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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59화 (359/450)

359.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359.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재작년 겨울에 있었던 동부 공업 지구 사태로 인해 많은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경찰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

사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클라크는 그때 이후 루산과 약속한 대로 대입 준비에만 몰두했으나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신분증을 깜박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행이지 뭐니.”

사라가 싱긋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같이 웃지 못했다. 사라의 웃음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사라는 젊고 싱그러운 미소는 여전했으나 입고 있는 옷이 전보다 허름했고 살도 더 빠져 보여 몸 전체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 수업 가는 거야?”

“네? 네.”

“시간 되지?”

“네?”

“아니, 별다른 건 아니고 나도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라 가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나 하자고. 시간 뺏으려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네, 괜찮아요.”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나무 그늘 아래를 지날 때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 틈에서 가로수가 촘촘하게 서 있는 교정을 잠시 말없이 걸었다.

2년 전 바움 대학 교정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학교가 노바 대학으로 바뀐 것을 빼면 분위기는 비슷했다.

사라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노바 대학 역사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클라크는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않았다.

클라크는 역사학과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대학 내 운동 조직들은 다른 대학과 연합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알아볼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합격한 뒤에는 공부만 한다고 들었어.”

“···네.”

클라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하자 사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공부 열심히 하는 건 좋은 거지 뭐.”

“······.”

“······.”

“어떻게 지냈어요?”

이번에는 클라크가 물었다.

“나?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알잖아.”

밤에는 동지들과 모여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투쟁 계획을 세우고 전단을 돌리고 벽보를 붙이고··· 한다는 뜻이었다.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요?”

수배 중이고, 경찰이 노동자들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라가 세상 경험 많은 선배가 학교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어린 후배를 대하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바에 공장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다 뒤지냐? 그리고 경찰이 온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니야. 쓱 훑어보다 괜히 몇 가지 물어보고 돌아가는 게 전부거든. 신분증에 내가 2년 전에 거기 있었다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신분증이야 뭐 가짜를 구하는 방법도 있고.”

“아!”

“경찰이 수배된 동지들 얼굴과 이름과 주소와 인적 사항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지 않겠어? 아까처럼 검문에 걸려도 무사히 풀려날 방법도 있어. 물론 유치장에서 하루 이틀 지내야 하니까 힘들긴 하지만 말야. 네 덕에 유치장 신세는 면했네.”

사라가 미소를 짓자 클라크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응? 아! 동지들 만나러.”

“······?”

“나는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서 검문, 수색을 당해도 잘 붙잡히지 않지만, 남자 동지들은 많이 잡혀 갔어. 계엄이 지속되면서 경찰의 탄압이 더 심해졌거든. 그래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요즘 좀 바빠. 덩달아 나도 바빠졌지. 연락하는 일을 맡게 되어서.”

검문에 잘 걸리지 않는 젊은 여자들이 연락책이 된다는 것이다.

‘무슨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일까?’

클라크는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사라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미 함께하는 동지가 아니었기에 함부로 조직의 비밀을 말할 수 없었다.

“근데 그거 아니?”

“뭘요?”

사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

“사실 황궁을 점거한 건 아우로라 연합군이 아니라 오베론 공작이었대! 오베론 공작은 현재 체포돼 조사를 받는 중이고, 그의 아들이 군대를 이끌고 노바를 칠 수도 있다는 거야. 자칫하면 내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지. 권력 다툼에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나는 거라고.”

“······!”

클라크는 깜짝 놀랐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고, 백성들 사이에도 조금씩 퍼지고 있었기에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라의 말투에 놀란 것이다.

요즘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쁘다는 사라. 그녀가 말한 대책이 왠지 이 권력 다툼 - 내전과 관련됐을 것만 같았다.

경찰에 탄압받는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자유를 찾는 방법, 더 나아가 백성들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릴 방법은 평화롭고 일상적으로는 찾기 어려웠다.

사라가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클라크는 노동자와 대학생들이 다시 한번 위험한 방법을 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클라크의 생각을 모르는 사라는 오히려 그를 걱정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조심해. 어쩌면 노바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

“나뿐 아니라 너를 아는 동지들은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그때 네 덕에 살았으니까.”

“아니, 그건······!”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몰라도 우리를 구해 주셨어. 그래서 그분을 찾아 투쟁에 함께하자고 포섭해 보자는 동지들도 있었어. 하지만, 그건 우리 투쟁의 취지에 맞지 않아. 우리가 피땀 흘려 얻어야 자유와 권리가 비로소 우리 것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바움 대학 동지들은 너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로 했어.”

“······!”

“혼란한 시대야. 휩쓸리지 말고 건강히 잘 살아.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내 남자 친구 클라크.”

사라는 클라크가 좀 전에 자신을 내 여자 친구라고 경찰에 말한 것을 장난스럽게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클라크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고 떠나갔다.

클라크는 사라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만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녀가 볼에 남긴 키스가 화상처럼 뜨겁게 그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

바트 오베론은 한참 동안 명령서를 들여다보았다.

<출두 명령>

남방군 1군단장 바트 오베론은 이 명령서를 받는 즉시 노바 군무부 검찰국에 출두하라.

오베론 공작이 황궁을 점거하고 황족을 구금했을 뿐 아니라 이를 빌미로 계엄령을 발령하여 필센 제국을 장악하려 했으나 체포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사할 것이다.

