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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57화 (357/450)

357.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357.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계엄령은 아직 해제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막심 황자가 오베론 공작이 발령한 계엄령을 취소하고, 반란 세력 일소와 혼란 수습을 명분으로 새롭게 발령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까지 알고 있는 백성들은 많지 않았다.

정부 청사에서 일하는 관리들, 군인과 경찰들은 알고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함구령이 떨어져 소문의 확산은 빠르지 않았다.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은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사태가 완전히 정리될 때 공표하기로 했던 것이다.

어쨌든 황궁을 탈환한 이후에도 계엄령은 유지되고 있어서 무장한 수도 군단과 경찰 병력이 노바 시 외곽과 시내 주요 길목을 막고 검문했으며, 멕 나이트가 황궁으로 진입하는 길목과 열차 역, 선착장 등 중요 시설을 경비하고 있었다.

황궁 탈환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병력이 간간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바로 황궁 주위를 순찰하는 탐탐 정찰병이었다.

변경 8군단 탐탐 정찰병들은 2인 1조로 탐탐을 몰고 황궁 주위를 돌아다녔다.

경갑을 착용하고, 긴 삼지창과 작은 원형 방패를 든 정찰병의 차림새도 낯설었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탐탐은 더욱 신기해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고는 했다.

탐탐을 처음 봤을 때는 기이한 생김새 때문에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을 두드리는 귀여운 행동을 보고 호기심을 보이다 용기를 내, 간간이 탐탐을 멈춰 세우고 쉬고 있는 정찰병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그러했다.

“얘는 안 물어요?”

“뭘 먹어요?”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어요? 말보다 빨라요?”

그러면 경갑을 착용한 정찰병들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으니까 겁먹을 것 없어. 벌레를 먹거든. 커다란 애벌레 같은 걸 먹지.”

“변경에서 가장 빨라. 덤불숲에서는 말보다 빠를걸. 하지만, 넓은 평지에서는 말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친절한 대답에 아이들은 더욱 용기를 냈다.

멕 나이트로 전쟁을 치른 뒤로 좀처럼 볼 수 없는 갑옷의 용도, 삼지창이 긴 이유, 변경의 괴수 같은 것들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추가 질문에도 정찰병들은 귀찮은 기색 없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겉으로 볼 때는 용맹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친절한 변경 정찰병과 크고 사나워 보이지만 귀엽고 순한 탐탐.

루산은 노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무척 노력을 기울였다.

신문에 정찰병과 탐탐이 변경의 안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기사를 싣고, 용감한 나라 장난감에서도 변경 정찰병과 탐탐 시리즈를 새로 출시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냄으로써 용감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널리 퍼뜨렸다.

그뿐 아니라 8군단 정찰병들에게도 반복적으로 교육시켰다.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면서도 백성들에게 친근하게 대해야 합니다. 변경과 통치자 님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이에요.”

그러나 말로만 한다고 해서 거친 변경의 정찰병들이 들을 리 없었다. 게다가 노바에서 근무하며 백성들에게 친근히 대하는 일은 그들의 임무도 아니었다.

그래서 노바에 근무하는 동안 추가 수당을 약속했다.

사실 변경 정찰병들에게도 루산의 지시 사항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신문에 기사가 실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뿌듯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기자와의 인터뷰, 사진 찍는 일, 어린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변경을 꿈과 환상의 땅으로 포장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일이 반복될수록 변경에 대한 멋진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용감한 나라에서 만든 정찰병과 탐탐 시리즈의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그동안 레오파드 시리즈에 크게 밀렸던 변경 시리즈가 재고가 떨어질 정도로 팔려 나갔다.

이러한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막심을 필두로 정부의 관리들과 군인, 경찰은 모두 반란 사태의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 군단은 오베론 지방에 5전단과 6전단, 보병 사단 2개를 파병했고, 노바 경찰청에서도 오베론 경찰청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파견했다.

정부와 노바 시에서도 오베론 지방의 행정을 장악하기 위해 상당한 인력을 파견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가문의 힘을 모조리 빼앗고 그 가문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도 모두 조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행정과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

그렇게 많은 인력을 오베론 지방으로 보내다 보니 기존의 업무를 남은 인력으로 해야 했기에 은근히 진행되고 있는 ‘율리안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 끌어올리기 계획’을 알아챌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루산은 바덴과 함께 율리안 띄우기 계획을 진행하면서 이번 기회에 한 가지 일을 더 추진했다.

***

“율리안 님, 부탁이 있습니다.”

루산이 지금까지 개인적인 부탁을 한 적이 없었기에 율리안은 궁금했다.

“뭡니까, 부장님?”

“보름스 가문의 장원 깊은 곳에 공장이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오베론 공작이 사기를 쳐서 빼앗은 뒤 반란을 위해 툴롱 마법 연구소에 넘겨 멕 나이트를 만들게 한 곳 말입니다.”

“아! 기억이 나는군요.”

“전에 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오베론 공작으로부터 장원은 돌려받았지만 그 공장이 있는 땅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에서 그 멕 나이트 생산 공장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용하기로 해서 사용료를 받기로 했지요. 저는 가문의 땅을 깔끔하게 돌려받고 싶었지만, 아우로라 연합과의 전쟁이 임박한 때였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제국이 전쟁에서 거의 승기를 쥐고 있습니다. 미리 그 땅을 돌려받는 협상을 정부와 하고 싶은데 율리안 님께서 말씀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돌려받을 수 있게 힘을 써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부 당국자와 협상할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애초에 오베론 공작이 강탈한 보름스 가문의 땅은 정당하게 돌려주는 것이 옳은데, 전쟁을 핑계로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기에 율리안은 기꺼이 들어주기로 했다.

“누구를 만나야 하죠?”

