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56화 (356/450)

356. 인정하십니까?

356. 인정하십니까?

변경 8군단이 돌아가자 아라드 왕국군도 남아 있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차례대로 철수했다.

다만 아라드 왕국의 재상 니트라 공작은 곧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필센 제국으로서는 비상사태에 놓여 있던 제국을 구하러 온 동맹국 고위 인물을 홀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황궁이 무너져 동맹국의 재상을 대접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과 오베론 공작의 반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막심이 대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형님, 궁이 부서진 것과 형님이 지금 연회를 베풀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니트라 공작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 만나서 감사 인사만 하시면 대접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율리안의 말에 막심이 반색했다.

“그래 주겠어?”

“그럼요!”

막심은 니트라 공작과 정부 청사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잠시 환담을 나눈 뒤 헤어졌다.

아라드 왕국이 멕 나이트 부대를 이끌고 제국으로 들어온 연유가 궁금하기는 했으나 율리안이 요청하고 아라드 왕국에서는 두 번의 전쟁에 걸쳐 필센 제국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이에 응했다는 말에 수긍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큰 도움을 준 데다 군사 작전이 끝나자마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바로 병력을 돌려보낸 동맹국의 재상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막심이 돌아가자 율리안이 루산의 조언대로 니트라 공작을 바람의 언덕 장원 별장으로 이끌었다.

니트라 공작은 크고 번화한 노바의 풍경도 인상적이었지만, 노바 교외에 자리한 쾌적하고 호젓한 장원 별장의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휴양을 위해 일부러 건설한 이런 멋진 장소가 아라드 왕국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변경 8구역에는 아라드 왕국 백성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리노 공화국이 아라드 왕국을 침공했을 때 발생한 피란민들이죠.”

율리안이 니트라 공작과의 대화를 위해 꺼낸 이야기에 늙은 동맹국 재상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렇습니까? 어찌 지냅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제국은 변경으로 들어온 백성들을 함부로 부리지 않습니다. 일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죠. 다들 자기 집을 가지고 있고,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나가 일을 하여 안정적으로 살아갑니다. 그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 준 덕분에 8구역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니트라 공작이 의례적으로 말했다.

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간 백성들이 잘 살아 봐야 얼마나 잘 살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율리안이 말했다.

“아! 언제 한번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직접 보시죠. 다른 나라로 가서 고생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시겠지만, 직접 보신다면 안심하실 겁니다. 노바에서 가장 풍족하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상당히 넉넉하게, 잘 사는 축에 속할 거예요.”

율리안이 이렇게까지 장담하자 니트라 공작은 이 젊은 변경의 황족에게 호기심과 호감이 생겼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제국의 변경 정책으로 인해 당장 돌려보내지는 못하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전쟁이 마무리되고 나라 안팎의 사정이 정리되면 상호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거나 고향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 송금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도록 하죠.”

니트라 공작은 전쟁을 피해 필센 제국 변경으로 흘러 들어간 아라드인이 고향으로 송금할 정도로 여유롭다는 것이 사실인지 정말로 궁금했지만, 율리안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참으로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고 싶군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두 사람이 어색하던 분위기를 털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루산은 미소를 지었다.

아라드 왕국은 여러 모로 그에게 중요한 나라였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대부분은 사실 아라드 변경에 있었고, 아라드 변경이 제대로 개발된다면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고슬라 그룹과 피닉스 제철도 아라드 왕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라드 왕국 자체가 편지 하나로 병력을 보내 줄 만큼 루산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 율리안과 니트라 공작이 가까워지는 것은 반가운 일인 것이다.

니트라 공작에 대한 대접은 바람의 언덕 장원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루산은 바덴과 상의하여 니트라 공작에게 고슬라 그룹의 많은 사업체들을 둘러볼 기회를 주었다.

율리안도 시간이 될 때는 니트라 공작과 동행했다.

