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 변경 군단의 기사-364화 (364/450)

364. 기다리다

364. 기다리다

변경 8군단과 아라드 왕국군의 멕 나이트가 노바로 들어와 황궁을 점거하고 있던 적을 물리치고 돌아간 데 이어 변경의 멕 나이트가 무려 1,500대나 노바 인근에 집결했다.

노바에 거주하는 오베론 공작의 측근과 친인척들이 일제히 체포되거나 조사를 받았고, 오베론 지방에는 많은 관리와 경찰들이 파견되어 행정을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하면서 오베론 가문과 관련 있는 사람들과 재산 상황을 조사해 나갔다.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 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반란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소문을 바탕으로 취재가 이루어져 이 사실이 더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막심 황자는 결국 오베론 공작의 반란 사건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생각보다 백성들의 충격과 혼란은 크지 않았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고, 반란을 일으킨 주체가 오베론 공작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 황궁이 점령되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진압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필센 제국은 외부의 적 아우로라 연합군이든 내부의 적 반란군이든 제압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미 1차 대전쟁을 20년 이상 치렀고, 2차 대전쟁을 5년 동안 겪고 있는 백성들은 이러한 사건들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충격에 무뎌져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남방군이 온다!

오베론 공작의 큰아들이 남방군을 이끌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온다!

제국의 군대는 아우로라 연합을 공격하기 위해 대부분 바다 건너로 떠났기 때문에 남방군을 막을 힘이 없다!

제국의 군대는 백성을 보호하지 않고 다른 대륙 땅과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떠났다!

계속되는 전쟁에 시달리던 우리는 황제와 공작의 권력 다툼으로 내전까지 겪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지켜 줄 군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지켜 줄 정부다!

노바의 인민들이여, 일어나라!

진정한 우리의 정부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

커다란 벽보가 노바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

오베론 공작의 반란이 지나간 일이라면 남방군이 온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닥칠 일이었다.

노바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저절로 벽보의 내용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전쟁을 원하는 백성은 없었다.

그런데 왜 전쟁을 하는 것인가?

아우로라 연합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이미 무찔렀다.

전쟁을 벌인 적을 응징하기 위해 보복을 가하는 것 역시 수긍할 만한 일.

그런데 언제까지 할 것인가?

이 전쟁으로 획득한 과실이 과연 백성들에게까지 돌아갈까?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벽보의 내용대로 직접 시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만, 노바의 주민들은 내전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벽보를 붙인 자들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순찰을 다녀 상당수의 노동자와 대학생들을 체포했지만, 이러한 벽보와 출근길에 길거리에 뿌려지는 비슷한 내용의 유인물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변경 군단의 멕 나이트들이 노바 외곽에서 제식 훈련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내전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었다.

이런 불안감을 이용해 식료품을 매점매석하여 이익을 보려는 상인들이 나타났고, 덩달아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국정 처리에 바쁜 막심을 대신하여 율리안이 노바 곳곳의 식료품점을 돌며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에를랑겐 쇼핑 거리에 있는 반달 식품 식품점도 방문 일정에 포함되었다.

일정을 짠 사람이 바로 바덴이었던 것이다.

율리안이 움직이는 곳마다 신문 기자들과 사진 기자들이 따라다녔다.

이 역시 바덴이 손을 쓴 것이었다.

“300만 주민이 살아가는 노바가 평온하기만 하면 그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움에 빠지는 건 당연한 거예요. 우려할 필요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매점매석하는 상인들을 철저히 적발하여 엄히 처벌할 것입니다. 그리고 식료품 등 생필품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비축 물량을 풀 것입니다. 식품과 생필품을 제조하는 업체들에는 세제 혜택을 주어 생산을 독려할 겁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정부를 믿고 일상을 살아가세요.”

율리안이 반달 식품 매장 가운데에 상자를 쌓아 임시로 만든 단상에 올라 북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신문 기자들이 그의 연설을 빠르게 메모하고 사진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율리안이 단상 아래에 있는 바덴을 손짓으로 불렀다.

