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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63화 (363/450)

363. 때가 왔다

363. 때가 왔다

부르가스.

아우로라 대륙 서쪽 해안에 위치한 필센 제국의 해외 영토.

1차 대전쟁 때부터 점유하여 필센군의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교두보이자 아우로라 연합을 견제하는 요충지.

동방군의 주둔지로 1차 대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우로라 연합에 속하는 국가들과 국지전이 끊임없이 발생한 전란의 땅.

2차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 중요성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과거 부르가스에 주둔했던 동방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바다를 통해 들어와 이 땅을 거쳐 아우로라 대륙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무기와 보급품 또한 지속적으로 이 땅에 상륙해 동방군과 네세베르 공략군 뒤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당한 규모의 경비대가 상시 주둔해 있었고, 병력과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대의 규모도 무척 컸다.

해안에는 보급 물자와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수송 부대가 쉬어 갈 숙영지가 마련돼 있었다.

이 중요한 땅 부르가스는 면적도 상당히 넓었다. 애초에 작은 땅이 아닌 데다 그동안 동방군이 꾸준히 영토를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황제를 잡기 위해서는 장악할 곳이 많다는 뜻이야. 우리 군대가 이 땅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황제의 귀에 먼저 들어가면 안 되니까. 가능하겠어?”

루트가 바트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는 황제와 근위대를 잡기 위해 부르가스에 상륙하기로 했다는 바트의 말을 듣고 반대했다.

반란은 시간 싸움이다.

최대한 빨리 노바를 점령하고 본토를 완전히 장악해야 하는데, 노바에 대비할 시간을 주다니!

물론 바트의 생각도 일리가 있었다.

브레머 항에 상륙을 시도하다 큰 피해를 입으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망하는 것이다.

황제를 잡을 수만 있다면 다소 늦게, 여유롭게 본토에 상륙해도 된다.

단! 어디까지나 황제를 잡았을 때 이 작전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가스는 땅이 넓고 주둔 병력이 많고 곳곳에 숙영지와 창고, 행정청, 과거 아우로라 연합군과 대치하던 시절에 건설해 놓은 감시 초소 같은 것들이 많았다.

이것들을 신속히 장악하지 않으면 황제에게 남방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부르가스로 오던 황제가 내륙으로 달아나게 된다.

황제가 근위대를 이끌고 동방군과 합류하게 되면 남방군은 황제를 잡을 수가 없다.

동방군은 필센의 방면군들 가운데 늘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어 올 정도로 전투 경험과 병력 규모, 지휘관의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라, 루트. 부르가스에 주둔해 있는 병력이 많다지만, 죄다 경비병과 수송병들이지 멕 나이트 기동 병력은 얼마 없을 테니까.”

멕 나이트 전력은 전선이 이동함에 따라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남방군 참모들은 이미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부르가스 점거 계획을 철저히 수립했고, 그에 따라 어느 부대가 어느 지역을 점령할지 철저히 명령을 내려 두었기 때문에 상륙한 남방군은 부대별로 신속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사 황제를 못 잡아도 괜찮다.”

“그건 뭔 소리야? 황제를 못 잡을 거면 이 땅에 왜 왔어?”

루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트의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루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무슨 뜻이오?”

동생의 질문에 바트가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가 노바로 들어가는 건 뒤가 없는 거야. 거사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달아날 곳이 없지.”

“그야······!”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만한 각오도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사람의 생각이 똑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부르가스는 달라. 황제와 근위대를 잡는 데 성공하면 가장 좋겠지만, 황제를 잡는 데 실패하더라도 곧바로 망하는 건 아니거든. 황제가 동방군이 있는 쪽으로 달아난다고 하자. 우리가 부르가스를 점령하고 있으면 앞으로 보급은 어떻게 할 건데? 네세베르 공략군이야 다소 불편하더라도 다른 항구를 통해 보급을 받을 수 있지만, 동방군 보급로는 부르가스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어.”

“음!”

“동방군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해. 섣불리 병력을 빼면 페르보 제국에 뒤를 잡히고 아우로라 연합군에 포위될 테니까. 게다가 우리가 아우로라 연합과 손을 잡고 동방군과 네세베르 공략군을 포위 공격할 수도 있다.”

“아우로라 연합군이 동방군과 네세베르 공략군을 격파하면 그다음은 우리 군을 칠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면 필센군과 협력하면 된다. 보급로를 열어 주고 필요하면 손을 잡고 함께 싸우는 거지.”

“······!”

루트는 기가 막혔다.

바트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황제를 잡는 게 최선이지만, 못 잡더라도 부르가스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면 된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아우로라 대륙으로 들어온 필센군을 모조리 죽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아우로라 연합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 상황을 이용해 오베론 가문을 이 땅에 뿌리내리는 거야. 필센 제국은 우리와 협력할 수밖에 없어. 2백만 대군을 모두 잃으면 나라가 망할 테니까. 아우로라 연합도 마찬가지지.”

바트가 다음 말만 하지 않았다면 루트는 형의 생각에 크게 감탄했을 것이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하면 아버지가 무사히 풀려나실 수 있게 필센 정부와 협상할 수도 있을 거야.”

루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오베론 공작이 풀려나면 그가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문은 오베론 지방을 잃게 되겠지만, 부르가스를 얻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거야. 필센과 아우로라 연합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애초에 바트는 필센 제국에 당장 반기를 들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와 의논한 바에 따르면 황제가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의 필센 제국에 들이받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넓은 땅을 하사받아 아우로라 대륙에 오베론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자신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노바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퇴로가 없는 반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한두 번 실패하더라도 단단한 기반을 다지며 점점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거사를 도모하고 싶었다.