붐붐 자동차

펜트 농업 기계

반달 식품의 여러 공장들

반달 제분 공장

보헨 지역, 라벤스 지역 개발 현장

노바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슈텐달 지방에 있는 피닉스 제철도 견학했다.

고슬라 그룹과 피닉스 제철의 규모, 역량을 직접 느끼게 함으로써 더욱 강한 믿음을 심어 주고 아라드 왕국 재건 사업을 확신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라 다를까 니트라 공작은 큰 감명을 받았다.

“이런 훌륭한 기업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군요! 앞으로도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을 테니 우리나라에 이런 공장들을 많이 지어 주시길 바랍니다!”

율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경 8구역에 커다란 레오파드 간편식 생산 공장을 세우고 반달 농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바덴이 여러 종류의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나 규모가 큰 사업체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고슬라 사장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런 말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

“아니, 정말로 놀랐습니다. 변경 8구역에도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부탁드립니다.”

“능력이 되는 대로 변경 8구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바덴의 말은 진심이었다.

변경 8구역의 발전은 곧 루산의 발전이고 그것은 자신의 발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변경 8구역에는 이제 고슬라 그룹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고슬라 그룹이 공장을 세우지 않아도 가프 마법 연구소가 성장하면서 규모가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변경은 7구역 재건 사업이 중요했다.

바덴은 그와 관련하여서도 율리안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쨌든 고슬라 그룹의 사업체들을 둘러보며 크게 자극을 받고 바람의 언덕 장원에서 사색하며 많은 생각들을 정리한 니트라 공작은 더욱 선명한 꿈을 품고 아라드 왕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하기 전에 그는 막심, 율리안과 인사를 나누었고 노바 역까지 배웅을 나온 루산에게는 특별히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서고 발전한다면 나는 그것을 그대의 덕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니트라 공작은 루산의 손을 꼭 잡은 뒤 열차에 올랐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군요.’

루산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니트라 공작을 떠나보냈다.

***

오베론 공작 정도 되는 거물을 말단 형사가 취조할 수는 없었다.

형사국장 그리마가 심문실로 들어갔다.

그는 며칠 사이 홀쭉해진 오베론 공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베론 공작이 초췌하고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그리마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증거가 차고 넘친다지만 이 정도 거물을 상대하자니 그리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는 소리 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 질문지와 사건 기록들을 탁자 위에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반란을 인정하십니까?”

“하지도 않은 걸 어떻게 인정하란 말인가.”

오베론 공작이 힘없이 말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배신당했다 해도 그가 살 길은 이것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다. 최대한 오래 끌면서 버틴다.

바트가 남방군을 이끌고 올 때까지.

“황궁을 공격해 점거한 자들을 심문해 보니 전원 오베론 지방 출신이더군요. 당신이 세운 오베론 파일럿 양성 학교 출신들이 절반, 오베론 지방의 귀족 출신들이 절반 정도 되던데, 그래도 부정하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당신이라는 표현에 오베론 공작의 눈썹이 씰룩였다.

평민 출신 경찰 나부랭이에게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단어였던 것이다.

“···루트 오베론을 경호하던 기사의 지인들이 20여 명이나 되고, 이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황궁 주변의 저택을 여러 채 구입한 사람 또한 경호 기사 군터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동 수단을 구입한 사람 역시 그자였고 말입니다. 이래도 부정하시겠습니까?”

“글쎄, 내가 한 적이 없는 걸 어쩌겠나?”

“직접 한 적이 없다? 직접 하지는 않았고 묵인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반란을 일으킨 건 루트 오베론이고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겁니까?”

“루트가 그랬을 리 없지. 루트를 경호하던 녀석이 그랬다면 모를까. 어쨌든 나는 모르는 일이네.”

“경호 기사가 했다고요? 당신은 모른다고요?”

그리마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다른 서류철을 펼쳤다.

“이걸 보니 몰랐다는 말이 사실일 것 같기도 하군요.”

오베론 공작은 불쾌했다.

“뭐가 말인가?”

그레마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슈베비슈 거리의 상점들이 루트 오베론의 소유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응?”