“군무대신과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율리안은 직접 군무대신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괜히 정부 대신을 혼자 만나면 의혹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오베론 공작의 전과 중 하나로 막심에게 이야기해서 군무대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도록 허락을 받았다.

오베론 공작이 저지른 일이라는 말에 그 사건의 전말을 잘 모르는 막심은 자기 일처럼 분개하며 기꺼이 허락했다.

“전선에 멕 나이트를 보내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억울한 일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 잘 상의해서 생산에 지장이 없는 방법을 찾아 봐.”

“고맙습니다, 형님.”

그렇게 군무대신, 율리안, 그리고 루산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예전에 봐렌 철골이라고, 툴롱 마법 연구소가 비밀리에 세운 멕 나이트 생산 공장이 보름스 장원 내 깊은 골짜기에 있습니다.”

막심 황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군무대신은 미리 이 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나왔다.

“알고 있습니다. 매달 600골드의 임대료를 보름스 가문에 지불하고 있지요. 막심 전하께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해서 오기는 했으나 그때 맺은 협의 내용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용하는 조건이 아니었습니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퇴거 요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율리안이 옆에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막심에게 말했을 때는 잘 해결될 줄 알았는데 군무대신이 깐깐하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군무대신과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황제가 노바에 있었다면 이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무작정, 아무 대책 없이 멕 나이트 공장의 퇴거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협의하는 자리죠.”

“말씀해 보시지요.”

“동부 공업 지구 이전 대상지로 보헨 지역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지역에 반란을 일으킨 오베론 공작의 땅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멕 나이트 생산 공장을 옮기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군무대신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율리안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산과 운반 면에서 보헨 공단과 지금 위치해 있는 보름스 장원 깊은 골짜기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반란 사건으로 툴롱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공장이 더는 비밀이 아니게 되었으니 재료 조달이 쉽고 생산 후 엘버 강을 통해 운반도 쉬운 보헨 공단이 전선으로 멕 나이트를 공급하는 데 훨씬 나은 입지가 아니겠습니까?”

“음!”

맞는 말이었다.

루산은 엄숙히 덧붙였다.

“게다가 애초에 툴롱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생산 공장이 들어서게 된 배경에는 오베론 공작의 강탈과 반란 사건이 있습니다. 부정하고 불충한 일이죠. 전쟁으로 인해 멕 나이트 생산이 필요하다고 해도 부정을 되돌리고 오베론 공작을 징벌할 수 있다면 하는 쪽이 더 정의롭지 않겠습니까? 당장 옮기라는 것이 아니라 보헨 공단에 생산 설비를 갖추는 대로 이전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멕 나이트 생산에 지장이 생기는 일도 없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군무대신이 고민하다 말했다.

“보름스 자작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지야 오베론 공작의 땅을 사용한다 해도 새롭게 멕 나이트 생산 설비를 짓는 데는 많은 자금이 듭니다. 우리 정부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사용하여 재정에 여유가 없습니다.”

“생산 설비 건설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군무대신과 율리안의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입니까?”

“네.”

“굳이 그렇게까지······.”

“아버님이 오베론 공작의 농간에 가문의 땅을 잃고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문의 모두 땅을 되찾고 싶습니다. 설비 건설에 드는 비용은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정부 재정에 여유가 있을 때 돌려받는 것으로 하죠.”

루산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군무대신은 더 반대할 수가 없었다.

오베론 공작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도 있었고, 툴롱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생산에 차질도 없었다. 오히려 생산과 운반에 더 좋은 입지로 옮겨 가는 것이다.

게다가 막심과 율리안이 이 자리를 주선했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황제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

노바는 오베론 공작이 반란 혐의로 잡혀 들어가고 막심이 장악하고 있었다.

명분과 이익,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버텨 볼 텐데 버틸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전 계획을 세우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루산은 마침내 보름스 가문의 장원 가운데 아직 돌려받지 못한 봐렌 철골 부지를 돌려받기로 군무대신과 합의했다.

군무대신이 돌아가자 율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장님, 일이 잘 풀려 다행이에요.”

“율리안 님 덕분이죠. 언제 한번 장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관리인이 가꾸는 데 공을 많이 들인 덕에 노바에서 꽤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곳입니다. 소똥 냄새는 나지만요, 하하하!”

“괴수 똥 냄새도 맡는데 소똥 냄새가 대수겠어요? 보름스 가문의 장원은 어떤 곳인지 기대가 됩니다.”

율리안과 루산이 미소를 지었다.

율리안은 루산이 오베론 공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멕 나이트 생산 공장을 몰아내고 가문의 땅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게 되어 잘됐다고 생각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루산이 이 땅을 서둘러 되찾으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란 세력이 멕 나이트 비밀 공장을 지으려고 욕심 낸 곳이다.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변경 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이 노바로 들어온 이상 앞으로 필센 제국군은 노바 방어를 더 강화할 것이다. 외부에서 멕 나이트 부대가 노바 안으로 들어오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노바 안에 멕 나이트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언제든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남방군이 어떻게 움직이든, 그에 대한 황제의 대처가 어떠하든, 누구를 상대로든 이길 수 있는 길을 미리 마련해 두려는 것이었다.

‘율리안 님, 막심은 몰라도 황제는 노바 안으로 군대를 들인 황족을 마냥 칭찬할 것 같지가 않네요.’

사회 개혁을 통해 귀족파를 짓밟은 이반 황제나 반란을 유도하여 귀족파의 남은 잔당을 싹 쓸어버린 프리드리히 황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비해야 했다.

대비하여 승리함으로써 원수를 갚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한다!

그 시작점이 보름스 가문의 장원 깊은 골짜기가 될 수 있음을 루산은 오베론 가문의 공작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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