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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변경 군단의 기사-365화 (365/450)

365. 타이밍이 중요하다

365. 타이밍이 중요하다

바트는 황제를 잡는 데 실패하더라도 부르가스 자체가 요충지이므로 충분히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황제를 잡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르가스에 상륙한 남방군은 황제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짜는 데 무척 고심을 해서 포진했다.

부르가스 지방은 무척 넓기에 여러 나라와 닿아 있었고 길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 페르보 제국에서 바르나 왕국을 지나 부르가스로 들어오는 가장 넓은 길로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방군 대규모 병력이 이 길을 통해 동쪽으로 이동했고, 그 뒤에도 꾸준히 보급품 수송 부대가 왕복했다.

그만큼 빠르고 안정적인 길이었다.

남방군은 그 길이 이어지는, 부르가스와 바르나 왕국의 국경을 중심으로 기동 전단 4개, 이동식 마나포 부대 2개를 둥그렇게 배치해 황제와 근위대가 가운데로 들어오면 원형으로 포위해 달아나지 못하도록 포진을 마쳤다.

남방군에는 기동 전단 2개와 이동식 마나포 부대 1개가 더 있었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필센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부르가스 항에 남겨 두었다.

기동 전단 4개와 이동식 마나포 부대 2개로도 황제를 호위하고 있는 근위대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를 잡을 수 있도록 병력 배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황제가 어디에 오고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했다.

아무리 포위망을 잘 짜도 만약 다른 길로 가거나 아예 오지 않는다면 헛수고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바트는 지휘용으로 사용하던 대형 거미를 정찰에 투입했다.

그동안 남방군이 비교적 큰 피해 없이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한 대형 거미.

그런데 비효율적인 운용비와 잦은 고장, 5년 동안의 혹사로 인한 부품 마모 등의 문제로 그동안 조심스럽게 사용해 왔다.

오베론 가문이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돈이 많아도 많은 마법 연구소들이 대형 거미 사업을 접고 멕 나이트로 전환하는 추세를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귀한 대형 거미를 정찰에 투입했다는 것 자체가 바트가 황제 체포 작전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황제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남방군이 부르가스에 있다는 것을 알면 의심하여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들키지 말고 황제가 어디쯤에 있는지 신속히 파악해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남방군 대형 거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길이 내려다보이는 산줄기, 절벽, 숲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근위대 정찰대에 포착되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였다.

조종수는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대형 거미가 고장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관측병들은 주변에 목격자가 없는지 끊임없이 관찰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이동하던 중 그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뒤쪽에 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뭐가 있었다는 거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방금 저쪽 바위 봉우리 뒤쪽으로 무언가가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한 관측병의 보고에 다른 관측병이 망원경으로 그쪽을 지켜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해서 헛것을 봤나 본데, 정신 차려!”

“···예.”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다른 관측병도 무언가가 주위에 어른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방군 대형 거미에 탄 군인들은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야생동물이겠지.”

“그렇···겠죠?”

그러나 관측병들은 야생동물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렇잖아도 오베론 가문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반란군이 되었다는 사실과 황제를 잡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었다는 사실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와중에 산이든 벼랑이든 숲이든 무언가가 유령처럼 근처를 배회하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해서 받게 되니 미칠 것 같았다.

어쨌든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어 계속 이동했다.

“빨리 근위대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가자!”

조종수가 속도를 높였다.

거대한 거미 모양의 기계가 다리를 재게 놀려 바위산을 잽싸게 이동했다.

그러다 다른 봉우리로 이동하기 위해 골짜기로 내려오는 순간, 어디선가 거대한 화살이 빠르게 날아왔다.

쐐액!

날아온 화살은 대형 거미 후미 몸통에 박혔다.

츄웅!

강렬한 진동과 함께 대형 거미가 크게 요동쳤다.

균형 중추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5년 동안 단 한 번도 공장으로 돌아가 정밀 점검을 받지 못해 충격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적이다!”

관측병들이 소리를 질렀다.

“저쪽이다!”

관측병 중 하나가 적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건너편 봉우리에서 자신들이 타고 있는 것 외에 다른 대형 거미 한 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대형 거미는 자신들에게는 없는 거대한 화살을 쏘고 있었다.

슈웅-!

또다시 거대 화살이 빛줄기처럼 날아와 남방군 대형 거미에 꽂혔다.

“으악!”

“계곡 아래로 숨어!”

각을 주지 않기 위해 조종수가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미 맞은 거대 화살 두 발이 근처의 다리 동작 기관을 부수는 바람에 여덟 개가 움직여야 하는 대형 거미가 다섯 개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계곡으로 내려가려던 대형 거미가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졌다.

쿠쿠쿠쿵!

조종수와 관측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참을 구르던 대형 거미는 거꾸로 뒤집혔고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신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원이 아니었다.

전투 거미 두 대가 계곡 양 옆에서 비스듬히 기운 자세로 붙어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남방군 병사들은 커다란 화살을 수차례 맞고 절명했다.

계곡 기슭에 붙어 있던 전투 거미가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파워 아머를 착용한 남방군 출신 반란 파일럿이 내려 뒤집힌 남방군 대형 거미 안을 수색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조종수와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벌벌 떨고 있는 관측병을 처치했다.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그럼 어떡해?”

“치워야지.”

“사람도 올 것 같지 않은 바위산 계곡에서 저절로 썩고 녹슬겠지.”

“음······.”

“발견 되도 어쩔 수 없고. 누가 한 일인지 어떻게 알 거야?”

