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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58화 (358/450)

358. 제 여자 친구예요

358. 제 여자 친구예요

페르보 제국.

아우로라 연합에 속한 나라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지만, 필센 제국 북부 전선에서 패배하고 바르나 왕국에서 필센 제국군 동방군에 대패한 이후 국토의 3분의 2 이상을 잃고 패망 직전에 있었다.

그러한 페르보 제국군에 기이한 소식이 전해졌다.

“필센의 황제가 급히 돌아간다고 합니다!”

“갑자기? 직접 아우로라 원정을 마무리할 것처럼 난리를 치며 우리 땅을 제 집 앞마당처럼 활개치고 다니던 자가 왜?”

“이것 좀 보십시오!”

아우로라 연합군 총사령관 코룸 공작은 참모가 내민 신문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

“필센 놈들이 보는 신문입니다. 본국에서 보급품과 함께 들어오는 것인데, 거의 모든 신문에 이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놈들의 황궁이 우리 아우로라 연합군 특작 부대에 의해 점령되고 황족이 잡혀 있다는 겁니다!”

“뭐?”

코룸 공작은 깜짝 놀랐다.

참모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를 계속했다.

“황궁을 점거한 우리 특작 부대가 내건 요구 조건은 아우로라 대륙을 침공하고 있는 필센 제국군의 전면 철수랍니다.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는 황족을 모두 죽인다는 것이죠.”

“대체 뭔 소리야! 우리 군이 내가 모르는 작전을 진행하고 있단 말인가? 루한이나 시바스 왕국에서 특수 작전을 벌인 거냐고?”

그 나라들도 페르보 제국보다는 덜하지만 병력을 따로 빼서 필센 제국 황궁을 점령할 만한 형편은 아니었기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요구 사항을 보십시오. 필센 제국군의 전면 철수! 필센의 황제가 이걸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황제를 잡은 것도 아닌데 다 이긴 싸움을 포기하겠어? 백만 대군이나 투입하고 그냥 돌아갈 리가 있겠냔 말이야.”

필센 제국에서는 제국군의 규모를 2백만이라고 했지만, 아우로라 연합에서는 축소하여 백만이라고 불렀다.

“그렇지요. 필센 황궁을 점령할 만큼의 대단한 병력을 투입하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요구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결국은 그 아까운 병력을 모두 버리게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이걸 신문에 대대적으로 싣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구 좋으라고 널리 이 소식을 알린단 말입니까? 필센 놈들이 보면 사기가 떨어질 만한 소식인데 말입니다.”

“맞아! 이상한 놈들이야.”

“그럼에도 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돌아갔으니 변고가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변고라······.”

참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변고를 일으킨 게 우리 군이 아니라면 내부가 아니겠습니까?”

“음!”

코룸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우로라 연합은 필센 본토로 특작 부대를 잠입시켜 황궁을 점령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필센 제국 내부의 변고!’

필센 제국의 누군가가 황궁을 점령하고 황족을 구금했다.

이 소식을 신문에 실어 필센 측 사기를 꺾고 황제를 돌아오게 한다.

대체 왜?

‘이유는 하나뿐이지!’

황제를 치려는 것이다

‘반란이다! 필센 측에서 이 기사를 실은 신문이 배포되도록 방치하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런데 허락했지. 누가? 바로 재상 오베론 공작이야. 오베론 공작의 반란이로구나!’

코룸 공작은 등줄기가 찌릿찌릿하며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동안 계속 패해 마침내 아우로라 대륙까지 적의 상륙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우로라 연합의 많은 나라들이 적의 멕 나이트에 짓밟히고 페르보 제국도 영토를 거의 잃어 이제 동쪽 끝자락만 남았다.

그에 따라 자신의 생명력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기름이 떨어진 등잔불이 점점 희미해지듯 자신의 생명이 이대로 꺼져 가는 것 같이 힘이 없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니 힘이 솟았다.

바다 건너 적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소식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우로라 대륙 곳곳에서 연패를 거듭하는 상황이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는 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

역사학자도 아닌데 정확한 사실 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있으면 나라가 망한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을 기정사실로 두고 역습 작전을 계획한다!”

“예!”

