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나중 일은 나중에
360. 나중 일은 나중에
바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명령서의 내용과 명령서를 가지고 온 해군 장교의 입을 통해 파악한, 아버지가 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체포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남방군을 이끌고 노바로 진격하려 해도 노바 본토의 병력 규모, 해군의 움직임, 노바를 장악하고 있는 막심 황자의 지도력, 아우로라 대륙을 점령해 나가고 있는 필센 제국 각 방면군의 상황을 알아야 거사 성공 여부를 판단해 볼 텐데,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트가 찾아온 것은 가뭄에 단비 같은 일이었다.
노바의 사정과 각 방면군이 처해 있는 상황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둘째 황자 막심이 우리 가문의 치부를 캐 아버지를 실각시키려 하기에 아우로라 연합군의 소행인 것처럼 꾸며 황궁을 기습해 점거했소. 막심과 황족도 잡고. 그런 뒤 오베론에서 병력을 불러올려 계엄령을 선포하고 차근차근 정부와 본토를 장악하려 했지. 본토를 장악한 뒤에 보급을 중단하고 그 사실을 아우로라 연합에 슬쩍 흘리면 황제와 아우로라 대륙으로 깊이 들어간 필센군은 끝장난 것이니까.”
“음! 그런데?”
“처음에는 순조로웠소. 수도 군단, 경찰, 지방군도 계엄령에 따랐으니까. 중요한 자리를 우리 쪽 인물들로 채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소. 그런데 갑자기 변경 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이 노바로 들어와 수도 군단과 짜고 우리 오베론 군을 공격하는 게 아니겠소?”
“음?”
바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도 군단이야 황제파니까 오베론을 의심할 수 있다 쳐도 변경 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의 상경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계속 들었다.
“놈들의 전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병력이 많지 않아 황궁 점거가 풀리고 오베론에서 올라온 병력도 모두 제압되고 말았소. 그래서 남방군을 데리고 다시 노바를 점령하기로 한 거요. 남방군 병력이면 충분히 노바와 필센 전역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보느냐?”
“그렇소. 수도 군단은 반의반도 남아 있지 않고 근위대는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떠난 병력만 남은 상태요. 지방군이나 경찰 병력을 말할 것도 없지.”
“다른 방면군 사정은 어떠하냐?”
“동방군은 페르보 제국 영토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뺄 수가 없소. 잘못하다가는 뒤를 잡히거나 허리를 끊겨 낭패를 당할 테니까. 북방군은 너무 멀어서 소식이 전해지는 데도 한참 걸릴 것이고, 네세베르 공략군이 그나마 본토와의 거리가 가깝기는 한데 거기도 루한 군이 그동안 당한 게 있어서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오. 온다고 해도 근위대 정도가 돌아오겠지만,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오.”
루트의 말을 들으니 바트는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같이 오지 않은 것이냐? 네가 가족과 함께 올 수 있었다면 아버지도 모시고 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질문에도 루트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남아서 막심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신다고 하셨소. 함께 탈출해 버리면 본토의 모든 병력이 우리를 뒤쫓을 것이고, 바다에서 붙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너더러 서둘러 남방군을 데려오라고 하셨소.”
“으음······!”
바트는 가슴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권력욕이 강하고 상황 판단이 능한 자신의 아버지가 스스로 노바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거사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당시 노바의 상황을 모르는 그로서는 루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노바로 가겠다!”
“당연한 일이오!”
루트가 큰 소리로 호응했다.
남방군만 돌아가면 필센 제국을 손아귀에 넣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가 살아남아 형과 대면하게 되면 자신이 곤란해지겠지만, 그 문제는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 역시 병력을 빼기가 수월하지 않은 상황이다. 시바스 군이 우리를 순순히 놓아 주겠느냐? 게다가 9개 전단이나 되는 기동 부대와 보병 사단들을 한꺼번에 수송하기도 쉽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책략을 수립하는 데 능한 동생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다.