결국 그들은 찌그러진 채 뒤집혀 있는 남방군 대형 거미와 그 주변에 발리스타 화살을 맞고 죽어 있는 시체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황제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 거미 두 대는 남방군 대형 거미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기 위해 동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마침내 그들은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 행렬을 목격했다.

그런 뒤 빠르게 돌아와 보고했다.

당연히 보고의 대상은 남방군 1군단장 바트 오베론이 아닌 변경 기동 전투 부대 지휘관인 루산 보름스였다.

[지금 속도라면 4일 뒤에 남방군이 파 놓은 함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근위대 병력은 얼마나 되죠?]

[기마병이나 수행원들을 제외하고 멕 나이트만 놓고 봤을 때 200대 정도입니다.]

[200대······.]

[근위대 멕 나이트니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성능 저하가 거의 없겠죠.]

그렇다 해도 멕 나이트 200대로 남방군 포위망을 버티거나 뚫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마나포에 의해 거의 궤멸될 수도 있었다.

남방군의 일방적인 승리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직접 확인한 적은 없지만, 소문대로라면 근위대 파일럿의 실력이 남방군보다 다소 우위에 있겠죠.]

[뭐 그렇다고 봐야죠.]

보고하는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만큼 근위대 파일럿은 출신뿐 아니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근위대 멕 나이트 200대면 남방군 멕 나이트 400대를 이기지는 못해도 황제를 보호하며 후퇴할 수는 있겠죠. 마나포가 없을 때라면 말입니다.]

[그렇겠죠.]

마나포는 강력하지만,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금 남방군이 포진한 곳의 위치는 마나포의 위력을 최대로 볼 수 있는 개활지 외곽의 낮은 언덕 지대였다.

[이동식 마나포는 전투 시에 멕 나이트만큼 신속하게 이동할 수는 없어요. ]

이동식 마나포라 해도 아무 곳으로나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었다.

지형의 제약을 받을 뿐 아니라 아군 멕 나이트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적의 멕 나이트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루산은 지도를 보며 고심했다.

[근위대가 남방군 포위망에 들어가기 직전에 근위대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정찰병을 보낼 것이고, 사실을 확인하거나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으면 물러나겠죠. 그러면 남방군 멕 나이트는 근위대를 잡기 위해 달려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황제와 근위대가 달아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황제만 잡으면 이 싸움의 승기는 오베론 가문으로 크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슐츠 경에게 바르나 왕국으로 들어가 근위대가 동쪽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길목을 막으라고 하세요. 남방군 멕 나이트 부대와 협공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죠. 가베스에서 길목을 막으면 되겠군요.”

가베스.

부르가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바르나 왕국의 관문 도시.

가베스 동쪽으로 가는 길은 산길이라 그 길목을 막으면 달아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길을 막으세요. 멕 나이트는 드러내지 말고. 남방군과 근위대가 싸워 양측 병력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하지만, 대장님! 근위대 파일럿들의 실력이 남방군에 비해 다소 우위에 있다 해도 황제를 보호하는 데 우선하다 보면 남방군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방군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원수를 모두 제거할 생각이었다.

황제뿐 아니라 오베론 가문의 남방군도 해치울 작정인 것이다.

[내가 변경 기동 전투 부대를 이끌고 가서 남방군 포위망에 남아 있는 이동식 마나포 부대를 먼저 부순 뒤 남방군 멕 나이트 부대를 따라갈 겁니다. 남방군 뒤를 치는 거죠.]

[음!]

[중요한 건 타이밍이에요.]

[타이밍!]

[남방군과 근위대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는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남방군이 우세를 잡을 때 내가 먼저 뒤를 치는 거죠. 그러다 우리 변경 기동 전투 부대가 전투력이 약해 할 수 없이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때 가베스 인근에 잠복해 있던 아우로라 연합군 멕 나이트 부대가 남아 있는 근위대와 남방군을 쓸어버리는 것이죠.]

가베스 인근에 잠복해 있는 아우로라 연합군 부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미켈 슐츠가 지휘하는 아라드 변경 파일럿들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여기서 끝장을 볼 수 있겠군요!]

통신기 너머에서 전투 거미에 탑승해 있는 남방군 출신 반란 기사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황제와 오베론 공작에 대한 복수가 마침내 4일 뒤에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루산은 흥분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된다면 그렇죠. 그러니 미켈 경에게 철저히 준비하라 이르고, 바르나 왕국으로 들어가서 가베스 인근에 잠입할 때까지 절대 움직임이 노출되어서 안 된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투 거미 1호기는 나와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에서 남방군 포위망을 감시하고, 전투 거미 2호기는 아라드 변경군과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에서 근위대를 감시합니다. 그리고 가베스에서는 1호기와 2호기끼리도 통신이 되어야 해요. 아라드 변경군과 나 사이를 중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대장님!]

전투 거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미켈 슐츠가 지휘하는 아라드 변경군이 아우로라 연합의 멕 나이트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고 가베스로 가기 위해 멀리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한편 바트는 대형 거미가 소식을 보내오지 않아 걱정하면서도 다른 정찰병들을 동쪽으로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얼마 후 정찰병들이 근위대의 접근을 알려왔다.

“근위대가 동쪽 가베스 가까이 왔습니다!”

“알았다!”

황제만 잡으면 다 이긴 것이다!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

“알겠습니다!”

포위망을 형성한 남방군이 긴장된 마음으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 루산이 이끄는 변경 기동 전투 부대 멕 나이트들이 남방군 포위망 가까운 곳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부르가스의 산과 들이 가을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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