거죠.”

이번에 오베론 지방에서 끌어온 신남방군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모두 쥐어짜 편성한 것이다. 이 병력이 모두 궤멸되었으니 당분간 오베론 지방에는 오베론 가문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남방군을 이끌고 황제보다 빨리 노바로 와서 필센 제국을 장악한 뒤 아우로라 대륙으로 가는 보급을 차단하겠다는 속셈이라고 하더라고요.”

“음!”

이미 노바에서 행한 계책이 실패했으니 이것이 오베론 가문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황제가 남방군을 저지할 병력과 함께 먼저 귀환하지 않는 한 꽤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남방군은 원래 3개 군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대전쟁이 발발하면서 2개 군단은 각각 북부와 동방으로 보내고 바트 오베론이 지휘하는 1군단만 남았다.

그런데 이 남방군 1군단은 전시 증편을 거치면서 세 배로 불어나 원래의 남방군 규모를 회복했다.

원래 필센 제국의 전시 증편은 멕 나이트 한 대에 메인 파일럿과 서브 파일럿, 두 명이 배정되어 있던 것을 멕 나이트 한 대를 추가로 공급함으로써 멕 나이트 수를 두 배로 불리는 것인데 오베론 가문은 남방군 1군단에 가문의 힘을 모두 쏟아부어 세 배로 불린 것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이동식 마나포라는 신무기와 아이언 워리어 Ⅱ라는 신형 멕 나이트를 대거 보급해 막강한 위력을 보유한 부대가 되었다.

이러한 남방군이 정벌 전쟁을 중단하고 노바로 돌아온다면 현재 많은 병력을 전선으로 차출하고 얼마 남지 않은 수도 군단이나 멕 나이트 전투 능력이 없는 변경 군단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루산은 입 안에 있던 음식물도 씹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그게··· 이번에 붙잡는 게 좋을지 아니면 모른 체하고 보내주는 게 나을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모르겠어요.”

“보내준다고요?”

바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수인 오베론 공작 가문을 멸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오베론 가문이 반란을 일으킨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여 이번에 붙잡기만 하면 다시 일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오베론 일가가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달아나려 하는지는 오직 루산만 알고 있었기에 체포의 공도 루산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보내준다는 것인가?

루산이 설명해 주었다.

“이대로 오베론 공작이 무너지면 황제와 대적할 사람이 없어요.”

“······!”

오베론 공작의 반란을 경험한 황제는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더욱 강한 권력을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시킬 것이다.

“수도를 먼저 차지한 남방군, 이를 응징하기 위해 병력을 돌려 돌아오는 필센 제국군. 필센 제국군이 훨씬 강력하지만, 수도와 본토를 먼저 장악한 오베론 공작이 보급품을 끊으면 동방군, 북방군, 네세베르 공략군도 제대로 힘을 못 쓸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바덴이 심각한 표정으로 루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오베론 공작과 황제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 율리안 님이 변경을 장악하고 괴수 부산물을 완전히 통제하며 노바를 구원한 경력과 명분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새로운 황제가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거예요.”

바덴이 진지하게 물었다.

“율리안 님을 황제로 만들고 싶으세요?”

루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베론 공작이 귀족 가문들에 사기를 치고 있을 때 방관했으니 원수나 다름없죠. 오베론 공작과 다를 바 없어요. 프리드리히 황제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율리안 님은 달라요. 백성들을 위하는 자애로움, 자기 말을 우선시하기보다 남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인내심, 결국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는 현명함을 갖춘 분이에요.”

“저 역시 율리안 님이 좋은 분이라는 것과 현명한 통치자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건 어쩌면 작은 변경을 다스렸기 때문에 부각된 것이 아닐까요? 작은 마을의 통치자는 친절함과 웃음으로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지만, 이 거대한 제국을 다스릴 때 과연 자애로움과 인내심으로 통치할 수 있을까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과감하게 한쪽 손을 들어주고 반대편을 누르는 냉정한 군주가 오히려 좋은 통치자일 수 있어요.”

루산은 바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작은 마을을 다스리는 이장과 대제국을 통치하는 황제가 같은 방식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바덴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다.

율리안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의 성품이 단지 상황에 의해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베론 공작의 남방군과 황제의 제국군이 싸우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같은 나라 사람들이 싸워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면 사태가 끝나더라도 미움과 분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내전이 길어진다면 후유증은 더욱 커지겠죠. 경제가 망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거예요. 전쟁으로 질서가 무너지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고 위축될 거예요. 이 주눅 든 마음이 풀리고 일상이 회복되는 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몰라요.”

바덴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전이 벌어지는 틈을 타서 아우로라 연합이 다시 힘을 내 우리 군을 공격할 수도 있겠죠. 내전으로 약해진 우리 군이 저들을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 제국은 성난 아우로라 연합에 의해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가리 찢겨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거예요.”

루산 역시 우려하는 부분이었다.

오베론 공작과 황제를 동시에 몰락시키는 것은 더없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아우로라 연합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전으로 나라가 피폐해지고 경제가 망해서도 안 된다.

복수를 위해 현재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것은 바덴은 물론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들에게도 말해 온 그의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고 오로지 얻기만 할 수는 없었다.