“헤센탈 쇼핑 거리 역시 루트 오베론의 것이죠.”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전쟁으로 소비가 위축되어 상점과 유통 회사들이 도산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루트 오베론이 마젠스 자작의 권유로 사들인 것들이죠. 전쟁 전에 이 거리의 상점들과 유통 회사의 가치를 모두 합치면 2천만 골드가 넘습니다. 그런데 4백만 골드에 쓸어 담았어요. 어떻게? 돈을 빌려 주고 못 갚으니까 현물로 가로챈 겁니다. 당연히 폭력배들이 동원되었고 말이죠. 한마디로 사채놀이를 한 겁니다. 신문에 여러 차례 실렸는데 못 보셨습니까?”

그러자 오베론 공작이 비웃으며 말했다.

“신문? 그걸 믿나? 그건 정치 공작이야. 동부 공업 지구 재개발 사업 문제로 나를 고깝게 보던 자들이 지어낸 거지.”

“하!”

이번에는 그레마가 비웃음을 던졌다.

“안타깝지만, 이건 모두 사실입니다. 신문 기사는 우리가 조사한 내용을 기자들이 입수해 작성한 거예요. 경찰에서 직접 조사했단 말입니다.”

“뭐?”

“2천만 골드짜리를 4백만 골드로 얻었으니 공짜나 다름없지만, 4백만 골드는 거액이잖아요? 그게 어디서 났을까요? 마젠스 자작이 루트를 위해 오베론 공단 운영 자금을 빼돌렸어요. 장부를 꼼꼼히 대조해 보면 알 텐데······. 아! 나랏일이 바쁘셔서 이제 그런 일은 직접 안 하시지요?”

오베론 공작은 갑자기 한기가 들고 털이 쭈뼛 섰다.

“유흥가 장악을 위해 쏟아부은 돈도 어마어마합니다. 대전쟁이 끝나면 소비 경기가 살아나리라고 예상하고 투자한 거죠. 무려 3백만 골드를 썼어요. 노바 유흥가가 둘째 아드님 거였어요. 이번에 달아나려던 배는 어떻게 구한 줄 아십니까? 그 배가 바로 차를 밀수해 오던 배였어요. 그러니 루트 일당만 태우고 떠났죠. 신문 기사가 정치 공작을 위한 허위 기사라고요? 안됐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그레마는 오베론 공작이 자료를 찬찬히 살필 수 있게 아예 보여 주었다.

공작은 눈동자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루트 오베론이 가문의 기둥뿌리를 모두 뽑아 자기 집을 새롭게 세웠을 텐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조금밖에 빼 먹지 못했군요. 어쨌든 잘 알았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몰랐고, 루트 오베론이 경호 기사와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알고 있겠습니다.”

“흐음!”

“루트 오베론은 반란죄. 만약 바트 오베론이 루트의 이야기를 듣고 반역의 깃발을 든다면 그 역시 반란죄. 두 아들은 사형, 그 가족들은 반역자의 가족으로 평생 경찰의 감시를 받고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게 될 겁니다.”

“······.”

“당신은 몰랐으니 두 아들과 달리 살아남아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남은 평생을 살 수 있겠네요. 원한다면 루트를 고소해도 됩니다. 재산을 빼돌린 부분에 대해서 말이죠.”

“그만! 그만하게!”

오베론 공작이 눈이 벌게진 채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리마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 역시 오베론 공작을 이렇게 몰아붙였으니 끝을 봐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노바 경찰청장 자리를 약속하는 스텐커의 말도 끝을 보려는 데 한몫했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왜 루트와 함께 배를 타고 도주하려 했습니까? 루트가 가문의 재산을 빼돌린 것도 전혀 모르는 것을 보니 반란을 몰랐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그 사실도 몰랐으면서 왜 달아나려 했는지 그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그리마가 여유롭게 허리를 뒤로 젖히고 오베론 공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베론 공작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리마가 다시 물었다.

“반란을 인정하십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