바덴이 단상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이분은 반달 식품의 고슬라 사장입니다. 사장님, 반달 식품에서는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얼른 사지 않으면 품절이 됩니까? 남보다 빨리, 남보다 많이 사서 쟁여 둬야 합니까?”

바덴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필센 제국 13개 지방에 산재한 우리 반달 그룹의 식품 저장 창고는 매우 크고 거래하는 농가, 목장, 과수원, 가공 회사들과 안정적인 장기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게다가 변경 구역들, 필센 북부 평원, 아라드 왕국에 자체적으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농업 기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창고가 비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다른 상점들은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는데 가격은 안 올리실 건가요?”

“우리 반달 그룹은 정부 방침을 준수합니다. 전쟁 기간에 가격을 올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잔뜩 사지 마세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는 것이 장바구니 무게도 줄이고 신선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덴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변경 8구역 통치자이신 율리안 님께서 필센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농산물을 저렴하게 공급해 주셨는데, 중간에서 우리가 이익을 보면 되겠습니까? 우리 반달 그룹은 율리안 님의 뜻을 받들어 전쟁 기간에 절대 가격을 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물건을 공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율리안은 바덴의 치사가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으나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 여기고 넘어갔다.

노바에는 방문할 식품점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바의 시민들과 가까이 만나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율리안의 행보는 신문 기사에 곧바로 실렸다.

바덴은 율리안에 대한 기사가 막심의 기사보다 전면에 나오지 않도록, 더 길지 않도록 주의하며 계속해서 실리도록 신경을 썼다.

황궁 탈환 이후부터 내전에 대한 두려움이 널리 퍼지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달 동안 율리안이라는 이름과 살짝 통통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얼굴과 따뜻하고 믿음직한 말들이 노바와 필센의 백성들에게 서서히 스며들어 갔다.

***

변경 기동 전투 부대의 멕 나이트와 함께 부르사 왕국에 상륙한 루산은 곧바로 왕궁을 방문해 므라드를 만났다.

갑작스럽게 멕 나이트 부대와 함께 온 루산을 보고 므라드는 깜짝 놀랐다.

“이런! 지난번에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보냈을 때는 이렇게 멕 나이트 부대와 함께 오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농담 섞인 그의 말에 루산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

“이 멕 나이트 부대는 부르사 왕국과 관련이 없습니다, 전하. 부르가스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하께 부탁드릴 게 있어 부르사로 온 것입니다.”

“부르가스? 부탁? 알아듣게 말해 보라.”

“제가 판매한 아우로라 멕 나이트를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음? 갑자기 그걸 왜 빌려 달라는 건가? 전쟁은 필센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페르보 제국은 곧 끝장이 나고, 루한이나 시바스도 위태롭다던데, 굳이 우리나라에 판 중고 멕을 다시 빼앗아가야 되겠는가?”

므라드는 중간중간 농담을 섞었다. 루산에 대한 나름의 친밀감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루산이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지와는 상관없이.

“빼앗는 게 아니라 빌리는 겁니다. 그 대가는 확실히 치르겠습니다.”

“진지하게 받지 마. 농담이니까. 이유나 말해 보게.”

“말씀드리기 민망합니다만······.”

“······?”

“남방군이 반란을 일으켜 부르가스에 상륙했습니다.”

므라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그게 정말인가?”

“네. 오베론 공작이 반란을 일으켜 체포되자 그의 아들이 남방군을 이끌고 반기를 든 것입니다. 부르가스에 상륙할 줄은 몰랐지요. 그래서 우리 병력이 부르가스로 바로 갈 수가 없어 부르사로 와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므라드는 똑똑한 인물.

그는 루산의 설명을 듣고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부르가스를 차지했다면 필센 제국이 고약하게 되었군그래. 오베론 공작의 아들이 제법 머리를 썼어.”

“그렇죠.”