오베론 공작과 황제를 싸우게 함으로써 나라가 다소 피폐해지더라도 율리안을 황제로 만들 수 있다면 더 크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오베론 공작과 황제가 싸울 때 그 사이에 적절히 개입하거나 양상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싸움은 한 사람이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복수를 하려다 나라가 완전히 결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베론 공작과 황제를 망하게 했지만, 이 나라가 쫄딱 망해 버려 아우로라 연합의 속국이 되고, 그러한 나라에서 레오나가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전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루산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에 따라 바덴의 고심도 깊어졌다.

한참 후 루산이 다시 식사를 하며 말했다.

“그 부분은 더 고민해 보겠어요. 어쨌든 율리안 님을 설득해 노바까지 변경 군단을 이끌고 왔어요. 막심 전하를 무사히 구출했으니 이대로 변경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신 분을 붙들어 노바에 더 남아 있게 했어요. 사람들에게 율리안 님을 더욱 알릴 필요가 있어요.”

“존재감을 부각시키라는 말씀인가요? 중요한 인물로 부상시키라는 거죠?”

역시 바덴은 이해가 빨랐다.

“맞아요. 이름 없는 변경의 황족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변경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킨 황족, 소득을 크게 늘려 준 변경의 통치자, 백성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 주고 관광도 시켜 주는 자애로운 군주···, 이런 이미지를 주는 거죠. 율리안 님이 통치자가 된 뒤에 변경 8구역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인구와 소득을 수치로 보여 준다면 사람들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변경 8구역의 변화는 루산이 이끈 것이지만, 그는 이것을 율리안을 부각시킬 소재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신문을 통해 많은 일을 해 본 바덴은 루산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금방 깨달았다.

“그러다 막심 황자가 시샘을 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막심 황자도 띄워야죠. 적의 손에 잡혀 있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필센 제국의 황자, 수척해졌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은 필센의 황자, 이런 느낌으로. 그래 봐야 그는 둘째 황자라서 더 얻을 게 없어요. 기사를 보고 기분만 좋을 뿐이죠. 하지만, 율리안 님은 무명에서 일약 노바를 구원한 변경의 통치자로, 유능하고 자애로운 통치자로 알려지는 거예요.”

루산의 말을 들은 바덴이 굳은 표정을 풀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우리 회사에 취직할 생각 없어요? 기획, 홍보 쪽 업무를 맡기고 싶은데. 한 달에 50골드 드릴게요. 요즘에 이만큼 대우해 주는 직장이 흔치 않아요.”

루산도 딱딱한 표정을 풀고 장난에 동참했다.

“어쩌죠, 사장님? 지금 그것보다는 조금 더 받고 있거든요.”

“그럼 60골드?”

“좀 더······.”

“70?”

“그거보다 더.”

“100?”

“더······.”

“설마 500?”

“더!”

“에이! 차라리 내가 당신한테 갈래요! 아~ 하세요!”

루산이 입을 벌리자 바덴이 고기를 입에 넣어 주었다.

잠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펼쳐졌지만, 두 사람은 금세 진지해졌다.

“기사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언제나 따를 테니까요. 그리고 내일부터 율리안 님에 대한 기사화 작업을 시작할게요.”

“고마워요, 바덴. 이틀 간 시간이 있으니 오베론 공작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볼게요.”

“네.”

식사를 마친 루산은 레오나를 다시 한번 보고 나서 집에 있는 차를 타고 나갔다.

스텐커를 만나 오베론 공작에 대한 감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눈 뒤에는 다시 율리안에게 가서 은밀히 말했다.

“오베론 공작을 추격 중에 있답니다. 며칠 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경찰이나 수도 군단에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다 괜히 일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제가 그쪽에 도움을 요청할 테니 그때까지 율리안 님도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았어요!”

약속을 받아낸 루산은 스텐커 일행과 합류해 엘버 강 남쪽 선착장으로 갔다.

사기를 당한 가문의 협력자들과 팔다리가 불편한 남방군 출신 기사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오베론 일파가 숨어 있는 은신처를 감시하고 있었다.

루산은 그들과 함께 차 안에서 교대로 은신처를 감시하며 고민했다.

‘여기서 잡을 것이냐, 아니면 풀어 줄 것이냐?’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엘버 강에 뜨거운 해가 떠올랐다.

동쪽에서 강을 운항하는 배 치고는 상당히 큰 배 한 척이 엘버 강을 거슬러 올라와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귀족 가문의 협력자가 말했다.

“밀수선이 들어옵니다!”

차 안에서 교대로 선잠을 자던 반란군 출신 파일럿과 인근 여관에서 잠을 자던 협력자 그리고 스텐커의 조수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옷 안에 감추고 있는 무기를 점검하고 사전에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잠시 후 선착장에 닿은 배에서 사람이 내리고, 인부들이 배로 올라가 화물을 육지로 옮겼다.

그리고 오베론 일파가 은신처로 삼고 있던 창고와 숙소의 문이 열리고 마차가 나왔다.

“기사님! 나옵니다!”

스텐커가 흥분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쓰며 말했다.

“잡을까요?”

그러나 루산은 여전히 고심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마차가 밀수선으로 점점 다가갔다.

“기사님!”

스텐커의 재촉에 루산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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