“시바스 군이 왜 안 보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당연하지 않느냐? 몇 년 동안 죽고 죽인 원수가 아니냐? 게다가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는 것만큼 전과를 많이 얻는 일도 없는데 그냥 보내 주겠느냐?”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놈들도 우리 군이 징글징글할 텐데 돌아가면 반길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그건 네가 군대를 지휘해 보지 않아서······.”
루트는 형의 말을 끊고 강하게 말했다.
“우리가 철수하는 이유를 시바스 놈들에게 알려 주시오.”
“뭐라고?”
“아버지를 구하러 간다! 거사를 일으키러 간다! 그러니 순순히 보내다오. 그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너희와 싸울 것이다!”
“우리의 급박한 사정을 알면 더더욱 붙잡으려 하지 않겠느냐?”
“내가 시바스의 국왕이나 총사령관이라면 남아 있는 수송선까지 모두 지원해 줄 것 같소만.”
“허!”
“그동안 우리나라를 괴롭히던 적들이 제 발로 나가겠다는 것이잖소. 그것도 자기들끼리 싸우려고. 당연히 보내 줘야지. 그것도 내전이 확대되도록 많은 병력을 이동할 수 있게. 안 그렇소?”
“······!”
“한숨 돌린 뒤에 아우로라 대륙에 들어와 있는 필센 제국군을 포위해 공격하면 필센 제국의 국력이 크게 기울고 결국 아우로라 연합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텐데 왜 안 보내 주겠소? 없는 보급품이라도 챙겨서 보내 줘야지.”
바트는 감탄했다.
‘지금까지 죽을 둥 살 둥 싸우던 적에게 사실을 말하고 지원을 받는다?’
자신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방법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안 들어 줄 이유가 없구나.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되면 우리 제국은 국력이 크게 쇠하여 우리 가문이 필센을 차지한다 해도 결국 아우로라 연합에 당하게 되지 않겠느냐?”
루트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트에게 말했다.
“당장 물에 빠져 죽게 생겼는데 나중에 흉년으로 굶어 죽을까 걱정하게 생겼소? 그런 일이 없도록 내가 막을 테니,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합시다.”
“···알았다!”
바트 오베론은 루트의 말대로 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
아버지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남방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 해도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혹은 후환이 두려워 함부로 재상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분노한 막심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이 사소한 정에 얽매인다면 모든 것을 망치는 법, 아버지의 죽음은 오베론 가문이 필센 황가로 우뚝 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바트는 부하들에게 시바스 왕국에서 전면 철수하고 노바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와 함께 시바스 왕국에 전령을 보냈다.
<오베론 가문과 남방군은 필센 제국 마이센 황가의 폭압적인 통치에 맞서 싸울 것이다. 체포된 오베론 공작을 구하기 위해 돌아갈 것이니 시바스 왕국은 전투 행위를 중단하고 우리 군의 신속한 철수를 위해 수송선 제공을 비롯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말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강력한 남방군의 공세에 3년 동안 시달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시바스 왕국의 지휘부는 바트 오베론의 서신을 받고 황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개소리를 믿으라는 건가?”
“함정이 아닐까요?”
“무엇을 위한 함정?”
“···글쎄요.”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페르보 제국으로부터 전령이 도착했다.
동방군의 공세에 시바스 왕국보다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페르보 제국의 전령이 목숨을 걸고 보낸 서신에 바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총반격 작전!
필센 제국의 내전 발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아우로라 대륙으로 들어와 있는 필센군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빈틈이 보였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운을 걸고 모든 힘을 쥐어짜 실행해 볼 가치가 있는 작전이었다.
시바스 왕국의 국왕이 자라 공작을 비롯한 군 수뇌부와 의논한 끝에 페르보 제국군에 답신을 보내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원양 항해가 가능한 모든 배를 동원해 놈들을 본토까지 실어다 주어라! 어차피 필센의 해군 때문에 항구에 발이 묶여 몇 년째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배들이 아니던가. 실컷 싸우라고 해!”