참모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보고한 것이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 사실을 적진에 퍼뜨릴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우리가 후퇴할 지역에 오베론 공작의 반란에 관한 내용을 백성들에게 퍼뜨려 두면 될 것 같습니다.”

필센 제국군이 새로 점령하게 되는 지역에서 오베론 공작의 반란 소식을 듣게 한다는 것이다.

“좋아! 그리고 적의 보급을 차단할 부대를 뽑아 봐.”

“돌릴 병력이 없습니다.”

“보급 차단에 성공할 병력이 필요한 게 아니야. 성공하면 좋겠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시늉만 하는 거지. 적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야. 어차피 내전이 벌어지면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너희는 다 아우로라 대륙에 고립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생기도록 보급 차단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이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켜 필센 제국에 내전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아군 장병들에게 널리 퍼뜨려라.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포로로 잡히더라고 적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까.”

“예, 각하!”

“오베론 공작에게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더라도 이 소문이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겠지.”

사실이 소문으로 도는 게 아니다.

소문이 사실을 만들기도 한다.

코룸 공작은 참모들을 독촉해 서둘러 작전 계획을 수립하여 필센 제국의 신문과 함께 들고 임시 황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런 뒤 연합의 모든 나라에 이 계획을 알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총반격의 시작이었다.

***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아 클라크는 바덴과 약속한 대로 그녀의 일을 돕고 있었다.

갑자기 황궁 점거 사건이 터지고, 계엄령이 선포되고, 변경 군단이 들어오고, 아라드 왕국군이 들어오고, 황궁을 점거한 적을 진압하는 등 많은 사건들이 벌어져 노바가 어수선했지만, 바덴이 회사 일을 거르지 않았기에 클라크 역시 매일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오베론 지방에 출장도 함께 갔다.

지난겨울에 바덴의 운전기사로부터 운전을 배웠고 휴일마다 자동차를 운전해 왔기에 차를 몰 줄 알았으나 바덴은 클라크에게 운전기사 일을 맡기지 않았다.

“운전은 나중에. 중요한 일이 많아요.”

“네.”

그래서 두 번째 수행비서 - 소피아라는 첫 번째 비서가 이미 있기 때문에 - 가 되어 자동차를 타고 오가는 중에 일과 관련된 바덴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메모하는 역할을 맡았다.

간간이 바덴이 질문하면 자기의 생각을 말해야 했고, 자료와 현금이 든 가방도 날라야 했다.

오베론 공단을 완전히 장악해 보급품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하는 바덴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강도로 일했다.

오베론 공단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높은 직책에 있는 직원들은 경찰 조사를 받거나 오베론 공작이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달아나는 바람에 말단 직원들밖에 없었기에 전체적인 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바덴은 자작나무숲 장원 별장 기획 팀과 다른 자회사의 재무 팀 직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함께 오베론 공단의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입주 업체 대표들 면담을 진행했다.

그들 역시 경찰 조사를 받거나 몸을 숨긴 사람들이 많았다.

“사장이 없어도 그 밑에 누군가는 있지 않겠어요? 당장 나와요! 없으면 아무나 나와요! 사장 하고 싶은 사람 없어요? 사장 없으면 일 안 하고 다 굶어 죽을 겁니까? 당장 나와요! 책임은 내가 집니다!”

조립식 철제 교량을 제작해 군에 납품하는 업체 대표가 잠적하자 직접 회사로 찾아가 그 자리에서 임시 대표를 뽑고 생산량 목표를 확정하는 바덴의 모습에 클라크는 감동했다.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바덴이 말했다.

“사업은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거예요.”

“네.”

그런 식으로 바덴은 입주 업체 대표들을 면담하고 오베론 공작의 처분과 상관없이 기존 생산량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하고 납품할 물량을 확인해 나갔다.

그러나 사장이 잠적할 때 회사의 중요한 재산을 빼돌리고 공단 사장인 마젠스 자작이 그 전에 빼돌린 자금의 공백이 너무 커서 정상 운영이 불가능한 업체들도 상당히 많았다.