루트 오베론을 만난다면 함께 출두하라.

조사 결과 반란을 공모하지 않았고 이와 전혀 관련된 바 없다면 어떤 죄도 묻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출두하지 않는다면 반란에 공모한 것으로 보고 체포할 것이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 남방군 1군단장을 지휘할 임시 군단장은 바트 오베론이 적임자를 선임하라.

명령서에는 필센 제국 군무대신과 막심 황자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후우-!”

마침내 바트가 긴 한숨을 뿜어내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해군 장교를 쳐다보고 물었다.

“이 내용을 알고 있나?”

“명령서를 뜯어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전달 받기는 했습니다.”

필센 해군에서 가장 빠른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온 해군 장교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대답했다.

“그렇단 말이지.”

“······.”

해군 장교는 이번에는 질문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대답하지 않았다.

바트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재상 각하는 무사하신가?”

“출발하기 전에 브레머 항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노바 상황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일개 전령일 뿐인 해군 장교에게 재상을 면담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정말로 반기를 든다면 자네를 죽일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은가?”

이번에는 해군 장교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명령을 수행하다 죽었으니 순국 영웅이 되겠죠. 군단장님은 반역자가 되어 삼대가 멸할 테고 말입니다. 부하들도 다 죽음과 불명예의 길로 이끄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바트 휘하의 지휘관들이 발끈했다.

그들은 아직 명령서의 내용을 몰랐다.

“뭐라!”

“이 무슨 망발이냐? 귀관은 위아래도 없는가!”

성질 급한 지휘관은 당장 주먹을 쥐고 해군 장교에게 달려갔다.

“멈춰!”

바트의 명령에 소란이 잠잠해졌다.

바트가 해군 장교를 보고 말했다.

“나가서 잠시 기다리게.”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해군 장교의 뻣뻣한 태도에 바트의 부하들이 다시 분노를 터뜨렸다.

“이놈이 감히!”

좀 전에 주먹을 쥐고 코앞까지 달려간 장군은 해군 장교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바트가 말려 해군 장교를 내보냈다.

그가 나가자 부하들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바트는 명령서를 보여 주었다.

“······!”

“······!”

“세상에!”

“이럴 수가!”

남방군 1군단 고위 참모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요동을 치고 뜨거운 열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쳤다.

최근에 합류한 젊은 참모들 중에는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바트가 지휘하는 남방군 1군단은 그야말로 오베론 가문에 충성하는 기사들로 가득했기에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출두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공작께서 이미 체포되셨다면 군단장님께서는 더더욱 남방군을 지휘하고 계셔야 합니다. 홀로 노바로 가시면 오베론 가문은······!”

끝장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삼켰지만,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바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명령서에 따르지 않고 여기서 남방군을 이끌고 있으면 남방군은 반란군이 된다. 그래도 괜찮은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상황,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성질 급한 기사가 먼저 말했다.

“공작님께서 체포되신 순간 이미 남방군을 반란군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거사를 일으켜 보지도 않고 목을 내 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이 물꼬를 트자 비슷한 의견이 계속 나왔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오베론을 위해 검을 들 것입니다!”

바트는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이 명령서를 가지고 온 해군 장교를 보지 않았나?”

“그 무례한 녀석은 당장 물고를 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그런 필센군과 싸워야 한단 말이야. 승산이 있겠나?”

바트의 말에 부하들은 가슴에 무거운 돌이 올려진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승산은 없었다.

제아무리 남방군 1군단이 예전 남방군 규모를 회복했으며 오베론 가문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치고 최신 멕 나이트와 이동식 마나포 부대로 무장했다지만, 필센 제국군 나머지 병력에 비하면 5분의 1이 될까 말까 했다.

남방군 장병 모두가 반란에 동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병력을 이끌고 반란에 일으일 때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때 참모 하나가 말했다.

“군단장님, 필센 본토에 남아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신속하게 돌아가 노바를 차지하고 해군과 수송 부대를 장악하면 아우로라 대륙에 들어와 있는 병력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루트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다른 참모들이 정답을 찾은 듯이 동조했다.

“다른 방면군은 내륙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병력을 빼기가 어려워 복귀가 훨씬 늦을 겁니다! 당장 돌아간다면 우리가 훨씬 빠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수송선부터 마련해야겠군요!”

그러나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우리가 병력을 돌려 노바로 진군한다면 구금되어 계시는 공작 각하는 어찌 되겠소?”

“그건······.”

“그리고 이런 대병력을 수송하는 데는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오.”

“다른 방면군도 그 점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쨌든 시간 싸움입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해야 합니다!”

시끌시끌 격론이 벌어졌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력을 빼는 것도, 수송선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필센군보다 빨리 노바에 도착한다면 거사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지만, 과연 먼저 도착하는 황제의 부대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명령서대로 홀로 노바로 들어가는 것은 제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맨몸으로 출두하는 것과 거사를 일으키는 것,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단 말인가!’

바트는 결론을 짓지 못했다.

해군 장교가 남방군 기사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땍땍거리며 동행을 요구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바트의 고심이 점점 깊어지던 어느 날, 루트가 남방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해군 장교가 출두 명령서를 가지고 도착한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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