“폐하!”
“놈들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병력을 추슬러 루한 왕국을 공격하고 있는 필센군을 친다!”
네세베르 공략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뒤 루한 왕국군과 함께 페르보를 치고 있는 동방군을 포위해 전멸시킬 것이다!”
“······!”
“······!”
루한의 관리와 지휘관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엄청난 계획이었다.
“아우로라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에 이 소식을 전하고 남아 있는 병력을 모두 동원하라 이르라! 이번에 병력을 보내지 않는 나라는 적으로 보고 전쟁이 끝난 뒤 철저히 응징하여 지도에서 완전히 지울 것이다!”
필센 제국의 내전 소식과 총반격 작전에 대한 내용이 아우로라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필센 제국의 막강한 공세에 시달려 쓰러져 가던 아우로라인들의 가슴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
“그런데 부장님.”
“네.”
“만약에 남방군이 먼저 노바로 오면 어떻게 합니까?”
율리안의 물음에 루산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줄곧 생각하고 있는 문제였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방군이 먼저 노바로 돌아와 정부를 장악하고 본토를 점령하면 막을 병력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필센군은 죄다 아우로라 대륙으로 떠난 상태라 돌아오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한꺼번에 돌아올 수 있는 수송 수단도 마련하기 어려울 테고······. 돌아온다 해도 대규모 내전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어떻게 하죠?”
루산은 답변 대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부나 군에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는 율리안처럼 황족도 아니고 정부 관리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기에 정부의 일 처리를 모두 알지 못했다.
“남방군이 회군할 것에 대비하여 해군이 바다를 감시하고 차단한다는 것이 1차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루산은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오베론 공작은 남방군이라는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해군은 없었다.
물론 필센 제국 해상 수송 능력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는 오베론 해운을 보유하고 있고 해적에 대항하기 위해 자체 무장을 갖춘 배들도 있었으나 필센 제국 해군을 상대할 만큼은 아니었다.
상륙하기 전에 무찌른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최선인 것이다.
그러나 필센 해군은 이미 아우로라 연합군 해군을 상대하기 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고, 바다는 무척 넓어 남방군이 어디로 올지 알 수 없었다.
남방군이 큰 피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상륙한다면?
“2차는 수도 방위 계획에 따라 관문에서 노바를 방어한답니다.”
제국 기사 아카데미 시절에 여러 차례 참가한 바 있는 수도 방위 훈련이라 루산은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마나포로 지키고 있는 노바의 관문을 뚫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방군은 이동식 마나포를 다수 보유하고 있고, 멕 나이트 부대 역시 막강하여 병력이 얼마 되지 않는 지금의 수도 군단 정도는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 뚫릴 기미가 보이면 황족과 정부 주요 인사들은 변경 혹은 아라드 왕국으로 피신한답니다.”
수긍할 만한 계획이었다.
물론 피신하기 전에 노바가 완전히 에워싸이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만.
루산은 생각하고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남방군이 동쪽 해안에 상륙해 노바로 이동하는 동안 전투 거미를 이용해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문제점은 이용할 수 있는 전투 거미가 두 대뿐이라는 것과 변경에서 그런 무기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는 것.
수가 적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효과를 보더라도 나중에 추궁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율리안이 황제가 된다면 기꺼이 사용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비밀에 부칠 생각이었다.
어쨌든 수도 군단은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었고, 루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고 있었지만,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바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깊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과 내전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황제에게 보고하러 떠났던 관리들이 황제가 근위대와 함께 돌아온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근위대만 돌아와도 충분히 지킬 수 있지!”
수도 군단 지휘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황제의 복귀 걸음은 무척이나 느렸고, 근위대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한 해군과 수송 함대 마련에도 시간이 걸렸다.
바트 오베론에게 출두 명령서를 전달하기 위해 떠난 해군 장교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바의 긴장감이 점점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