“그런데 내가 필센 제국군 편제를 잘 알지는 못해도 남방군이면 3개 군단, 9개 기동 전단을 보유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원 부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이끌고 온 멕 나이트가 100대 남짓, 내가 빌려준다고 해도 200대 정도인데 고작 그 병력으로 반란군을 소탕하겠다고?”

므라드가 말한 병력 규모는 전시 재편을 거치기 전을 말하는 것이지만, 바트가 이끄는 남방군 1군단은 이미 그 정도로 확대돼 있었기에 루산은 굳이 정정해 주지 않았다.

“다른 부대와 협력할 것입니다.”

“그렇군.”

이 정도 설명으로 므라드는 수긍하고 넘어갔다.

부르사로 들어온 병력 말고도 다른 진압 부대가 있겠거니 하고 이해한 것이다.

“그럼 내가 멕 나이트만 빌려 주면 되는 건가? 아니면 우리 전사들까지 붙여 줘야 하는 건가?”

이 차이는 상당한 것이었다.

후자라면 부르사 왕국이 필센 제국의 위기를 보고 돕기 위해 참전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병력 피해는 입겠지만, 필센 제국과 우호적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은 그가 바라는 일이기에 기꺼이 전사들을 참전시킬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루산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우리 파일럿들이 도착할 것입니다. 멕 나이트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가?”

므라드는 약간 서운했지만, 아까운 전사들의 희생은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대가로는 무엇을 줄 생각이지? 도와 달라면 기꺼이 돕겠지만, 그대가 먼저 대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궁금해져서 말이야.”

“마나 연료를 드리겠습니다.”

“오!”

멕 나이트가 있어도 마나 연료가 없으면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장차 부르사를 개발해 나가면 철도와 공장도 늘어나고 멕 워커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마나 연료가 필요했다.

“마나 연료 공급량이 멕 나이트 사용 대가를 넘어설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개발권을 피닉스 제철에 주시기 바랍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지!”

아우로라 연합이 대전쟁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마나 연료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그 중요한 것을 주겠다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루산은 추가로 확보한 개발권으로 피닉스 제철이 철광석을 더 많이 확보해 더 많은 철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반값 정책 이후 다른 제철소들을 무너뜨리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만, 공급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나 연료를 공급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8구역에서 열차로 피닉스 제철의 본거지 슈텐달 지방까지 운반해서 배로 실어 나르면 되는 것이다.

가프 마법 연구소나 피닉스 제철이 정부에 자진해서 신고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밀수가 가능했다.

어쨌든 루산은 므라드로부터 전에 자신이 판매한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빌렸다.

“부르가스 접경지대까지 이동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렵지 않지.”

부르사의 전사들이 루산이 원하는 지점까지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이동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변경 기동 전투 부대 파일럿들은 몰랐다.

126명의 변경 파일럿들은 루산이 필센 제국군의 명령을 받고 이 나라에 들어와 협조 요청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루산이 부르사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를 만나 무슨 대화를 했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함께 이동하지 않고 멀찍이 거리를 두고 각각 다른 지점으로 향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라드 변경에서 온 파일럿들이 배를 타고 부르사 왕국으로 들어와 부르사 군의 안내를 받아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함께 도착한 전투 거미들이 산줄기를 타고 먼저 빠르게 이동해 루산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통신을 보냈다.

[대장님, 전투 거미 1호입니다. 아라드 변경의 파일럿들이 도착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미켈 슐츠에게 숨죽이고 있으라고 전하고, 전투 거미 1호와 2호는 부르가스로 가서 남방군 동태를 확인하세요. 황제와 근위대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아보고.]

[네, 대장님!]

[남방군은 대형 거미를 전투 지휘에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발견하면 해치우세요.]

[알겠습니다!]

전투 거미 1호가 떠났다.

이제는 소식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도대체 이 먼 나라에 왜 왔는지 이해를 못 하는 변경 파일럿들의 멕 나이트 부대.

복수심에 불타는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들이 주축이 된 멕 나이트 부대.

두 부대는 부르사 왕국 남쪽 부르가스와의 접경지대 구석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채 각자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