황제를 잡는다!

실패하더라도, 부르가스를 차지해 필센과 아우로라 연합 사이에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한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바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루트가 입을 열었다.

“훌륭한 생각이야.”

“네가 그렇게 말해 주어 힘이 되는구나.”

“하지만, 본토 점령 계획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말아 줘.”

“···알았다.”

“그리고 오베론 지방의 면적은 필센 본토의 8분의 1이나 돼. 우리의 기반인 그 땅을 포기하면 잃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음!”

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적, 군사적, 심리적으로 남방군 유지가 힘들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베론으로 돌아가서 내부에서 세력을 규합하다 남방군이 본토로 진군할 때 호응하겠어. 정부에서 우리 사람과 재산을 모두 앗아가기 전에.”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좋지.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니?”

루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거사를 일으킨 마당에 위험이야 뭐······.”

바트도 피식 웃었다.

형제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루트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어쨌든 오베론으로 돌아가는 건 위험한 일이니 가족들을 맡아 주시오.”

“알았다. 너도 오베론으로 돌아가면 내 가족들을 좀 챙겨 다오.”

“걱정 마시오. 상황을 봐서 부르가스로 빼돌려 볼게.”

“고맙구나.”

수송선들이 차례로 부두에 접안하여 남방군 병력과 물자를 계속해서 쏟아내는 가운데, 가족을 형에게 맡긴 루트는 부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부르가스 항을 떠났다.

‘부르가스의 주인이 되겠단 말이지? 나쁜 생각은 아니야. 하지만, 필센의 주인이 되는 것만은 못하지. 그리고 오베론 공작께서 풀려나서는 더더욱 안 되고.’

하역을 마친 수송선이 부두를 빠져나가고 새로운 수송선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루트가 탄 배는 거대한 수송선들 사이를 위태롭게 통과해 마침내 해역을 벗어났다.

***

남방군이 노바로 오는 게 아니라 부르가스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군무부와 수도 군단 사령부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다.

“황제 폐하께서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르가스에는 주둔 병력이 많아 남방군 상륙 소식이 근위대에 금방 전해질 테니 말입니다. 동방군이나 네세베르 공략군 쪽으로 물러나면 안전하실 겁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근위대가 남방군에 포위되거나 따라잡혀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소?”

“그야 그렇지요.”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동방군이나 네세베르 공략군 쪽으로 합류하셔도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남방군이 부르가스를 차지하면 아우로라 대륙으로 건너간 우리의 모든 병력이 위태롭게 되니까 말이오.”

이 점이 크나큰 문제였다.

문제는 알지만, 딱히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참모들의 고민이었다.

그때 말석을 차지하고 있던 루산이 말했다.

“원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군?”

수도 군단 사령관이 루산을 보며 되물었다.

“네. 남방군이 부르가스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모른 채 접근했다가는 근위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동방군과 네세베르 공략군은 멀리 있죠. 황제 폐하께서 무사히 몸을 빼실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위험에 처해 있다면 구출할 병력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과연 때를 맞출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고, 또 부르가스를 저들이 차지하고 있으면 상륙할 때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원군으로 보낼 만한 병력이 없다는 것이오.”

본토에 남아 있는 기동 부대라고 할 만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수도 군단 병력뿐인데, 이 부대를 보내 버리면 만에 하나 남방군이 우회하여 노바로 들어왔을 때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변경 군단에 본토를 맡기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루산이 말했다.

“부르가스가 아닌 부르사에 상륙하면 됩니다. 그 나라에 이미 우리나라 기업이 상당한 우호관계를 맺고 진출해 있다고 하니 협력해 줄 겁니다.”

“부르사?”

“네. 그리고 수도 군단 대신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이끌고 제가 가죠.”

“음!”

남방군은 무려 9개 전단!

원군으로 가는 부대가 고작 1개 전단. 그것도 변경 파일럿들을 끌어모은 부대라니!

수도 군단 사령관의 표정만 보고도 루산은 그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어쨌든 부르가스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가야 하고 수도 군단은 여력이 없으니 변경 기동 전투 부대뿐이죠.”

맞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가야 하는 것이다.

황제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남방군을 궤멸시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출현만으로 남방군을 깜짝 놀라게 하여 황제가 달아날 시간을 벌어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알겠소!”

수도 군단 사령관이 군무대신과 막심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다.

루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본토에서야 눈치 볼 사람이 많아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지만, 바다 건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누가 알 것인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정리함과 동시에 복수를 마무리하리라!

루산은 노바 외곽에 숨죽이고 있는 전투 거미들을 아라드 변경으로 보내며 지시했다.

“때가 왔습니다.”

“네?”

“복수할 때가 왔단 말입니다.”

“······!”

“아라드 변경의 파일럿들은 최소한만 남고 신속하게 부르사 왕국으로 오라고 하세요. 멕 나이트는 부르사 왕국의 왕질에게 빌려 볼 테니 몸만 오면 됩니다. 아라드 왕국의 협조를 받아 룬드 항에서 배를 타고 오면 될 겁니다. 전투 거미도 같이 오세요.”

“알겠습니다!”

전투 거미가 필센 제국의 남쪽 산줄기를 타고 아라드 왕국으로 넘어갔다.

한편 루산은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이끌고 브레머 항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율리안이 브레머 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부장님.”

“걱정 마십시오. 좋은 소식을 가져 오겠습니다.”

루산이 율리안을 안심시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의 속마음을 모르는 율리안은 수송선과 호위함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부두 끝에 서서 지켜보며 루산과 변경 기사들의 무사 귀환을 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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