“공장이 오베론 공단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파르나 남쪽에 있는 공장 지대에는 안 만드는 물건이 없어요. 가서 생산 가능 물량 확인하세요. 거기서 부족하면 브레머 공단을 뒤져서 물량을 확보하세요. 파르나에 있는 공장들은 규모가 작은 게 흠인데 필요하면 증설 지원을 해 준다고 하세요!”

바덴은 막힘이 없었다.

언제든 대안을 찾아냈고, 그에 따라 강력하게 지시했다.

바덴의 일은 오베론 공단 문제를 처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오베론 지방에 건설하는 휴양 시설 문제도 다루어야 했고, 피닉스 제철의 오베론 제철 인수 문제도 들여다보았다.

여러 날에 걸쳐 오베론 지방에서 강행군을 마친 뒤에도 그녀의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보헨 지역에 있는 오베론 공작의 땅에 툴롱 마법 연구소의 멕 나이트 생산 시설을 짓기로 했어요. 군무부와 협의는 끝냈고 막심 전하의 승인도 떨어졌으니 서둘러 짓도록 하세요. 필요한 자금은 내가 댈 테니 황제가 돌아오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네, 기사님.”

루산의 이야기에 바덴은 보헨 지역 오베론 공작의 땅에 멕 나이트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일에 곧바로 착수했다.

먼저 툴롱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를 면담했다.

“군무부에서 연락은 받았지만, 이렇게 빨리 진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군요. 멕 나이트 생산 설비는 비밀입니다. 그렇게 빨리 이전하기는 어렵습니다.”

툴롱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가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자 바덴이 차분하게 그를 응시하고 말했다.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보름스 자작님은 툴롱 마법 연구소에 사정하는 게 아닙니다.”

“뭐라고요?”

“보름스 자작님은 툴롱 마법 연구소가 오베론 공작과 짜고 보름스 자작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는 데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

툴롱 마법 연구소의 대표 마법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에도 애국자이신 보름스 자작님은 우리 제국이 전쟁을 치르고 있기에 그 문제를 묻어 두고 제국을 위해 멕 나이트 생산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직접 이전 장소를 알아보시고 이전 비용까지 감당하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보름스 자작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대표 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정직한 기계 그룹은 멕 나이트 생산 설비 제작 경험이 풍부합니다. 레오파드 생산 설비를 우리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죠. 우리에게 맡기신다면 언제든 툴롱 마법 연구소를 응징하기를 원하시는 보름스 자작님의 땅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대표 마법사는 바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바덴은 정직한 기계 그룹 엔지니어들을 툴롱 마법 연구소 멕 나이트 생산 공장에 보내 필요한 설비를 파악하고 제작하도록 했다.

클라크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녀를 수행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사업가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

혼란스럽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업가의 힘!

더없이 멋져 보였다.

바덴과 함께 빡빡한 일정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 되었다.

대학교 정문과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지키고 서서 검문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계엄령이 지속되고 있었고, 노동자와 대학생에 대한 강화된 감시는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클라크는 검문하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이고 지나갔다.

그런데 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깜박 두고 왔어요!”

“검문하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신원 증명해 줄 보증인 대고 주소 말해. 연락을 보낼 거야. 그동안 유치장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알지?”

“한 번만 봐 주세요! 어떻게 유치장에서 보내요? 다음부터 잘 가지고 다닐게요. 네?”

“그렇게는 안 된다니까!”

경찰과 젊은 여자가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클라크가 다가와 신분증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제 여자 친구예요. 왜 신분증을 놓고 다녀? 경찰관님 고생하시게.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게 주의시킬게요.”

클라크를 바라보는 젊은 여자의 눈이 똥그래졌다.

클라크가 워낙 예의 바르게 말하자 검문하던 경찰이 그와 젊은 여자를 번갈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다 말했다.

“보증인 자격은 안 되지만, 보내 줄게. 이번만이야! 대학 주변에서는 특히 검문이 엄격한 거 몰라? 신분증 꼭 가지고 다녀!”

“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클라크는 거듭 경찰에게 인사를 하고 여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경찰과의 거리가 멀어지자 여자가 말했다.

“클라크, 이게 얼마 만이야?”

클라크도 나직이 말했다.

“오랜만이야, 사라. 그런데 수배 중에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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